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
“그렇군. 착시 현상을 이용해서 진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거지?”
“맞아. 하지만 마법으로는 한계가 있어. 게다가 내 수준에서는 개체 수를 늘릴 수도 없고.”
시로네가 물었다.
“기계장치를 이용하면 어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야. 장치를 만든다고 해도 고려해야 할 게 산더미라고. 가장 큰 문제는, 설령 움직임까지 구현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속지 않을 거라는 거야. 정말로 믿게 만들려면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필요해.”
잠시 고심하던 이루키가 말했다.
“사람들의 반응을…… 미리 예측하면 어떨까?”
“반응을 예측한다고?”
“복잡계 이론을 도입하는 거지. 다수의 행동 패턴을 전부 분석해서 프로그램화시키는 거야. 마치 피드백을 받는 것처럼 착각을 유발하는 방법. 물론 엄청난 정보량이 될 거야. 따라서 정보를 전달할 매개체와 통제장치가 필요해.”
“흐음, 정보 전달이라. 확실히 내 전기력으로는 한계가 있지. 그렇다면…… 아!”
네이드가 손가락을 튀겼다.
“광자 출력! 시로네의 광자 출력이라면 이루키의 정보를 장치에 전달할 수 있잖아!”
“아하.”
시로네도 눈을 빛냈다.
타기팅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익힌 마법이지만, 마법사회의 첨예에서는 광자 출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연구가 한창이라 들었다.
이루키가 말했다.
“이제 정리가 되는군. 네이드는 홀로그램 장치를 만들어. 나는 장치에 들어갈 프로그램을 짤 거야. 내 프로그램을 장치에 전송하는 게 시로네의 광자 출력이지. 다만…… 막대한 출력이 필요할 텐데, 할 수 있겠어?”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해내야지.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연구회를 지킬 유일한 기회였다.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에 희망이 생긴 것만으로 네이드는 힘이 났다.
“할 수 있다. 연구회를 지킬 수 있어. 물론 별다른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성공하면 학교가 뒤집어지겠지?”
“그 정도가 아닐걸. 난리가 날 거야. 난 여기에 걸어 보겠어. 무엇보다 재밌을 것 같거든. 크크크, 벌써부터 선생님들의 반응이 기대되는데?”
일행은 서로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의 존폐를 걸고, 마법학교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지려 하고 있었다.
***
수업이 끝난 시로네는 광자 출력의 효율을 높이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출력의 세기를 높이는 한편 유지 시간을 늘리는 게 관건이었다.
질량이 없는 광자는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못하기에 공격 마법으로 활용할 수가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이스타스의 아무 창고나 들어가서 훈련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시로네는 두 손을 내밀었다.
특정 동작을 수행하는 것은 마법사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들어 전능을 강화시키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었다.
한 줄기의 광선이 벽면에 둥그렇게 퍼진 상태에서 시로네는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 상태로 10분을 유지하지 못하면 출력을 높이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클래스 파이브를 넘는 난이도지만, 어차피 네이드의 홀로그램 장치도 이루키의 복잡계 방정식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해내야 해. 내가…….’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3분이 넘어가자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스피드건 시험 때 단발적인 광자 출력으로도 1분을 겨우 버틴 정도였으니, 그때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 할 수 있었다.
“헉! 헉!”
10일 가까이 훈련한 끝에 도달한 기록은 3분 20초.
하지만 앞으로 20일 안에 이 시간을 10분대로 늘려야 했다.
기록을 재고 난 뒤에는 반드시 20분을 쉬었다. 회복을 소홀히 하다가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훈련이었다.
휴식을 취하던 시로네는 벽 너머 창고에서 들리는 소음에 주의를 기울였다. 네이드가 용접 작업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옆 창고로 들어가자 부품 속에 파묻힌 네이드가 보였다.
“여어, 시로네. 출력 시간은 어때?”
“그럭저럭. 20초 정도 늘렸어. 그쪽은?”
“보다시피 아직도 엔진 작업 중이야.”
“시간에 맞출 수 있겠어?”
“맞춰야지. 걱정하지 마. 원래 프로토타입은 시간이 걸려. 생산공정에 들어가면 오류를 찾아도 바로잡기가 어렵거든. 그래서 꼼꼼하게 하는 거야.”
“그래. 그나저나 이루키가 말한 건?”
“아, 그거? 어제 받았어. 이거.”
