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3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남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시로네의 말을 상기하며 포니가 팔을 가로로 그었다.
“물러가세요. 왕족의 고유 권한으로 왕성에 특별검사 제도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번 사안에 어떤 인물이 연루되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비자금이 오갔는지 철저히 밝히겠어요.”
“와아아아아!”
포니의 선언에 동참하듯 학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직은 어리군.’
심판의 칼날이 목을 조이고 들어오자 라이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얼마든지 요구하십시오. 하나,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시로네의 졸업은 보류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서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시로네가 졸업을 하지 못하면 역풍도 잠잠해지리라.
“포니 양. 어쨌거나 아직까지 왕령은 유효합니다. 학생들을 해산시키지 않으면 전부 연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겁박이 아닐 것이기에 올리비아가 나섰다.
“일단 모두 돌아가서…….”
“실례합니다.”
교사들의 뒤편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으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미 위원회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엄청난 고수다.’
공인 2급의 올리비아조차 이동하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실력자였다.
남자는 순백의 로브만큼 선한 인상이었으나 눈빛은 날카로웠고, 검은색 긴 머리를 정수리 위로 동여맸다.
왼손으로 뒷짐을 지고 작은 종이 달린 부채를 까닥까닥 흔들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음……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더라? 시 뭐라고 했는데.”
“시로네. 내가 몇 번을 말했소까.”
남자의 로브 안쪽에서 갓난아이처럼 작은 체구의 생물체가 나타났다.
피부가 진홍빛으로 붉었고 눈 주위가 판다처럼 검었으며, 창처럼 긴 꼬리를 달고 있었다.
“혹시 여기에 아리안 시로네라고 있소까?”
이상한 말투에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잠시, 시로네라는 이름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제가 아리안 시로네인데요. 누구시죠?”
다가오는 시로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가 황급히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어, 그러니까 나는……. 어디에 뒀지?”
붉은 피부의 생물체가 한숨을 내쉬더니 3개의 오망성이 겹쳐져 있는 패를 내밀었다.
‘별이다. 그것도 3성급.’
3개의 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고 있는 모두가 충격에 몸을 떨었다.
“우리는 상아탑 균형부에서 왔소다. 아리안 시로네에게 전할 말이 있소다.”
“상, 상아탑이라고?”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부채를 든 남자가 시로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아르테라고 합니다.”
상아탑 3성급 주민, 귀신도깨비 성 아르테.
“그리고 나는 위성 토케이라고 합소다.”
개구쟁이처럼 입을 활짝 벌린 토케이가 공전궤도가 그려진 패를 아르테의 패 옆에 나란히 내밀었다.
막다른 길 (3)
지성을 공전하는 별과, 그 별을 공전하며 보좌하는 위성.
장난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패를 내밀고 있자 라이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상아탑? 아니, 상아탑에서 여기를 왜?’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가운데 올리비아가 나섰다.
“저는 이 학교의 교감 올리비아입니다. 시로네에게 무슨 볼일이죠?”
“딱히 큰일은 아닙니다. 이 시기면 전 세계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죠.”
허리를 살짝 구부린 아르테가 시로네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축하드립니다. 상아탑에서 별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후보군에 들어갔습니다.”
“뭐어어어?”
고급반은 물론 졸업반 학생들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법 세계를 분할하는 거대한 3개의 라인.
블랙과 레드 외에 화이트 라인이 있다는 것은 마법사를 지망하는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이 상아탑이기에 단지 지식으로만 받아들일 뿐, 자신의 인생과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망상을 좋아하는 학생들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올리비아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로네가…… 전 세계 졸업생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단 말인가요?”
상아탑의 선별 기준은 그녀도 모르나, 예로부터 별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언제나 어떤 분야의 최고들이었다.
따라서 학생 중에서 후보를 결정한다면 졸업생 중의 최고여야 마땅했다.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1순위가 조금 애매해서요. 그래서 후보군이라고 말하는 거죠. 시로네는 상아탑의 기준으로 4위에 올랐고 2위, 3위와 함께 별의 칭호를 받기에 적합한지 간단한 테스트를 받을 것입니다.”
“4위…….”
상아탑에서 순위를 매겼다는 것은 전 세계 졸업생 가운데서 네 번째로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시로네, 너 진짜 괴물이구나.’
