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57
일말의 흐트러짐 없이 사위를 경계하는 시로네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약자에게는 약자만의 전투 방법이 있는 법이었다.
“이해하지, 저 심정.”
응급치료를 마치고 관객석에 자리를 잡은 마크가 말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으니까.”
시로네에게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울분이 가슴을 헤집었으나 극기 생존의 결말을 지켜본 지금 남은 것은 오직 비참한 심정뿐이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 마크.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자.”
마리아에게 위로를 받은 마크가 어금니를 깨물며 고개를 숙이는 그때 사드가 다가왔다.
“마리아의 말이 옳다.”
“사드 선생님.”
반사적으로 돌아보았으나 마크는 차마 그를 볼 면목이 없었기에 다시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시로네 선배와 저는 재능의 차원이 달라요.”
“재능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재능이란 단어를 내뱉지만, 실제로 그 재능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1명도 없다.
“어쩌면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인간이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마크.”
사드는 고개를 돌려 시로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떤 인간도 무에서 유를 창출할 수는 없어. 저건 재능이 아니다. 시로네의 경험이, 실패의 횟수가, 해결해야 했던 문제의 개수가 너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뿐이야.”
“경험……이라고요?”
“그래. 그리고 이제 너희도 오늘 시험을 통해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마크는 비로소 사드를 돌아보았다.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자만이 강해진다. 실력이나 위력이 전부가 아니야.”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모든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마법사라는 말이죠?”
사드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고, 마크와 마리아가 반가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세리엘 선배님!”
1년 전 알페아스 마법학교를 먼저 졸업한 선배이자 에이미의 단짝이었다.
“안녕하셨어요, 사드 선생님.”
“그래. 1년 만이로구나. 공인 합격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얼마 전에 세계보건기구에 인턴으로 취직했어요.”
마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계보건기구. 정말로 해내셨구나.’
회복 마법사에게는 꿈의 직장이자 그가 짝사랑하는 마리아의 목표이기도 했다.
“오, 잘됐네! 축하해!”
“헤헤, 운이 좋았어요. 아는 문제가 많이 나와서.”
어느 누구도 운으로 세계보건기구에 취직할 수는 없고, 그렇기에 세리엘의 여유로움이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저게 프로의 아우라인가.’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어서가 아니라 말투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시험 끝나면 찾아오렴. 모두들 반가워할 거야.”
“네. 이따 찾아뵐게요.”
사드가 자리를 뜨자 세리엘은 마크의 의자 등받이를 짚고 콜로세움을 내려다보았다.
‘에이미. 드디어 다시 왔구나.’
1년 전 졸업 시험에서, 금화륜의 담합으로 초반에 탈락한 에이미를 바라보며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던가?
“선배님, 여기에 앉으세요.”
마크가 옆으로 비켜나서 자리를 양보하자 세리엘이 어깨의 백을 무릎에 두고 착석했다.
“고마워. 그나저나 상황이 묘하게 됐네.”
“네. 정말 대단하죠. 시로네 선배님이 한순간에 전세를 역전시켰어요. 반면에 에이미 선배님은…… 아직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마크의 솔직한 평가에 세리엘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너무 여려.”
“네? 에이미 선배님이요?”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거야.”
포스 디멘션을 펼치고 사방의 적을 주시하는 시로네를 바라보며 에이미는 만감이 교차했다.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좋았잖아.’
졸업 시험에 사적인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시로네에게는 모두가 적이었다.
‘나를 찾아온 날에도…….’
시로네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겉으로는 불같아도 에이미는 나보다 마음이 여린 아이야. 누군가 힘들어하는 걸 외면하지 못하고, 용서를 구하면 알면서도 보듬어 버리는 성격이지.”
세리엘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시로네 선배님이라서 더 심란하겠군요.”
“하지만 괜찮아.”
세리엘은 콜로세움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단짝을 자랑스럽게 지켜보았다.
“카르미스에게 두 번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으니까.”
