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20
미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흐음. 시로네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아무튼 이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마. 최대한 사건 바깥에 있으란 말이야.”
“그럴 수는 없어요. 제가 여기에 들어온 이유는…….”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냥 삶의 마지막을 준비해. 어차피 ‘헥사’가 죽으면 이 세계도 끝장날 테니까.”
“헥사가 뭐죠?”
미로는 품에 안은 아이를 가리켰다.
“이 아이. 거핀은 헥사를 우주적 초기화에서 이탈시킬 생각이야. 알겠어? 헥사가 사라지면 앙케 라는 인간을 멸망시킬 거라고.”
우주적 초기화에서 이탈시킨다.
“그 말은 리셋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곧바로 핵심을 파고들자 미로는 잠시 의아했으나 곧바로 수긍했다.
‘하긴, 우연 같은 건 없지.’
그 정도의 정보도 없는 자가 19년 뒤에 상층부에 잠입할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그래. 헥사만이 라의 리셋에서 버틸 수 있어. 그러니 네가 희생해라. 내 임무를 완수하게 해 줘.”
시로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저 아이가 저일지도 몰라요.”
“뭐?”
황당하게 쳐다보던 미로가 헥사의 얼굴을 빤히 살폈다.
“그러고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성장하면서 외모는 변하지만 본판의 느낌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잘 모르겠는걸. 네가 헥사라면, 왜 여기에 온 거야?”
시로네는 계속해서 가정을 이어 나가는 상황이 답답했다.
“제가 거핀의 아들일지도 모르거든요.”
“뭐어?”
미로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그러니 말해 주세요. 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하하…….”
웃음소리가 점차 높아지더니 정점을 찍었다.
“하하하하!”
그저 유쾌한 느낌만은 아니었기에 시로네는 당혹스러우면서도 화가 났다.
“왜 웃는 거예요?”
“네가 거핀의 아들이라고? 아니,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그걸 미로 씨가 어떻게 알아요? 거핀에게 직접 물어보기라도 하셨나요?”
“아니, 그게…….”
미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다시 웃더니 말을 이었다.
“물어볼 필요도 없잖아. 네가 거핀의 아들일 리는 절대로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요.”
시로네의 언성이 높아졌으나 미로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몰라? 거핀은 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야.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단 말이야.”
“그게 어떻게 이유가 돼요?”
마침내 시로네가 언성을 높이자 미로 또한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바보야! 거핀은 우리처럼 생기지 않았잖아!”
정적이 흘렀다.
“……네?”
시로네의 얼굴이 멍해졌다.
“우리처럼…… 생기지 않았다?”
미로는 그제야 퍼뜩 깨달았다.
“아, 설마 말소되었던 거야?”
시로네의 시간대에서 거핀의 외모를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미안해. 거기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어. 나도 아직 말소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아무튼 너는 거핀의 자식이 아닐 거야. 겉보기에도 전혀 다른걸.”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요?”
미로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생전 처음 보는 지적 종족이 등장했을 때 어느 종에 편입시킬 것인가는 당사자와 사회 구성원의 절충에 따라 이루어지는 문제였다.
“인간……이지. 일단 인간의 특징은 다 갖추고 있고, 거핀도 인간이기를 자처했으니까.”
그렇기에 거핀은 천국에 대항하여 인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대의 가이아인이란 종족이야. 아무래도 네가 자식이라고 하기에는 좀…….”
시로네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가이아인의 외모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럼 거핀의 외모가 어떤데요?”
미로는 턱을 괬다.
“흐음, 처음에 보면 좀 놀라긴 할 텐데, 기묘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얼굴은…….”
거핀의 모습을 찬찬히 떠올리던 미로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생각이 나지 않아.”
“네?”
미로는 대답 대신 헥사를 살폈다.
여전히 잠에 빠진 채로 품에 안겨 있었으나 실물감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큰일이야! 사건이 뒤틀렸어! 이후의 시간대에서 헥사가 죽은 거라고!”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헥사의 사망은 현재의 헥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 어어?”
시로네는 당황한 표정으로 두 손을 들었다.
헥사의 존재감이 옅어짐에 따라 시로네의 몸도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거 왜 이러죠?”
이것으로 확실히 증명되었다.
“헥사. 네가 정말 헥사구나?”
헥사가 죽으면 시로네도 존재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거핀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시간의 폐곡선이 열려 버렸다는 것.
즉, 그녀가 거핀의 지령을 완수하지 못한 채 거핀 말소를 맞이한다는 뜻이었다.
“안 돼!”
미로는 벌떡 일어나 시로네의 멱살을 끌어당겼다.
“당장 이 좌표를 벗어나!”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변수를 만드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라고요?”
“거핀의 문! 그곳으로 와! 거기에서 헥사를 고정시킬 테니까! 그 사건만은 반드시 사수해야 돼!”
시로네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시간이 없어!”
미로가 방을 나서자 시로네 또한 시불상폭매를 시전했다.
“크으으윽!”
또다시 머리가 깨질 것 같고, 거대한 사건들이 통째로 인지되었다.
“허억! 허억!”
