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07
그가 어떤 방식으로 거금을 벌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페르미, 미안하다.”
레이첼이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네 엄마가 될 수 없어.”
페르미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으나 눈썹이 아주 조금, 미간을 향해 올라간 듯했다.
“알아요.”
자리에서 일어난 페르미가 말했다.
“이 돈으로 재단을 세우세요. 어머니가 못다 이룬 꿈, 대신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수표만 덩그러니 놓고 문으로 향하자 레이첼이 벌떡 일어났다.
“페르미.”
“걱정하지 말아요.”
문을 연 그가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겁니다.”
문을 닫고 14년 전과 변함이 없는 복도를 걸어 허름한 출구로 향하자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누구예요? 우리 원장님 괴롭히려고 온 사람이죠!”
“분명 그럴 거야. 눈이 쪽 찢어져서, 저번에 온 빚쟁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페르미가 물었다.
“너희들, 원장님이 좋니?”
“당연하죠! 원장님은 우리들 모두의 엄마예요!”
-페르미! 원장님은 우리 모두의 엄마야!
14년 전의 목소리를 들으며 페르미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얼굴을 향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까지도 아이는 움직이지 못했다.
턱,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짚은 페르미가 주저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자,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작은 은화였다.
갈등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아이가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이런 거 받으면 안 되는데. 원장님에게 혼나는데.”
“괜찮아, 정당한 거래니까. 그러니 이걸 받고 약속 하나만 해 주렴.”
아이의 손에 은화를 쥐여 주며 페르미가 말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레이첼 원장님을 꼭 지켜 줘야 한다.”
그거라면 자신 있다는 듯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물론이죠! 빨리 커서 원장님 괴롭힌 나쁜 놈들을 제가 다 혼내 줄 거예요!”
“그래.”
페르미는 눈웃음을 지으며 보육원을 나섰다.
고개를 든 그의 시선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펼쳐졌고 욜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어머니, 이러면 된 건가요?’
페르미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눈에 증오의 감정이 차올랐다.
‘이제부터 복수의 시작입니다.’
***
정오를 기점으로 6일 차 스크럼블 로열이 개전되었다.
이제 남은 144개의 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기에 두 팀의 행동은 민첩하면서도 신중함이 배어 있었다.
피쇼의 곤충 마법은 스크럼블 수집 속도에 있어서 가장 빨랐으나 사비나가 그를 견제하는 동안 도로시가 고군분투하여 어떻게든 비율을 5 대 5로 맞춰 나가고 있었다.
‘네이드가 오지 않았어.’
에덴을 찾아 사방을 돌아다니는 시로네의 머릿속은 심란했다.
‘전장을 이탈한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마스터 카드의 현황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네이드가 하나의 스크럼블을 차지한 것이 분명했다.
친구들에게 말도 없이 독단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뜻.
이루키는 당분간 내버려 두라고 했지만 사정을 모르는 시로네로서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찾았다! 스크럼블!’
저 멀리 반짝이는 스크럼블을 발견하자 네이드의 생각도 일단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동시에 수풀을 가르고 에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기를 모르는군.”
그녀는 여전히 나신의 상태였고 마스터 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캉은 걸 수 없어.’
안도할 여유조차 없이 포톤 캐논을 띄우자 에덴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말했을 텐데? 신이 보우하시는 한 누구도 내 육체를 훼손시킬 수 없어.”
“과연 그럴까?”
포톤 캐논을 쏘자마자 순간 이동을 시전한 시로네는 황급히 스크럼블을 낚아챘다.
‘쳇, 신경도 쓰지 않잖아.’
포톤 캐논에 맞으면서도 눈조차 깜박이지 않는 모습을 보자 더욱 골이 났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오히려 편하지.’
엘리시온을 시전한 시로네는 하늘에 대고 아타락시아를 집적시켰다.
무적이란 이런 것인지, 그녀는 시로네가 어디에 있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저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은 줄 수 없지만…….’
샤이닝 체인으로 에덴의 전신을 복잡하게 옭아맨 시로네가 하늘로 그녀를 집어 던졌다.
시분할을 취소하고 전력을 다해 정신을 집중하자 하늘의 아타락시아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집적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에덴은 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졸린 듯 다음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신이시여, 당신의 존재함을 믿습니다.”
그녀의 기도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아타락시아가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모탈 펑션!’
정신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시로네가 정수리 위쪽으로 포톤 캐논을 압축시켰다.
에덴, 아타락시아, 포톤 캐논이 일자로 연결되면서 정확히 조준되고, 시로네의 어금니가 굳게 다물렸다.
‘하늘이라면 위력은 걱정 안 해도 돼!’
생각과 동시에 굵직한 섬광이 아타락시아를 관통했다.
어마어마한 증폭력으로 솟구치는 빛 앞에서 처음으로 에덴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그것조차 섬광에 파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시작됐다!’
스크럼블 로열에 참전한 모두가 똑같이 동작을 멈추더니 하늘로 뻗어 나가는 거대한 기둥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R의 확률 (4)
‘이건…….’
빛에 둘러싸인 에덴은 난생 처음 실체화된 성스러움을 느꼈다.
극한의 방어 마법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막강한 질량파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고통도 충격도 없지만, 인간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불가능한 빛의 출력이 얇은 방어막을 사이에 두고 떨림으로 전해져 왔다.
