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27
욜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잘 자라 줬어.’
한 청년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기에 끝이 아니다.
“미로, 더 이상 봐줄 수가 없구나.”
욜가의 표정에서 인자함이 사라졌다.
반야-파 마리아.
“그래? 이제 좀 할 맛이 나겠네!”
파 마리아라면 파괴가 가능했기에 미로는 관음의 연타를 더욱 가속시켰다.
안찰이 진천요술 괴력 망치로 무스탕을 짓이기고 시로네가 에드가와 나인을 쓰러뜨린 뒤였다.
‘시간을 끌 수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로였으나, 욜가는 웃고 있었다.
“뭐……!”
관음의 극락장이 좌우에서 날아들어 그녀를 압사시키려는 순간 섬광이 날아와 그녀를 낚아챘다.
“크윽!”
광자화 상태에서 풀려난 페르미가 이를 악물며 바닥을 미끄러지더니 벽에 쿵 하고 머리를 찧었다.
“페르미?”
욜가는 놀란 표정으로 페르미를 돌아보았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부위마다 심각한 검상을 입은 상태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후후. 굉장히 세군요, 당신을 노리는 사람들은.”
욜가의 죽음을 막기 위해 페르미는 화성과 싸웠고, 대원 14명을 해치우는 성과를 달성했다.
수많은 고등 마법을 구비한 덕분이지만 왕국 최고의 암살 부대 14명을 제거하는 동안 치명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페르미를 바닥에 누인 욜가는 연구회를 둘러보았다.
거핀의 문 앞에 에드가와 나인의 시체가 쓰러져 있고,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안찰의 옆에 무스탕이 죽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미로에게 시선을 돌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사라지마. 대신 부탁을 들어 다오.”
“아니, 부탁하지 마. 사라지지도 마. 그냥 나랑 같이 나가면 되는 거야.”
“죽어라아아아!”
그때 연구회 안으로 화성의 대장 니켈이 들어왔다.
페르미가 해치운 부하들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그의 눈은 임무 완수의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죽인다!”
‘멍청이! 저건 헥사가 아니야!’
현재 상황을 모르는 니켈의 눈에는 카즈라의 왕자가 미로가 안고 있던 아이로 보이는 게 당연했다.
“안 돼!”
아이를 향해 뛰어가는 욜가의 귓가에 가 발동하는 경고음이 연달아 터졌다.
“위험해!”
소녀의 비명은 곧 죽음을 의미.
“위험해!”
죽는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살 수 있는 수십 번의 기회를 박차고, 그녀는 오직 죽음밖에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니켈의 검이 그녀의 등을 뚫고 들어갔다.
“허억!”
욜가의 고개가 천장으로 치솟고, 니켈은 칼날을 뒤틀어 더욱 검을 밀어 넣었다.
‘아이를 죽여야 한다!’
훈련받은 군인의 정신은 기계처럼 차가웠다.
천수관음-일타.
칼끝이 왕자를 찌르기 직전, 관음의 손바닥이 날아와 니켈의 얼굴을 몸에서 분리시켰다.
털썩 무릎을 꿇은 욜가의 등 뒤에서 페르미가 한쪽 어깨를 붙잡고 일어섰다.
“엄…….”
하지만 미로의 말이 먼저였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이 아이는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할 운명이야! 왜 자꾸 어리석은 짓만 하는 거야?”
“그것 또한 스스로 선택해야 할 일이지.”
미로는 욜가의 극한을 보았다.
“미로야, 우리를 믿어 다오. 우리의 힘으로 미래를 지켜 낼 수 있다는 것을 믿어 다오.”
“그렇게 말한들 여기를 나가면 기억하지 못해. 말소된다고! 이 멍청한 언니야!”
“아니, 분명 기억할 수 있을 거야.”
욜가는 생명이 불타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너는 멍청하지 않으니까.”
기억한다.
미로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욜가가 죽음으로 전해 준 것을 반드시 기억해 내고 만다.
만족한 듯 눈을 감은 욜가의 몸이 뒤로 넘어가고, 페르미가 황급히 그녀를 받았다.
‘엄마.’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
“페르미, 고마워요.”
욜가가 손을 들어 페르미의 뺨을 쓰다듬었다.
“당신의 선택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자랑스러운…….”
그녀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내 아들.”
그렇게 욜가는 페르미의 곁을 떠났다.
19년 전의 그때처럼.
“감사했습니다, 어머니.”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고, 어머니를 똑 닮은 웃음으로 욜가를 보내 주었다.
“페르미! 피해!”
시로네가 소리치는 순간 페르미의 주위에 강력한 전격이 발생했다.
욜가의 시신을 끌어안고 몸을 날리자 시커먼 인영이 카즈라의 왕자를 붙잡고 구석으로 내달렸다.
