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04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날리려는 그때 하늘에서 샤이닝 마법이 연거푸 솟아올랐다.
섬광의 개수와 템포를 확인한 네이드가 중얼거렸다.
“구조 신호?”
R의 확률 (1)
알페아스 마법학교 정비 공장.
간단한 마법 교보재를 정비하는 이곳은 밤이 되면 학생은 물론 직원조차 출입이 금지된다.
도난, 손실, 화재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 사비나의 에어 커트에 의해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퍽 하고 불꽃이 튀며 철조망이 갈라지자 몸을 날린 프링스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되지, 안 돼.”
프링스는 강하다.
졸업반 서열 3위라는 수식조차 마법의 수많은 능력치를 종합한 것에 불과.
실전에서 전투 마법사는 가히 포악한 포지션이고 속성은 빙결, 어지간한 스피릿 존은 감각적으로 회피해 버리는 능력 앞에서는 같은 전투 마법사인 사비나라도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흐읍!”
사비나의 목을 붙잡은 프링스가 철창으로 그녀를 처박았다.
“이게……!”
“스피릿 존을 풀어.”
심장을 찌르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안 그러면 목이 날아간다.”
목을 관통하는 식도가 얼어붙는 것을 느낀 사비나는 스피릿 존을 해제했다.
“그래 봤자 마스터 카드는 절대로…….”
“닥쳐. 질문은 내가 한다.”
프링스의 눈을 본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차가워.’
그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냉기가 코로 스며들 때마다 내장이 냉동되는 기분이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기껏해야 10분? 이대로 계속 숨을 쉬면 배 속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버릴 테니까.”
스크럼블 로열의 승리 조건을 외면하고 굳이 고통을 주는 이유를 사비나는 알지 못했다.
“원하는 게 뭐야?”
사비나에게 얼굴을 들이민 프링스가 들리도록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아아아아!”
파르르 떨리는 그의 눈꺼풀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살심이 솟구쳤으나 차마 드러낼 엄두가 나지 않는 이상성이었다.
“구역질 나는 냄새군, 사비나. 마치 시궁창에 빠진 기분이야.”
사비나가 울컥하는 것과 동시에 냉기가 강해지면서 혈관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흐윽!”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네이드를 기다리나? 조금 전의 구조 신호를 보고 그가 와 줄 것이라 생각하나?”
사비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대답해. 안 그러면 죽인다.”
프링스는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가면을 벗은 그의 표정에는 법도, 도덕도, 마법학교 학생으로서의 품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좋아, 착한 아이로군. 이제부터 너에게 질문을 하겠다. 거짓말이라 생각되면 죽인다. 시간을 끌면 얼어 죽는다. 자, 1단계.”
사비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처음에는 쉬운 걸로 가지. 오늘 아침에 뭘 먹었지?”
“빵 먹었어.”
“정확히 말해! 무슨 빵을 먹었지? 어떤 맛이었어? 우유와 함께 먹었나? 아니면 주스?”
냉기가 강해지자 사비나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우유에 크림빵 먹었어! 맛있어 죽는 줄 알았다! 왜!”
“오오, 그런가? 크림빵을 우유에…….”
프링스의 눈이 뒤집어졌다.
“……먹었단 말이지. 아주 맛있게……. 달콤했겠어, 으응? 입에서 살살 녹았겠는데?”
‘죽여 버리고 싶어!’
프링스의 동공이 제자리를 되찾았다.
“좋아. 두 번째 질문. 첫 키스는 언제 했지? 누구랑 했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기분이었지? 장소는? 어떤 자세였어?”
사비나는 이를 악물었다.
“너 따위에게 말할 것 같아?”
“오호, 버텨 보겠다는 건가? 그렇게 비밀스러운 키스였나? 소중한 추억인가?”
더욱 차가운 공기가 코로 스며들었다.
“괜찮은 선택이지. 소중한 추억과 생명을 저울질하는 건 어떤 기분이지? 두렵나? 이 상황이 거짓이었으면 좋겠나?”
‘살려 줘! 살려 줘, 네이드!’
프링스의 말을 머리에서 차단하며 사비나는 속으로 외쳤다.
‘무섭지 않아. 구하러 와 줄 거야.’
비정상적인 프링스의 광기에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네이드가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야. 그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무서웠어.’
사비나의 동공이 풀려 갔다.
“서서히 효과가 나오는군. 포기하는 게 어때? 고작 이런 걸로 죽어서야 되겠어?”
정비 공장의 철조망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
‘빨리! 빨리!’
네이드는 사력을 다해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그가 알기로 자신의 팀원 모두 어지간한 일로는 도움을 구할 성격이 아니었다.
‘사비나의 영역인 것 같은데.’
순간 이동의 템포에 박차를 가하는 순간 사방에서 이마에 뿔이 달린 괴물이 덮쳐 왔다.
진천요술-홍도깨비.
반사적으로 플라즈마를 깔고 전격을 가하자 도깨비의 몸에 푸른 전기가 엉키면서 폭발했다.
‘안찰이다! 캉을 걸어야…….’
현재 네이드의 패는 ○●○●(민주주의), 안찰의 패는 ○●Ⓡ●였다.
‘마지막 패를 흑으로 선택했다. 그렇다면 랜덤 패는 백일 확률이 높아.’
같은 패라면 캉을 걸어 두는 게 이득이었다.