네이드가 호스처럼 감긴 줄을 시로네의 발밑에 던졌다.
외피는 고무 재질이었고, 내부에 석영처럼 투명한 막이 관통하고 있었다.
이루키가 용뢰의 수장인 아버지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공수한 물건이었다.
‘광섬유.’
이루키의 말에 의하면 300개의 홀로그램 장치가 학교의 요소요소에 설치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시로네 혼자서 모든 장치에 광자 출력을 시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에 네이드가 처음 떠올린 건 거울이었다.
시로네가 광자 출력을 시전하면 빛의 전반사 성질을 이용해 기계장치에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빛이 꺾여야 하는 구간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네이드는 거울이 훨씬 더 많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작은 호스에 거울을 붙여 빛이 지나가는 터널을 만들면 빛이 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네이드가 자랑스럽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그의 눈은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만약 상용화만 된다면 바로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루키가 산통을 깼다.
매달 도착하는 아버지의 편지에는 마법사회의 여러 이슈가 적혀 있었는데, 몇 달 전의 편지에 네이드가 말한 것과 똑같은 물건이 이미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명칭은 ‘광섬유’였다.
마법의 첨단을 달리는 상아탑에서조차 이제 막 개발에 들어간 분야였기에 네이드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광섬유를 받고 분석하자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현재 자신의 수준으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을 만큼 섬세한 공학 기술이 집적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도 발상 자체는 상아탑과 똑같잖아. 네이드도 정말 대단하다니까.’
시로네는 광섬유를 자세히 살폈다.
막상 눈으로 보기에는 뭐가 대단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용케 구했네.”
용접을 끝낸 네이드가 빨개진 눈으로 일어섰다.
“성능은 장담할 수 없어. 일단 시연부터 해 보자. 내가 테스터로 개조한 게 있어.”
네이드는 광섬유에 투명한 구슬이 장착되어 있는 것을 시로네에게 넘겼다.
“이걸로 어떻게 하면 돼?”
“그냥 붙잡고 광자 출력을 시전하면 돼. 효율은 내가 계산할 테니까 지금 해 봐. 대신에 전부 쏟아 내야 한다. 최대치를 측정하는 게 중요하니까.”
시간을 확인한 시로네는 휴식 시간이 끝난 것을 알고 수정구를 움켜쥐었다.
광자 출력을 시전하자 손에 광원이 맺히더니 구슬이 창백하게 빛났다.
그 빛이 광섬유를 타고 네이드가 만든 장치로 전달되자 계기판의 바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력 한계치인 3분이 지날 때까지 계기판의 숫자를 주시하고 있던 네이드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이루키의 말이 맞네. 이거 완전 초기 개발품인데? 하긴, 이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안 좋아?”
“효율이 18퍼센트밖에 안 돼. 네가 쏘아 보내는 빛의 양에서 82퍼센트가 손실된다는 얘기야.”
“82퍼센트…….”
듣는 순간 시로네도 허탈해졌다.
광자 출력을 10분간 유지하는 것조차 요원한 상황에서 효율 18퍼센트라면, 지금보다 5배는 출력을 높여야 겨우 원하는 수치에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할 수 있겠어, 시로네? 네가 출력량을 올리지 못하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해. 마법의 고출력 에너지는 기계로도 구현이 불가능하단 말이야.”
시로네는 배수의 진을 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게. 연습하면 되겠지, 뭐.”
“진짜로 할 수 있는 거지?”
“그래. 걱정하지 마. 최선을 다할 테니까. 그럼 나는 다시 연습하러 간다.”
네이드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진짜지? 진짜로 해 주는 거다?”
“알았다니까!”
자신 있게 소리쳤으나, 웃고 있는 건 눈뿐이었다.
***
“하아! 하아!”
시로네는 창고에 대자로 뻗어 숨을 헐떡거렸다.
반나절 넘게 광자 출력을 훈련한 여파는 정신은 물론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마지막 기록은 3분 20초.
아침에 쟀던 기록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력이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도달했으니 성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1시간 전에 2분 34초까지 기록이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막판에 기를 쓰고 덤빈 게 주효했다.
‘그렇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한 기록이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10분을 달성하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광자 출력은 사출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단발적인 액티브 마법보다 정신력 소모가 월등히 빨랐다. 그 상태에서 10분이라는 건 프로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모르겠다. 회복부터 하고 내일 다시 해 봐야지.”
