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08
‘고주파?’
히커리가 그녀를 안고 하늘로 솟구치자 뒤편의 나무가 펑 하고 폭발했다.
‘헤르시다.’
음향 계열의 공격 마법인 카이저 건.
고유진동수를 증폭시켜 사물을 폭파시키는 방식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점이 있었다.
‘갑자기 왜?’
헤르시의 패는 ⓇⓇⓇⓇ.
스크럼블의 총 개수가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오픈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 패를 소모시킬 생각이네.’
헤르시의 캉을 막으려면 도로시도 히커리에 비축해 놓은 스크럼블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파오를 각오한 도로시가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캐논 킥(←→→ + 공격)!’
히커리가 뒷발차기 자세로 쇄도해 나무들을 부러뜨리자 은신해 있던 헤르시의 모습이 드러났다.
‘캉을 걸지 않아. 노리는 게 있는 걸까?’
의문을 느낀 그때, 헤르시가 히커리의 공격을 피하며 쌍권총을 든 자세를 취했다.
‘더블 카이저 건.’
2개의 파동이 공명하자 히커리의 몸이 덜덜 떨렸다.
‘이런!’
처음부터 노렸던 것은 히커리가 수집한 스크럼블.
특히 파동 계열의 특성상 내구력 무시의 공격은 철의 천적이었다.
‘시간 내에 제압해야 돼!’
더블 슈퍼 로켓 펀치(→→→ + 공격, 방어)!
숲을 초토화시키며 돌아다니는 2개의 로켓 펀치는 살인적인 위력이었으나 헤르시의 탐색 능력도 만만치 않았다.
“적의 약점을 노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히커리의 기체가 폭발할 듯 덜덜 떨리는 그때 소나의 마법이 강제로 해제되었다.
‘캔슬레이션?’
“적의 약점을 노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이루키가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헤르시는 황급히 몸을 던졌다.
“크윽!”
로켓 펀치가 추적해 오고 있었다.
‘이미 전지가 분석됐어. 더 이상 소나는 불가능하다.’
탐색 기능을 잃은 헤르시는 어둠 속에 고립된 기분이었다.
‘에어 슈트!’
방어 마법의 기본을 최대한 몸에 두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조작 모드(공격 + 이동), 최고 출력으로(→→→→→→).’
도로시의 로켓 펀치가 복부에 정통으로 처박히자 헤르시의 표정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쾅! 쾅! 쾅! 쾅!
나무를 쓰러뜨리고 날아간 헤르시를 살피며 이루키가 소리쳤다.
“마스터 카드!”
헤르시를 이탈시키면 연합 팀은 두뇌를 잃게 된다.
‘그러면 에덴이 있어도 이길 수 있어.’
이루키와 도로시가 숲으로 뛰어드는 그때 풍경이 돌연 기이하게 변했다.
진천요술-음란 마귀.
“허어어억!”
눈에 보이는 건 인간의 육체가 아니었다.
하나의 단세포가 암수로 나뉘기를 결정했을 때부터 생겨난 태곳적의 거대한 욕망이었다.
“허억! 허억!”
환영이 사라지자 이루키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엄청나다. 일반적인 수준의 환영이 아니야.’
고개를 돌리자 도로시가 그를 바라보며 침을 꼴딱 넘기고 있었다.
“아…….”
정신을 차린 이루키가 말했다.
“일단 성공이야. 앞으로도 계속 스크럼블을 수집해 줘. 목표치를 달성하면 승기가 올 거야.”
“어? 어, 알았어.”
이루키가 자리를 벗어나려는 그때 도로시가 불렀다.
“이루키.”
“응? 흐읍!”
갑자기 입맞춤을 하자 이루키의 눈이 흔들렸다.
약속된 것도 없이 동시에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지고, 얼굴이 달아오른 도로시가 빠르게 말을 던졌다.
“나, 꼭 성공할게.”
공간 이동으로 날아가는 도로시를 바라보던 이루키는 잠시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사비나에게 가야…….”
도로시와 정반대 쪽으로 섬광이 치솟았다.
***
“빌어먹을 캔슬레이션.”
헤르시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막는다고 막았으나 배근육이 찢어진 듯했다.
“괜찮아?”
헤르시는 안찰을 노려보았다.
이번에도 그녀의 마법 덕분에 위기를 넘겼으나 좀처럼 만족이 되지 않았다.
‘확실히 강하다. 페르미, 라이컨 외에는 제압할 사람이 없을 거야.’
말인즉슨 학교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교사들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너, 도대체 할 생각이 있는 거야? 여기서 지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 몰라?”
“남들만큼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어제 네이드에게 심상 구현을 시전했어.”
헤르시가 말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네이드의 움직임이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딴 걸 해냈다고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
안찰은 비웃음을 지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경기에서 할 몫은 다 한 셈이다. 그러니 원망하지 마.”
“잠깐! 대체 무슨 소리를……!”
헤르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찰이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
세 번째 스크럼블이 소환되었다.
‘에덴을 당장 막을 수는 없어. 도박을 거느니, 하나라도 더 스크럼블을 수집하자.’
아침처럼 순순히 양보해 줄 것이란 보장이 없기에 시로네는 에덴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좌표를 우회했다.
