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63
에이미는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고양감과 세상이 무너질 듯한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급히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리자.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만족하는 순간 거기까지가 한계인 인간이 될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참가자들도 끝나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콜로세움의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일단 축하하고…….”
단테가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그래도 최고는 가려야겠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시로네 또한 미소를 지으며 목을 풀었다.
“얼마든지.”
마야의 규정외식으로 참가자들의 정신력은 평준화되었다.
그렇기에 새롭게 시작하는 평가였고, 더 이상 탈락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진검 승부의 시작이었다.
“우우우우우!”
그때 관객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건투를 다짐하는 참가자들과 달리 여전히 구석에 서 있는 네이드를 향한 목소리였다.
“겁쟁이! 너 같은 게 무슨 마법사야!”
“세상에 운이 좋아서 합격하는 마법사가 어디 있어! 차라리 다른 참가자에게 양보해!”
가장 두각을 드러낸 것은 시로네였으나 다른 참가자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필사의 전투를 치르며 합격을 손에 넣었다.
반면에 네이드는 1차 평가에도 마법사다운 능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고 심지어 2차 평가에는 어느 누구하고도 충돌한 적이 없는 말도 안 되는 기연으로 이 자리에 도달했다.
가뜩이나 마야의 합격으로 감동에 젖어 있는 관객들이 최종장에 그가 포함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네이드는 겁쟁이가 아니야.”
알페아스 마법학교 졸업생의 자격으로 참관하고 있던 리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네이드를 바라보았다.
“그저…… 길을 잃어버린 거야.”
네이드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던 길을 지워 버린 그녀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두 손을 맞잡은 리즈는 네이드가 마지막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웨스트 네이드. 아직까지 평가를 내릴 만한 특별함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전투도 없습니다. 아무도 그와 상대하려고 들지 않았어요.”
엘리자베스의 말에 라라가 동의했다.
“운도 실력이기는 하죠. 하지만 이번 경우는 상당히 극단적인 행운이네요. 이런 적이 있었나요?”
“가능한 일이 아니야.”
“네?”
바이칼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최종 순위 다툼까지 충돌을 피하면서 올라올 확률은 없어. 따라서 네이드가 도망친 게 아니라, 모두가 네이드에게서 도망쳤다고 보는 게 옳다.”
“하지만…… 딱히 실력이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그래서 야유를 받는 것이지. 모르겠군. 죽음조차 불사하는 자들이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피했던 거지?”
마법사에게 있어 죽음보다 두려운 것.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무언가를 깨달은 바이칼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스템을 파괴할 정도의 변수, 저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완벽한 혼돈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 (3)
비난이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여전히 싸울 의지가 없는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프링스는 스크럼블 로열에서 네이드에게 당했던 공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또한 정상적인 성격은 아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털고 일어났지만,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다.
‘분명 건드려서 좋을 것 없는 시한폭탄이다.’
하지만 지금은 최종 10인이 확정된 상황이었고, 어차피 잃을 게 없다면 부딪쳐 보는 게 스카우트의 평가에 유리했다.
“덤벼라.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잖아?”
프링스가 손을 까닥거리며 도발했으나 네이드는 무기력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졸업이라고?’
어차피, 의미가 있을까?
이대로 졸업한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불러 줄 기관은 없을 것이다.
공인과 비공인이 다르듯 같은 마법사라도 사회의 인정에 따라 받는 대우는 천차만별.
이대로 탈락한다면 어머니에게 좌절을 주겠다는 처음의 계획을 제대로 성공시키는 셈이다.
“나는 싸우지 않을 거야.”
시로네와 다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단테는 네이드의 진면목을 본 적이 없지만 몇몇 실력자들이 기피하는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다.
“네가 싸우기 싫다고 말하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되냐?”
“너희들 생각 따위는 관심 없어. 난 싸우지 않아.”
안하무인의 대답에 관객들의 언성이 더욱 높아졌다.
“저런 비겁한 놈은 마법사가 될 자격이 없어!”
“어이, 그냥 밟아 버려! 본때를 보여 주라고!”
관객들의 성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루키가 네이드에게 걸음을 내디뎠다.
“탈락하는 건 어때? 너에게는 의미 없는 싸움이잖아.”
졸업 시험 전날 네이드가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적어도 지금 탈락해 준다면 찜찜한 기억은 남을지언정 원수가 될 일은 없을 터였다.
“…….”
네이드가 말이 없자 이루키가 검지로 가리켰다.
“봐, 너도 싸우고 싶잖아. 탈락하고 싶지 않은 거잖아?”
‘어머니.’
사람들로 빼곡한 관객석이지만 테리아를 찾는 것은 쉬웠다.
고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얼굴은 수백 개의 얼굴 사이에서 유독 악귀처럼 일그러진 채로 네이드를 압박하고 있었다.
‘끔찍하게 싫은 얼굴.’
그럼에도 자식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얼굴.
“꺼져라! 마법사의 수치! 학교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마!”
사람들의 비난에 테리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쪽팔려 미치겠네. 저게 무슨 추태야?”
볼룸이 아내를 다그쳤다.
“그만해요. 당신이라도 응원을 해 줘야지.”
