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61
‘항상 열심히 하는 아이지.’
비유하자면 여동생을 연민하는 오빠의 마음이었다.
“안타깝게 됐구나. 나를 만난 게 운이 나빴다.”
“헛소리하네! 졸업 시험에 운이 어디 있어?”
여전히 당찬 에이미의 모습을 보자 양심의 가책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심하게 다루지는 않으마.”
피쇼가 오른팔을 들자 아르고네스가 크게 턱을 벌리며 괴음을 내질렀다.
‘마야를 찾아야 돼!’
케이든은 개미집의 터널 속을 미친 듯이 질주하며 마야를 찾아다녔다.
‘버티지 못할 거야.’
다른 참가자들이라면 몰라도 정신력이 약한 마야가 감당할 수 있는 충격이 아니었다.
‘기다려! 마야!’
맹독의 충격에 흐트러지는 정신력을 다잡으며 케이든은 더욱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여기까지구나.’
개미집의 공터에 쓰러진 마야는 죽어 가는 짐승처럼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력보다는 운이 전부였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시험이었다.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겠지.’
동생들도 먹여 살려야 하니 그만 신비 부족으로 돌아가 장사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서 맹독 가스 속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어차피 싸우지도 못하는데.’
“마야?”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로네?”
경계심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시로네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안 돼. 얼마나 힘들게 참아 왔는데…….’
어쩌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
“마야, 괜찮아?”
다정한 목소리가 빗장을 풀어 버리고.
“흐윽, 흑.”
결국 울상을 지은 마야는 바보처럼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시로네에…….”
정말로 중요한 것 (1)
파이어 미스트가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파이어 스트라이크가 피쇼를 향해 퍼부어졌다.
‘어차피 곤충 마법을 시전할 수는 없어!’
생물을 다루는 피쇼였기에 독성 가스가 퍼진 곳에서 실력이 제한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거슬리는 건…….’
피쇼의 오른팔 대신에 달려 있는 흉측한 형태의 곤충이었다.
‘기생충인가?’
방독 곤충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가스를 해독한다면 신체에 연결된 곤충 또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소용없다, 에이미.”
파이어 스트라이크에 몇 방이나 얻어맞았지만 피쇼는 흔들림이 없었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능력이야.’
몸에 기생하는 생물체라면 체화 판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끊어 주지!’
키에에에에!
피쇼의 팔이 쭉 하고 늘어나면서 아르고네스가 턱을 벌리고 튀어나왔다.
“이 정도쯤이야!”
스키마 유저에게는 쉬운 회피였고, 피쇼에게 접근한 에이미가 그의 팔을 수도로 내리쳤다.
뼈를 끊을 수 있는 위력이었으나 놀랍게도 뼈가 없었다.
‘뭐야, 도대체?’
물컹한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 피쇼가 반대편 손으로 에이미를 붙잡았다.
‘박투를 해 보겠다고?’
두 다리를 뒤틀어 회전력을 끌어 올린 에이미가 피쇼의 복부를 쳐올리자 퍽 소리가 나며 주먹이 배를 뚫고 들어갔다.
징그러운 감각에 소름이 돋는 것도 잠시, 에이미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심장을 터뜨려야 해!’
배 속을 헤집고 들어간 손이 피쇼의 심장을 움켜쥐었으나 느껴지는 것은 또다시 물컹한 감각뿐.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피쇼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아르고네스가 에이미의 뒷덜미를 물었다.
“허억!”
“두려워하지 마라. 시험에 합격한 거니까.”
배 속에 담겨 있던 주먹이 스르륵 빠져나오고, 에이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내 충실한 종으로서 말이지.”
외계 생물 아르고네스.
230년 전에 학계에 최초 보고된 이 생물은 태양계 밖에서 운석을 타고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며, 대기권을 돌파하면서도 생명력을 유지할 정도로 강력한 활동력을 자랑한다.
숙주의 세포를 반죽시켜 전혀 다른 생물질로 육체를 변화시키는데 외형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아르고네스에 감염된 인간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너…… 너…….”
에이미가 굳어 버린 혀를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과연 대단하군. 감염된 상태에서도 의식을 유지하다니.”
숙주의 몸에 기생하는 아르고네스는 다른 생물체에게 파일럿 인섹트를 침투시켜 중추신경을 장악한다.
‘안 돼. 통제권을 뺏겼어.’
계속해서 자기상 기억을 백업시켜 보지만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버둥 치지 마라. 너만 괴로울 뿐이니까.”
마치 아이가 엄마의 말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처럼 피쇼의 지시에 저절로 몸이 반응했다.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피쇼가 오른팔을 들자 반죽처럼 뭉개져 있던 형태가 점차 인간의 것으로 되돌아왔다.
“수명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세포의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능에 지나지 않지. 평균 수명 자체가 없는 아르고네스는 숙주의 몸과 동화되어 영원히 생체 활동을 유지시킨다.”
일종의 영생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일일 뿐.”
피쇼는 힘없이 팔을 내렸다.
“세포분열이 정지된 인간의 몸은 계속해서 오류를 누적시키고, 나 또한 언젠가는 암세포로 뒤덮인 식물인간이 되겠지.”
그것이 아르고네스를 받아들인 인간의 숙명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처럼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시험이 끝나면 추출해 주마.”
“고작……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생물학의 발전을 위해 내 몸을 기부한 것뿐이다. 졸업 시험이 끝나면 격리 시설에 들어가게 되겠지.”
언젠가는 암세포가 뇌까지 퍼져 불태워지겠지만, 피쇼의 지적 호기심은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강렬했다.
