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37
시로네가 말했다.
“하루 하고 반나절. 이제 곧 저녁이야.”
“그래…….”
다시 생각에 잠긴 네이드가 한참 뒤에 물었다.
“오스카는?”
“살아 있어.”
네이드라면 이것이 가장 궁금할 것이라 여겼다.
“아니, 기억은 나. 어떻게 됐어?”
시로네는 이루키와 시선을 교환했다.
“내가 아침에 광장에 가서 살펴봤는데, 게시판에 공시됐더라. 오스카 씨가 특채로 합격했다고.”
“…….”
그 난리를 겪고서도 끝까지 집착한 것인지 정신이 없다 보니 자연히 일이 처리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오스카 씨도 마법사니까 최선의 판단을 내린 걸 거야.”
“그래. 어른들은…… 참 힘들게 사는군.”
이루키가 말했다.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건 없지.”
“너 기절하고 나서 잠깐 얘기를 해 봤는데, 오스카 씨도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래. 수도 사교 모임에서 본부장의 딸에게 제안을 받고 혼자 오려고 했는데 리즈 씨가 고집을 부리면서 휴가까지 쓰는 바람에…….”
“나를 만나려고 그랬던 거야.”
네이드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이제 어떡할래? 우리랑 같이 기자실로 갈까? 네가 정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네이드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협회에 취직을 하든지 말든지. 리즈 선배가 걱정될 뿐이야. 지금쯤이면 떠났겠지?”
“그렇겠지. 이제는 오스카 씨의 일을 알고 있을 테니까.”
네이드는 눈을 감았다.
“조금만 더 쉬게 해 줘. 피곤해.”
시로네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렸다.
“그래, 조금 더 자. 우리는 저녁 먹고 네 것도 좀 챙겨 올게.”
대답은 없었고, 시로네와 이루키는 발걸음도 조심히 방을 나섰다.
그로부터 1시간 뒤.
시로네가 식판에 저녁을 담아 가지고 문을 열었다.
“네이드, 이거라도 좀 먹어. 어라?”
따라서 들어온 이루키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불이 단정하게 개여 있고, 열린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으로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
‘이미 떠났겠지만…….’
그럼에도 네이드는 돌고래 여관으로 향했다.
이미 마음을 비우고 온 그였지만 여관의 창문으로 안을 살핀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리즈 선배님…….”
빈 술병들을 옆에 세워 두고 바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리즈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에게도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는 게 있다는 생각에 네이드는 눈물이 차올랐다.
“저 여자……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냐?”
“내버려 둬. 실연이라도 당했나 보지.”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리즈는 독한 술을 또 다시 비워 냈다.
저절로 몸이 구부러지고, 무거운 머리를 가느다란 손목만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었다.
“어째서…….”
오스카를 따라 이곳에 왔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약혼식을 앞둔 그 행복의 절정에서, 떠오른 사람이 어째서 그였을까?
“크으으으!”
창고는 흔적조차 없이 날아갔고 위즈와 마법사도 보이지 않았다.
울트릭스의 전격에 맞은 네이드는 정신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살의를 억누르지 못했다.
‘젠장! 이런 건 처음인데!’
가끔 본능적으로 마력동화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바깥에서 들어온 전격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으아아아!”
전기가 방출되면서 리즈의 주위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도망쳐!”
네이드가 필사적으로 힘을 억누르며 말을 쥐어짜 냈다.
“네이드! 어떻게 된 거야?”
“빨리 가! 여기 있으면 너도 죽어!”
“그럼 너는 어떡하고?”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을 앞에 두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어딘가에 생각이 도착한 네이드가 한쪽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살아야 할 가치도 없는 놈이니까.”
가족에게 버림받고 괴물이 된 그에게 삶의 의미 따위는 없었다.
“싫어. 너랑 같이 갈 거야.”
결심을 끝마친 리즈가 다가왔다.
“미쳤어? 다가오지 마.”
몸에 닿는 순간 감전될 것이고, 마력동화 상태가 아니라면 버틸 수 없다.
“네가 참으면 돼. 지금도 참고 있잖아.”
리즈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네이드의 어깨를 짚었다.
“크으으윽!”
그녀를 죽일 수 없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힘을 짓누르자 얼굴에 흉악한 핏줄이 올라왔다.
“그만해…… 제발. 더 이상 버틸 수가…….”
“그러면 같이 죽는 거야.”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리즈가 눈을 질끈 감고 네이드를 와락 끌어안았다.
“으아아아!”
동시에 전기의 방출을 차단한 네이드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놔! 그냥 가라고!”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힘내!”
“어차피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 나 같은 놈은 죽는 게 낫단 말이야!”
“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네가 날 살렸잖아!”
“멍청아, 그건…….”
정신적인 폭발에 사지가 펼쳐지는 그때, 리즈가 입을 맞췄다.
“흐읍!”
부드러운 여자의 입술이 전신의 신경을 타고 전해지자 폭주하던 정신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네이드는 리즈의 허리를 끌어안았고, 두 사람은 무한한 자유로움에 전율하며 서로의 행동에 모든 것을 맡겼다.
푸른 전기.
리즈는 그렇게 정의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잔상으로 남아 있을 그녀의 첫 키스였다.
“흑! 흐윽!”
두 팔에 얼굴을 파묻은 리즈의 어깨가 슬프게 들썩거리고, 창문 밖에서 지켜보는 네이드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쏟아 냈다.
“으아아. 으아아아.”
달콤한 거짓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흐으으윽. 흐윽.”
그저 좋아하는 것만으로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
순수했기에 놓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것들.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네이드의 가장 찬란했던 학창 시절이 끝나 가고 있었다.
