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53
“제길! 싸워 보자!”
눈치 싸움으로 10분을 버틸 수준이 아니었고, 강력한 마족의 공격에 참가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세인트 배리어!’
수십 마리의 뱀파이어가 에덴을 구석에 몰아넣고 손톱을 휘두르자 폭풍우에 휘말린 듯 강풍이 몰아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서큐버스들이 순수한 마력의 집중인 마력 폭풍을 쏘아 대며 에덴의 방어막을 두들겼다.
“뱀파이어의 물리력, 서큐버스의 마력을 동시에 버티고 있습니다. 굉장하군요.”
칭찬과 달리 엘리자베스의 목소리는 생동감이 떨어졌다.
‘나선 사냥꾼!’
루만의 군중 제어 마법에, 땅이 소용돌이처럼 일그러지며 서큐버스의 하체를 삼켰다.
‘통곡의 장벽!’
이어서 거대한 장벽을 둘러 주위를 차단하자 바인더가 규정 마법을 연사했다.
“윈드 커터!”
누구나 할 수 있는 마법이라도 수아비의 버프를 받은 상태인지라 위력은 어마무시했고, 마침내 한 마리의 서큐버스가 소멸했다.
“16번, 18번, 20번의 조합. 괜찮은 팀이군.”
“졸업반 평가 중위권의 학생들이 연합을 한 것 같습니다. 각자의 장기가 제대로 살고 있어요.”
무려 3티어급 마족을 잡아 냈으니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만 바이칼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수많은 졸업 시험을 지켜보았으나 오늘처럼 기준 자체가 붕괴되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결국 모두가 보고 있는 건 한 사람뿐이다.’
관객들은 물론 타국의 스카우트조차도 오직 참가번호 27번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에덴을 포위한 마족들이 광폭 한 번에 폭사해 버리고, 포톤 캐논 한 발이 가지는 가치는 바인더 팀의 전력을 상회했다.
“저러면 전략도, 전술도 필요가 없지.”
기술이 가지는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언로커, 스케일 마법의 진의였다.
-극기 생존 8단계가 종료됩니다. 30초 후 9단계에 진입합니다.
이천번 시스템의 안내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육탄계의 증폭이 끝난 시로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으으으.”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도, 갈기갈기 찢어진 정신의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30초. 30초 안에 정신을 회복해야 돼.’
사력을 다해 집중해 보지만 뇌 절반이 날아간 것처럼 생각은 멍해지고 의식은 여전히 저 먼 곳에 있었다.
“이번 것은 심각하군.”
숨을 헐떡이는 시로네를 바라보며 바이칼이 말했다.
“목숨을 걸고 얻은 30초의 기회다. 하지만 만회할 수 있을까?”
‘26초. 25초.’
말라 버린 우물처럼 마력이 채워질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1초가 흐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21초. 20초. 제발……!’
시로네는 떨리는 손목을 붙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회복돼라! 회복해야 돼!’
19초. 18초.
콜로세움에 있는 참가자들은 물론 스카우트들과 관객들까지 모두가 시로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윽! 흑!”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사력을 다해 보지만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시로네…….”
에이미가 입술을 깨물고, 이루키도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시로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로네를 도와줘!”
네이드가 소리쳤다.
“수아비, 부탁이야. 시로네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 줘!”
그녀의 유틸은 바인더가 독점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포니! 제발 리프레시를…….”
그러자 네이드는 포니에게 다가가 간청했다.
“리프레시는 걸어 줄 수 있어. 그에 준하는 보상이 있다면.”
“내가 보상해 줄게! 네가 하라는 건 뭐든지……!”
“하지만 당사자가 원하지 않을 거야. 1차 평가 때부터 시로네와 적이 되고 싶지 않아.”
이루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이드, 네가 이럴수록 시로네의 미래를 망칠 뿐이야.”
“내가…… 망친다고?”
네이드는 몸을 웅크리고 호흡을 고르고 있는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도대체 왜?
마법사 자격증 따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저 학생 아까부터 정말 가관이네요.”
모든 참가자들을 진지하게 살피는 관객들이지만 네이드만큼은 서커스단의 원숭이 같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인생이 걸린 시험이니 진지해야죠. 모두 목숨 걸고 싸우는데 혼자서만 친구를 챙기는 척하다니. 기본 소양이 덜 됐어요.”
학부형들에게서 쏟아지는 비난에 네이드의 어머니 테리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쪽팔려 미치겠네. 그래서 내가 안 온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엄마를 보고서도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학교 다닐 구실만 찾는 애라고요.”
“난 자랑스럽소.”
아들을 바라보며, 볼룸이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련하시겠어요. 그러니 돈 한 푼을 못 벌지.”
테리아와 함께 있으려면 반드시 인내심을 배워야 했다.
‘16초. 제발. 15초. 제발!’
휴식 시간의 절반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시로네의 얼굴에 절망감이 드리워졌다.
“마력 수치는?”
엘리자베스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여전히 0입니다. 시간 내에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시도는 좋았다, 정도로 끝나게 되는 건가?”
‘12초. 11초.’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마음이다요.
‘무상심의 비결!’
줄루가 전수해 준 오의를 퍼뜩 떠올린 시로네는 천천히 눈을 감고 허파를 부풀렸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졸업 시험도, 경쟁도, 마력 회복도, 마법사의 삶도 내려놓은 채 오직 살아 있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후우……. 후우…….”
번뇌가 사라지자 갈기갈기 찢어졌던 정신이 거짓말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다.
‘이 우주에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무상심.
“평가관님, 마력 수치가…… 다시 올라가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눈에 충격이 담겼다.
“100만 매지클. 220만 매지클. 엄청난 회복 속도입니다.”
