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47
아들에게 재능이 있든 없든 관심조차 주지 않고 오직 돈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았던 엄마다.
‘그런데 졸업 시험에 참관한다고?’
네이드가 고통과 절망을 대가로 여태까지 쌓아 온 모든 것들을 이제 와 송두리째 삼키려는 것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희망을 짓밟아 주지. 시험 시작하자마자 탈락할 거야. 아니, 죽어 버릴 거야! 당신이 보는 앞에서!’
“네이드, 안에 있어?”
시로네의 목소리에 황급히 표정을 고친 네이드는 편지 조각을 침대 아래로 밀어 넣고 문을 열었다.
“어. 들어와.”
이루키도 함께였다.
“기분은 어때? 내일이 시험인데.”
“당연히 날아갈 듯 기쁘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곧 나갈 참이었는데. 오늘 아침밥 안 준대?”
“준대. 그 전에, 너도 이거 해 봤으면 해서.”
시로네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이루키랑 내기했거든. 졸업 시험 1위부터 10위까지 맞히기. 이긴 사람이 밥 사는 거야.”
종이에는 시로네와 이루키가 예상한 순위가 적혀 있고, 1위는 물론 각자의 이름이었다.
“아하, 그래서 이긴 사람이 사는 거로군.”
“너도 참가해. 각오도 새롭게 다잡을 수 있고.”
“흐음, 1위부터 10위라.”
잠시 가늠해 보던 네이드는 자신의 이름이 적히지 않으면 시로네와 이루키가 눈치챌 것이란 생각에 도달했다.
“나는 안 할래. 괜히 했다가 부담만 더 될 것 같아서.”
시로네가 제안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네이드, 너 설마…….”
“하하! 걱정하지 마. 너희들이 졸업하는데 나만 학교에 남아 있을 수는 없지. 나 화장실 좀 들렀다 갈게. 먼저 식당에 가 있어. 배가 아파서.”
시로네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그래. 이따가 얘기하자.”
친구들이 나가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네이드가 문이 닫히기 직전 이루키를 불렀다.
“이루키.”
“응?”
“시로네가 상처 받지 않도록 말을 잘…….”
“싫어. 네가 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시로네를 실망시킨다면 나도 너 안 볼 거야.”
“이루키…….”
“네가 탈락하는 건 상관없어. 경쟁자 하나 줄어드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하지만 알고 있어? 시로네를 이기면 네가 왕국 1등이야. 부와 명성을 얻게 되지.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세를 탕진하고 도박판을 전전하는 아버지도, 재능 따위는 조금도 알아주지 않는 어머니도 그럴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어떤 것이 너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증오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씁쓸하게 웃은 네이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무슨 그런 농담이 다 있어? 솔직히 내가 시로네를 어떻게 이겨? 시로네가 얼마나 강한대.”
“진심이냐?”
이루키가 정색하자 네이드의 미소가 굳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네가 전력을 다해도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이루키, 나는 그냥 시로네랑 재밌게…….”
“지금 확실히 대답해. 나중에 가서 뒤통수치면 그때는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네이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거봐, 네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잖아. 그렇다면 싸워. 나도 시로네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 네가 그렇게 나오면 우리의 노력을 무시하는 거야.”
“이루키, 뭐 해? 빨리 가자.”
복도에서 시로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대답할게.”
네이드가 결심한 듯 고개를 쳐들었다.
“시로네는 나보다 강해. 내가 시로네와 싸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식당에서 보자.”
이루키가 문을 닫았다.
***
아침을 먹은 시로네는 친구들과 헤어져 정원을 거닐었다.
1년 전 이날, 에이미와 세리엘을 만나기 위해 강철문을 지났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주인공이 되자 당시에 그들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가슴에 쇳덩이가 있는 것 같아.’
올해로 두 번째 시험을 맞은 에이미는 더욱 처절하게 긴장감과 싸우고 있을 터였다.
‘재수생들의 합격률이 가장 낮으니까.’
모든 것을 동원하는 시험인 만큼 식당의 상황조차 분석이 가능했다.
아침을 거른 사람은 30명 중에 2명. 연금술의 리차드와 에이미였다.
‘리차드는 음식 대신 다른 걸 섭취해도 되지만…….’
에이미가 식당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긴장감이 한계치를 찍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가 봐야 할까?’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려도 모자랄 판국에 친구를 신경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친구가 아니었다.
***
에이미는 아침을 거르는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 끝에 작년보다 월등히 높은 성장을 이루었으니 긴장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중. 집중하자.’
몸을 씻은 뒤 상쾌한 기분으로 침대에 앉은 그녀는 차분히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자기상 기억을 더욱 세밀하게 느껴야 해.’
졸업반의 경쟁률은 학교 역사상 최고치였고, 사소한 실수 한 번이면 또다시 1년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흐읍!”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린 에이미가 변기에 얼굴을 처박자 위액이 모조리 역류했다.
“우엑! 우에에엑!”
나오는 것은 없어도 속은 뒤집어졌고, 여태까지 억누르고 있던 불안감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실패. 실패.
머릿속에 오직 안 좋은 생각만이 떠올랐다.
‘정신 차려, 이 멍청아! 긴장하면 끝나는 거야!’
“에이미, 안에 있어?”
시로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에이미가 차마 문을 열지는 못하고 물었다.
“어. 무슨 일이야?”
“아침도 안 먹었기에, 걱정돼서.”
“하아…….”
차라리 식당에 갔어야 했다.
문이 열리자 에이미의 창백한 얼굴을 발견한 시로네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안 좋구나.”
“하하!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토해서 그런 거야.”
“…….”
실수를 깨달은 에이미가 시선을 흘렸다.
