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4
“하지만 시로네.”
아르테가 네이드의 말을 끊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별이 된다는 것은 국가를 초월하는 절대적 권한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왕조차 당신이 제시한 기준을 따라야 하죠.”
그것이 바로 상아탑이다.
“라를 찾는 것조차 못 한다면 별의 칭호를 받을 수는 없어요. 어떻습니까? 테스트를 받겠다면 상부에 연락을 해 두겠습니다.”
반쯤 감은 눈으로 생각에 잠겼던 시로네가 고개를 들었다.
“아뇨. 저는 상아탑에 가지 않겠습니다.”
“뭐, 뭐야?”
친구들이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으나 시로네는 흔들림이 없었다.
“흐음.”
토케이가 턱을 긁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아르테가 부채로 입을 가리며 차가운 눈을 번뜩였다.
‘역시 후보들은…….’
완벽에 가깝다.
막다른 길 (4)
“잠깐만요! 잠깐,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직 아르테의 대답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에이미가 황급히 손을 내밀었다.
“시로네, 너 진짜 왜 그래? 네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이러는 거야?”
“알고 있어. 하지만 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싶지는 않아.”
“원하지 않다니. 상아탑이야, 상아탑. 모든 마법사들이 꿈꾸는 곳이라고.”
“그래도 옳지 않은 것을 따를 수는 없어.”
“옳지 않다……,”
아르테가 부채를 내리고 얼굴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의견이군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죠?”
“카르 수치는 완벽을 뜻하죠. 하지만 완벽을 말하는 당신이 행한 일은 결국 무력에 의한 제압이었어요.”
단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라이만을 날려 버린 아르테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었다.
“흐음,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싫어요. 하지만 감정의 문제가 아니에요. 강한 것이 진리라면, 화이트 라인 또한 다른 라인과 무엇이 다르죠?”
토케이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크크, 내가 말했잖소까. 프로필과 다르다고.”
납득한 아르테가 부채를 탁 하고 접더니 테이블에 가상의 수직선을 그렸다.
“좋아요. 이렇게 설명을 드리죠.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율법의 수 3에 속합니다. 이 3의 정점이 바로 구도자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시로네 군, 우리는 구도자가 아닙니다. 지성, 율법의 수로 4에 해당하는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선과 악을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그럼 상아탑은 어떤 존재죠?”
“선과 악에 대한 선악을 구별하는 존재입니다. 선이 과연 선인가? 악이 과연 악인가? 즉, 율법의 수 4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끝없는 비판. 그리고 이것이 뜻하는 바는…….”
아르테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시로네 군은 상아탑의 테스트를 치를 자격이 충분합니다.”
친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에?”
반면에 시로네는 아르테가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더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처음부터 순순히 테스트를 받겠다고 했으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인가요?”
“제 경우에는 그렇죠. 아까 말했듯 카르에는 특별한 기준 같은 게 없어요. 제가 아닌 다른 주민에게 공지를 받은 후보들은 이런 테스트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아르테가 미소 지었다.
“상아탑이란 그런 곳입니다. 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든 비판할 수 있다는 뜻이고, 저는 나름대로 시로네 군을 비판해 보았을 뿐입니다. 조금 전 시로네 군이 저와 상아탑을 비판한 것과 마찬가지로요.”
‘아하.’
에이미는 카르가 무엇인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따라서 상아탑 주민들은 별의 판단을 지지합니다. 설령 의견이 다를지라도 가혹한 자기비판을 거친 끝에 나온 결론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강한 것이 진리인가? 어떤 주민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면, 그것 또한 완벽에 가까운 것입니다.”
아르테가 손수 시로네의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별의 칭호를 받으세요. 상아탑은 당신에게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시로네 군의 지성으로 비판한 것들을 세상과 함께 나누는 것이죠.”
시로네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오직 지성을 통해 이끌어 낸 비판적 결론, 100퍼센트의 카르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잠깐.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이루키가 나섰다.
“어쨌거나 상아탑 후보가 되었으니 시로네가 나름의 자격 요건을 갖췄다고 봐도 되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설령 시로네가 거절한다고 해도 상아탑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약 조건은요? 그런 것도 없이 덥석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토케이가 말했다.
“연봉을 말하는 거라면, 상아탑은 보수가 없소다. 다만 임무 수행에 필요한 자금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해 줄 수 있소다.”
이번만큼은 에이미도 의외였다.
