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09
“그건 오만한 생각이야.”
에이미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래. 혹자는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
케이든은 크로스소드를 수직으로 세웠다.
“처음에는 축복이라 생각했다. 다른 십자성과 다르게 태어난 것에.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최고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것이 바로 적십자성.
“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희생. 알겠나, 카르미스여.”
케이든의 얼굴이 구겨졌다.
“내가 진실로 원하면, 최고가 될 수 없다.”
그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여자는!”
케이든의 눈에서 검은자가 사라졌다.
“절대로 날 사랑하지 않아아아아!”
‘살기……!’
에이미는 껑충 거리를 벌렸다.
“나는 운명의 사생아다!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는,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난 거야! 그러니 죽인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빼앗은 시로네를 죽일 것이다!”
케이든이 악귀처럼 몸을 구부리고 살기를 퍼트렸다.
“그저 잘할 뿐인 기분을 아는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함을 알아?”
에이미가 버럭 소리쳤다.
“알 게 뭐야! 네 인생 네가 알아서 사는 거지!”
케이든의 미간이 좁혀졌다.
“답답해서 푸념하는 거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들어 주겠는데, 남의 인생 망치는 인간은 징징댈 자격도 없어!”
“……비켜. 마지막 기회다.”
“못 비켜. 시로네까지 갈 것도 없어. 내 연애사에 참견하는 꼴불견은 내 손으로 응징한다.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야.”
“크로스에게 덤빈 걸 후회할 거다, 카르미스여.”
크로스소드에 푸른 전격이 휘감겼다.
“절대로 후회 안 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카르미스니까.”
에이미를 중심으로 천 도 시의 화염이 불타올랐다.
마법과 스키마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마검사와 거너의 시선이 충돌하고…….
‘라이트닝 임팩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2개의 핏줄이 정통으로 치받았다.
***
다섯 번째 스크럼블 로열이 소환되었다.
안찰이 리타이어된 것은 시로네 팀에 호재였으나 중간 소집에 에이미가 참석하지 않은 것이 불안했다.
게다가 네이드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는 가운데 어느 누구도 승부의 저울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돼. 피쇼를 견제하자!’
연합 팀의 스크럼블 수집을 방해하는 임무를 맡은 사비나는 곧바로 적진 깊숙이 침투했다.
‘뭐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냉기가 사방에서 느껴졌다.
‘프링스다!’
그를 만나면 일단 피하기로 되어 있기에 사비나는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흐윽!”
하지만 이미 탈출로는 완전히 막혀 있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냉기. 대체 어디서부터 밀고 들어온 거야?’
“잡았다, 사비나.”
얼어붙은 나뭇잎을 얼굴로 깨트리며 프링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얼굴에 저토록 악독한 감정이 드러날 수 있을까?
제정신이 아닌 그를 본 순간 사비나는 다른 생각 할 것 없이 샤이닝 마법을 시전했다.
‘구조 신호!’
하늘로 솟구친 세 발의 섬광탄이 이미 얼음의 벽으로 가로막힌 돔에 충돌하여 난반사되었다.
프링스를 발견하고 3초가 되지 않은 시점에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더 이상 열 받게 하지 않을 테니까.”
프링스는 욕망을 해결하는 방식을 바꿨다.
“네 감정 따위는 상관없다는 얘기야. 불쾌하든 쾌하든.”
이제 그에게 인간은 버튼을 누르면 소리를 지르는 인형에 불과했다.
“널 비틀어 버리겠다.”
말이 끝나는 순간 사비나가 폭발적으로 회전했다.
‘에어 플라워.’
초당 마흔 발의 에어 커트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돔의 내벽을 긁어 댔으나 프링스는 그 조밀한 틈새를 파고들어 거리를 좁혀 왔다.
‘걸렸다!’
사비나의 눈이 반짝 빛나더니 회전의 방향이 순식간에 역전되면서 공기가 그녀를 향해 밀려들었다.
“흡입?”
에어 크래시!
대기가 거대한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면서 돔을 안에서부터 갈아 버렸다.
“한 가지 수는 있다는 건가?”
빙파!
프링스의 발밑에서부터 칼날처럼 얼음이 솟구치더니 사비나를 덮쳤다.
카카카카카카!
대기의 프로펠러에 얼음이 산산조각 부서지는 와중에도 프링스는 마법을 멈추지 않았다.
“흐으으윽!”
기술의 대결에서 마력의 대결로 넘어가자 사비나의 회전속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어붙고 있어.’
본색을 드러낸 프링스의 마력은 한계를 모르고 치솟아 갔다.
그로부터 5분 후.
사비나는 꽈배기처럼 뒤틀린 상태로 솟아오른 얼음에 두 다리가 파묻힌 채 바둥거렸다.
“이익!”
“꽤나 잘 버텼지만…….”
프링스가 허공에 발을 대자 얼음의 기둥이 솟아 나와 계단을 만들었다.
“내 갈증만 더 심해졌을 뿐이야.”
“흐윽!”
사비나의 높이까지 올라온 프링스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쥐었다.
“두렵나? 내가 너를 어떻게 할 것 같지?”
문득 깨달은 그가 사비나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맞아. 그냥 풀어 주면 어떨까? 그것도 재밌는 일 아닌가?”
사비나가 노려보자 프링스의 입이 기괴하게 찢어졌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지.”
“변태 자식!”
