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34
‘정말로 강하잖아.’
단지 성격이 남들보다 모난 후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프로 마법사들이 쓰러진 자리에서 푸른 전기를 뿜어내는 네이드의 모습은 강렬한 충격이었다.
***
“잘하고 있을까?”
네이드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연구실에 남아 있는 시로네가 중얼거렸다.
“알아서 하겠지. 설마 고개 숙이는 것도 못 할까 봐?”
이루키의 말대로 네이드는 어리석지 않았으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의 상처였다.
“이제 졸업 시험이잖아. 그때까지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시로네를 흘끗 살핀 이루키가 책을 덮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무슨 말이 그래? 당연히 정신을 차려야지.”
“내가 얘기했잖아. 네이드는 어릴 때 도적단에 붙잡혀서 전기 고문을 당했어. 아주 잔혹하게.”
“알고 있어. 그래서 ‘그렇게’ 되어 버린 거잖아.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아. 통제할 수 있다는 게.”
“그런 의미에서 말한 거야. 어쩌면 네이드는 이대로 헤매는 게 좋을지도 몰라. 시로네, 너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나를 위해서?”
“네가 평가를 포기하는 이유,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아서는 마법사가 될 수 없다는 걸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
친구 사이에 하기에는 껄끄러운 얘기였다.
“이루키, 나는…….”
“괜찮아. 일단 졸업 시험에 들어가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너와 싸워야 할 테니까.”
이루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문제는 네이드야. 아마 마법사가 될 수 없겠지. ‘그런 상태’의 마법사를 고용할 조직은 레드 라인에 없어. 길드를 전전하거나 블랙 라인으로 빠지지 않는 이상.”
“네이드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시로네, 네이드는 너하고 완전히 다른 성질이야.”
이루키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너에게는 끝을 알 수 없는 가능성이 있지만 네이드는 한계가 명확해. 다만 정점일 뿐. 여덟 살에 이미 최강이 되어 버렸고 그 이후로 여전히 네이드는 최강이야. 그리고 내 판단에 의하면…….”
이루키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지금 너의 수준으로는 네이드를 넘어설 수 없어.”
“상관없어, 네이드가 나보다 강해도.”
시로네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 서로 최선을 다해서…….”
“네이드의 진짜 얼굴, 본 적 없지?”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봤어. 그리고 몇몇이 더 봤지. 그 사람들의 의견도 나와 같을 거야. 네이드는 마법사가 아니야. 그냥 마법이지.”
이루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난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마법사로서 네이드에게 미래는 없어. 그렇다면 너의 성공을 위해…….”
“그런 거 싫어.”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친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한다고? 네이드가 나태하게 있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알잖아?”
“아니, 그렇더라도 용납할 수 없어. 경쟁에서 희생이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
이루키는 무엇이 옳은지 선택할 수 없었다.
시로네 또한 소중한 친구였고, 네이드의 힘은 최소한 마법학교 수준에서는 반칙이었다.
“네이드에게 가 볼래. 아무래도 걱정돼.”
시로네의 심정을 이해하는 이루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따랐다.
“같이 가자.”
***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스카야? 일찍 왔네?”
회상에서 깨어난 리즈가 재빠르게 다가가 문을 열자 예상과 다르게 안색이 어두운 네이드가 서 있었다.
“선배님, 저 또 왔어요.”
4년 전의 일을 되짚었기 때문일까, 리즈의 마음도 몇 시간 전과 달리 누그러진 상태였다.
“어서 와. 오스카는 만났어?”
“그게……. 오스카 씨는 좀 늦을지도 몰라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리즈는 방문을 열어 주고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방에 들어가자 오스카의 옷가지가 단정하게 개어져 있는 모습이 네이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편하게 앉아. 늦을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의자에 걸터앉은 네이드는 과연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말해야 하는지, 아직까지도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선배님, 정말로 오스카 씨를 사랑하세요?”
