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0
“그래, 가자!”
처음이자 마지막 졸업 시험, 오늘만큼은 취할 때까지 마실 생각이었다.
정말로 취할 때까지.
***
꽝 소리를 내며 7개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이어서 미친 듯한 선율이 치달리고, 연주자인 프링스가 눈을 희번득 뒤집어 깐 채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달콤한 연인! 오! 내 사랑!”
그 옆에서 피오르드가 독에 중독된 상태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갈라지는 목소리와 기괴한 불협화음조차도 즐거울 따름이었고, 합격자들과 지인들이 모인 곳에서 한바탕 술 파티가 벌어졌다.
“건배!”
시로네와 이루키, 네이드가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맞부딪쳤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싸우면서 녹초가 된 그들이지만 마음만큼은 날아갈 듯했다.
“크아! 시원~하다!”
네이드가 입가를 닦으며 파티장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마야는 안 올 모양이네.”
케이든이 에이미에게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사실 시로네는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작별 인사는 끝났으니까.’
이루키가 말했다.
“라이컨도 안 왔어.”
“자존심이 상했겠지. 같은 계열인 네이드에게 완전히 압도당했으니.”
“꼭 그런 이유만 있는 건 아닐 거야. 페르미와 대판 붙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냉정했거든.”
“흐음, 어쨌든 합격했으니 결론적으로는 이긴 셈이 되려나?”
“졸업 파티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블랙 라인을 타겠다는 거야. 그렇게 보면 우리와 얽혀서 좋을 게 없잖아?”
“하긴, 아버지가 살인 청부업자니까.”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그때 홀의 중앙에서 에이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 에이미 춤춘다.”
세리엘과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도는 에이미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 있었다.
“합격이다! 꺄악! 세리엘! 나 합격이야!”
“축하해! 축하해!”
넋을 잃고 쳐다보던 세 사람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를 외면했다.
“취했나 봐. 위험한 거 아냐?”
“우리는 뭐 안 취했나? 내버려 둬. 홍안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적어도 오늘만큼은 모든 행동이 무죄이리라.
한편 단테는 파티장 밖에서 클로저와 사비나를 만나고 있었다.
“정말 안 들어올 거야?”
“됐어. 전통을 깰 수는 없지. 그리고…… 정말 기쁠 때 맛보고 싶거든. 내년에 말이야.”
단테도 그 마음은 십분 이해했다.
“아무튼 이렇게 돼서 미안하네.”
사비나가 말했다.
“합격할 사람이 합격한 거야. 이제는 조금 감이 와.”
모두에게 가능성이 있었지만 아주 작은 차이가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게 된다.
클로저가 사비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네이드는 안 볼 거냐? 단테에게 말이라도 전해 달라고 하든지.”
네이드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으나 이번에도 사비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아직 네이드에게 갈 수 없어.”
예전에 네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 남는 자가 사회로 나가는 자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실례합니다. 좀 들어갈게요.”
그때 리즈가 입구를 막고 있는 단테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 네.”
자정이 가까울 무렵이었기에 길을 비켜 준 단테가 리즈를 빤히 쳐다보았다.
미녀였고, 졸업생의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성숙한 분위기가 들었다.
“와, 예쁘다. 누구 애인일까?”
사비나가 물었으나 단테와 클로저가 알 턱이 없었다.
‘하아, 어떡하지? 그냥 돌아갈까?’
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리즈의 심장이 다시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날 미친 여자로 볼 거야.’
졸업 시험에 온 것도 모자라 파티장까지 쳐들어가면 네이드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몇 시간을 생각해도 차마 발걸음이 돌아서지 않았다.
문 안쪽에서 들리는 기괴한 음악 소리를 들으며 리즈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열까지 셀 동안 다시 생각해 보자. 하나. 둘.’
그때 문이 덜컥 열리면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네이드가 나타났다.
“푸하하하!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했다! 응?”
친구들과 바람을 쐬러 나가던 참이었던 그의 눈에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뭐지? 취했나?’
창백하게 질린 리즈가 뻣뻣한 손을 들며 인사했다.
“아, 안녕, 네이드?”
떠나는 사람들 (3)
네이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도 병기창에 있어야 할 리즈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감정이 폭발한 네이드의 생각일 뿐이었고, 시로네는 냉철하게 사태를 파악했다.
“어, 그럼 우리는 술이나 한잔 더 마실까?”
“잠깐 기다려. 짚고 넘어갈 게 있어. 그때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이루키가 풀린 눈으로 삿대질을 하자 시로네가 태클을 걸 듯 안으로 밀어 넣으며 소리쳤다.
“그럼 얘기하고 와!”
쿵! 하고 문이 닫힌 뒤에야 네이드는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리즈 선배님이 여기에는 왜?”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만, 왜냐고 물어본다면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그녀였다.
“그게…… 그러니까.”
역시나 네이드가 두 팔을 벌려 반기는 상황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고, 생각이 꼬인 그녀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때 그렇게 가 버려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 주려고 왔어. 졸업 시험 합격 축하해.”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으나 표정과 몸짓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고마워요.”
어쩌면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상처 입은 마음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네이드의 닫힌 문 앞에서 리즈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오스카와 헤어지고 얼마나 지났다고 네이드의 문을 두드리겠는가?
“그럼…… 즐겁게 지내.”
계단을 올라가는 리즈의 손목을 네이드가 붙잡았다.