“진정한 변태를 못 본 것 같은데…….”
프링스의 손끝에 얼음이 빙결되면서 맹수의 손톱처럼 휘어졌다.
“멈춰.”
가녀린 목덜미를 움켜쥐려던 프링스가 동작을 멈추자 사비나가 고개를 돌렸다.
“……네이드?”
어제부터 보이지 않던 네이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숲의 그늘에 서 있었다.
“드디어 용사의 등장인가? 하지만 어떡하지? 너 따위가 와 봤자 사비나는 이미 끝장났는데.”
드드드드드!
얼음 기둥을 통해 진동을 느낀 프링스가 바닥을 내려다보자 푸른 전기가 지면에 넘실대고 있었다.
‘얼음은 전기가 통하지 않아.’
어차피 마법으로 구현된 물 또한 수력의 전문 계열인 이온의 전지를 부여하지 않는 한 부도체다.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지하에 파묻혀 있던 금속 조각들이 회전하면서 얼음 기둥을 완전히 갈아 버렸다.
‘지금이다!’
기회를 틈탄 사비나가 순간 이동을 시전해 프링스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네이드! 어떻게 된……!”
“오지 마!”
네이드가 얼굴을 들지 않은 채 소리쳤다.
“그냥 가. 그리고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마.”
네이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비나는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하지만 네이드…….”
“약속했잖아. 부탁이야.”
네이드는 어떻게 변해도 네이드.
그런 사비나의 앞이었기에 진짜 얼굴이 드러난 상태에서도 그녀를 구하러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알았어. 조심해야 돼.”
사비나는 네이드에게 향하던 발길을 돌려 빠르게 전장을 벗어났다.
“흐음.”
눈을 깜박이며 지켜보던 프링스가 콧수염을 꼬았다.
“이건 흥미롭군.”
“……그래?”
“내가 왜 그녀를 보냈는지 알아? 예전부터 궁금했거든. 그러니까 요컨대, 여자를 위해 대신 희생하겠다는 거지. 그러면 그걸 역전시키면 어떻게 될까?”
네이드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널 죽기 직전까지 괴롭혀 주지. 그리고 애원하게 만들 거야. 차라리 사비나를 괴롭히라고. 응? 재밌겠지? 그런가?”
“……캉. 안 할 거냐?”
“캉?”
“그것 때문에…… 카드 모으느라…… 늦었거든.”
프링스는 마스터 카드를 확인하고 네이드와 똑같은 패인 것을 확인했다.
“응, 안 해. 그러니까 너, 시간 낭비한 거야. 푸하하하하하! 이거 완전 웃긴데!”
“다행이네.”
프링스의 웃음이 뚝 그쳤다.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싫어서.”
마침내 네이드가 숲의 어둠을 지나 프링스에게 걸음을 옮겼다.
“허허, 가여워라. 이제 곧 친구들에게 엄청난 폐를 끼치게 될…….”
네이드의 얼굴을 본 순간 프링스의 표정이 굳었다.
“너…….”
“그럼, 시작하자.”
콰르르르르르릉!
엄청난 굉음이 산을 뒤흔들었다.
“네이드!”
산을 내려가던 사비나가 황급히 몸을 돌려 정상을 살폈다.
“세, 세상에…….”
거대한 전기 다발들이 머리털처럼 솟구치면서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2)
***
스크럼블 참가자 전원의 시선이 하늘의 한 점에 꽂혔다.
지상에서 발생한 전기가 대기를 방전시켜 하늘에서 다시 낙뢰가 떨어지고 있었다.
“저게 뭐야?”
헤르시는 장관을 감상하느라 분석마저 미루었다.
그가 실전에서 저 정도의 낙뢰를 마법으로 본 것은 일렉트릭 몬스터 라이컨이 프로 마법사와 상대했을 때뿐이었다.
‘네이드가 있는 곳이다.’
소나로 탐색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난폭한 낙뢰.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빛이 세상에 균열을 내듯 번쩍이더니 정상에서 굉음이 폭발했다.
그 후로 조용했다.
***
‘네이드! 기다려!’
사비나는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갔다.
그녀조차도 네이드에게 이 정도의 마력이 있었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단 마법이 구현되면 그 효과는 마법사에게도 실체라는 점이다.
산 정상을 초토화시킬 정도의 뇌전이라면 네이드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네이……!”
전장으로 되돌아온 사비나는 차마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혔다.
모든 것들이 재가 되어 무너지는 바람에 땅 위에 서 있는 것은 오직 네이드밖에 없었다.
‘그때도 그랬지…….’
네이드에게 린치를 당했을 때 느꼈던 공포가 또다시 사비나의 가슴을 강타했다.
단지 마음이 나약해서가 아니다.
지금 네이드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분명 어떤 ‘현상’이었고, 실제로 존재하는 위험의 기운이었다.
네이드가 걸어간 곳에 콧수염이 꼬질꼬질하게 타 버린 프링스가 사지를 벌리고 누워 있었다.
오른손에 뇌전을 피워 올린 네이드가 숨통을 끊기 위해 손을 내미는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살려 주라.”
짧은 말 속에 평생의 진심이 담긴 이유는, 정말로 네이드는 자신을 죽일 것이기 때문에.
살의에도 등급이 있다면 네이드가 위치한 곳은 티끌 한 점 없이 순수한 포악.
동물이 먹기 위해 죽이거나 인간이 갖기 위해 죽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