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33
“네가 심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못 하겠다면 마음을 접는 수밖에 없지.”
네이드가 생각하기에도 유일한 해법이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몰라. 도시 여관을 다 뒤질 수도 없는 일이잖아.”
“교장 선생님은 알고 계실 거야. 내가 물어볼게.”
알페아스에게 달려간 시로네는 리즈가 돌고래 여관에서 투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며 이스타스를 나선 네이드였으나 막상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침착하자. 그냥 선배를 만나러 온 것뿐이야. 예전에는 이러지도 않았잖아.’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손을 들어 문을 노크하자 리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어…… 네이드인데요.”
“네이드?”
문이 열리고 편한 차림의 리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꾸민 것보다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그 희소성이 오히려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말문이 막힌 네이드를 바라보는 리즈의 얼굴은 예상대로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들어올래?”
“죄송합니다! 선배님!”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된다는 생각에 네이드는 즉각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정신이 어떻게 됐었나 봐요. 선배님도 못 알아보고. 정말 죄송합니다.”
이것으로 모든 감정이 해소될 수는 없겠지만 사과를 받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래. 찾아와 줘서 고마워. 사실 마음이 좀 불편했거든. 내가 학교에 괜히 간 건가 싶기도 하고.”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
“알았어. 떠나기 전에 한번 만나자.”
“저기, 그런데 오스카 씨는 어디 계시나요? 직접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그 사람은 협회 사람들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갔어. 걱정하지 마. 담아 두고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그래도 어딘지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폐는 안 끼칠게요.”
리즈의 입장에서도 오스카가 화를 푸는 게 좋았다.
“골드오션 레스토랑에 있을 거야. 거기에서 만난다고 했거든. 중요한 자리니까 방해는 하면 안 돼.”
“네. 걱정 마세요. 감사합니다.”
더 이상 있다가는 또 다른 실수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네이드는 황급히 여관을 빠져나왔다.
‘됐다! 됐다고!’
여전히 거리감은 남아 있었지만 인연이 끊어지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상황이었다.
‘고작 이런 거에 좋아하다니. 며칠 전만 해도 날 보며 웃어 줬었는데.’
어째서 인간은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일까?
‘일단 다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네이드는 레스토랑이 있는 건너편에서 창문을 통해 오스카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대여섯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자신감 넘치는 손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쳇, 좋겠다.”
리즈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오스카는 알고 있을까?
짜증도 부리고 때로는 귀찮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감히 눈조차 쉽게 마주칠 수 없는 고결한 여자였다.
“그나저나 언제 끝나는 거야?”
사랑하는 여자의 애인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바깥에서 기다려야 하는 심정이야말로 비참함의 끝이었다.
얇은 옷을 입어서인지 가을의 추위가 더했으나 단지 날씨 탓만은 아닐 터였다.
‘빨리 끝나라. 빨리 끝나라.’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1시간 정도를 기다리자 저녁 식사를 마친 오스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온다.’
레스토랑 문을 손수 열고 일행이 나오기를 기다린 오스카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개를 숙였다.
“저녁 잘 먹었습니다, 지부장님. 다음에는 제가 근사한 데로 모시겠습니다.”
“껄껄! 입에 맞았다니 다행이군. 자네의 안목도 기대하고 있겠네.”
‘와. 저 사람이 지부장이었어?’
네이드는 배가 우뚝 불러 슈트의 단추가 겨우 채워진 중년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공인을 취득한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마법협회 크레아스 지부장과 저녁을 먹는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할 줄 아는 건 있나 보네. 하긴, 리즈 선배 데리고 살려면…… 응?’
붉은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여성이 모피 코트를 걸치더니 오스카의 옆에 다가와 부드럽게 팔짱을 끼었다.
“아빠, 이 사람이랑 잠깐 걸어도 되지? 소화도 시킬 겸.”
“그래. 우리 딸 잘 에스코트해 주게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화로 미루어 보면 지부장의 딸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어째서 그런 여자가 오스카와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대체 뭐야?”
누군가에게는 (2)
***
“괜히 장소를 가르쳐 줬나?”
네이드를 그렇게 보낸 리즈는 연구회에서 네이드가 화를 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마음을 접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드가 정식으로 고백했을 때 단호하게 선을 그었지만, 이제 와 되짚어 보면 당황했었던 것 같다.
‘뭐가 두려웠을까.’
사실 말처럼 편한 후배는 아니었다.
허물없이 지내기는 했지만, 네이드와 있을 때면 언제나 미묘한 외줄타기의 감정을 느꼈던 그녀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미래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는 여자에게 후배의 고백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에 몸을 내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차마…… 선택할 수 없었다.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녀의 곁에는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주는 오스카가 있었다.
‘그래, 이러면 된 거야. 지나간 일 따위…….’
리즈는 고개를 흔들어 과거를 지웠다.
“네이드.”
하지만 결심의 말미에서 또다시 이름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결코 잊을 수 없는 4년 전 그날의 일 때문이었다.
“뭐야?”
3개월 가까이 말을 걸어오던 리즈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자 네이드는 식당을 빙 둘러보았다.
‘흥, 알아서 하라지.’
후배에게 몇 달이고 민망한 대접을 받았으니 이쯤이면 포기할 때도 되었다.
“리즈는 어떻게 된 거야? 어제 나가서 안 들어왔잖아?”
의지와 관계없이 네이드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그러게. 연구회 일로 해결할 일이 있다고 했는데.”
“설마 붙잡힌 건 아니겠지? 연금술 상회 업자들, 진짜 악질이라고 그러던데.”
연금술 상회라는 말이 네이드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나쁜 자식들. 학생이라는 걸 이용해서 완전 고리대금을 먹인 거야.”
네이드는 식기를 탕 하고 내리쳤다.
