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5
“아무리 마마라도 황룡전에서 요술을……!”
그것을 시작으로 근위병들이 나곡의 힘에 뒤틀려 사라졌다.
완벽한 밀실.
성음의 능력은 현상이 존재하는 판 자체를 뒤틀기에 강력한 것이다.
소리가 퍼져 나갈 공간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 제가 두려우십니까?”
“흐음.”
진천의 황제 진강은 용상에 턱을 기대고 입꼬리를 올렸다.
근위대의 사내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체구에 풍성한 머리숱과 수염, 눈에는 세상을 담을 만큼 강건한 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세상에 딸을 두려워하는 아비도 있더냐?”
“하오면 어찌하여 병력을 두십니까?”
“성음아.”
중저음의 목소리가 황룡전을 흔들었다.
“네, 아버지.”
“세상은 넓고 인간은 많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지. 네가 내 딸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황제에게 엎드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성음을 내려다보며 진강이 물었다.
“네가 꿈꾸는 천하를 진천이 품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상아탑은 초국적인 기관이고, 성음이 별이 된다면 진천으로서는 아까운 인재를 잃게 되는 셈이다.
“천하의 문제가 아니라 저 자신의 문제입니다.”
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주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잊지 말거라.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진강의 눈이 번뜩였다.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을 이긴다.”
쩍 하고 공간이 갈라지면서 성음의 주위로 200명의 근위병들이 에워싸고, 1보 앞에 서 있는 근위대장이 성음의 목에 칼날을 들이댔다.
“공주 마마, 법도를 지키십시오. 더 이상의 무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공간의 강박이 깨지자 성음이 매서운 눈초리로 진강을 노려보았다.
“상아탑의 시험을 치르는 것을 허락한다. 열심히 해 보려무나.”
“흥!”
성음이 홱 하고 몸을 트는 것과 동시에 근위대장의 칼날이 뱀처럼 휘어지더니 그의 사타구니 쪽을 겨누었다.
“이런……!”
황제 앞에서 추태를 보인 것에 분노한 근위대장이 성음을 뒤쫓았으나 진강이 나직한 목소리로 일렀다.
“됐어. 그냥 보내 줘.”
“하지만 황제 폐하! 조금 전 마마의 행동은…….”
“철이 없어서 그래. 괜찮겠지, 상아탑이라는 곳도 말이야.”
언젠가는 진천이 부러뜨릴 탑이었다.
“재밌게 놀다 오너라, 진강의 딸.”
***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시로네와 친구들은 정복을 다림질했다.
아마도 유령처럼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겠지만 졸업을 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다림질을 끝낸 이후에는 나란히 앉아 내일 낭독할 졸업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날 무렵 네이드가 투덜거렸다.
“난 글 쓰는 게 제일 싫더라. 죽도록 싸웠는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이루키가 말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왜, 이런 명언도 있잖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으음.”
고개를 끄덕이던 시로네가 이루키를 돌아보았다.
“근데 그건 다른 상황에서 쓰이는 말 아니야?”
“알 게 뭐야? 난 언어에 기대하는 거 없어.”
그런 사람의 졸업사는 어떤 것인지 시로네가 목을 빼내고 살펴보았다.
“어디 보자. 미쳤는데 머리가 나쁘면 또라이고, 정상인데 머리가 좋으면 학자다. 미쳤는데도 머리가 좋으면 천재……. 야, 이게 뭐야? 너 진짜로 이걸 낭독할 거야?”
“푸하하하하!”
네이드가 혀를 빼물고 눈을 뒤집어 깠다.
“못 할 것도 없지. 우리는 지옥을 벗어났어. 무슨 말을 해도 아귀들은 듣지 않아.”
네이드가 찔끔 흘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도 기록실에 보관하는 자료인데 신경 좀 써라.”
“그러는 너는?”
이루키가 네이드의 낭독문을 읽었다.
