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58
페르미의 측면에서 소나의 헤르시가 다가왔다.
“그게 너의 전략이니까.”
여태까지 졸업 시험을 지배해 왔던 페르미라면 참가자들이 정면 대결을 펼치기를 꺼리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네 시대는 갔어. 우리가 너를 몰아세우면 모두가 너를 공격하게 될 거다.”
‘짜증 나게 하네.’
헤르시의 분석은 정확했고, 정곡을 찔린 페르미는 가식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좀 봐주라. 옛정이라는 것도 있잖아?”
“헛소리. 너에게 그딴 감정이 존재하기는 하냐?”
헤르시가 소나를 발동하고 라이컨이 고무 재질의 타이즈를 얼굴 끝까지 뒤집어쓰자 페르미의 어깨가 들썩였다.
“크크크. 크크크크.”
“허세 부리지 마. 너에게 남은 건 비참한 종말이야.”
웃음소리가 뚝 하고 그쳤다.
“같잖은 것들이.”
감정이 사라진 페르미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차가웠다.
“죽여!”
소름이 끼친 헤르시가 소리치고, 라이컨이 전격을 끌어 올리며 페르미에게 돌진했다.
‘마그마 스트림.’
페르미가 손바닥을 향한 곳의 땅이 급속도로 용융되더니 어마어마한 양의 마그마가 솟구쳤다.
“상급 퓨전 마법이군요.”
대기 계열과 화염 계열을 결합하는 것은 마법의 수준을 떠나서 베테랑의 숙련도가 필요했다.
“규정외식자. 돈으로 경험을 산다는 것이군.”
막대한 양의 마그마가 하늘에서 덩어리로 뭉치더니 헤르시와 라이컨이 있는 곳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피해!”
땅에 처박힌 용암이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콜로세움 전체를 잠식하자 모두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로네와 페르미, 졸업 시험의 상황을 통제하는 2개의 시스템 사이에서 참가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느 편에 붙어야 하지?’
카니스는 고민하지 않았다.
“시로네를 친다.”
하비스트가 거대한 손바닥을 펼쳤다.
“크크, 아케인의 복수는 해야 하지 않겠어?”
아린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카니스, 지금 시로네와 맞붙는 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난 고집도 세고, 사리 판단도 뛰어나지 않으니까.”
“그런 뜻이 아니잖아. 왜 자꾸 자신을 비하하는 거야?”
카니스의 이런 모습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는 거야. 여기서 물러서게 되면…… 앞으로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아.”
구정물이 철썩거리는 카니스의 초경을 바라보며 아린은 결국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그래, 가자. 이건 우리들의 싸움이니까.”
언제나 그렇듯 하비스트가 선봉장의 역할을 맡았다.
“크하하하! 우리가 왔다, 시로네!”
카니스를 확인한 시로네의 눈에 긴장감이 서렸다.
‘역시 카니스.’
오직 전투를 위해 마법을 갈고닦은 마법사이자 정신적 완력에서는 졸업반의 수위를 다투는 실력자였다.
“복수전이다, 시로네.”
“얼마든지.”
포톤 캐논과 어둠의 권능이 정면으로 치받았다.
어느 쪽도 밀리지 않는 상태에서 흑백의 대비가 명확해지자 스카우트들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대부분의 마법이 오버 파워지만 빛에 약하다는 하나의 단점이 모든 장점을 덮어 버리는 게 암흑 마법이었다.
‘내 어둠은 빛을 이긴다.’
빛과 어둠의 서-화신 역전.
오래전 아케인을 대마법사로 이끌었던 천국의 전지가 장착되자 어둠의 세력이 빛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좋아, 바로 이거야!”
두 팔을 벌리며 포효한 하비스트의 육체가 꽈배기처럼 꼬이더니 날카로운 창으로 변해 쇄도했다.
-뚫어 버려, 하비스트!