에이미의 홍안이 붉게 타올랐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초반에 탈락했던 1년 전과 다르게 현재 상황은 대등하고, 그렇다면 더 이상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만의 졸업 시험을 치르면 되는 거니까!’
에이미가 움직이는 것을 신호탄으로, 다른 참가자들 또한 일제히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시로네가 회전하는 것과 동시에 에이미의 파이어 스트라이크가 시로네의 후미를 노리는 프링스를 강타했다.
‘나를 노려?’
빙결의 장막으로 방어한 프링스가 고개를 갸웃하고, 이루키와 도로시, 헤르시가 다른 참가자들을 공격했다.
“새로운 시스템이 기존의 시스템을 밀어낸다.”
바이칼의 분석이 정확했다.
시로네를 당장 쓰러뜨릴 수 없다면 손해를 감수하며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다.
차라리 시로네의 시스템을 이용하여 다른 참가자들을 제거하는 편이 합격에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오직 이기적인 판단에 감정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전투 양상은 혼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젠장! 대체 뭐야?”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스크리머는 전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전장 속에서 시로네를 노려보았다.
‘한 방만 먹이면 쓰러질 것 같은데.’
시로네가 지친 상태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나, 퀀텀 슈퍼포지션을 파훼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할까? 그냥 확 받아 버려?’
스크리머가 갈등하는 동안에도 시로네의 머릿속에서는 피아 식별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아군은 없다. 나를 이용하겠다면, 오히려 내가 뒤를 치는 게 이득인가?’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의 시스템에 대항하는 자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중립부터 제거하자.’
시로네가 스크리머를 타깃으로 잡고 돌진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갈등했던 그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제길! 내가 희생양이 될 수는 없지.’
시로네가 지배하는 공간인 포스 디멘션에 대책 없이 뛰어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후후, 괴물은 괴물이야.’
아직은 여유가 있는 페르미지만 역시나 시로네의 영역을 피해 외곽을 도는 데에 그치고 있었다.
‘4차원 공간이라…….’
시로네가 펼친 포스 디멘션은 모든 사건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스타스 상층부의 축소판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거핀이 만든 포스 디멘션은 스톱 마법의 시간기를 이용해 중첩의 한계가 없다는 정도.
‘재밌겠는데. 한번 뚫어 볼까?’
여태까지 시로네가 시전한 마법의 면면을 보건대 정신력 게이지는 10퍼센트 이하일 게 분명했다.
‘아니, 아직은 아니지.’
그럼에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퀀텀 슈퍼포지션의 능력은 강력했고, 페르미는 불확실한 전투에 몸을 던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저게 시로네로군요.”
이루키의 아버지 알비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명이 제시한 시스템에 26명이 각기 다른 방법론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파고들 여지가 없다는 뜻이겠죠.”
에이미의 아버지 샤코라가 동의했다.
“존재감이 엄청난 아이예요. 전장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죠.”
아르가네스가 알비노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보, 시로네 얘기만 하지 말고 이루키도 좀 분석해 줘요. 그래도 아빠잖아요.”
“생각이 빠르지. 하지만 너무 많아.”
아들에 대한 분석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나저나…….”
샤코라는 콜로세움에서 유일하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지금 선보이는 능력이 1차 평가에서 전력을 다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되겠군요. 임기응변일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계산된 전략일까요?”
“아마도 둘 다일 겁니다.”
알비노의 시선이 시로네를 뒤쫓았다.
“계산적인 인간은 절대로 저런 전략을 선택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대책 없이 밀어붙인 것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그냥 아는 겁니다.”
알비노는 시로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했을 테고, 그에 준하는 성공도 거두었을 겁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저절로 알게 되죠. 어떤 난관이 닥치든 결국 자신은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그렇게 믿어 버리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 이라는 건가요.”
“네. 용뢰에서는 머리 뚜껑이 열려 버렸다고 표현하죠. 즉, 물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사고입니다.”