“호호! 뭐야, 갑자기? 사랑하니까 약혼도 하는 거지.”
이것은 다른 의미로 지옥이었다.
‘차라리 안 봤어야 되는 건데.’
모르고 넘어갔더라면 마음의 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선배님, 아무래도 오스카 씨에게…….”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네이드는 말을 던졌다.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3)
리즈가 되물었다.
“뭐?”
“오스카 씨가 누구를 만났는지 아세요?”
“그야 지부장님…….”
“딸이 합석했어요.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다가 집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정말로 짚이는 거 없으세요?”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공인을 취득했다고 해도 오스카의 실력으로 봤을 때 협회에 특채로 취직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네가 착각한 거겠지. 지부장님 딸이 합석해서 그냥 에스코트해 줬을 수도 있는 거잖아.”
정황을 봤을 때는 그런 해석도 가능하지만 남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느끼지 못할 만큼 멍청이는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선배님도 직접 봤다면 내 얘기를 믿었을 거라고요.”
리즈는 수치스러웠다.
“그만해.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네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왜 달라지는 게 없어요? 오스카 씨는 선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렇더라도 내가 해결할 일이야! 너에게 이런 말까지 듣고 싶지 않단 말이야! 좋은 추억마저 엉망으로 만들지 마!”
“선배님…….”
리즈와 네이드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비밀일 테지만, 그것도 이제는 좋은 추억일 뿐이었다.
“그만 나가 줘. 너를 만난 건 실수였던 것 같아. 설령 오스카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해도…….”
입술을 깨문 리즈는 필사적으로 말을 쥐어짜 냈다.
“내가 너에게 가는 일은 없을 거야.”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며, 네이드는 고개를 숙이고 리즈의 방을 힘없이 빠져나왔다.
***
“엄마! 엄마!”
네이드의 나이 여덟 살 때였다.
웨스트 가문의 가세가 기울어 대출을 받기 위해 수도에 가는 길에 치킨헤드 도적단의 습격을 받았다.
마차가 뒤집어지고 가솔들은 도적단의 손에 붙잡혀 하나도 남김없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유일하게 서 있는 마차를 향해 네이드의 어머니 테리아가 발을 굴렀으나 얼마 못 가 도적단에 잡히고 말았다.
“크헤헤헤! 어딜 도망치려고!”
치킨헤드 도적단은 다들 반쯤 미친 자들이었고, 테리아를 덮친 자는 피어싱이 박힌 혀를 길쭉하게 내밀었다.
“이거 굉장한 미녀잖아? 이제부터 넌 내 거다!”
“꺄아아악!”
테리아의 정신 나간 비명 소리를 들은 네이드는 거칠 것 없이 도적단에게 덤벼들었다.
“우리 엄마 풀어 줘!”
“크크크. 안됐구나, 꼬마야.”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를 처리하는 데에는 일격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을 치켜든 도적단은 명치를 향해 날아오는 푸른 전기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크윽!”
충격을 받은 그가 날아가자 살육의 현장에 있던 자들의 시선이 어린아이에게 집중되었다.
“마법? 저런 꼬맹이가?”
마차에서 대기하던 마부가 소리쳤다.
“어서 타십시오!”
이미 마차는 달리기 시작했고, 테리아와 네이드는 온 힘을 다해 뒤를 쫓았다.
테리아가 먼저 타고, 간발의 차이로 뒤처진 네이드가 도적단의 먹잇감이 되었다.
“엄마! 엄마!”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마차 안에서, 도적단에게 붙잡힌 네이드를 지켜보는 테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멈……!”
인간의 모든 번뇌를 담은 듯한 목소리였다.
“멈춰요! 멈춰!”
“안 됩니다! 가 봤자 구출할 방법이 없어요! 일단 누구라도 살아서 나가야 지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엄마아아아!”
네이드의 비명 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졌다.
***
“하아.”