5대 명문 (1)
겨울이 찾아왔다.
눈이 내려앉은 학교의 정경을 내려다보던 알페아스가 창문에서 돌아서며 물었다.
“협회에서 공문이 내려왔다고?”
“직접 봐.”
올리비아가 책상에 올려놓은 빳빳한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5대 명문 마법학교의 졸업반 학생들은 개인의 졸업 시험 참가서를 직접 협회에 전달해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도 변수가 될 수 있겠군.”
다름 아닌 마지막 30주 차 평가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학생들의 정신은 칼날처럼 예리해지고 졸업 시험 당일에 컨디션이 최고점을 찍도록 바이오리듬을 조절한다.
그런 와중에 수도의 마법협회에 다녀온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일 터였다.
“학생들까지 정치에 이용하는 건가?”
가올드의 자리를 대임했던 루피스트가 정식으로 마법협회장의 자리에 오르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렇다고 봐야지. 루피스트는 엘리트 제일주의 철학을 가진 인물이야. 미래에 협회에 부임할 학생들을 지금부터 관리하려는 계획의 일환일 거야.”
그렇기에 5대 명문만으로 범위를 좁힌 것이다.
“그렇더라도 심하지 않나?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대체했던 일을 이런 식으로 바꾸다니.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일종의 권력 과시지. 루피스트의 인맥은 탁월하지만 협회만큼은 완전히 장악한 게 아니야.”
“가올드의 영향력이 알게 모르게 컸나 보군.”
“광인이지만 왕국 최강의 마법사였지. 표면적으로는 그의 행보를 비판해도 속으로 응원하는 마법사들도 꽤 있었을 거야.”
가올드는 그런 남자였다.
“그래.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지.”
대화를 듣고 있던 콜리가 입을 열었다.
“일단 협회에 30명을 보내려면 우리도 티오를 채워야 합니다. 현재 안찰이 자퇴하여 한 자리가 공석이고, 아이더도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고지 점령 평가에서 시로네의 아타락시아에 전신 골절을 입은 아이더는 여전히 교내 의무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치료는 끝났으나 문제는 정신이었다.
“의무 교사의 말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거의 치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더도 졸업 시험에 참가하겠다는 열의를 보이고 있고요.”
“흐음.”
졸업반은 졸업 시험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고, 권한을 사용하겠다면 학교로서도 말릴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어리지 않아? 치료에 반년 이상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트라우마가 심했다는 얘긴데.”
알페아스도 올리비아의 말에 동의했다.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지. 문제가 없다면 고급반에서 지원자 1명을 올려 티오를 채우게. 성적순으로 자격을 주면 괜찮을 게야.”
“네. 시이나 교사에게 맡기겠습니다.”
콜리가 고개를 숙이고 교장실을 나섰다.
***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로네는 연구회의 바닥에 가부좌를 틀었다.
이스타스 상층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에 매일같이 이곳에 와서 수열식을 전개하는 그였다.
‘하루의 힘을 믿어라.’
가슴앓이를 끝낸 네이드도 정상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었고, 스크럼블 로열의 대가를 치르는 학생들도 순조롭게 성적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제 졸업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10일.
여태까지 해 왔던 모든 수련은 그날의 결과를 보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크으으으!”
수열식이 200경을 넘어서자 시로네의 얼굴이 무섭게 구겨졌다.
경 단위에 들어와 시불상폭매를 발현시켰고, 지금은 그보다 200배나 멀리 왔다.
그럼에도 경을 뛰어넘어 해의 경지로 들어가는 건 여전히 요원했다.
‘어마어마하다. 끝이 없다.’
잡으려고 손을 내밀어 봤자 보이는 것은 영원히 질주하는 수의 터널뿐이었다.
-수에 끝은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거핀의 말을 상기하며 수열식을 가속시키자 연구회에 가득 퍼진 시간기가 맴돌면서 풍경을 형태조차 분간할 수 없게 일그러뜨렸다.
‘간다!’
끝없이 뻗어 나갈 것이다.
“시로네, 안에 있니?”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시이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무슨 일이세요?”
1초의 미래를 먼저 인지했던 시로네는 어느새 수열식을 중단하고 태연하게 시이나를 맞이했다.
“응. 콜리 선생님에게 부탁을 받아서. 잠시 나랑 어디 좀 갈 수 있어?”
“네, 물론이죠.”
시이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시로네의 모습을 바라보며 향수를 느꼈다.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입학 테스트에서 교사들의 주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법은 요원하고 할 줄 아는 것은 스피릿 존이 전부였던 소년이, 어느덧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졸업 1순위로 성장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하긴, 이 기분에 교사 하는 거지.’
겨울 코트를 걸친 시로네가 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의무 병동 재활 훈련소에. 네 도움을 받을 일이 있어서. 자세한 것은 가면서 얘기해 줄게.”
시이나를 따라 의무 병동으로 향하면서 시로네는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 그럼 2일은 걸리겠네요.”
“응. 하지만 이동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야. 마법협회 크레아스 지부에서 공간 이동 마법진을 타고 수도로 갈 거니까.”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진은 왕국의 안보에 핵심적인 장치이기에 공적인 일이 아니면 누구도 이용할 수 없었다.
“평가를 받는 애들도 콜리 선생님에게 들었을 거야. 사열식에 입을 옷이 있어야 하니까 미리 맞춰 놔.”
재활 훈련소는 병동의 지하 2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80평 정도의 공간에 벽을 따라 각종 재활 도구가 구비되어 있고 의무 교사의 옆에는 환자복을 입은 아이더가 서 있었다.
“아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