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18
미로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이스타스의 설계 도면을 가져갔지. 물론, 거핀의 문이 있는 설계도 말이야.”
“하아, 내 그럴 줄 알았지.”
“네 말대로 아르민에게 보내기는 했다만, 정말 괜찮은 거냐?”
“그럼.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
“무한 순환 구조의 시공간. 거핀이 어떻게든 지키고자 했던 사건이야. 만일 외부 요인이 끼어들어서 사건이 뒤틀리게 되면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어.”
무시무시한 발언에도 미로는 말이 없었다.
“대체 어떤 사건이야? 이스타스에서 벌어진 일 말이야.”
“나도 몰라.”
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모른다고?”
“이스타스에서 분명 어떤 일을 겪었지. 하지만 내 기억에는 없어. 거핀 말소와 함께 사라졌거든. 다만 이제 와 세상을 경험해 보니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을 뿐.”
“그게 직접 나서지 않은 이유인가?”
“이스타스 상층부에는 19년 전의 내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사건이 뒤틀리면 이 세상은 우리가 알던 것과 달라지지. 그래서 페르미에게 설계도를 주라고 한 거야.”
미로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어차피 세계의 역사가 뒤틀린다면, 멸망시키는 것도 당사자들의 몫이니까.”
“그 당사자에 시로네도 포함되어 있나?”
“그럴 수도 있고.”
생각에 잠긴 세인이 물었다.
“시로네는 누구지? 거핀의 핏줄인가?”
“몰라. 정답을 알고 있는 건 19년 전의 나밖에 없지.”
세인은 술을 따라 미로에게 건넸다.
“도망치는 것은 아니고?”
술잔을 건네받은 미로가 눈썹을 올렸다.
“도망?”
“욜가 말이야.”
“말했잖아. 나에게는 당시의 기억이 없어.”
“하지만 상층부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은 있을 거 아냐?”
세인은 집요했다.
“그래.”
미로는 욜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그냥 좋은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언니였지. 세상에서 욜가를 싫어할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행방불명됐지.”
세인은 미로에게 다가갔다.
“네가 죽였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 거야?”
“후후, 그게 그렇게 알고 싶어?”
“난 네가 걱정될 뿐이야. 거핀은 어째서 욜가가 아닌 너를 선택했지?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다면 말이야.”
“좋은 사람이니까.”
미로는 독한 술을 한번에 넘겼다.
“어쩌면 내가 죽였을 수도 있지.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내 판단은 똑같을 거야.”
세인을 바라보는 미로의 눈에서 취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죽일 만하니까 죽였겠지. 거핀의 후계자는 내가 되어야 했던 것이 맞아.”
***
아침 일찍부터 졸업반은 부산했다.
스크럼블 로열이 끝난 참가자들은 또다시 치열한 경쟁에 합류했고, 몇몇 인원만이 개인적인 이유로 학교를 떠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네이드와 케이든이었다.
승리 팀은 7일간의 부재를 만회하기 위해 독하게 마음을 먹었고 패배 팀은 네이드보다 점수를 낮추기 위해 눈치껏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졸업 시험 전까지만 낮추면 돼. 네이드보다 1점 뒤지는 게 가장 좋은 결과야.’
문제는 네이드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걱정 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야.”
가장 친한 친구인 이루키가 그렇게 에이미를 안심시켰다.
한편, 평가를 거부한 시로네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안대가 없는 안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봉인을 푼 거야?”
“그러기 위해 가져온 마정안이니까. 아르망은?”
시로네는 큐브릭을 보여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말해 줘. 상층부에 거핀이 있다는 게 무슨 소리야?”
“가면서 설명해 주지.”
안찰이 이스타스로 몸을 돌리자 시로네가 거부했다.
“안 돼. 설명부터 들어야겠어. 함께 가는 건 그 이후야.”
시간을 확인한 안찰이 되돌아섰다.
“좋아. 너에게도 목숨이 걸린 문제니.”
안찰은 19년 전 이스타스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상황을 재구성하여 들려주었다.
“거핀이…… 이곳에 왔었다고?”
“당연한 거 아닌가? 너도 거핀의 문을 봤잖아.”
그렇기는 해도 막상 전해 듣자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말소된 인물이 19년 전만 해도 세계의 모두가 아는 마법사였다는 간극이 쉽게 좁혀질 수는 없었다.
“당시 미로를 쫓아 이스타스에 잠복해 있던 인물들 중에는 욜가 일행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 추정된다.”
“욜가?”
“페르미의 어머니야.”
“아…….”
“확실한 건, 미로를 죽이기 위해 토르미아 왕국에서도 은밀히 병력을 보냈다는 것이다. 기무대 소속의 비밀부대 화성. 하나하나가 강력한 힘을 지닌 암살자들이야.”
시로네는 이스타스에서 시불상폭매를 통해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분명…… 토르미아 왕국의 징표가 새겨져 있었어.”
“이스타스의 상층부는 아주 복잡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개방되지 않아. 하지만 시간을 조절하는 너의 능력은 그 조건을 무시하고 과거의 사건을 수면 위로 띄운 거야. 이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겠지.”
안찰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같이 갈 거야? 내 설명은 여기서 끝이야.”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
우르릉! 우르릉!
천변만화하며 구조를 바꾸는 이스타스 89채의 건물 속에서 페르미와 라이컨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상층부는 특정 구조에서만 개방되지. 마지막에는 스톱 마법이 필요하고.”
“굉장히 치밀하군.”
