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31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여기 계산은 내가 할게.”
“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시로네와 네이드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조만간 교장 선생님에게 인사드리러 찾아갈 거야. 그때 보자, 네이드.”
약혼자의 손을 잡고 건네는 말이지만 네이드의 심장은 다시 고장 난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네. 조심히 가세요.”
리즈와 오스카가 나란히 식당을 나가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네이드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미치겠다. 시로네, 약국 좀 들르자. 체할 것 같아.”
“도대체 누구야? 그냥 선배님은 아니지? 네가 이렇게 긴장한 모습은 처음 봐.”
연구회의 수장으로서 교사들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던 네이드였다.
“그게…… 얘기하자면 좀 길어. 가면서 말해 줄게.”
“알았어. 일단 우리도 나가자.”
시로네가 떠날 채비를 하자 네이드가 손을 내밀었다.
“잠깐! 10분만, 10분만 여기 그대로 있자.”
“왜? 약 사러 가야지.”
“리즈 선배가 아직 있을지도 모르잖아.”
“…….”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시로네였다.
***
“왜 그랬어?”
한참이나 말없이 걸어가던 오스카가 물었다.
“뭘?”
“너무 후배들을 싸고돌아서. 내 체면도 있는 거잖아. 내가 조언을 하고 있는데 끼어들면 어떡해?”
리즈는 갈매기처럼 눈웃음을 지었다.
“뭐야? 설마 질투하는 거야?”
“누가 질투를 해? 그런 애송이한테.”
“그런데 왜 신경을 써? 그냥 귀여운 후배들 밥 사 줬다고 생각하면 되지.”
“솔직히 좀 거슬렸어. 그거 알아? 네이드 말이야, 계속 나를 도발하고 있었다고.”
“에이,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솔직히 자기가 잔소리가 좀 심하기는 했지. 걔들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거야.”
“이거 봐, 또 편들잖아.”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싸우겠다는 생각에 리즈는 고집을 꺾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기분이 들떴나 봐.”
먼저 양보하자 오스카도 조금 마음이 풀렸다.
“나도 미안해. 예전에 고백했었다는 얘기를 듣고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지.”
“어휴, 다 지난 일인데 뭐. 3년 전이야. 그때 네이드는 열여섯 살이었다고.”
“그런데 강하다는 소리를 해? 내가 봤을 때는 둘 다 마법사가 되기는 글렀어. 끈기도 없는 것 같고.”
“네이드는 정말로 강해. 시로네라는 아이는 잘 모르겠지만, 네이드는 합격할 수 있을 거야.”
오스카는 눈을 깜박였다.
리즈와 알고 지낸 지 꽤 됐지만 자신에게도 강하다는 말을 쓴 적이 없는 그녀였다.
“어떤 애야? 네이드 말이야.”
“글쎄. 사실은 잘 모르겠어.”
“모른다고?”
리즈는 시선을 들고 기억을 더듬었다.
“푸른 전기…….”
“응?”
“분명 눈앞에 있는데도 잔상만 보고 있는 느낌. 네이드는 그런 후배였던 것 같아.”
오스카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뿌리 없는 나무 (4)
***
학교에 도착한 시로네와 네이드는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소로 발길을 돌렸다.
소파에 앉은 시로네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언제는 죽어도 못 간다더니.”
리즈가 학교에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단박에 마음이 바뀐 것이리라.
“내, 내가 뭐? 애들에게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온 거야. 그럼 다시 가?”
어쨌거나 네이드를 데려온 건 성과였다.
“됐고. 너도 좀 쉬어. 산에서 지내느라 고생했을 텐데.”
반대편 소파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네이드는 여기까지 오면서 시로네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너도 힘들었겠구나, 시로네.’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자 두 사람이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누구야?”
스크럼블 로열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불청객에게 적의가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리차드다.”
금화륜의 멤버인 연금술의 리차드.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의 등장에 네이드가 주저하자 시로네가 말했다.
“들어와.”
페르미와 라이컨의 결과가 궁금했다.
느리게 문이 열리고, 리차드가 붉은 안구의 잔상을 늘어뜨리며 들어왔다.
단단한 체구에 강인한 아래턱. 인간의 몸과 다르지 않지만 인조 피부 아래에는 근육과 뼈 대신 연금술로 만든 기계장치가 작동하고 있을 터였다.
“여기에는 왜 온 거야? 금화륜의 전언이냐?”
“아니, 페르미의 개인적인 부탁이다. 금화륜은 어제부로 해체됐으니까.”
“뭐?”
가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어째서?”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몰라. 페르미와 라이컨이 반목했다.”
두 사람 모두 죽지는 않은 듯했다.
‘하긴, 당시에 페르미는 부상이 심했으니까.’
네이드가 물었다.
“다른 멤버들은?”
“케이든은 행방불명. 헤르시는 스크럼블 로열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어.”
납득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너는? 너는 왜 페르미를 떠났지?”
의리보다는 페르미가 창출하는 수익을 보고 모여든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번 결정은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페르미의 가치가 떨어진 것은 아닐 텐데?”
“그렇지. 하지만 제안은 페르미가 먼저 한 거야. 금화륜을 해체하지 않으면 졸업 시험에서 너희 팀원 2명을 조력해야 하니까.”
“아…….”
금화륜 자체가 사라지면 2명을 조력하겠다는 대가 자체가 무효화된다.
“처음부터 계산하고 있었던 거군.”
어차피 금화륜을 해체할 생각이라면 협상에서도 마음대로 공수표를 날릴 수 있다.
“아마도 그렇겠지. 페르미는 절대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만족한 것 같았어.”