동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로네가 일제히 포톤 캐논을 시전했으나 그림자의 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빛을 삼키고 있다. 저 12번, 엄청난 완력이군.”
엘리자베스가 카니스의 기록을 검색했다.
“빌토르 아케인의 제자입니다. 그도 완력에 있어서는 남다른 능력을 과시했죠. 그만큼 고집도 셌고요.”
상성에서 우위를 점하는 힘이 완력이라면 암흑 마법으로 대마법사까지 오른 아케인만 한 인물이 없을 터였다.
“확실히 상성 간의 대결은 위력과는 별개지. 누가 관철시키느냐의 싸움이군.”
“이번에는 내가 이긴다, 시로네!”
카니스가 집중할수록 그림자의 창으로 변한 하비스트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아니, 카니스.”
시로네의 움직임이 멈추고, 포스 디멘션에 중첩되어 있던 수많은 시로네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나는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거다.”
중심을 낮춘 상태에서 오른손을 뒤로 내밀자 수십 명의 시로네가 진동하듯 잔상을 보이며 중첩되기 시작했다.
‘모든 사건을 한 좌표에 집중시킨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시로네의 육체가 떨리면서 손바닥 바깥에 포톤 캐논이 탄생했다.
“바로 그거야.”
미로가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극의는 꼭대기에서 만나는 법이니.”
시간을 공간에 새기는 능력은 천수관음의 화신술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로네의 퀀텀 슈퍼포지션은 사건 자체를 통째로 중첩시킨다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나의 좌표에 집중된 마법이 거대한 구체로 팽창되었다.
퀀텀 슈퍼포지션-128중첩.
무려 128명의 시로네가 동시에 포톤 캐논을 집어 던진 것과 같은 위력이 직경 2미터의 섬광으로 구현되어 하비스트를 향해 뻗어 나갔다.
“받아 버려, 하비스트!”
“키에에에에에!”
그림자의 창이 날카로운 가시를 뒤편으로 뻗어 내며 회전하고, 거대한 섬광이 그것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수많은 시선이 빛과 어둠의 충돌을 지켜보았다.
이명.
“어?”
삐 소리가 양쪽 고막을 연결하는 듯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고, 잠시 후 온몸에 감각이 사라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카니스!”
아린의 목소리가 하늘 높은 곳에서 들렸다.
‘뭐야? 왜 위에서 소리가 들려?’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하비스트가 포톤 캐논에 충돌한 순간 뇌가 몸 밖으로 떨어져 나간 것처럼 사고가 마비되었다.
‘나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얼굴을 흔들어 보지만 실제로 육체가 따라 주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행히 잠시 후 천천히 시력이 되돌아왔다.
마그마가 식어서 만들어진 용암지대의 한복판에 쓰러져 있음을 확신한 것은 또다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추락했다고? 내가? 왜?’
“카니스! 피해!”
아린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순간 하늘에서 섬광이 쇄도했다.
“크윽!”
상체를 벌떡 일으킨 카니스의 앞에 하비스트가 나타나 포톤 캐논을 몸으로 받아 냈다.
“으아아아악!”
온몸의 신경이 깨어나면서 현실적인 고통이 밀려들었다.
‘말도 안 돼.’
반대로 말하자면 의식을 잃기 전에 들어왔던 충격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카니스, 괜찮냐?
정신 채널을 통해 하비스트의 신호가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거야?
-뚫지 못했어. 완력에서 밀렸다. 네가 의식을 잃는 바람에 나도 움직일 수 없었어.
“내가…… 밀렸다고?”
빛과 어둠의 서를 해독하는 것으로 계열 간의 상성을 상쇄시켰음에도 완패하고 말았다.
“지금이다! 시로네를 쳐!”
카니스가 스타트를 끊은 것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참가자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스크리머와 콩거, 프링스가 협공하고 아린의 정신 공격이 가해지는 와중에도, 시로네의 눈빛은 더욱 또렷해졌다.