“하아! 하아!”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라이컨이 아이의 목을 움켜쥐고 페르미를 노려보았다.
“배신자. 감히 나를 이용해?”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용한 게 아니라 이용당한 거 아닌가?”
페르미의 성격을 아는 라이컨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브제 어디 있어? 다 내놔.”
“없어.”
아이의 목을 움켜쥔 라이컨의 손에 전기가 흘렀다.
“애먼 인간 죽이기 싫으면 오브제를 가져와.”
욜가의 정체를 알고 있는 라이컨은 그녀가 목숨을 걸고 지킨 아이가 협박에 유용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다고 해도 없어. 전부 파괴됐다.”
“그럼 방법을 찾아내. 네 특기잖아? 만들어서라도 가져와. 안 그러면 이 아이는 죽는다.”
전기를 휘감고 있는 라이컨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오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했다.
“라이컨, 판단을 잘해야 할 거야. 날 화나게 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크크, 여태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라이컨의 시선이 욜가의 시신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행방불명된 사건을 이용해 오브제를 복제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페르미도 결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머저리 같은 자식. 그깟 엄마 품이 그리워서…….”
상층부의 복잡한 사건들이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바꾸는지, 페르미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라이컨에게는 당연한 오해였다.
“너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내 말을 거부하는 순간 인생이 고달파질 거다.”
“그거 아냐, 페르미?”
라이컨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난 예전부터 네가 재수 없었어.”
파직 하고 전격이 터지면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시신을 던진 라이컨이 전격 마법을 발동해 연구회를 빠져나갔다.
“라이컨!”
페르미가 분노의 일갈을 터뜨리며 뒤를 쫓자 시로네가 곧바로 움직여 카즈라의 왕자를 살폈다.
“죽었어요. 사건을 다시 바꾸죠.”
욜가의 의지가 꺾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마음대로 해. 나는 나갈 테니까.”
하지만 미로에게는 욜가의 가르침, 인간에게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을 지켜야 했다.
‘언니의 마지막 기억. 반드시 가지고 갈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나가야 한다.
“내가 이스타스를 나가면 시간의 폐곡선은 완전히 닫혀. 이것으로 사건을 종결시킬 거야.”
사건이 뒤틀리면 욜가의 죽음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고 미로의 각오 또한 없는 사건이 된다.
그렇게 헥사가 시공의 장벽에 갇혀 버리면, 결과적으로 시로네 또한 이 자리에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훗날 다시 만나게 된다면, 오늘의 일을 기억해 줘.”
미로는 연구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시간 : 2시간 35분.
공간 : 9번 창고.
시로네가 이스타스의 기관 장치를 가동하는 중에도 안찰의 잔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시로네, 그냥 여기서 끝내자. 더 이상 사건을 뒤트는 건 위험해.”
시로네는 대답이 없었다.
“잘 생각해! 만약 최악의 사건으로 치닫게 된다면……!”
“만날 거야.”
“뭐?”
완료 버튼을 누른 시로네의 눈이 매섭게 뜨였다.
“거핀을 만날 거야.”
“무슨 소리야? 어떻게 거핀을 만나?”
거핀은 분명 존재한다.
미로가 들어와 사건이 발생되는 0시 0분 이전의 세계에.
‘거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조를 바꾸는 이스타스가 진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시로네는 창고를 나섰다.
‘반드시 나를 납득시켜야 할 거야!’
시간 2시간 42분.
공간 : 이스타스 72번 창고.
온몸에 피칠갑이 되어 있는 채로 미로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이스타스를 나가면 시간은 격리되고 그녀가 겪었던 사건만이 순환하게 될 터였다.
“시로네.”
출구를 눈앞에 두고 미로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오지 마라.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절대로 이곳에 오면 안 돼.”
안찰의 환영 마법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이제 막 들어온 시로네에게 전하는 경고였다.
쿠르르르릉!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스타스가 진동하면서 구조물의 위치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 멍청이……!”
몸을 돌린 미로의 눈에 시로네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반드시 거핀을 만나고 말겠어!’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0시 0분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시불상폭매!’
72번 창고의 폐곡선이 열리기 시작했다.
시간 : 0시 0분.
공간 : 이스타스 72번 창고.
헥사를 품에 안은 미로가 출구 바깥에 있는 거핀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지?”
거핀의 말을 들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거피이이인!”
시간기를 이글거리며 달리는 시로네의 환영이 나타나는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동작을 역순으로 행하는 미로가 뒷걸음질로 빛의 장막 밖으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가 출구로 뛰어들었다.
‘나와!’
2시간 48분짜리 기록의 시발점.
하지만 시로네에게 과거의 1초는 또한 현재였고…….
‘거기에 있는 거 알고 있단 말이야!’
마침내 시불상폭매가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