졸업 시험을 눈으로 봤기에 이견은 있을 수 없었고, 그다음에 떠오른 생각은 그런 시로네보다 높은 순위에 오른 자가 무려 3명이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얘기는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하죠. 본래 선별은 2성급의 주민이 하는 일이지만 현재 공전 중이라 부득이하게 제가 왔습니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3성급 주민의 시간을 너무 오래 빼앗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기도 했다.
“그럼 가실까요?”
아르테가 부채를 들어 학교 건물을 가리키자 시로네는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네이드는 손가락질을 하며 입 모양으로 뻐끔거렸다.
‘뭐 해! 빨리 가, 멍청아!’
그 간절한 표정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네, 알았어요.”
아르테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리려는데, 여태까지 상황을 지켜보던 라이만이 나섰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으나 아르테는 돌아보지 않았고 부채를 펼쳐 얼굴을 가렸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살짝 짜증이 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죠?”
“아무리 상아탑이라 하더라도 이건 순서가 잘못된 일 아닙니까? 현재 시로네는 왕국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후우.”
살며시 입으로 바람을 빼낸 아르테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부채를 천천히 들었다.
“풍경風磬.”
딸랑딸랑.
시로네의 귓가에 청명한 종소리가 들렸다.
부채 끝에 달린 작은 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했고,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한 듯 표정이 굳었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오직 부채를 들고 있는 아르테의 오른팔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집행관님! 위험합니다!”
살의를 느낀 경호원들이 라이만의 앞을 지나치며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부채가 펑 소리를 내며 뒤편으로 바람을 밀어냈다.
“으아아아아아!”
거대한 강풍이 몰아치자 검사들이 땅에 검을 박았다.
바람이라기보다는 벽이 밀려드는 듯했고, 살이 밀리면서 뼈에서 뜯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왕성 경호부대의 자부심으로 버텨 봤으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풍력이 아니었기에 마침내 모조리 두 발이 뜨면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르테의 어깨에 매달린 토케이가 두 손을 눈 위에 가져다 붙이며 풀, 나무, 인간, 마차가 모조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바탕 강풍이 몰아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풀포기 하나까지도 밀어 버린 위력에 교사들조차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눈앞에서 지켜봤던 시로네의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블로 계열의 마법.’
하지만 이걸 블로 계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바람이 아닌 태풍이었고, 차원이 다른 마법의 위력에 가올드가 떠오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상아탑이라도, 같은 말은 없습니다.”
아르테가 언짢은 표정으로 부채를 펄럭거리자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마법과는 별개의 행위였으나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학생들은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전달이 제대로 안 된 모양이군요. 다시 말하죠. 시로네 군은 상아탑에서 별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후보군에 들어갔습니다.”
전과 똑같은 얘기였으나 이번에는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
“가시죠. 저에게는 이 세계에서 벌어진 백여든일곱 가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시로네 군이 가급적 빨리 백여든여섯 가지로 떨어뜨려주기를 바랍니다.”
거부할 수 없는 느낌에 시로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아르테는 정확히 직각으로 몸을 돌려 알페아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회의실 좀 써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학교의 입장에서도 상아탑이 나서 준다면 시로네의 안건을 해결할 부담을 덜어 주는 셈이었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명확한 후보가 아닌 후보군이라는 표현이었다.
‘어쩌면 시로네에게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르테를 따라 들어가는 시로네와 친구들을 바라보며 알페아스는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이 끈을 잡을 수 있기를.’
회의실에 들어간 시로네는 문 앞에서 친구들을 돌아보며 아르테의 눈치를 살폈다.
“저기, 죄송한데, 제 친구들도 같이 와도 되나요?”
협상이 시작되면 도와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아, 아냐. 우리는 밖에서 기다려도 돼.”
눈치가 빠른 에이미가 두 손을 흔들었으나 아르테는 빨리만 끝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판단에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습니다. 앉으시죠.”
상아탑의 별과 합석하는 기회를 잡는 건 왕을 알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기에 에이미와 이루키, 네이드가 흥분된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시로네가 아르테의 맞은편에 앉자 토케이가 테이블 위로 뛰어내려 엉금엉금 걸어왔다.
창처럼 생긴 꼬리를 얼굴 너머로 넘긴 토케이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웃음살을 볼록였다.