“치밀한 정도가 아니야. 애초부터 탐색이 가능하도록 만든 곳이 아니니까.”
“무한 순환 구조의 시간이라.”
라이컨에게는 아직까지도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그런 게 있다면 세상 모든 걸 가질 수도 있겠군.”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이스타스의 사건이 아닌 시간 그 자체였다.
“그래. 사건이 계속 반복된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야. 따라서…….”
페르미가 붉은 빛을 내는 구슬을 던졌다.
“물건도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다는 거지.”
구슬을 낚아챈 라이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00억 골드라고 하지 않았어?”
“그게 100억 골드짜리야.”
“이게? 보석처럼은 안 보이는데. 혹시 오브제인가?”
“정답. . 큐리아 경매에서 시가보다 2배나 더 주고 샀어.”
“2배? 그럼 손해잖아. 오브제의 가격이 높은 것은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일 텐데, 복사를 한다면…….”
“물론 그렇지만 는 예외야. 소지자가 위험에 처하면 소리로 신호를 보내서 알려 주지. 소모품인 데다가 목숨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수백 개로 복제한다면 떼돈을 버는 건 순식간이야.”
“흐음, 그렇군.”
라이컨은 그제야 만족했다.
“정해진 좌표를 따라서 이동한 다음 다시 이 창고로 돌아와 여기 금고에 넣는다.”
페르미가 튼튼한 금고를 가리켰다.
“그러면 또다시 사건이 반복되면서 계속 쌓이게 되지. 다만, 조심해야 될 거야. 이 사건에 얽힌 자들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니까. 공간을 우회하는 게 제일 좋아.”
“크크, 상관없어.”
라이컨은 고무 재질의 타이즈를 끌어 올려 코까지 덮었다.
‘실력은 확실하니까.’
블랙 라인 최강의 히트맨이라 평가받는 군조 베디움의 장자가 바로 군조 라이컨이었다.
그런 신뢰를 담아 페르미가 물었다.
“떼돈 벌면 뭐 할 거야?”
“자선사업.”
“하하! 뭐?”
페르미가 생각하기에 라이컨은 자신보다 더한 악당이었다.
“재밌잖아? 악당 자선사업가. 말만 번지르르한 위선자들에게 한 방 먹여 주는 거지.”
목 관절을 풀며 라이컨이 말했다.
“인간이 왜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지 알아? 다 빌어먹을 상상력 때문이야. 경험해 보지도 않은 일을 실제로 해 본 것처럼 착각하는 거지.”
페르미는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야 죽기 싫으면 자기 발이라도 자를 수 있지.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톱을 주면 발목에 가져다 대지도 못해. 그게 상상의 맹점이야. 고통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라이컨은 상상하지 않는다.
“나도 살인 청부업을 하지만 솔직히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해. 내가 누군가를 죽이면 남들도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니까.”
“그게 사회계약이지.”
“하지만 아버지는 살인 청부업으로 우리 식구를 먹여 살렸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나는 더 비참해졌을 거야.”
“그렇다고 모두가 살인을 저지르는 건 아니잖아?”
“저지르지 않는 것도 아니지. 요지는, 내 고통을 대신 감당해 줄 생각이 없으면 닥치고 있으라는 거야. 같잖은 상상력 발휘하지 말고 말이야.”
페르미는 입꼬리를 올렸다.
“넌 천하의 악당이야, 라이컨.”
“크크, 그래서 네가 좋아. 처음부터 너랑 일을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출동하라고, 일렉트릭 몬스터.”
라이컨의 몸에 전기가 흐르더니 파짓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모습이 증발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이스타스의 구조물이 가동을 멈춘 것을 확인한 페르미가 창고를 나섰다.
스톱 마법을 시전할 때였다.
***
“구조물의 위치가 변했어.”
안찰과 함께 이스타스에 도착한 시로네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단지 변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인가 봤던 구조라는 게 핵심이었다.
‘거핀의 문이 열렸을 당시의 구조잖아.’
“페르미는 이미 들어간 모양이군.”
안찰이 이스타스의 면면을 꼼꼼히 살핀 다음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각오는 됐어? 일단 발을 들이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시로네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우리도 시작하자.”
창고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천천히 몸을 들이밀었다.
이것은 19년 전 실제로 존재했으나 세상 모두의 기억 속에서 말소되어 버린 사건.
2시간 48분의 기록이다.
그날의 사건 (2)
***
스톱 마법이 시전되고, 이스타스의 특정 구조물의 형태에서 발현되는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간 : 0시 0분.
공간 : 이스타스 72번 창고.
19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이스타스 내부에서 여성이 출입문을 통해 들어왔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외모의 미로였고, 품에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듯 진지한 표정으로 통로를 응시하던 그녀가 돌아서서 물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지?”
“…….”
문밖에서 누군가가 말했으나 소리가 넘어오지 않는 이유는 그가 사건의 바깥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걱정 마.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미로는 그를 향해 다짐했다.
“만약 시간 내에 되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냥 시간을 닫아.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문밖의 누군가가 아주 긴 말을 하고 있는 듯 그녀는 오랫동안 서 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욜가.”
사건이 시작되고 3분이 지났을 시점, 그녀가 이스타스 72번 창고를 벗어나며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시간 : 2시간 42분.
공간 : 이스타스 72번 창고.
72번 창고의 문을 열고 시로네와 안찰은 이스타스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지만 오늘만큼은 심장이 터질 정도로 흥분되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 시로네가 안찰을 돌아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