“속이 안 좋아서.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시로네의 발이 문턱을 넘어서자 에이미가 포기한 듯 침대에 걸터앉았다.
“솔직히 엉망진창이야.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충분히 이해해. 나라도 긴장했을 거야.”
그 말을 듣고서야 에이미는 시로네 또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미안해. 괜히 너까지 신경 쓰이게 해서.”
“무슨 말이야? 그냥 친구도 아니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험을 앞에 두고 여기까지 찾아올 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이 기다려 주었네.’
작년 겨울, 스노우 크리스털의 여관에서 시로네의 감정을 외면했던 일이 떠올랐다.
“앉아도 돼?”
미래는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의 물음은 분명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응.”
에이미의 입술 사이로 수줍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결전의 날 (2)
***
각종 기계 부품들이 어지러이 굴러다니는 리차드의 방에 칭칭 기계음이 들렸다.
사방에 거울을 설치해 두고 공구로 자신의 몸을 정비하는 모습은 사뭇 을씨년스러웠으나 졸업 시험을 하루 앞두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오른쪽 가슴에서 옆구리까지 뚜껑이 열려 있었는데, 심장에 장착된 핵심 동력 기관이 붉은 빛을 발했다.
탈착된 오른팔이 두 다리 사이에 끼어 있었고, 납질을 끝낸 그가 팔뚝 부분을 붙잡고 어깨에 장착했다.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듯한 기계음을 따라 다섯 손가락이 문어 다리처럼 꿈틀대고 팔꿈치 부분의 볼베어링이 회전하면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동작을 수행했다.
“흐음.”
리차드는 만족스러웠다.
‘다음은 시스템 동기화.’
한쪽 눈을 찡긋 감고 뇌파를 조절하자 기계로 만든 홍채 안에서 푸른 빛이 부옇게 발광했다.
물에 잠긴 듯 푸른 색상의 시야 속에서 수많은 계측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수치를 바꾸었다.
리차드의 아버지 아인카 마르토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연금술 재단인 아인카 연금의 오너이자, 발키리 산하의 전략병기개발부서인 바이오로보틱스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그런 가문의 직계가족이 성공 확률 30퍼센트 미만인 실험에 기꺼이 몸을 맡겼다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뇌에 기계장치를 이식하는 것은 성공 확률이 4퍼센트도 되지 않았지만, 마르토는 거리낌 없이 장남의 두개골을 열었다.
‘크크크, 우린 형제가 많거든.’
목숨을 담보로 신체의 35퍼센트를 개조한 그가 얻은 것은 재단 이사진의 신뢰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무력.
‘클리크 수정.’
오른팔을 뻗고 명령어를 입력하자 주먹이 조준하는 최종 지점에 십자가 표시가 떴다.
‘전투 시뮬레이션 발동.’
방 안의 풍경이 숲으로 변하고, 엄폐물 사이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리차드를 향해 뛰어들었다.
‘화염 마정석 장착.’
팔꿈치 관절이 크게 흔들렸다.
리차드가 사용하는 마정석은 시중에 판매되는 일회용이 아니라 아인카 연금의 특제품으로, 전 세계에 17개밖에 없는 ‘정령의 정수’를 양산화시킨 최첨단 물질이었다.
‘발사!’
오른팔이 텅텅 소리를 내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자 가상의 불덩어리가 연사로 튀어 나가 몬스터들을 때려눕혔다.
‘마정석 교체. 냉기.’
치잉 소리를 내며 팔꿈치가 돌아가더니 이번에는 날카로운 얼음 가시가 쏘아졌다.
자동 위치 추적 기능이 몬스터의 현재 좌표와 가속도를 계산하여 가장 먼저 타격해야 할 대상을 선별했고, 리차드는 그에 맞춰 사격만 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200마리의 몬스터를 섬멸하자 임무 종료라는 신호가 뜨고 분석 차트가 나타났다.
반경 20미터 안으로 접근한 몬스터가 3마리였고 클리크 오차율은 0퍼센트였다.
‘전투 시뮬레이션 해제.’
울창한 숲이 사라지고 방 안의 풍경으로 되돌아오자 리차드가 입꼬리를 올렸다.
“완벽해.”
아인카 리차드(졸업반 최종 순위 7위).
전공 : 연금술의 공학 계열.
특이 사항 : 신체의 35퍼센트를 연금 기술로 개조. 아인카 재단의 차기 가주.
***
침대에 나란히 앉은 에이미와 시로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
단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는 이유는, 특별한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오늘 그들이 꿈꾸는 가능성은 냉혹한 현실이 되어 버린다.
“합격할 수 있을까?”
한순간도 남에게 판단을 맡겨 본 적이 없는 에이미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듣고 싶었다.
“물론이지.”
거짓말이라도 확신이 필요한 건 시로네도 마찬가지였다.
“최선을 다했잖아. 우리가 노력한 날들을 생각해 봐.”
“하지만 그건 모두 마찬가지야. 만약 여기서 실패하면…….”
1년을 더 싸워야 한다.
아니, 정말로 더 싸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열심히 했으니 하늘의 뜻에 맡기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돼.”
“에이미.”
시로네가 에이미의 어깨를 붙잡고 돌려세웠다.
“너는 졸업반 누구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아. 내가 보증할 수 있어.”
“정말?”
“그래. 너는 최고의 학생 중 1명이야.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봐.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실수만 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있는 난이도야.”
시로네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랬다.
1년 동안 졸업반을 분석했고, 정상적으로 시험을 치른다면 분명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시로네.”
긴장감이 사라지자 비로소 시로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에이미의 눈빛을 읽은 시로네가 말했다.
“우리는 우리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