“리즈라는 이름의 천사. 절망의 수면 위에 기적처럼 떠오른 태양…….”
“야! 왜 남의 것을 봐!”
시로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연애편지도 아니고, 앞으로 후배들이 계속 보게 될 텐데…….”
“그러니까 쓰는 거지. 영원히 기록될 연애편지. 낭만적이잖아.”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에이미가 들어왔다.
“콜리 선생님이 음악실로 모이래. 교가 합창 연습한다고.”
“으, 그건 정말 싫은데.”
후배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얼굴이 뜨거웠다.
음악실로 들어가자 졸업생 전원이 모여 있었다.
다른 라인을 선택하더라도 졸업장은 받아야 하기에 라이컨과 마야도 참석해 있었다.
“오랜만이야, 시로네.”
마야가 다가와 손을 흔들었다.
“그래. 합격했다는 얘기는 들었어. 축하해.”
수많은 공연단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마야는 오디션을 보는 쪽을 택했고, 마침내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 기획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세계적인 가수들을 많이 배출한 만큼 앞으로 그녀의 인생도 시로네만큼이나 파란만장할 터였다.
“고마워. 나도 얘기 들었어. 상아탑에서 왔었다며. 아아, 내가 그걸 봤어야 했는데.”
너스레를 떠는 마야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에이미와 사귄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다시 떨어지게 되었다.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틈이 생긴다는 것은 이미 포기한 마당이라도 가슴이 뛰는 일.
게다가 자신도 유명해지면 수많은 왕국을 순회하게 될 테니, 그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쩌면…… 나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차마 입 밖에 낼 수는 없는 말이었다.
조금이라도 그런 느낌을 주게 된다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에이미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그래, 열심히 하자. 언젠가는 우리 모두 유명해져서 만날 날이 올 거야.”
교가 합창은 졸업식의 마지막 순번으로, 어떤 선배들은 갑자기 눈물을 쏟아 내는 바람에 지울 수 없는 검은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저 3분가량 노래를 부르면 되는 일이지만 콜리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마야의 독주를 넣을 생각이다. 아무래도 가수인 데다가 유명인이 될 테니 좋은 이벤트가 되겠지.”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다.
마야의 노래가 일품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독주만 아니라면 교가는 아무래도 좋았다.
졸업식의 수순에 따라 1시간 정도 리허설을 끝내고 학생들은 숙소로 돌아가 일찍 잠이 들었다.
대망의 졸업식 날 아침이 밝았고 학부형들과 고급반 학생들, 교사들이 모인 가운데 10명의 졸업생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졸업사를 낭독하는 순서가 되자 이루키가 당당하게 나섰다.
“미쳤는데 머리가 나쁘면 또라이고, 정상인데 머리가 좋으면 학자라고 합니다.”
시로네와 네이드는 식은땀이 났다.
‘진짜로 하고 있어, 저 미친놈.’
이상한 논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졸업사의 말미에 이루키가 두 팔을 펼치고 소리쳤다.
“모두가 저를 미쳤다고 욕할 때, 저는 당당하게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내가 미친 거요, 나를 미쳤다고 하는 이 세상이 미친 거요!”
모두가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그냥 네가 미친 거야.’
썰렁한 정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루키가 두 팔을 내리고 돌아섰다.
“이상입니다.”
네이드가 의자에서 일어나 이루키를 지나쳐 단상에 섰다.
“리즈라는 이름의 천사를 아십니까? 절망에 빠진 저에게 기적처럼…….”
학생들은 졸업사를 이해하지 못했고, 부끄러움은 그저 객석에 앉아 있는 리즈의 몫이었다.
‘쓰기 싫으면 그냥 쓰지 마.’
졸업사를 쓰는 게 얼마나 귀찮은지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최고의 상인이 된다!”
네이드가 버럭 소리치고 몸을 돌렸다.
“이상입니다.”