공간은 그대로지만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시로네는 앞으로 넘어져 숨을 헐떡였다.
살았다.
다시금 육체의 존재감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째서 미로의 임무가 실패했던 것일까?’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나는 단지 미로를 만났을 뿐이야.’
그렇다고 미로에게 위해를 가한 적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유일하게 짐작이 가는 부분은…….
‘거핀에 대해 물어봤기 때문에.’
거핀에 대한 호기심이 일을 그르치게 만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미래의 내가 거핀에게 집착한 결과 미로 씨가 임무에 실패했다는 것인가?’
임무 실패란 다름 아닌 헥사의 사망이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로 가야 돼!’
미로가 말한 거핀의 문이 있는 장소였다.
‘제발 늦지 않기를.’
창고의 표식을 확인한 시로네는 미로가 나간 방향의 반대로 달렸다.
시간 : 0시 53분.
공간 : 이스타스 65번 창고.
“크윽.”
미로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빌어먹을 계집애.”
유일한 생존자는 화성 1조의 암살자 루캉.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에도 검술 실력과 탁월한 판단력을 인정받아 토르미아 왕국 비밀부대인 화성에 들어간 인재였다.
“인생 편 줄 알았더니.”
위험한 직업이기는 하지만 잘해 나갈 자신이 있었고 미래 또한 창창했다.
‘이건 그냥 가서 죽으란 소리잖아.’
화성 대원 42명 전원 이곳에 오기 전에 유서를 썼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닌, 결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쓴 일종의 사망 증명서였다.
‘애국심이 뭐라고.’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화성 배지를 떼고 그만두겠다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죽으면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야?’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고, 결국 모두 죽어 가고 있다.
어차피 임무를 거절했어도 죽었을 테지만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거라면 체면이고 뭐고 발버둥이라도 쳐 볼 것을 그랬다.
“킥킥킥! 망할 놈의 세상.”
루캉이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물러서자 골반 아래부터 으스러진 하체만이 을씨년스럽게 자리에 머물렀다.
‘괴물을 어떻게 이겨?’
미로가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이미 그의 몸도 동료들처럼 쥐포가 되어 버렸을 터였다.
‘스키마로 버티는 것도 한계야.’
힘이 빠지면서 내장 밑으로 핏물이 울컥 흘러내렸다.
“끝인가…….”
눈에 초점이 풀리는 그때, 문이 열리고 일단의 인물들이 들어왔다.
시간 : 1시 01분.
공간 : 이스타스 65번 창고.
“어? 생존자가…….”
아담한 체구의 여자 뒤에는 보기만 해도 기도가 강력한 2명의 남자와 늘씬한 여성이 서 있었다.
“욜가.”
루캉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눈에 담았다.
짙은 갈색의 머리가 순한 곡선을 그리며 이마를 가리고, 얼굴은 맑고 투명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빼어난 미인이었다.
“빌어먹을!”
루캉은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탈인간적인 괴물인 미로를 상대로 버틸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욜가와 그녀의 동료들.
화성이 죽어 나갈 때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가 이제 와 나타나는 건 뭐란 말인가?
“괜찮아요? 심하게 다쳤군요.”
욜가가 후드를 넘기며 다가왔다.
“심하게 다쳐? 이게 다친 정도로 보여? 다 너 때문이야. 가증스러운 것.”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위험합니다.”
“어차피 죽어. 너 때문에 모두 죽는다고.”
욜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알고 있어. 네가 왕을 꼬드기지만 않았어도 화성이 출동할 일은 없었을 거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거핀이 필요해요. 천국의 군대를 당해 내기에는 아직 무립니다.”
“닥쳐! 천국의 군대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딴 게 다 뭐냐고!”
“미안합니다.”
욜가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노려보던 루캉은 입안에 핏물을 한껏 모았다.
“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 자식이!”
욜가의 뒤편에 서 있던 2미터 거구의 에드가가 기계 팔을 휘저으며 다가왔다.
“너는 신념도 없냐? 죽는 게 그렇게 무서워?”
“개죽음당하는 게 원통할 뿐이야. 처음부터 우리는 미로의 상대가 아니었다고. 고기 방패가 필요했던 거겠지.”
“얼마 남지도 않은 생이지만 지금 끊어 주마.”
에드가가 강철 주먹을 맞부딪치며 다가오자 욜가가 손을 들어 접근을 말렸다.
“유언이 있다면 하십시오. 전해 드리겠습니다.”
“흥, 어차피 너도 못 돌아가. 다 끝났다고.”
이기죽거리던 루캉이 잠시 생각하더니 비웃음을 지었다.
“그렇게나 참회를 하고 싶다면 키스라도 해 주는 게 어때? 처음 봤을 때부터 죽이던데 말이야.”
“…….”
“아, 유부녀라고 했던가? 뭐 상관없잖아,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런, 그러고 보니 나는 하체가 없던가?”
욜가의 동료들의 눈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휘몰아칠수록 루캉은 기분이 좋았다.
“크크크, 어차피 너희도…….”
그때 욜가가 천천히 얼굴을 내밀었다.
“정말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