네이드가 창고로 들어왔다.
“시로네, 끝났어?”
“어. 오늘은 죽어도 못 해. 일단 좀 쉬어야겠어.”
“나도 스파크만 봤더니 피곤해 죽겠다. 자정이 넘었어. 이루키한테 돌아가자고 하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계산해 보니 7시간 이상 광자 출력만 하고 있었던 셈이다. 생명이 위험한 수준의 훈련량이었다.
만약 학교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훈련 금지 처분을 내릴 터였다.
“끄응.”
시로네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네이드의 몰골 또한 말이 아니었다. 눈은 퀭했고, 오랫동안 전광에 노출되어서 얼굴색이 울긋불긋했다.
연구회로 돌아가자 이루키가 학교의 조감도를 펼쳐 놓고 펜을 놀리고 있었다.
작전 당일 발생할 변수를 고려하여 행동 패턴을 방정식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네이드는 깨달았다.
시로네나 자신도 그렇지만, 이루키 또한 엉덩이를 붙인 이후로 한 번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때, 이루키? 계산은 잘돼?”
이루키는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럭저럭. 시간에는 맞출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네이드는 자신의 욕심이 친구들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연구회의 존폐도 결국 회장이 책임져야 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이루키, 무리할 필요 없어. 사실 전교생의 행동 패턴을 전부 계산하는 건…….”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니까. 말 시키지 마. 지금 바빠.”
그 말을 끝으로 이루키는 입을 다물었다.
노트 위에 무서운 속도로 수식이 적히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3)
‘이루키…….’
광기에 가까운 집착 그리고 희열.
시로네는 오싹했다.
모두 며칠째 잠을 잊고 작업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계산해 보니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1시간 4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듯했다.
시로네가 한창 공부를 열심히 할 때도 이 정도의 작업량은 아니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전보다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치 고통이 마비된 것처럼.
‘평소에 그렇게 농땡이를 부리더니 막상 할 때가 되니까 무섭게들 하는구나.’
자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자신의 분야에 매진하는 모습에서 시로네도 피가 끓었다.
“네이드, 피곤해?”
“아니, 전혀. 아니, 피곤한가? 사실은 잘 모르겠어. 여전히 각성되어 있어서.”
“나도 그래. 이루키는 작업 중이니까 우리는 대본부터 만들자. 포스터에 들어갈 문구도 필요하고. 이런 작은 것들도 막상 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럴까? 그럼 내일 포스터를 붙이자.”
“괜찮겠어? 아직 작업량을 예측할 단계가 아닌데.”
“감수해야지. 공표는 최대한 빨리 하는 게 좋아. 급했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거든. 심리전이니까 이런 부분도 고려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네. 그럼 나는 포스터 문구를 생각할게. 너는 디자인 쪽을 연구해 봐.”
시로네와 네이드는 테이블에 큰 종이를 깔고 포스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깊은 밤이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맑았다.
***
다음 날.
점심시간이 끝나 갈 무렵 게시판에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의 발표회 포스터가 붙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음지의 연구회답게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이름조차 생소했다.
특히나 포스터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몰상식했다.
마법학교의 정경을 을씨년스럽게 바꾼 그림이었는데, 마치 서커스단의 포스터를 보는 듯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 전격 발표회!
충격적인 폭로! 영혼의 비밀을 알고 싶은 사람은 제7강연장으로 모이시오.
“심령과학? 뭐야, 그게? 귀신 같은 거 말하는 거야?”
“진짜 할 일 더럽게 없나 보네. 대체 누구지, 이런 바보 같은 연구회에 들어간 애들이?”
여학생이 포스터 하단을 가리켰다.
“얘들아, 이것 좀 봐.”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 명단을 확인한 학생들의 눈이 충격으로 흔들렸다.
“시로네 선배님이잖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동명이인이라도 있나?”
“그럴 리가 있겠냐? 진짜 시로네 선배님이지. 이루키랑 네이드 선배님도 있잖아.”
“그런데 3명이 전부야? 수행평가 때문에 만든 건가? 그렇다고 해도 이건 무리수인데.”
의문을 표하는 학생들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이 상황이 그저 웃겼다.
“발표회가 언제지? 한번 가 볼까?”
“나도 궁금하긴 하네. 시로네 선배님이니까 말이야. 혹시 정말로 영혼의 정체를 밝힌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