“가자, 에이미.”
복종해야 한다는 유전자적 충동에 사로잡힌 에이미가 천천히 몸을 돌려 피쇼의 뒤를 따랐다.
***
“시로네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마야의 앞에 무릎을 꿇은 시로네가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
세상 사람들은 마법사를 경외하지만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마야는 마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났다.
“다들 미쳤어. 더 이상 있다가는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아.”
보통의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은 시로네도 알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어. 조금만 더…….”
“못 하겠어. 부족도, 동생들도, 이제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마야는 눈을 질끈 감고 흐느꼈다.
“난 그냥…… 조금 더 너를…… 사랑하고 싶어서…….”
마야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래…… 부르려고…… 열심히…….”
사지를 경련하는 마야를 바라보며 시로네는 결정을 내렸다.
“나가자, 마야.”
루만의 개미집과 피오르드의 독성 가스의 결합은 경쟁자들의 정신력을 약화시킬 것이기에 시로네에게도 나쁜 상황이 아니었다.
‘너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무상심으로 얼마간 회복된 정신력을 다시 집중시키자 광천사의 화신이 피어올라 바깥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엘리시온!’
직지의 감각이 안티매직을 뚫고 개미집 바깥에 있는 루만의 위치를 포착했다.
“한 번의 기회는 더 줄 수 있어.”
화신술-천사의 징벌.
빛의 창이 내부의 벽을 연거푸 관통하면서 개미집을 빠져나오자 루만의 눈이 커졌다.
“뭐야!”
소리를 내지른 시점은 이미 섬광이 그의 몸통을 뚫고 지나간 뒤였다.
“커억!”
-참가 번호 16번. 이천번 시스템에서 이탈했습니다.
루만이 의식을 잃자 개미집이 허물어지듯 사라지고 갇혀 있던 참가자들이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쳇, 루만을 타격했군. 조금만 더 버티면 됐는데.’
10분 정도만 더 끌었어도 탈락자가 나왔을 것이고 쉽게 졸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야! 마야는?’
케이든은 오직 마야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시로네의 품에 안긴 그녀를 발견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반면에 이루키는 빠르게 사태를 파악했다.
“그렇게 된 거군.”
마야를 살리기 위해 루만을 탈락시켰다.
‘명백한 감정적 판단. 그것 또한 강자의 특권이라면 따질 문제는 아니지만…….’
함께 졸업하고 싶었기에 아쉬운 게 사실이었다.
‘정말로 괜찮겠냐? 이번만큼은 분명히 악수를 둔 거야.’
시로네는 마야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시로네…….”
이루키처럼 정확한 분석은 할 수 없지만 시로네가 무언가를 희생했다는 것 정도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 봐.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것만으로도 마야는 모든 걸 얻은 기분이었다.
“후우, 피곤해.”
목을 꺾으며 참가자들에게 걸음을 옮긴 시로네는 천천히 손을 들고 덤비라는 손짓을 했다.
동시에 케이든이 크로스소드를 쳐들고 돌진했다.
‘마야를 지키지 못했어!’
시로네가 눈을 부릅뜨고 공격을 받아 내려는 순간, 케이든이 곧바로 그를 지나쳐 마야에게 달려갔다.
“타하!”
마야의 앞을 가로막은 그가 몸을 뒤틀며 칼을 쳐올리자 리차드의 금속 팔이 챙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쳇!”
앞으로 4명만 탈락하면 졸업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마야를 노리는 것은 상식이었고, 그 상식을 깬 케이든의 판단이 리차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험은 안중에도 없냐? 너도 참 미친놈이야.”
“네가 할 소리는 아닐 텐데?”
신체의 35퍼센트를 개조한 인간에게 미쳤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마야만 행복할 수 있다면……!’
질투심 따위는 이미 초월한 지 오래였다.
‘나는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다!’
마검기-메가 토네이도.
강풍에 허공으로 날아간 리차드가 순식간에 중심을 잡고 기계의 눈으로 마야를 포착했다.
‘마야부터 제거한다!’
화염의 마정석이 장착되면서 불을 뿜자 쏟아지는 불꽃을 향해 케이든이 크로스소드를 휘둘렀다.
“이야아아압!”
냉기가 휘몰아치며 화염을 꺼트리자 리차드의 오른팔이 45도 회전하면서 또 다른 속성을 장착했다.
‘그렇다 이거지!’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참가자들은 시로네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확실히 반응 속도가 느려졌어! 우리가 이긴다!’
포스 디멘션조차 펼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는 모습이 스카우트들의 눈을 통해 분석되고 있었다.
“루만을 쓰러뜨린 이후 정신력 수치가 4퍼센트까지 떨어졌어요. 여기서 끝나겠는데요?”
바이칼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감정적 판단에 대한 대가지. 그래서 마법사는 냉정해야 하는 거야.”
장기인 저격술을 버린 에이미는 홍안을 쉴 새 없이 깜박거리며 육탄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뭔가에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
자기상 기억의 백업 속도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심증을 더하는 그때, 에이미가 말을 내뱉었다.
“바보 같은 시로네.”
“뭐?”
신체의 통제권을 빼앗긴 탓에 생각이 목소리로 튀어나오는 것조차 막을 수 없었다.
“졸업 시험보다 마야가 더 소중하다는 거야?”
“그건……!”
노골적인 말에 섬뜩해진 시로네가 연거푸 뒤로 물러서자 이루키가 혀를 차며 날아들었다.
“자업자득이야. 그러게 왜 동정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