“정말로 보수가 한 푼도 없다고요?”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상아탑 주민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든 비판할 수 있다는 뜻이고, 이미 협약에 의해 전 세계 국가의 공적 시설물에 대한 전면적 이용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공공 기관에 가서 먹으면 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왕이든 관료든 붙잡고 얘기하세요. 가장 빠른 루트로 수급을 해 올 겁니다.”
“우와, 진짜 미쳤다.”
실효적인 특혜를 듣자 네이드도 상아탑이 어떤 곳인지 피부로 느껴졌다.
자신에게 이런 제의가 왔다면 마법사가 되겠다는 꿈을 부활시킬 수도 있을 듯했다.
‘하긴, 그래서 안 되는 거지만.’
네이드의 카르는 시로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별의 칭호를 받은 다음부터입니다. 후보에게는 어떠한 특혜도 제공하지 않아요. 별이 되기 전 카르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쌓는 게 우선입니다.”
당연히 그럴 테지만 이루키는 이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득을 챙기고 싶었다.
“혹시 지금 시로네가 처한 상황을 알고 계신가요?”
“아뇨, 모릅니다.”
3성급 주민이 후보의 상황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토르미아 왕국에서 시로네에게 누명을 씌워서 졸업을 못 하게 막고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졸업을 안 하면 되겠죠. 상아탑은 카르 이외에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시로네는 그저 라 에너미를 찾아서 상아탑으로 오기만 하면 됩니다.”
에이미가 말했다.
“하지만 너무하잖아요. 3위는 황족이라 인맥도 엄청날 테고, 2위는 누군지 몰라도 어쨌든 마법사 자격증 정도는 있을 텐데, 이대로라면 시로네는 민간인 신분으로 여행을 떠나야 해요.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원래부터 시로네가 가질 수 있었던 자격 정도는 취득하게 도와줄 수 있잖아요.”
“흐음.”
아르테는 부채로 머리를 탁탁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좋습니다. 졸업만 하면 되는 건가요?”
시로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비공인 마법사 자격증 정도만 있어도 여행하기에 훨씬 편할 것 같아요.”
이제 와 욕심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추억이 담긴 마법학교의 졸업장 정도는 가지고 있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얘기를 해 두죠.”
아르테가 일어서고 토케이가 그의 어깨에 올라타며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꼭 스물여덟 번째 별이 돼라. 기왕이면 우리가 공지한 사람이 되는 게 기분이 좋지 않겠소까?”
“네, 열심히 할게요.”
아르테와 토케이가 밖으로 나가자 건물 밖에서 쑥덕거리던 학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교사들 또한 긴장한 얼굴이었으나,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아르테는 태연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런 다음 난민처럼 앉아 치료를 받고 있는 라이만에게 부채를 까닥거리며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네, 네!”
성치 않은 몸이었으나 최대한 빠르게 걸음을 옮긴 그가 아르테의 발밑에 엎드렸다.
딸의 유학비에 대한 미련으로 잠시 출타했던 개념이 아르테의 마법에 당한 이후 되돌아온 상태였다.
“부르셨습니까, 지성의 관철자시여.”
“앞으로 시로네 군은 상아탑의 테스트를 받을 것입니다. 졸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세요.”
“당신의 뜻을 왕에게 전하겠습니다. 별의 의지가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타국 관료와 술자리를 갖다 보면 별에게 멱살이 잡힌 왕들의 일화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별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냥 해 주면 된다.
‘이미 비판 끝난 일이니까.’
상아탑 업무 매뉴얼이었다.
“가자, 토케이.”
토케이가 좌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들 행복하게 살다가 떠납소다.”
빛의 띠가 아르테의 발밑에서부터 휘감기더니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이것이 상아탑인가.’
학생들이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라이만이 뒤늦게 건물을 빠져나온 시로네를 노려보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가랑이 사이를 기게 만들 생각이었건만 이제는 왕조차도 건들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참자. 상아탑에 찍혀서 좋게 끝난 경우가 없다.’
후보군이 3명이라고 했으니 시로네가 별이 될 확률은 무려 33.3퍼센트에 달한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건드렸다가는 훗날에 감당해야 할 대가가 너무 컸다.
“아리안 시로네.”
라이만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령에 의해 모든 죄를 사면한다. 부디 왕국의 이름을 드높이는 훌륭한 마법사가 되기를 바란다.”