“말도 안 돼.”
바이칼은 처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한계치를 뚫고 폭발한 상태에서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인간의 정신이 회복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로네, 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거냐?’
1급 기밀이었다.
‘들이마시고…….’
세상이 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쉬고…….”
세상이 무한히 팽창한다.
이천번은 감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관객들은 마치 우주를 삼켰다가 내뱉는 듯한 기분을 육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7초.
‘들이마시고.’
6초.
‘내쉬고.’
“이상한데. 왜 자꾸…… 소름이 돋지?”
현재 콜로세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래, 시로네. 바로 그게 너야!’
리안이 주먹을 불끈 쥐고, 후드를 쓰고 있는 여자의 눈이 반짝 빛났다.
‘다들 간과하고 있군. 눈에 보이는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야. 마법사이기 이전에…….’
그녀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시로네는 반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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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의 마법 (1)
‘4초. 3초.’
시로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완벽하게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눈빛은 또렷했고 흐트러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극기 생존 9단계에 진입합니다.
이천번 시스템의 안내 음성이 들리자 참가자들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9단계.’
숫자만으로도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이제부터는 차원이 다릅니다. 능력치의 평균이 3티어에 비해 8.7배나 높아집니다.”
시험에 적용하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상승폭이었으나 현실에서도 3티어와 2티어의 중간 단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콜로세움의 크기를 감안해 다운사이징을 시키기는 했으나 마족 중에서도 마신급에 해당하는 크리처만이 2티어에 등재되기 때문이다.
불의 화신 피닉스, 숨결만으로 호수를 얼리는 페로톤, 죽음의 사신 그림리퍼, 뇌우를 몰고 다니는 선더라 등 생물의 범주를 넘어 속성을 대표하는 강력한 존재들이 콜로세움을 휩쓸었다.
“1명의 주도하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러면 극기 생존 자체가 무의미해져요. 자칫하면 대량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은 시로네와 달리 다른 참가자들은 가만히 있다가 재앙을 만난 격이었다.
“가상 시스템의 약점을 파고드는 수밖에 없겠지. 현실과 달리 이천번은 티어가 높을수록 패턴은 단순해져.”
상급 티어의 크리처는 대부분 인간의 생활권 밖에 서식하는 데다가 지적 능력마저 출중하기에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물론 패턴만 알면 수십 개의 칼날도 피할 수 있겠죠.”
그것이 무력을 압도하는 지성의 무서움이었다.
“하지만 수천 개의 칼날은 피할 수 없어요. 순식간에 장악해 버릴 겁니다.”
“…….”
수천 개의 칼날, 그것이 바로 현재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푸오오오오!
세 마리의 피닉스가 불덩어리를 토할 때마다 콜로세움의 절반 이상이 화염에 휩싸였다.
철갑 비늘로 뒤덮인 페로톤은 날개처럼 거대한 지느러미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직선의 얼음길을 만들었고, 선더라는 불특정 좌표에 미친 듯이 낙뢰를 퍼부었다.
지상에는 신장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리퍼가 말에 앉아 사신의 낫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우리 2차 평가는 받을 수 있겠어?”
실력을 기준으로 15명을 선별하는 극기 생존이지만 이제는 그냥 재수 없으면 탈락이었다.
‘아니, 죽는다. 이천번이라도 죽어.’
2티어 크리처들이 가하는 공격은 설령 마법사의 정신이라도 파괴시킬 만큼 강력했다.
‘앱솔루트 배리어!’
에덴의 방어막이 전방을 가로막자 17개체에 달하는 크리처들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크으으으!”
광역 방어 마법으로 전지를 바꾸면서 앱솔루트 배리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기는 했지만 20명이 넘는 참가자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그녀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었다.
“이러다가 우리 아들 죽겠어!”
마신들의 포화에 콜로세움은 발 디딜 곳도 없었고, 에덴의 방어막 안쪽이 유일한 안전지대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마법사 시키려고 학교를 보냈더니 다 죽게 생겼잖아!”
학부모들도 경쟁의 치열함은 알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여기서 끝내! 2차로 가자고!”
마치 누가 더 운이 좋은가를 시험하는 듯했고, 그렇다면 차라리 주최 측에 건의하여 다음 평가로 넘어가는 게 순리였다.
“상황이 심각해졌어.”
학부형들의 원성을 들은 올리비아가 말했다.
“하지만 취소는 없지. 그게 졸업 시험이니까.”
교장인 알페아스도 이제부터는 손을 쓸 수 없었다.
레드 라인 산하에 있는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치러지고 있는 시험이었다.
“해결책을 찾아! 더는 버틸 수 없어!”
에덴의 정신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피닉스의 불덩어리가 방어막의 표면을 따라 기름처럼 번질거리고, 페로톤은 하늘에 고정된 채로 쉬지 않고 빙결의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방어막이 뚫리면…….’
몇몇 학생들이 나름의 대응책을 떠올리며 정신력을 끌어 올리고.
“시로네! 위험해!”
실행에 옮기기 전에 시로네가 온갖 화력이 집중되고 있는 마신들의 중심을 향해 뛰어들었다.
“무모해! 죽을 거야!”
바이칼은 시로네가 이대로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
“뭐……!”
하지만 시로네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마신들의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뭐야, 저건?”
스카우트들이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전부 벌떡 일어났다.
“후우우우!”
콜로세움을 횡단한 시로네가 콜로세움의 끝에서 수열식을 끌어올리자 몸을 따라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거대한 광천사의 화신으로 솟구쳤다.
키에에에에!
이천번 시스템이 가장 활동적인 타깃을 포착하자 마신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돌진했다.
“저, 저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