“안찰, 캉.”
안찰이 답했다.
“캉.”
역시나 같은 민주주의였고, 그런 만큼 안찰의 기습이 의아한 상황이었다.
‘내 패는 이미 공개된 상태인데? 같은 패라는 걸 알면서도 왜 나를 기습한 거지?’
스크럼블이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구조를 막으러 온 건가? 어제는 비밀 협의를 제안했다더니. 박쥐 같은 성격이군.”
안찰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뭐야, 진짜? 이 여자는…….’
안찰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전투를 하는 중이다. 스크럼블 로열 따위는 상관없어.”
“그럼 비켜. 안 그래도 바쁘니까.”
“네이드, 너는 누구냐?”
네이드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을 분석하는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기계처럼 냉정한 분석이지.”
“그래서 뭐? 어떻게 하면 졸업반 꼴등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라도 하냐?”
“나보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명백하다. 물론 약한 자가 대부분이지만. 하지만 너는…….”
안찰은 확언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눈을 치켜뜨며 네이드를 살폈다.
“정말로 모르겠다. 따라서 대의의 거사를 앞둔 지금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다.”
네이드는 사비나의 말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나야. 뭘 알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지금과 변하는 건 없어.”
“과연 그럴까?”
안찰이 손을 휘저었다.
진천요술-심상 구현(자화상).
“자, 너의 진짜 모습을……!”
말을 멈춘 안찰의 외눈이 부릅떠졌다.
‘저건 뭐지?’
“크으으으!”
네이드의 몸에서 전기가 일렁이더니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으아아아아!”
밤과 낮이 반복되는 듯 풍광이 번쩍거리고, 마침내 실체가 드러난 순간 안찰의 몸이 섬광으로 치솟았다.
‘읽어 낼 수가 없어.’
상대의 심상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능력이지만 환영의 대가인 안찰조차도 분석이 불가능했다.
“설마……?”
퍼어어어엉!
환영이 아닌 실제의 전격이 퍼져 나가면서 네이드가 있던 반경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200미터 떨어진 지점의 나뭇가지에 정확히 착지한 안찰은 자화상을 달고 숲으로 도망치는 네이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 지경이 되도록…….”
심상 구현을 통해 드러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였다.
“미치지 않을 수 있는 거지?”
***
“하아아아…….”
사비나의 입술 사이로 차가운 김이 새어 나왔다.
조금씩 정신이 몽롱해지고 온몸이 얼어붙은 듯 감각이 사라졌다.
“끝이 다가오는군. 어떤 기분이지, 죽는다는 것은?”
‘말해야 돼.’
죽는 것보다는 낫다.
‘말할 수 없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사비나가 갈등하는 그 애매한 경계선이야말로 프링스가 쾌락을 느끼는 정확한 지점이었다.
“자, 마지막 기회다. 선택해라. 대답할 텐가, 죽을 텐가?”
“나는…….”
사비나의 입이 열리는 그때 프링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스피릿 존?’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로 섬광이 지나갔다.
“허억!”
깊은 숨을 토해 내며 무릎을 꿇은 사비나가 아픈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이드?”
예상과 달리 시로네가 서 있었지만, 서운함을 느낄 새도 없이 그녀는 절뚝거리며 다가갔다.
“미안. 내 힘으로는 벅차서.”
프링스의 실력은 직접 상대한 시로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을 거야.”
시로네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프링스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무슨 의민지 모르겠군. 그러는 너는 뭐 하고 있지?”
“아무리 감정이 격해졌어도 규칙과 협의에 의한 경기야. 이런 식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건 용납 못 해.”
프링스가 애기 목소리로 시로네의 말을 따라 했다.
“상대를 괴롭히는 건 용납 못 해.”
그리고 얼굴이 붉어진 시로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용납 못 하면 어쩔 건데? 나를 때릴 건가? 그렇다면 미친 듯이 도망쳐 주지.”
프링스의 검지가 황급히 시로네를 가리켰다.
“방금 왜 도망친다고 말했을까 생각했지? 혹시 날 무서워하는 건가? 천만에, 천만에.”
검지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게 진정한 승리거든. 네가 열 받아서 미쳐 버릴 것 같고 화병에 앓아눕는 게 말이야. 솔직히 너도 답답하지 않아? 마음껏 해방시키는 거야.”
프링스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강함이야말로 진정한 자유! 도덕률, 법률, 교칙을 벗어나 무한한 자유로움을 얻는 거야!”
“그래서…… 넌 지금 무한하냐?”
“응?”
“내가 바라보는 너는 갈증을 채우지 못해 끝없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공겁이야.”
“호오, 표현에 품격이 있으시군요. 천민 주제에.”
프링스는 어떻게든 시로네를 열 받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든 나는 내가 정한 선을 지킬 거야.”
“그래?”
프링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럼 약이 올라 죽으시든지.”
순간 이동을 시전한 프링스가 담장을 뛰어넘으려는 그때, 시로네의 섬광이 정면으로 충돌해 왔다.
“뭐야!”
광자화를 해제한 프링스가 담장을 넘지 못하고 물러서자 시로네가 광천사의 화신을 드러내며 돌진했다.
‘저것인가? 시간을 조작하는 능력.’
치명상을 각오하고 정면충돌을 택한 이유는 되돌릴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잘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