왕령이 떨어진 것은 아니나 어차피 기정사실이었고, 라이만의 패배 선언에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아아아아! 시로네 선배님, 축하드려요!”
“진짜 엄청나다! 상아탑이라니!”
상아탑 후보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모교의 영광이니 학생들이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라를 찾으라고.’
반면 시로네는 3분의 1이라는 확률이 알싸했다.
지금까지 해결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그것도 경쟁자들의 카르 수치는 미세하지만 시로네보다 높았다.
‘대체 누구지?’
경쟁을 떠나서 순수하게 호기심이 드는 시로네였다.
***
진천 제국의 황성, 염라.
인구 2억이 넘어가는 제국답게 황제가 거주하는 염라의 규모는 삼황계 중에서도 단연 방대했다.
근위대의 숫자는 일국의 병력과 비등하고, 요술사의 숫자만 해도 2천 명이 넘었다.
수량으로는 압도적인 우위, 다만 질적인 측면에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현재는 천문학적인 자금으로 세계 각국의 실력자를 포섭하는 중이었다.
“공주님, 황제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시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팔각 정자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여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진천의 황제 진강의 열세 번째 딸, 진성음이었다.
정면을 노려보는 시선은 강철처럼 단단했고 고집스럽게 다문 입은 불꽃처럼 붉었다.
“지금 가도록 하마.”
성음이 나설 채비를 하자 시녀들이 각자의 옥목걸이에 새겨진 숫자만큼 거리를 벌렸다.
10보에서 1천 보까지 정해진 거리는 성음에게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하는 것으로, 만약 한 걸음이라도 더 들어오게 되면 그날로 경을 치게 된다.
양쪽 처마가 하늘을 향해 치솟은 황궁에 도착하자 근위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창을 세웠다.
근위부장 오가 철갑 소리를 내며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공주님.”
성음의 미간이 꿈틀했다.
“23보다. 물러서라.”
“…….”
만나는 모두에게 거리를 매기는 성음이지만, 근위대의 부장으로서 자리를 이탈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흥, 그래?”
성음이 코웃음을 치는 순간, 오는 어느새 자신이 그녀로부터 23보 떨어진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건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군.’
공간에 대한 강박은 그녀를 진천 최고의 요술사로 만들어 준 특별한 깨달음에 기인.
오늘 황제가 그녀를 부른 이유도 세계 최고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상아탑에서 성음을 후보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110보. 230보. 87보. 433보.”
성음은 근위 병사에게도 하나씩 거리를 매겼다.
근거는 알 수 없으나 듣고 있으면 묘하게 납득이 가는 느낌으로 미루어 보건대 어떤 기준이 있는 건 분명했다.
오와 마찬가지로 병사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자 성음이 노기를 드러내며 눈을 치켜떴다.
“이것들이……!”
유일하게 10보를 허락받은 시녀가 황급히 고했다.
“공주님. 오늘은 황제 폐하께서 특별히…….”
‘에테르 파동.’
성음이 정신을 집중하자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풍경의 형태마저 인지 바깥으로 밀려났다.
오직 암흑인 세상에서 수면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듯 수많은 떨림이 전해져 왔다.
물질이 공간을 짓누르는 것으로 중력이 발생한다면 빈 공간조차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는 얘기.
그녀가 언로커로서 깨달은 것은 공간 그 자체를 이루는 베이스, 즉 에테르였다.
‘축지.’
황제의 파동을 느낀 그녀가 마법을 시전하자 4킬로미터 거리가 구겨지면서 황룡전의 풍경이 밀려들었다.
다른 풍경이 이질적으로 맞닿아 있는 상태에서 성음의 다리가 공간의 경계선을 넘어섰다.
“아버지.”
그렇게 단지 한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그녀는 진천 제국의 황제를 알현했다.
막다른 길 (5)
성음의 위치가 황룡전으로 완전히 넘어오자 구겨졌던 공간이 펼쳐지면서 풍경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자주 보는 풍경은 아니지만 몇 번 당한 적이 있는 근위대가 예외 없이 검의 손잡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공주 마마!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법도를 지켜야 하옵니다!”
성음은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딸이 아버지를 만나는 것뿐이다.”
그녀의 카르 수치는 89.2퍼센트였다.
“하오나 이러시면 저희들이…….”
근위대장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다가오자 성음의 손이 들렸다.
에테르 파동-나곡.
공간이 뒤틀리면서 근위대장의 몸이 소용돌이처럼 휘어지더니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