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16
사비나가 헤르시의 목을 더욱 강하게 조이고, 히커리의 주먹이 나무에 매달린 피쇼를 겨누었다.
서로가 서로의 생명 줄을 잡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비나가 말했다.
“헤르시의 몸을 뒤져 봐. 시간이 얼마 없어. 마스터 카드를 찾아야 돼.”
헤르시가 즐거운 듯 두 팔을 벌렸다.
“하하하!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군! 그런데 어떡하지? 케이든의 마스터 카드는 나에게 없어.”
“닥치고 있어. 그건 우리가 확인할 테니까.”
사비나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얼마든지. 넘겨받았다고 꼭 소지하고 있으리란 법은 없지. 실컷 뒤져 보라고. 시간 내에 찾아낼 수 있다면 너희의 승리다.”
“이루키, 빨리!”
로켓 펀치를 장전한 도로시가 소리친 뒤에야 이루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런, 남자에게 몸을 맡기는 취미는 없는데. 어차피 원하는 건 찾을 수 없을…….”
“헤르시.”
이루키가 말을 끊으며 고개를 들었다.
“너, 혹시 바보냐?”
“뭐?”
헤르시의 얼굴이 구겨졌다.
***
“그래! 나 바보다! 내가 바보야!”
에이미는 방향을 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숲을 빠져나오자 여전히 케이든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신음하고 있었다.
“야! 그냥 널 리타이어시키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기다리라고…….”
“시끄러! 이제 2분도 안 남았단 말이야!”
케이든의 멱살을 움켜쥐고 일으켜 세운 에이미는 스키마를 발동하여 그를 들쳐 업었다.
“아욱! 너무 세잖아.”
“알 게 뭐야!”
공간 이동을 연거푸 시전한 에이미는 마법학교의 정문 근처에 착지했다.
-스크럼블 로열 종료까지 10초 남았습니다.
“미치겠네!”
순간 이동과 스키마의 주력을 계산한 에이미는 케이든을 업은 채로 달렸다.
5초, 4초, 3초…….
루루의 전기적 신호를 들으며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케이든을 던졌다.
“가라, 케이든!”
2초, 1초.
케이든의 몸이 정문을 넘어서자 카운트 사이에 또 하나의 신호가 들어왔다.
-케이든, 장외 패배. 스크럼블 로열의 경기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최강 패는 마인(●●●●). 승리 팀은 시로네, 이루키, 네이드, 에이미, 도로시, 사비나입니다.
-저지를 통해 보상과 대가를 적용합니다.
“하아! 하아!”
루루의 신호를 모두 인지한 뒤에야 에이미는 손으로 땅을 짚으며 엎드렸다.
“저런 무식한…….”
정문 바깥에 쓰러진 케이든이 고통을 참아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
“이겼다!”
사비나와 도로시가 전투태세를 풀고 폴짝 뛰었다.
피쇼는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헤르시만이 넋이 나간 상태였다.
“아…….”
한참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는 것은, 아예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내가 왜 그랬지?’
“막다른 길에 몰리면 말도 안 되는 희망조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
헤르시의 눈동자가 다가오는 이루키에게로 돌아갔다.
“카드 게임의 인슈어런스 같은 거야.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보험을 걸어 두는 것은 좋은 전략이지만, 자칫하면 그 특정 상황에 모든 가정을 억지로 우겨 넣게 되거든.”
“흥, 잘난 척하지……!”
“꼼수나 부릴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헤르시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이루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시를 돌아보며 그녀의 조언을 상기하면서 말을 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모르게 되는 거야.”
“…….”
완패를 깨달은 헤르시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졸업 시험에서 보자. 반드시 너만큼은 밟아 주겠어.”
“열심히 도와줄 생각이나 하셔.”
시로네 팀 중에서 2명을 졸업 시험에서 밀어주기로 되어 있는 조건이었다.
헤르시가 공간 이동으로 자리를 빠져나가자 사비나와 도로시가 다가왔다.
“수고했어, 이루키.”
“그래. 전략대로 움직여 준 너희 덕분이야.”
도로시가 말했다.
“팀원이 모이면 다시 말하겠지만, 확실히 애매한 조건이네. 2명을 고르는 것 말이야.”
스크럼블 로열이 개전되기 전의 협의에서 케이든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시로네 팀으로서도 최강의 조건을 제시한 것이지만, 막상 승리하자 논공행상이 애매했다.
이루키가 제안했다.
“이런 건 어때? 졸업 시험 전까지 우리 중에서 가장 순위가 낮은 두 사람이 보상을 받기로.”
사비나가 동의했다.
“그거 괜찮은 방법이네. 솔직히 이런 말은 좀 감정적이지만, 우리 6명은 모두 합격했으면 좋겠거든.”
금화륜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일부러 순위를 떨어뜨리는 꼼수를 부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니까.’
마법학교에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도로시는 하늘을 향해 미소 지었다.
***
“정말로 지금 출발할 거야? 상처가 심한 것 같은데.”
그렇게 만든 사람이 에이미였으나 케이든도 이제는 그녀의 성격을 알았다.
“간단한 회복 마법은 할 수 있어. 가는 길에 프로에게 치료를 받을 거고.”
스크럼블 로열 자체가 불법인 만큼 의무실에 들를 생각은 없었다.