“시끄러 죽겠네.”
학생들이 전부 쳐다보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난 네이드가 리즈의 친구들에게 갔다.
“그렇게 걱정되면 가 보면 될 거 아냐? 밥 먹으면서 쫑알쫑알 뭐 하냐?”
친구들이 흉물을 본 듯 얼굴을 찡그렸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리즈가 없으니 심심해? 그러게 평소에 잘할 것이지.”
네이드는 대꾸 없이 의자를 꺼내 앉았다.
“자세히 말해 봐.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학교를 빠져나온 네이드가 도착한 곳은 크레아스 도시의 으슥한 골목길 한복판이었다.
“멍청하긴.”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에서 영혼 전해 실험을 했다고 한다.
장비를 조달하기 위해 연금술 상회의 금융 상품을 이용했는데, 악질에게 걸린 모양이었다.
어떤 힌트도 얻지 못했으나 뒷골목의 생리를 알고 있는 네이드에게 리즈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정도 걸어가자 어떤 조직의 말단들이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거침없이 다가간 네이드가 삐딱하게 물었다.
“야, 너희들 잠깐 이리 와 봐.”
긴장한 몸짓으로 고개를 돌린 조직원들이 아직 어린애라는 것을 확인하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 꼬맹이는? 너 여기가…… 커헉!”
그들이 본 것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푸른 전격의 잔상뿐이었고,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의식을 잃었다.
“리즈 어디 있어?”
네이드가 목을 움켜쥐고 묻자 겁에 질린 남자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소리쳤다.
“몰라! 난 누군지도 모른다고!”
당연히 그럴 터였다.
“그럼 알고 있는 놈을 찾아.”
그렇게 음지의 조직을 파고든 네이드는 숲속에 있는 연금술사 위즈의 사택에 그녀가 감금당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금술 상회라.”
사택에 잠입하자 2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창고가 세워져 있고 건장한 2명의 경비가 지키고 있었다.
네이드가 다가가자 역시나 험한 소리가 들렸다.
“너 누구야?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여자 내놔.”
단지 그 말만 듣고서도 경험 많은 경비들은 사태를 직감했고, 동시에 네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르르르릉!
천둥이 치는 소리에 창고에 있던 자들이 모조리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이어서 창고 문이 박살 나고 네이드가 들어왔다.
“네이드?”
초췌한 얼굴의 리즈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무사하군.’
테이블에 서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보아하니 밤새도록 협상을 한 모양이었다.
물론 리즈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들임을 네이드는 짐작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고리대금은 물론이고 신체 포기 각서까지 스스럼없이 건넬 수 있는 자들이었다.
‘프로들이다.’
연금술 상회는 다른 사채업자와 달리 오가는 금액이 크다 보니 고용한 자들도 모두 마법사였다.
7명의 마법사들이 살기등등하게 서 있는 것을 살핀 네이드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정신 나간 선배군. 상회가 어떤 곳인 줄 알고 덥석 장비를 빌려? 그것도 학생 주제에.”
리즈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임대비는 다 치렀단 말이야! 그런데 자꾸 장비에 결함이 생겼다고 구입을 해야 한다잖아!”
악질업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기에 네이드는 리즈가 가져온 장비를 살폈다.
“울트릭스군.”
고출력의 전기에너지를 한 번에 방출시키는 장비로, 관련 분야의 기업체가 아니면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내구성은 보장할 만했다.
“결함이 생겼다고? 뚜껑 열어 봐. 내가 확인해 주지.”
네이드가 다가오자 위즈가 손을 내밀었다.
“뭐냐, 너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울트릭스를 검수한다고? 이게 얼마짜리 장비인 줄 알아?”
“그거야 지켜보면 될 일이고. 상회 내부 조약은 알고 있지? 7조 3항. 사기 치다 걸리면 영원히 퇴출이야.”
위즈의 눈썹이 꿈틀했다.
“너, 연금술사냐?”
물론 네이드에게 정식 자격증은 없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마도공학을 공부하면서 실력만큼은 전문가 못지않았고, 덕분에 업계의 금기도 빠삭했다.
“정 걱정스러우면 업체에 맡겨 보든지. 선택해. 이대로 임대로 받고 떨어질래, 아니면 지금 장비 가지고 길드로 갈까?”
“포위해.”
위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법사들이 움직였다.
“네이드!”
리즈가 다가서려고 했으나 그녀를 중심으로 화염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졌다.
“움직이지 마라. 통구이 된다.”
고작 상회에 고용될 정도라면 길드 출신이겠지만 그런 만큼 위협을 가하는 방식에는 베테랑이었다.
위즈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는 모양인데, 솔직히 부는 게 좋을 거다. 여기에 온 거, 누가 알고 있지?”
네이드는 비웃음을 지었다.
“애석하게도 친구가 없어서…….”
‘저 바보가!’
리즈의 눈에 절망감이 담겼다.
거짓으로라도 다른 사람을 엮어야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것 아니겠는가.
“그래?”
예상대로 위즈의 얼굴이 사악하게 변했다.
“처리해.”
6명의 마법사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공인이 아니더라도 실전에서 터득한 하나의 필살기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위력을 지닌 그들이었기에 각자의 속성을 극대화시킨 공격이 예리하게 날아들었다.
콰르르르릉!
찰나의 순간 창고가 푸른 빛으로 번쩍이더니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창고 안에 먼지가 자욱하게 깔렸다.
“콜록! 콜록!”
헛기침을 토해 낸 위즈는 매운 눈을 뜨고 전방을 바라보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단 일격에 6명의 프로 마법사들이 사지를 요상하게 뒤튼 채로 감전되어 있었다.
“끄으으으!”
이를 악물고 충격을 참아 내는 마법사들을 지켜보며 리즈의 얼굴도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