“그렇게 가 버리면 어떡해요?”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리즈는 손목을 흔들었다.
“미안해. 오는 게 아니었어. 갈게.”
“아, 진짜!”
네이드가 끝까지 손을 놓아주지 않자 리즈의 힐이 계단에 걸리면서 몸이 뒤로 쓰러졌다.
“어억!”
동시에 밀린 네이드가 지하 벽에 등을 처박고, 리즈가 황급히 돌아서서 그의 몸을 살폈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네이드는 대답 없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리즈의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안 가면 안 돼요?”
고개를 홱 하고 쳐든 리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네이드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나 되게 나쁜 사람이지?”
“그렇지 않아요. 먼저 배신한 건 오스카 씨잖아요.”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상하잖아.”
“그렇기는 하죠.”
네이드는 리즈의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밀어냈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이상해져요. 두 번 다시는 이상한 여자로 만들지 않을게요.”
전쟁이 끝난 것처럼 거대한 안도감이 밀려들면서 리즈는 펑펑 울고 말았다.
“미안해! 미안해, 네이드.”
리즈의 등을 다독거리는 네이드의 모습을 1층에서 내려다보던 사비나는 슬픈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가자. 내일부터 다시 훈련해야지.”
“그래. 정신없이 싸우자고.”
사비나의 뒤를 따르며, 클로저가 단단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졸업 파티는 자정이 넘도록 이어졌고, 새벽 4시가 될 무렵에야 파장을 맞이했다.
대부분 테이블에 쓰러져 곯아떨어진 가운데 시로네 일행은 알큰하게 취한 상태로 파티장을 나섰다.
리즈의 손을 잡고 무리를 빠져나온 네이드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리즈 선배 데려다주고 갈게. 너희들 먼저 들어가.”
오늘 돌아오지 않을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졸업 시험이 끝났으니 무엇을 해도 상관없는 마당이었다.
“그래. 내일 보자.”
네이드가 리즈를 데리고 떠나자 무언가 깨달은 세리엘이 에이미의 등을 치며 말했다.
“그럼 나도 숙소로 돌아갈게.”
도시 쪽에 여관을 잡아 놓은 세리엘이었다.
“이 시간에? 그러지 말고 내 방에서 자고 가.”
‘하여튼 의리파라니까…….’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운 것이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친구로서 자리를 피해 줘야 마땅할 터였다.
“됐어. 내일 일찍 올라가 봐야 해서. 어차피 졸업식에서 볼 수 있는데 뭐.”
“그래도 혼자서는 위험한데…….”
공인 마법사에게 밤길이 위험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감정적으로는 다른 문제였다.
“내가 데려다줄게.”
술이 깬 이루키가 말하자 세리엘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 되겠네. 이루키라면 나도 안심할 수 있고 말이야.”
“……무슨 의미야?”
“자, 자, 됐고! 늦었으니까 빨리 가자.”
이루키의 등을 떠밀며 멀어지던 세리엘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윙크했다.
“에이미, 정말 축하해.”
윙크의 의미를 알고 있는 에이미가 얼굴을 붉혔으나 따지기에는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평소와 달리 친구들이 떠나고 단둘만 남게 되자 분위기가 급격하게 어색해졌다.
“조금 걸을까? 술도 깰 겸.”
예상대로 시로네는 바로 들어가자고 하지 않았고, 에이미는 긴장한 목을 끄덕였다.
“그럴까?”
각자 생각에 잠긴 채로 정원을 산책한 두 사람은 수정등이 켜진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하아, 여기를 걷는 것도 마지막이네.”
“그러게. 오늘을 위해 달려왔지만 솔직히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에이미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떡할 거야?”
“응? 뭘?”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는 너무 나갔어. 아마 세계 각국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오겠지. 토르미아 왕국, 떠날 거야?”
선택의 기준은 장래성이겠지만, 에이미가 정말로 듣고 싶은 것은 두 사람 사이의 미래였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에이미가 먼저 운을 띄웠다.
“나는 토르미아에 남게 될 것 같아. 1년 동안 공인을 준비하고 마법부대에 입영 신청서를 낼 거야.”
카르미스 가문은 토르미아 제1급 귀족이었고 그런 입장에서 타국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로네, 나는 네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설령 다른 나라에 간다고 해도 우리가…….”
“안 갈 거야.”
“응?”
스카우트들은 알 수 없는 당사자의 속마음이지만, 에이미에게는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다.
“네가 왕국에 남는다면, 나도 남을 거야.”
“바, 바보야.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릴 사안이…….”
“좋아해, 에이미.”
에이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토르미아 왕국 마법협회에 들어갈 거야. 그리고 너와…….”
아직 더 먼 미래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내가 너와 함께하기 위해 토르미아 왕국에 남는다면 말이야.”
“멍청아! 그거야 당연히……!”
수많은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사랑 때문에 미래를 제한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하지만 오늘만큼은 머리가 심장을 이기지 못했다.
“좋지. 나도 네가 좋아, 시로네.”
승낙이 떨어지자 짜릿한 희열이 밀려들었다.
“에이미…….”
천천히 다가오는 시로네를 차마 바라볼 용기가 없는 에이미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두 사람의 감정은 살얼음을 걷는 듯 조심스러웠으나 입술이 맞닿는 느낌은 너무나 기습적이었다.
정적. 또다시 정적.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