샤코라는 전장을 장악한 상태로 적들의 반응을 유도하는 시로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단하군요. 확실히 에이미가…….”
“네, 이루키가…….”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반할 만합니다.”
샤코라의 고개가 알비노에게 돌아갔다.
“네?”
알비노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시로네의 편에서 싸우고 있는 이루키를 눈에 담았다.
‘좋은 문제구나, 꼬맹아. 열심히 해 봐라.’
이루키의 생각 속에서 계산이 빠르게 오갔다.
‘시로네를 이용하려는 숫자는 일곱. 여기서 내 천적을 없애는 게 최선이야.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이루키의 시선이 단테를 겨누었다.
‘너다.’
단테 또한 시로네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쪽이지만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아군이 갖는 의미는 없었다.
‘아토믹 봄!’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불꽃이 질주하자 단테가 깔끔한 반응으로 폭발의 동선을 벗어났다.
‘그래, 해보자는 거지.’
왕립 마법학교에서부터 한 번은 자웅을 겨루어야 할 상대라고 생각했다.
중앙 연산 마법진-파스칼.
무려 200개의 인스턴트 마법진이 각기 다른 색을 발하며 주위에 떠오르자 관객들의 함성이 터졌다.
“본격적인 시작이군.”
오토마톤의 작용으로 온갖 마법이 쏟아져 나오자 이루키가 순간 이동을 지그재그로 시전했다.
‘파스칼은 좋은 마법이지.’
이루키의 스피릿 존이 파스칼에 처박혔다.
‘하지만 논리로 날 이길 수는 없어.’
오버 드라이브!
뇌를 이루는 회로에 전기가 폭주하면서 두 눈이 번뜩이고 파스칼의 전지가 순식간에 분석되었다.
‘캔슬레이션!’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뭐야?”
하지만 파스칼은 여전히 멀쩡한 상태로 200개의 눈동자를 치켜뜨며 이루키를 겨누고 있었다.
‘암호를 걸었어?’
매듭 이론을 이용한 보안장치가 파스칼의 회로에 삼중으로 걸려 있었다.
“설마 대비를 안 했겠냐?”
그렇게 말한 단테가 두 팔을 펼치고 파스칼 위로 날아오르자 200개의 증폭 마법진이 터널의 형태로 중첩되었다.
초정밀 직렬 마법진 백도.
“네가 논리의 극치라면, 나는 그것을 다루는 설계자다.”
끼이이이잉!
200개의 마법진을 직렬로 거친 파이어 스트라이크가 189배의 위력으로 증폭되어 쏘아졌다.
2개의 시스템 (1)
찰나에 크기를 키우는 파이어 스트라이크를 노려보며 이루키가 기폭 방정식을 계산했다.
‘뉴클리어 퓨전!’
파이어 스트라이크의 몸체가 풍선처럼 부풀더니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크윽!”
이미 자리를 피한 참가자들 전원의 정신에 안티매직의 충격이 밀려들었다.
‘피했는데…….’
이천번 시스템이 콜로세움 전체에 공격 판정을 내릴 만큼 강력한 위력이었다.
“끝까지 해보자는 거지?”
거대한 폭발을 기점으로 서로 물고 물리는 난전이 치러졌고, 그러는 와중에도 페르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지루할 정도로 한가하군.’
매년 합격의 마지막 고비에서 일부러 제동을 걸었던 그였기에 리미트를 해제한 지금이 오히려 편했다.
‘가만, 16명만 해치우면 졸업이잖아?’
이렇게 쉬운 일을 다른 학생들은 어째서 힘들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일까?
페르미의 눈앞에서 푸른 전격이 일렁이더니 스파크 마법으로 접근한 라이컨이 손을 휘둘렀다.
경이로운 반사 신경으로 거리를 벌린 페르미가 타들어 간 앞머리를 훅 하고 불며 말했다.
“너무 이르지 않아? 나랑 붙으면 졸업은 물 건너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