“반갑소다. 프로필로 확인한 것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 같소다.”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시로네가 슬그머니 꼬리를 잡자 토케이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태로 시로네가 아르테에게 물었다.
“평가라고 하셨죠. 테스트를 받는 건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딱히 어려운 테스트는 아니니까. 정말로 어려운 건 경쟁자 2명의 카르 수치가 시로네 군보다 높다는 것이죠.”
“카르 수치?”
“처음부터 설명드리죠.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니까요.”
토케이가 꼬리를 휘적거리자 허공에 푸른 빛을 내는 글귀가 새겨졌다.
태성이 전달받은 서류의 1위부터 4위까지의 기록이었다.
아르테가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이 상아탑에서 수집한 기록입니다. 1위는 보다시피 라 에너미. 카르 수치는 98.7퍼센트. 본래라면 이자가 별의 칭호를 받아야 합니다만…….”
아르테가 뜸을 들이며 시간을 주자 시로네와 친구들이 기록을 천천히 살폈다.
확실히 2위인 달리아 나네의 89.4퍼센트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라 에너미……. 잠깐, 라 에너미라고요?”
퍼뜩 깨달은 시로네가 시선을 돌리자 아르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로네 군이 말소시킨 앙케 라의 전생입니다. 시간상 후생이라고 봐도 되겠지만, 상아탑에서는 그의 화신이 전생의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여전히 천국에서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이유겠죠.”
시로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라가 태어났다면 곧 사건이 터질 거예요. 대비책이라도 있나요?”
“글쎄요. 인간들이 알아서 할 일이겠죠.”
아르테가 부채를 펄럭거리며 덧붙였다.
“최후의 전쟁은 분명 인류에 중요한 사건이지만 상아탑 전체 주민이 관심을 가질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가 그렇죠. 물론 어떤 별들은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만약 전쟁이 터지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잖아요?”
“삶과 죽음이 아닙니다. 상아탑이 중요시하는 것은 세계의 균형. 저는 전쟁이야말로 오히려 균형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어요.”
내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시로네의 모습에 아르테가 부채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시로네 군의 생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쪽으로 관심이 있다면 별이 되어 인류안전집행부에서 일을 하면 되겠죠. 어쨌거나 우리 또한 인류이기에 가급적 인간의 편을 들어 주고 싶은 거니까요.”
묘하게 섬뜩한 말이었다.
세계 최고의 직장에서 면접을 보는 자리였기에 두 사람의 충돌을 막고자 에이미가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카르 수치라는 것은 뭐죠?”
“별에 적합한 자를 찾기 위한 상아탑의 기준입니다.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라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완벽성이라고 할 수 있죠.”
이루키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거 아닌가요? 대체 완벽에 대한 기준이 뭐죠?”
“기준 같은 건 없어요. 완벽이란, 그저 완벽한 것입니다.”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파고들자니 어려운 개념이었다.
어쨌거나 그것이 완벽함을 뜻하는 것이라면 시로네의 88.9퍼센트라는 수치는 놀라운 것이었다.
‘거의 완벽하다는 뜻이네.’
그렇기에 상아탑의 후보군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미의 시선이 달리아 나네와 진 성음이라는 이름으로 향했다.
진이라는 성을 쓰는 여자가 진천 제국 출신이라면 황족일 테고, 나네라는 아이는 시로네보다 무려 0.5퍼센트나 더 완벽에 가까웠다.
“시로네는 저들과 어떤 경쟁을 하게 되죠?”
“라의 화신 전생으로 상아탑에서도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카르 수치 0.5퍼센트 구간에 있는 상위 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죠. 간단합니다. 바로…….”
모두의 시선이 아르테의 입술에 집중되었다.
“라 에너미를 찾으면 됩니다.”
“라를…… 찾으라고요?”
“네. 기한도 없고, 방법도 무관합니다. 라를 찾고 상아탑으로 돌아오면 별이 되는 것이죠.”
숨 쉬는 것처럼 쉽다고 얘기하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찾으러 떠난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네이드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일을 떠넘기는 거 아니에요? 상아탑에서도 못 찾는 걸 시로네더러 찾으라니.”
“하하하! 그것도 맞습니다. 현재 상아탑에 별의 칭호를 받은 주민은 27명.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특성상 인력이 많이 부족해요.”
“아니, 인력이 부족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