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6
“그럴까? 진짜로 한번 해 볼까? 사실 팔이 뻐근해서 죽을 지경이거든.”
달빛 아래 시이나(3)
네이드가 부추겼다.
“해 봐, 해 봐. 내가 듣기로는 무아의 상태에서 신체 이미지를 투영하는 거야. 그런 다음…….”
“나도 뭔지는 알고 있어. 기다려 봐. 집중 좀 하게.”
친구들이 입을 다문 가운데 시로네는 눈을 감고 육체의 감각을 느꼈다.
‘스피릿 존에 들어가기 직전의 무아.’
거기에서 신체 이미지를 투영시키면서 온몸의 감각을 통찰로 깨우는 것이다!
“으으으…… 으아아아! 아, 안 돼. 더 힘들어지고 있어.”
이루키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바보야, 진짜로 되겠냐? 스피릿 존에 특화되었다는 건 스키마랑 상극이라는 뜻이야.”
“푸하하하!”
네이드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리자 시로네가 도끼눈을 치켜뜨고 돌아보았다.
“이, 씨! 나 안 해! 바꿔!”
결국 3명이 번갈아 가며 시이나를 업기로 했다.
하지만 네이드는 시로네의 절반도 못 가서 퍼져 버렸고, 이루키는 아예 열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후들거리는 팔로 다시 시이나를 들쳐 업은 시로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우리들 엄청 찌질해 보이지 않냐?”
“생각만 해도 되는 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거야, 시로네.”
네이드의 말을 마지막으로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자괴감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너무 지쳐서 말하기가 귀찮을 뿐이었다.
학교에 도착할 무렵, 시로네가 문득 말을 꺼냈다.
“저기 있잖아…… 우리 그건 그만두자.”
“그거라니? 어떤 거?”
“오늘 있었던 일로 시이나 선생님과 거래하는 거.”
“흐음.”
네이드 또한 양심에 찔리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연구회의 존폐가 걸린 문제다.
“그렇다고 딱히 좋은 방법도 없잖아. 연구회를 지킬 방안이라도 생각났어?”
“없어. 물론 나도 운명 공동체로서 조직의 명운이 걸린 일에 반대를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여야 한다고 생각해. 솔직히 오늘은…… 시이나 선생님에게 굉장히 슬픈 날이었을 것 같거든.”
시이나의 입장에서 생각한 친구들이 숙연해졌다.
자신을 위해 눈을 희생해 주고, 늘 마음에 품었던 소중한 사람과 작별하는 건 술 한잔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연구회도 중요해.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선대 회장에게 직접 이 자리를 물려받았다고. 연구회가 나 때문에 해체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루키도 동의했다.
“네 입장도 이해해.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우리는 어디까지나 회원일 뿐이니까.”
네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다른 일 같으면 이 정도로 안 해. 솔직히 시이나 선생님은 상대하기 힘든 타입이야. 약점이 없거든. 성격 까칠하지, 계획에 빈틈없지, 학생 관리 꼼꼼하지. 심지어 시로네의 오버플로우가 걱정된다고 탈퇴하라는 말까지 하셨잖아. 이렇게 앞뒤가 꽉 막한 사람을 상대로 이기려면 꼼수라도 부려야 한단 말이야.”
‘이것들이…….’
시로네의 등에 업혀 듣고 있던 시이나가 울컥했다.
기분에 취해 빙빙 돌았을 때만 해도 솔직히 정신이 오락가락했으나 지금은 거의 술이 깬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됐잖아.”
시로네가 말했다.
“어째서 선생님이 교사의 길을 선택했는지, 오버플로우에 집착하셨는지. 시이나 선생님은 우리가 선생님과 같은 길을 걷게 하지 않으시려는 거야.”
“쳇!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솔직히 말하면 존경하는 사람 중의 1명이라고.”
네이드는 거기서 말을 그쳤으나 시로네와 이루키의 시선을 외면하지 못했다.
“알았어! 오늘 본 것은 무효! 선생님에게 있었던 모든 일은 우리만의 비밀로 덮어 두자. 연구회는 내일부터 다시 생각해 보지 뭐. 어때?”
이루키가 동의했다.