“모든 변수에 대응 가능한 마법사인가?”
하나의 장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지만 시로네는 그들 모두와 일대일로 대응하면서도 밀리지 않았다.
엘리자베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력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미 30퍼센트를 넘어섰어요. 러너스 하이입니다.”
시로네의 눈에 번쩍 불이 들어왔다.
‘이모탈 펑션!’
무한의 영역에서 밀려드는 정신력이 집중을 더욱 강화시키고 포스 디멘션의 효율이 치솟았다.
“36퍼센트! 40퍼센트! 계속 회복됩니다!”
아타락시아, 엘리시온, 시불상폭매, 이모탈 펑션 등 시로네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순환하고 있다.
“……완전무결한 시스템인가.”
실제로 적들의 공격에 휘말린 상태에서도 시로네의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고 있었다.
‘이상하다.’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으나 적대하는 모두의 움직임이 마치 자신의 상황과 무관한 것처럼 느껴졌다.
‘질 것 같지가 않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머리 뚜껑이 완전히 열려 버렸군.”
알비노가 턱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리고, 미로가 보석을 발견한 듯 눈을 빛냈다.
“심장 뛰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거야.”
폴타르가 설명을 구하듯 돌아보았으나 미로의 눈에는 오직 시로네의 유연한 움직임밖에 보이지 않았다.
‘뇌로 인지한 시간이 심장으로 쪼개진다. 그것이 바로 리듬의 정체.’
따라서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는…….
“모든 시간을 자신의 리듬으로 쪼갤 수 있다.”
‘젠장! 한 방만 제대로 걸리면 되는데……!’
스크리머가 사력을 다해 시로네를 몰아붙였으나 갖은 수를 전부 동원해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시로네의 리듬에 갇혀 버린 것이다.
“제발 좀 맞으라고!”
스크리머의 육체가 잔상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돌진하자 시로네의 리듬이 더욱 조밀하게 쪼개졌다.
‘여기에서 피한다.’
여지없는 정박에 주먹이 스쳐 지나가고, 그 박자의 중간을 쪼개는 변박이 다시 정박이 되어 시간을 세분화시켰다.
“우오오오오오!”
스크리머의 움직임이 아무리 빨라져도 이미 시로네의 리듬에 갇혀 버린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어림없지.”
바이칼이 말했다.
“일격 필살의 기술도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
평생을 단련한 격투술이 무력화되는 기분은 스크리머의 인생에서 최악의 비참함이었다.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한 대도 안 맞을 수가……!”
다른 참가자들 또한 난폭한 마법으로 시로네를 몰아세우고 있으나 그 모든 시간이 시로네에게는 개별적으로 쪼개져 들어오는 각각의 사건일 뿐이었다.
‘아아, 그렇구나. 내가…….’
무아지경에 빠진 시로네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고, 기술이 아닌 예술이기에 낭비가 있을 수 없었다.
“이 짧은, 한순간의 춤을 추기 위해…….”
알비노는 시로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깨달았다.
“평생의 대부분을 고통의 경험으로 채워야 했던.”
미로가 내뱉었다.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바로 내가……!”
시로네의 머릿속에 확신의 빛이 폭발했다.
“최강이다!”
퀀텀 슈퍼포지션–240중첩.
드드드드드드드!
몸을 비트는 시로네를 따라 239명의 시로네가 하나의 좌표에 포톤 캐논을 집중시켰다.
그 상태로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섬광이 쭉 하고 뻗어 나가 스크리머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억!”
뇌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듯한 충격에 스크리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고, 이미 의식은 날아간 상태였다.
-참가번호 10번, 이천번 시스템에서 이탈했습니다.
대자로 뻗어 버린 스크리머의 모습에 섬뜩함을 느낀 참가자들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최강이라고?”
겸손한 성격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운 발언이지만, 수십 명의 시로네가 돌진하는 위세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 너의 축제다, 시로네.”
미로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어라.”
2개의 시스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