“다른 학생들을 봐요. 다들 저렇게 부모님을 호강시켜 주려고 열심히 싸우잖아요. 어쩜 저렇게 이기적인지.”
라이컨이 네이드의 등 뒤로 접근했다.
“짜증 난다. 그냥 죽어라.”
네이드의 목을 움켜쥔 그가 전격을 가하며 콜로세움의 끝까지 집어 던졌다.
이어서 눈앞에 모인 전격이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네이드가 쓰러진 자리를 강타했다.
‘멍청아! 전기는……!’
프링스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마력동화를 알고 있는 모두가 경직된 자세로 네이드를 바라보았다.
“뭐야?”
하지만 네이드는 그저 쓰러진 채로 테리아에게 처연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치킨헤드 도적단의 고문에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파괴되어 버린 네이드를 가솔들이 구출하러 온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뒤였다.
숯처럼 타 버린 시체들 사이에서 어린 네이드는 바보처럼 울기만 했고, 거금을 들여 치료를 했음에도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
“왜 울어! 대체 왜 우는 거야! 너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는지 알아?”
기껏 친척에게 빌린 자금을 아들의 치료에 써 버린 그녀의 속은 타들어 갔다.
“엄마, 엄마아…….”
네이드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내면의 괴물보다도 더욱 무서운 것은 엄마의 고통이었고, 점차 경련이 딸꾹질을 지나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언젠가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잖아! 도대체 당신이 나에게 해 준 게 뭐야!”
볼룸이 네이드에게 술병을 집어 던졌다.
“호로자식 같으니라고!”
아마도 두려운 아내의 신경을 건드리는 자식에게 짜증이 난 것일 테지만, 네이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으아아아아!”
그들이 물려준 육체를 부숴 버리기 위해 네이드가 벽으로 돌진해 머리를 박아 대는 그때.
“아아아아악!”
테리아가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었다.
“여보!”
볼룸이 놀라서 달려가고, 피로 범벅이 된 어머니의 얼굴을 네이드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죽여! 차라리 날 죽여!”
테리아는 주저 없이 손목을 칼로 그어 버렸다.
“제길! 아무나 빨리! 의사를 불러와!”
“엄, 엄마…….”
가문의 모든 식솔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네이드만이 시간이 멈춘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네이드는 바보 같은 얼굴로 훌쩍거렸다.
‘화내지 말아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 세상에 부모를 이기는 자식은 없다.
“회복 불능이군. 완전히 끝났어.”
네이드가 질질 짜고만 있자 남은 8명의 참가자들이 그를 무시하고 콜로세움의 중앙에서 충돌했다.
화려한 마법의 향연에 모두가 넋을 빼앗긴 가운데, 오직 네이드와 테리아만이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한심해서 못 봐주겠네.”
테리아가 관객석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자 네이드의 두 주먹이 우악스럽게 쥐였다.
‘그래, 가 버려. 난 절대로 마법사가 되지 않아! 당신이 원하는 삶은 절대로 주지 않아!’
그토록 바라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아픈 것일까.
어째서 한도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일까.
‘함께 망하는 거야! 다 같이 죽으면 되는 거야!’
테리아가 출구의 그림자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
“으아아아아아!”
네이드가 악을 지르며 일어섰다.
“도대체 내가!”
온몸에 전기가 피어오르고.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에에에에!”
스피크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등 뒤로 날아간 네이드가 팔을 휘둘렀다.
“컥!”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에 시로네가 바닥을 구르자 참가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으으으으!”
이를 악물고 경련하는 네이드의 모습에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섬뜩함이 있었다.
“마력 수치는?”
바이칼이 물었으나 엘리자베스는 대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거렸다.
“왜 그래? 마력 수치!”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이드가 한 걸음을 내딛자 모두가 열 걸음을 물러섰다.
“왜? 도대체 왜?”
네이드의 의문은 근거조차 짐작할 수 없는 까마득히 깊은 증오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왜에에에에에!”
전격이 콜로세움의 하늘을 뚫고 올라가면서 이천번 시스템이 경고음을 냈다.
-데이터 용량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비상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제2코어 개방.
콜로세움의 불빛이 깜박거렸다.
-데이터 용량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제3코어 개방. 제4코어 개방.
백색의 뇌전이 기둥처럼 세워져 바닥을 질주하더니 수백 개로 분산되어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제4코어 개방?”
바이칼이 알기로 역사상 없는 일이었다.
-최종 안정화 장치를 가동합니다. 제5코어 개방.
5개의 비상 시스템이 전부 가동된 뒤에야 이천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분석관들의 눈에 똑같이 푸른 빛이 켜졌다.
“몇이야?”
“……14억 8천만 매지클입니다.”
바이칼의 고개가 부러질 듯 돌아갔다.
“14억 8천만이라고? 가능한 수치인가?”
“문제는…….”
엘리자베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도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쓰러진 시로네를 살피던 이루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하고 한 약속은 어떻게 된 거야? 시로네하고는 싸우지 않겠다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괜찮아.”
시로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건 시험이니까. 날 죽이려고 한 게 아니야.”
이루키도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마력동화 상태의 네이드에게 남은 것은 오직 목적 없는 살의뿐이었다.
“크으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