“응?”
갑자기 사방에 성스러운 연무가 깔리더니 동방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무덤이 갈라졌다.
진천요술-중천계.
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안찰이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다.
“기다렸다, 시로네.”
이미 환영에 당한 경험이 있는 시로네는 바짝 긴장했다.
‘안찰의 패는…….’
생각을 읽은 듯 안찰이 마스터 카드를 꺼내 땅에 던졌다.
“무슨 짓이야?”
“너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얘기를 하고 싶다.”
에이미에게 들었던 비밀 협약이 떠올랐다.
‘안찰이 이탈하면 확실히 유리하다. 하지만…….’
시로네가 내린 결정은 에이미와 같았다.
“마스터 카드를 주워.”
“난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듣고 싶지 않아. 무슨 생각으로 참전했는지 모르지만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혼자서 이스타스를 조사하면 너는 죽는다.”
“상층부 루머를 말하는 거라면, 관심 없어.”
“대정화기. 세 번째 초기화를 주도한 게 너라면 아예 관계가 없지는 않을 텐데?”
시로네의 눈썹이 꿈틀했다.
‘대체 이 여자, 누구지?’
주위를 살피던 안찰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시로네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요술로 주위를 차단한 상태지만 기밀 관리는 첩자의 기본적인 소양이었다.
“이스타스는…….”
안찰의 말을 들은 시로네의 눈이 커지더니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야?”
“동행. 나와 함께 이스타스에 들어가자.”
중천계를 소멸시킨 안찰이 마스터 카드를 반으로 찢으며 숲으로 모습을 감췄다.
“경기가 끝나면 찾아와라. 기다리고 있으마.”
안찰.
스크럼블 로열 기권.
신의 이름으로 (1)
6일 차 스크럼블 로열이 절반을 훌쩍 지나면서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루키의 소집 신호를 확인하고 아지트로 돌아가던 에이미는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케이든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시로네에게 부상을 당해 2일 동안 휴식을 취했던 그의 육체는 말끔하게 회복이 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스크럼블 로열이 개전되기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케이든.”
“가라.”
에이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케이든이 말했다.
‘케이든은 패가 없어.’
오늘은 처음부터 참전했으나 스크럼블 로열의 수집은 전무.
이 또한 이루키의 예상대로 헤르시에게 패를 몰아주려는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치고는 활동 자체가 없었다.
“그냥 보내 주겠다고?”
“그래. 캉을 걸어도 상관없어. 귀찮기는 하겠지만.”
무시당하는 맛이 썩 좋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케이든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약속은 지킨다. 그저 스크럼블 로열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무력보다 패의 조합이 더 중요한 단체전에서 시로네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만하게 본 것은 인정하지. 내 완패다. 하지만 다음에도 같은 결과가 나올까?”
시로네가 상대의 역량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최단시간에 찾아낸다면 케이든이라고 못 할 리가 없었다.
“시로네는 대단하군.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이라. 하지만 이제 나도 알았어. 진짜 승부는 스크럼블 로열이 끝났을 때다.”
“만약 그런 짓을 하면 네 인생도 끝장이야.”
“이미 끝났어.”
케이든은 땅에 꽂힌 크로스소드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검을 버렸을 때부터 저주받은 운명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지. 마법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또 새로운 것을 찾으면 그만이야.”
한숨을 내쉰 에이미는 케이든과 마주 보는 곳으로 걸어가 나무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네, 졸업반에서 너랑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은.”
카르미스 가문의 홍안과 크로스 가문의 십자성은 정치적인 역량을 떠나 토르미아 왕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상징적인 혈통.
국내에서는 치열한 라이벌 관계라도 타국과 맞설 때는 서로 손을 잡는 일도 왕왕 있어 왔다.
“어릴 때 연회에서 보기는 했지.”
케이든은 당시를 회상했다.
카이젠 검술학교의 최연소 입학생이 보기에 에이미는 하는 일 없이 뒷골목을 전전하는 한심한 소녀에 불과했다.
“후후, 그런데 우리 둘이 마법학교에서 만나다니. 이것도 기구한 운명인가.”
“마야에게 고백해.”
에이미가 나무에서 등을 떼고 말했다.
“너 정도면 괜찮아. 진심을 다해서 다가가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잖아. 꼭 이런 식으로 분풀이를 해야겠어?”
“내가 마야의 사랑을 얻으면, 너에게도 좋기 때문인가?”
에이미가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렇게 배배 꼬인 거야? 사람이 좋은 뜻으로 말하면 그냥 좋게 들어 주면 안 되니?”
“좋지 않게 들린다는 것은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거겠지. 특히나 카르미스 가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야?”
케이든은 크로스소드의 손잡이를 짚고 일어섰다.
“크로스 가문의 십자성은 운명이 정해 준 재능을 극한까지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단하다는 것은 알아.”
“대단하다고?”
케이든의 입술이 비틀렸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운명이 정해 준 재능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야.”
“…….”
“그래. 카르미스 가문의 홍안. 자기상을 백업시켜 곧바로 오류를 수정하는 능력에는 노력이 들어가지. 하지만 십자성에는 노력이 필요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걸 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케이든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를 잘할 수 있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야. 아무리 하찮은 거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