“불만 없어. 어차피 악당은 우리니까. 사실 시이나 선생님에게는 여러모로 빚도 있고. 말은 차갑게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학생 편을 들어 주시거든.”
시로네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앞으로 어떤 난관이 닥친다고 해도 오늘 일은 절대로 발설하지 않기. 연구회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인 거야.”
“좋아, 낙찰!”
결정이 나자 오히려 속이 편했다. 시로네 일행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마법학교를 향했다.
시이나가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법학교의 정문이 보였다.
반쯤 녹초가 된 시로네는 횃불을 들고 서 있는 경비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아직 자정이 지나지 않았기에 야간조가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시로네가 걸음을 멈췄다.
“어떡하지? 이 꼴로 들어가면 이상한 소문이 날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우리는 무단 외출이잖아.”
“할 수 없지. 여기서부터는 마법을 사용하자. 내가 시이나 선생님을 띄울 테니까 잠깐 받치고 있어.”
“응. 선생님 좀 내려놓고. 이루키, 도와줘.”
시로네가 무릎을 구부리는 그때, 갑자기 등을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시이나가 어느새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술에 취한 모습은 없었고, 눈동자가 총명하게 빛났다.
“선, 선생님?”
허탈해진 시로네는 땅에 주저앉았다.
걸을 수 있었다면 여태까지 자신이 한 고생은 뭐가 되는가?
네이드가 물었다.
“선생님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그럼. 내가 고작 이 정도로 취할 것 같아?”
시로네가 울상을 지었다.
“그런데 어째서……?”
“비싼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설마 이 정도 고생도 안 하려고 그랬어?”
물론 실제로 술이 깬 것은 조금 전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취기를 없애는 것일 뿐, 이미 혈액에 스며든 알코올을 증발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따라와. 조용히 들어가고 싶으면.”
시이나가 정문을 향해 걸어가자 시로네 일행은 귀신에 홀린 듯 뒤따랐다.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경비가 졸린 눈을 크게 뜨고 인사했다.
“아! 좋은 밤입니다, 시이나 선생님.”
“네, 수고하시네요.”
“그런데…… 학생들하고 외출하신 겁니까?”
“네. 현장학습으로 데리고 나왔어요.”
“아, 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교칙상 야밤에 학생 출입은 금지되어 있지만 교사와 함께라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지레 겁을 먹은 시로네 일행은 부리나케 교문을 지나갔다. 경비가 뒤에서 부를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무사히 중앙 공원까지 진입하자 갑자기 시이나가 몸을 돌려 제자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
“힉!”
시로네는 비로소 피부로 느꼈다. 알페아스 마법학교로 돌아온 것이다.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 주겠어.”
“……네?”
“너희들과 나만 아는 비밀로 해 주겠다고. 학교에 보고하지도 않을 거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어. 그리고 다시 한 달의 시간을 줄게. 딱 그만큼의 시간, 그게 내가 너희들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래야.”
“…….”
“한 달 안에 학교를 납득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발표회를 열든 귀신을 데려오든, 그건 너희들의 재량에 달렸어. 정말로 연구회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당당하게 학교와 싸워서 원하는 것을 쟁취해. 그게 나의 교육관이고 내가 학생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제자들은 가슴이 먹먹했다.
다른 교사도 아닌 시이나의 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행이다.’
네이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 기대하세요. 반드시 연구회가 필요 가치를 증명해 보일 테니까요. 아마 깜짝 놀라실걸요!”
이루키도 거들었다.
“하긴, 쩔쩔매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지. 간만에 제대로 머리 좀 풀어 봐야겠는데?”
자신감을 되찾은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시이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들의 의욕이 하늘을 찌를 때면 불안감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대단한 사고를 칠지 기대가 되었다.
‘후후, 열심히 해 보렴, 지긋지긋한 제자들아.’
보이지 않는 것(1)
시로네는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연구회를 찾았다. 소파에 이루키와 네이드가 누워 있었다.
“안녕.”
“어제 잘 잤냐?”
“몰라. 자긴 잔 건가. 너희들은?”
“마찬가지야. 우리 이제 어떻게 하냐? 어제도 밤새도록 회의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도 안 나왔잖아.”