날이 차가운 새벽.
길가에 쪼그려 앉아 돌고래 여관을 올려다보는 네이드의 입에서 한숨 섞인 입김이 뿜어졌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저 멀리 숲에서 부지런한 새들만이 지저귀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오스카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얘기가 길어졌다고 리즈에게 둘러댈지는 모르겠지만, 사건의 현장을 직접 봤던 네이드에게는 모든 정황이 그려졌다.
물론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을 것이다.
마법학교에 다니면서 마법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는지, 얼마나 성공을 갈망하는지 알고 있다.
본부장의 딸이 추파를 던졌다면 비명문 출신의 그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딴 건 상관없어.’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은 다른 법이니까.
‘리즈 선배가 받을 상처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화가 나는 것은 오스카의 대처였다.
사랑보다 성공이 먼저라면 대체 약혼은 뭐고 리즈는 왜 여기까지 데려왔단 말인가?
‘이유는 한가지뿐이겠지.’
네이드의 눈빛이 차가워지는 그때, 저 멀리서 코트를 걸친 오스카가 지친 몰골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리즈 앞에서 어떤 앓는 소리를 할지는 몰라도, 홀가분하게 걸어오는 모습에 죄책감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아주 바쁘시군. 이쪽저쪽 다니느라.”
길가에서 들리는 갑작스러운 시비에 고개를 돌린 오스카가 네이드인 것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너? 밤새 여기서 기다린 거냐?”
“기분이 좋아 보이네. 본부장이랑 얘기가 잘됐나 보지?”
“무, 무슨 헛소리야?”
처음에는 당황한 오스카였으나 마법사답게 상황 판단은 빨랐고 이내 얼굴에 분노가 드러났다.
“설마 미행한 거냐? 양아치 아니랄까 봐. 정말 구질구질한 놈이구나, 너.”
“잠깐 얘기 좀 하자.”
오스카는 콧방귀를 뀌고 몸을 돌렸다.
“내가 왜? 그리고 무슨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본부장님 집에는 계약차 다녀온 것뿐이야.”
“그렇게 당당하다면 사실대로 알려도 되겠지?”
“하하! 리즈에게? 얼마든지. 리즈가 너같이 질투에 눈이 먼 놈의 말을 믿을 것 같아?”
“아니. 기자실에 말이야.”
오스카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본 게 정확하다면 너는 공인 마법사로서 왕국의 명예를 실추시킨 중죄를 저질렀어. 지부장의 딸과 염문이 나서 그 특혜로 협회에 들어간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원체 제멋대로인 마법사지만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공인에게는 지켜야 할 도의가 있다.
“……원하는 게 뭐냐?”
“그래서 말하잖아, 얘기 좀 하자고.”
오스카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네이드에게 걸음을 옮겼다.
“좋아.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
오스카의 어깨를 짚은 네이드가 공간 이동을 시전하자 굉음을 내며 섬광이 휘어지더니 풍경이 변했다.
크레아스 도시 외곽의 숲속에 있는 공터였고, 지리를 확인한 오스카는 비웃음을 지었다.
“역시 양아치답네. 이런 곳으로 데려오면 내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냐? 공인을 졸로 봐도…… 컥!”
네이드의 주먹이 오스카의 턱을 돌렸다.
“이 자식이!”
고개를 되돌린 오스카의 눈에 불이 켜졌으나 이미 네이드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사람의 신경으로 쫓을 수도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네이드는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크으으으!’
하지만 오직 지금을 위해 억눌렀던 감정이 해방되자 무시무시한 살의가 정신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커억!”
또다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든 주먹에 이번에는 오스카도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대체 뭐야?’
순간 이동보다 훨씬 점멸적인 움직임.
언로커의 전매특허인 플리커 마법일 수도 있으나, 만약 그렇다면 리즈가 말을 했을 터였다.
“이상한 수작 부리지 말고 나와! 이 비겁한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