시로네는 페르미와 욜가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이곳에 찾아온 건 그 사실을 전해 주기 위해서야. 금화륜은 해체됐다. 그러니 괜한 시비는 사양하겠어.”
“페르미는 이번에 졸업할 생각이지?”
“그래. 너희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나도 돈을 받는 것으로 탈퇴했어. 퇴직금이지.”
리차드는 그 말을 끝으로 연구회를 나섰다.
처음에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으나 페르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모든 상황이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완전히 당했네.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어.”
“그게 불가능하니까 페르미가 찌르고 들어온 거지.”
“하아. 애들에게 말해 줘야겠어.”
그로부터 2시간 후, 에이미와 이루키가 평가를 마치고 연구회로 들어왔다.
“네이드! 너 어떻게 된 거야?”
네이드의 얼굴에 새겨진 상처를 보고 에이미가 소리쳤다.
“미안해. 내가 망쳤어.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어.”
이루키가 말했다.
“됐어. 어쨌든 이겼으니까. 이제부터 너도 순위를 올릴 생각을 해. 이제 졸업 시험이 진짜로 얼마 남지 않았어.”
“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시로네는 금화륜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을 전했고, 두 사람이 받은 충격 또한 다르지 않았다.
“페르미, 이 비겁한 자식! 마지막까지 꼼수를 부려?”
“좋게 생각하자. 분배도 애매했고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었으니까. 다른 팀원들도 이해해 줄 거야.”
욜가를 만나기 위해 족히 10년 이상을 준비한 그에게 이번만큼은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네이드의 환영식을 끝낸 시로네 일행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이루키.”
이루키의 방문 앞에서 시로네가 불렀다.
“혹시 리즈라는 선배를 알아?”
“리즈?”
이루키답지 않게 놀란 표정이었다.
“네가 그 선배 이름을 어떻게 알아?”
“그게, 오늘 아침에 만났거든. 네이드랑.”
“그랬었군.”
이루키는 네이드의 방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의기소침해 있더라니. 그래서, 말은 좀 했어?”
“응. 밥도 사 주셨어. 리즈라는 선배, 네이드에게 소중한 사람이지?”
“아무래도 그렇지. 저 괴물 같은 놈이 정신 차리고 살게 만든 장본인이니까.”
“어떤 사람이었어?”
“흐음,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리즈 선배를 추억한 이루키가 짧게 정의했다.
“딱 지금의 네이드였지.”
***
4년 전, 네이드가 열다섯 살일 때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눈빛만으로 상대를 두렵게 만들 만큼 흉흉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이루키하고만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을 뿐 어느 누구하고도 말을 섞지 않았고, 그런 독단적인 행보는 점심시간에 가장 두드러졌다.
네이드가 식판에 음식을 받고 몸을 돌리면 그의 등을 훔쳐보고 있던 친구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자신의 옆자리에 앉을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흥.”
콧방귀를 뀌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루키 또한 테이블 하나를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서로의 역량은 인정하지만, 남들이 밀어낸 사람들끼리 밥을 먹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었기에 네이드는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리즈가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안녕?”
고개를 든 네이드의 눈에 웃고 있는 리즈가 보이고, 그녀의 뒤로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클래스 포의 상위권인 리즈.
네이드하고는 전혀 연관이 없는 선배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넌 뭐야?”
당시의 네이드는 선배라도 거칠 것이 없었다.
“안녕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뭐야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는 거 아냐?”
“용건 없으면 꺼져. 밥맛 떨어지니까.”
“혼자서 먹는 밥은 맛있고? 그러지 말고 같이 먹자. 선후배 간에 친하게 지내는 것도 좋잖아.”
리즈는 누군가가 소외되는 것을 못 보는 성미였다.
“귀찮아. 꺼지라고.”
네이드의 냉대에 열이 받은 건 오히려 뒤편에 있던 리즈의 친구들이었다.
“싸가지없는 놈. 어리니까 봐주는 거지, 지가 진짜로 센 줄 알아.”
“리즈, 그냥 와. 저런 미친놈하고는 안 엮이는 게 상책이야.”
그래도 선배였기에, 네이드는 한 번은 참았다.
“가 보지 그래? 친구들이 부르는데.”
“좋아. 솔직히 말해 주면 갈게.”
“뭘?”
“정말로 외롭지 않아?”
쾅!
테이블을 내리치자 학생들 모두가 돌아보고, 어깨를 들썩인 리즈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얼어붙었다.
차가운 정적 속에서 그들 모두의 시선을 눈에 담은 네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리즈의 어깨를 짚었다.
“다시는 내 앞에서 까불지 마라. 진짜 그러다 죽도록 맞는 수가 있다.”
살짝 얼굴이 창백해진 리즈는 그럼에도 장난스럽게 혀를 삐죽 내밀었다.
잠시 후 네이드가 멀어지자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리즈, 괜찮아?”
“뭐 저딴 자식이 다 있어? 수업 끝나고 부를까?”
“내가 혼쭐을 내 줄게. 저런 놈은 마법학교에 있을 필요가 없어.”
여전히 상기된 표정의 리즈가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 숨을 크게 내뱉었다.
“후아, 진짜 장난 아니다, 쟤. 듣던 것보다 더 까칠하네.”
“그러게 왜 말을 걸어? 수업도 만날 빼먹고, 듣자 하니 학교 밖에서 질 나쁜 애들이랑 어울린다는데.”
“흐음.”
친구들의 우려 섞인 말에도 불구하고 리즈는 흥미롭다는 듯 네이드의 등을 바라보았다.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