시로네가 빈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무조건 결정해야 돼. 대책을 강구해 보자.”
“그러니까 어떻게? 초자연 심령과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잖아. 하지만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는단 말이야.”
결국 어차피 어젯밤과 똑같은 이야기였다.
“…….”
말하기조차 지친 그들은 멍하니 벽만 바라보았다.
벽만큼 머릿속도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로네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생각을 바꿔 보는 건 어떨까?”
네이드와 이루키가 일어났다.
어떤 말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와는 패턴이 다른 말이었다.
“어떻게?”
“우리 딜레마가 이거잖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그게 핵심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굳이 보여 줄 필요가 없다는 거야.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다음 것을 생각하니까 막히지. 차라리 보여 주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루키가 턱을 쓰다듬었다.
“검증할 수 없는 건 검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군.”
“응. 내가 연구회에 들어온 이유도 너희들이 무언가를 증명해 줬기 때문은 아니야. 이건 그런 문제지.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네이드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래, 우린 시로네의 케이스가 있었어. 검증은 처음부터 하지 않아도 됐다는 거야. 오히려 그 반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들이 믿게끔 만들면 된다는 거지? 시로네처럼 말이야.”
선명한 느낌이 뇌리를 강타했다.
확신에 가까운 통찰을 느낀 네이드가 시로네를 끌어안았다.
“시로네, 이리 와! 네가 우리 연구회를 구했어! 내 첫 키스를 가져가도 좋아!”
“징그러! 저리 가!”
두 사람이 대거리를 하는 동안 이루키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어려운 건 이제부터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방향은 정해졌지만 발표회의 성격을 갖추기는 해야 돼. 즉, 가시적인 결과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야.”
네이드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시로네도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내렸다.
“생각해 보자, 무엇을 보여 줄 것인지.”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일단 가닥이 잡히자 떠오르는 생각은 무궁무진했다. 요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도록 만들 무언가였다.
“청각적인 게 좋지 않을까? 설계도 쉽고.”
“효율적이지. 하지만 효과적이지는 않아. 학교 측이 인정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돼.”
“그렇다면 무조건 시각적인 거지. 가능하다면 청각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쏟아붓는 거야.”
“시각, 청각. 그럼 무엇을 시각화할까? 초자연? 심령?”
“초자연은 공감이 어려워. 개인화되어 있지 않다는 거지. 심령이 좋을 것 같은데.”
네이드가 손을 들었다.
“나도 심령에 한 표. 귀신, 심령현상, 사후 세계 등 수없이 많지. 어떤 거?”
시로네가 말했다.
“귀신이 좋을 것 같은데. 개인화가 강한 개념이라 전파가 쉬울 것 같거든.”
“음, 유치하지 않을까?”
네이드가 걱정했으나 이루키는 시로네의 의견에 한 표를 던졌다.
“그만큼 파괴력이 좋다는 뜻이야. 영혼으로 표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테고.”
시로네가 말했다.
“어떤 것도 색안경을 끼고 볼 거야. 마법사 지망생에게 초자연 심령과학을 소개하는 거니까. 하지만 이 부분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데.”
네이드가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심리 트랩을 설치하자.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2)
시로네는 종이에 도면을 그리며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자신감이 떨어진 시로네가 황급히 덧붙였다.
“이런 방식 외에도 다양한 트랩을 설치할 수 있어. 예를 들어 키워드를 사용한달지…….”
이루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을 거 같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야.”
네이드가 동의했다.
“그러게. 이거 꽤 오묘하다. 발표회를 하나의 장치처럼 사용하는 거잖아.”
구도가 잡히자 일행은 세부적인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남은 문제는 이거야. 어떻게 귀신을 구현하지?”
기술적인 부분은 네이드의 몫이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그가 라이트닝 섀도를 시전하자 전기의 잔상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네이드가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귀신의 형태를 만들 수는 있어. 하지만 움직이지도 않는 환영 정도로는 아무도 속지 않을 거야. 내가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이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부터 생각하면 되겠군. 잔상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당장 떠오르는 건 이 정도야. 라이트닝 섀도를 빠르게 연계하는 건데…….”
네이드가 움직이자 잔상이 프레임마다 찍히며 마치 걸어가는 느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