그 초월적 진동의 끝에서 갑자기 출력이 치솟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탈출해야 돼.’
스크럼블 로열의 장외 판정에 높이가 설정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우주까지 날아갈 것 같았다.
‘신이시여…….’
에덴은 정확히 육체만큼의 공간에 자신을 고정시켰다.
‘어째서 화가 나신 겁니까?’
마찰력이 강해지면서 방어막 바깥의 진동이 극심해졌다.
울음소리 같았다.
짐승도, 인간의 비명도 아닌 무언가의 울음소리.
“흐으으읍!”
신이 존재하는 한, 에덴의 방어막은 파괴되지 않는다.
‘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육체를 공간에 붙잡아 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방심했어. 이런……!’
끝없이 출력을 높여 가는 섬광 속에서 시로네의 계산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날려 버릴 생각이었던 거야!’
그녀를 붙잡고 있던 율법의 사슬이 끊어지면서 마치 사라진 듯 육체가 좌표를 이탈했다.
“아…….”
정신을 차렸을 때, 울음 같은 떨림은 사라져 있었다.
육체 아래로 거대한 구름의 바다가 펼쳐져 있고 밤하늘 위에는 거대한 달이 떠 있었다.
“아름다워.”
신이 만든 모든 것은 아름답다.
중력에 의해 그녀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하고 구름의 바다를 뚫고 가속되는 와중에도, 눈동자는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신이 그녀를 지켜 줄 테니까.
“…….”
섬광이 사라진 고요한 산중에서 시로네는 하늘을 살폈다.
새하얀 육체가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로 떨어지는 것을 뒤늦게 시선이 뒤따랐다.
머리부터 추락하자 쿵 하고 땅이 울리고 깊게 파인 구덩이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잠시 후 에덴이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로 이 여자…….’
괴물이다.
이루키에게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현실감이 없었으나 직접 겪어 보자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작전은 좋았어.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했군.”
-스크럼블 로열의 장외 판정에서 높이의 한계치는 중력장이 미치는 범위 바깥이다.
처음부터 정면으로 밀어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어차피 다음부터는 에덴도 순순히 당해 주지만은 않을 터였다.
‘스크럼블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에덴은 공격하지 않을 것이기에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었다.
‘다른 대비책을 세워야 해.’
그런 생각으로 몸을 돌리는데 에덴이 불렀다.
“잠깐 기다려.”
시로네는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조금 전의 증폭 마법. 가올드를 만났을 당시와 비교하면 어떻지? 더 강한가?”
천국에 가기 전의 위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어째서 그런 걸 물어보지?”
에덴은 대답 없이 생각에 잠겼다.
“가올드를 신경 쓰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뭐야? 같은 요르 교단이어서?”
에덴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단 따위를 어디에 갖다 붙이는 거야?”
“이단?”
“그는 신을 버린 자다. 한낱 인간의 육욕에 미쳐서 말이야.”
이번에는 시로네의 미간이 좁혀졌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미로를 향한 가올드의 사랑은 진짜였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신이 정말로 있다면, 사람의 감정 또한 신이 만든 것이잖아.”
“물론.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의 보살핌 아래에서다. 가올드는 1명의 여자를 위해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전 인류의 목숨마저 위협했지.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말이야. 요르 교단에 말소된, 기록조차 있어서는 안 되는 수치. 그게 바로 가올드야.”
“그것이 너의 전능인가?”
에덴은 당당하게 몸을 드러냈다.
“모든 것은 신의 인도하에. 그렇기에 어떠한 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나는 무적인 것이다.”
“너는 무적이 아니야.”
시로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논리적인 파훼법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에덴이 진실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앱솔루트 배리어도 무적은 아니다.
“가올드의 고통을 동정할 생각은 없는 건가?”
“동정?”
에덴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신을 버린 죗값을 치르는 자에게 동정의 여지는 없어. 나는 가올드보다 강하다. 지금도 증명하고 있잖아?”
시로네는 마법협회의 지하 비밀 벙커에서 가올드가 아타락시아를 바쿰 프레스로 막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평온한 표정의 에덴과 달리 그가 드러냈던 얼굴은 고통의 극치.
인간이기에, 생물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안 좋은 감정의 총체였다.
‘가올드 씨…….’
그렇기에 응원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신보다도 그의 고통이 더 위대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얼마나 대단한 방어 마법인지 몰라도 신이 아닌 이상 절대적인 것은 없어.”
“신이다.”
에덴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것이지.”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을 깨달은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언제든지 와라. 신은 도망치지도, 피하지도 않으니까.”
에덴이 몸을 돌려 숲으로 사라졌다.
은신처로 돌아가 다음 스크럼블이 소환될 때까지 그녀가 할 일은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뿐이었다.
‘에덴. 그리고 가올드.’
신이 준 평온과 인간의 고통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시로네는 알지 못했다.
***
6일 차의 두 번째 스크럼블이 소환되고 각각의 임무를 부여받은 참가자들이 바삐 움직였다.
도로시 또한 최대한 많은 스크럼블을 수집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는 중이었다.
‘2개, 아니 3개는 내가 찾아야 돼.’
그렇지 않고서는 피쇼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우우우웅!
조너의 예민한 감각이 공기의 떨림을 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