“그래. 다시 돌아올 거지?”
“그냥 바람 좀 쐬고 싶은 거야. 오랜만에 집에도 좀 들르고. 무엇보다 내 순위가 꽤나 높아서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이드보다 순위를 아래로 떨어뜨리려면 최소한 한 달은 못 돌아오겠군.”
네이드의 졸업반 순위는 꼴등이었고, 현재는 복귀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하! 그러네? 조심히 갔다 와. 그동안에 나는 순위를 팍팍 올려 놓을 테니까.”
케이든이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마야에게 안부 전해 줘.”
“싫어. 돌아와서 직접 말해. 나 솔직히 걔랑 있으면 불편하단 말이야.”
“하하하하!”
갑자기 생각이 떠오른 케이든이 고개를 한껏 젖히며 폭소를 터뜨렸다.
“이제 보니 천생연분이군. 시로네와 너 말이야.”
에이미의 얼굴이 빨개졌다.
“무슨 헛소리야? 우리는 아직 아무 사이도……!”
“네가 부러뜨린 내 갈비뼈 말이야, 며칠 전에 시로네도 부러뜨렸거든.”
“…….”
“뼈가 붙을 시간을 안 주고 두들겨 패는군. 너희 둘에게는 정말 질렸다.”
에이미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너…….”
“걱정하지 마. 이제는 훼방 안 놓을 테니까. 그러니 열심히 인생을 즐기라고.”
학교에서 멀어지던 케이든이 에이미를 돌아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카르미스.”
에이미 또한 미소로 그를 배웅했다.
“즐거운 여행 돼라, 크로스.”
***
경기의 여운이 남은 참가자들이 이루키가 있는 곳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시로네가 에덴과 함께 도착하고, 마지막으로 에이미가 합류했다.
“휴, 우리 아슬아슬했던 거 맞지? 모두 고생했어.”
시로네의 말대로 하나같이 지친 몰골이었다.
“이대로 돌아가긴 좀 그런데 간단히 뭐 좀 먹을까?”
에이미가 꼬르륵거리는 배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사비나가 찬성했다.
“나도 배고파. 그런데 이 시간에는 여는 가게가 없을 텐데? 교내 매점도 닫혔고.”
에덴이 말했다.
“교내 식당으로 가자. 거기 있는 재료로 내가 만들어 줄게. 간단한 음식은 할 수 있어. 신도들도 맛있다고 그랬고.”
“에덴, 네가?”
대결에서 패배한 에덴이었으나 표정은 오히려 전보다 평온했다.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도 사랑의 실천이니까.”
이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가자. 피쇼, 같이 가서 먹을래?”
연합 팀이 해산된 뒤에도 피쇼는 여전히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난 외롭지 않아.”
피쇼는 졸업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누가 뭐래? 이번 경기 복기나 해 보자고. 생각지도 못했던 승률이 있었을 수도 있고. 너도 스크럼블을 담당했으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패배의 아픔은 크지만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다.
피쇼가 합류하고 모두 교내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그때, 시로네가 불렀다.
“잠깐.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
“문제라니?”
“이 시간에 식당에 들어가는 건 교칙 위반이잖아.”
“…….”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썰렁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루키가 물었다.
“너, 지금 진심이냐?”
“응. 만약 들켜서 선생님에게 혼나면 어떡해?”
거기까지 들은 모두가 대답을 외면하고 멀어져 갔다.
“기다려! 진짜 불안한데……!”
황급히 뒤를 따르는 시로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피쇼가 말했다.
“저게 시로네로군.”
“당연하지. 마법학교잖아.”
에이미가 쿡쿡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쟤도 정상은 아니지.”
스크럼블 로열 종료.
흑막 (4)
***
“스크럼블 로열이 종료되었습니다.”
졸업반 부장 교사 콜리가 교장실로 들어왔다.
알페아스가 뒷짐을 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교감 올리비아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시로네 팀이 승리했습니다.”
올리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적어도 음지의 연구회의 접근은 차단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알페아스가 말했다.
“사건이 커지지 않은 건 다행이지. 하지만 시로네 팀의 승리라는 것은, 사건의 핵심에 다가갈 것이라는 얘기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실제로 이스타스의 핵심이 뭔지는 우리도 모르잖아.”
창문에서 돌아선 알페아스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래. 미로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
20인의 심판에서 투표권을 받은 사람이 둘이나 있지만 상층부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는 없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미로와 함께 있었어. 어쩌면 얘기를 해 줬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더더욱 이스타스를 조사하지 않을 거야. 시로네의 호기심은 대단하지만 신중한 성격이기도 해. 범세계적 기밀을 함부로 파헤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아.”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알페아스의 수긍에는 뒷맛이 좋지 않았다.
‘가능하면 이대로 묻어 두는 게 최선.’
1명의 마법사로서 이스타스의 정체를 알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호기심만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세력이 얽혀 있었다.
“잠시 나갔다 올게.”
올리비아가 소파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어디 가려고? 괜히 소란 일으키지 마. 이대로 이스타스가 폐쇄되는 게 가장 좋은 거야.”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가려는 거야.”
문밖으로 나서는 올리비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딱 1명, 걸리는 사람이 있거든.’
***
여자 기숙사의 방에는 기본적으로 침대가 구비되어 있으나 안찰은 맨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