역시나 박수는 나오지 않았고, 시이나는 머리를 짚었다.
“아우, 저것들을 그냥.”
에텔라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후후, 저는 좋은데요? 그래도 후배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잖아요.”
“저런 게 전통이 돼서 꼴통이 나오는 거죠.”
평범한 졸업사, 감정 과잉의 졸업사, 자기과시의 졸업사 등 10명의 졸업생들이 1명씩 순번을 끝낸 가운데 마지막으로 시로네가 나섰다.
의도적인 배치였고, 효과는 탁월했다.
“시로네 선배님이다.”
왕국 최고의 기록을 갱신했고 이제는 상아탑의 후보 3인에 오른 인물.
다른 건 몰라도 시로네의 졸업사만큼은 반드시 들어야 했다.
“저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로네는 담담하게 글귀를 읽어 나갔다.
“남들보다 더 노력을 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좌중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재능이나 노력 같은 건, 진정으로 무언가를 열망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겠지요.”
마법사가 되고 싶었고 마법을 배우는 게 좋았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실패 또한 즐거웠고, 노력 또한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마법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금보다 재능이 없었어도 저는 결국 이 자리에 왔을 것입니다. 노력이라는 말을 굳이 지어내지 않아도 날마다 마법을 갈고닦았을 것입니다. 설령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간절히 열망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결국 거기로 갈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시로네는 낭독문을 내려 두고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세요. 어떤 재능도, 어떤 노력도,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심장 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다면, 결국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시로네가 눈웃음을 지었다.
“이상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선배님!”
마크가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학생들 전원이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였던 시로네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북받쳐 올랐다.
“좋은 졸업사군요. 후배들의 귀감이 되겠어요.”
교사들의 대화를 들으며 알페아스가 지그시 미소 지었다.
“시로네…….”
열두 살 때 벽 너머에서 도강을 하던 소년이 이제는 세상을 놀라게 한 마법사가 되어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졸업생 교가 합창이 있겠습니다.”
‘아우, 확 비나 와 버리지.’
정복을 나풀나풀 휘날리며 대열을 맞춘 학생들이 음악대의 반주에 맞춰 교가를 열창했다.
입학과 동시에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음악을 몇 년째 듣고 있노라면 이것이 노래인지 주문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마야의 실력은 최고였고, 독주가 시작될 때는 학부형들도 멍하니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정말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교가가 이어질수록 학생들의 눈에 슬픔이 들어찼다.
‘이 노래가 끝나면…….’
정말로 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마법사가 되었구나.’
시로네의 머릿속에 입학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많은 난관을 넘으며 성숙해졌다.
“우리는 지성의 아이들. 알페아스 마법학교여, 영원히 빛나리라.”
결국 시로네는 울음을 터뜨렸고, 여느 해보다 더 치열했던 경쟁이었던 만큼 다른 졸업생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지성의 아이들.”
모든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알페아스 마법학교여, 영원히 빛나리라!”
졸업식이 끝났다.
세상으로 (1)
자이브 왕국.
성전 칠왕성에 속하는 왕국으로, 시민의 영향력이 크고 사회 분위기가 자유로워 특히 유학생들이 많이 찾는 국가였다.
달리아 나네 또한 유학생이었다.
네 살 때 마법학교에 입학하여 열일곱 살의 나이에 세계 졸업생 2위가 되기까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 업적.
하지만 실상 나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지루할 정도로 순탄한 삶에 쓴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나네, 결정은 내렸니?”
자이브 왕립 마법학교의 교장이 왕국 역사에 기록을 세운 나네를 직접 찾아와 물었다.
“아뇨.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교장의 눈이 의아하게 뜨였다.
“오늘 졸업식이 끝나면 3시간 뒤에 레드 라인 인력관리부에 공시될 거야. 상아탑 테스트를 치를 거라면 공시 거부를 요청해야 한단다.”
“그럼 그때까지 생각을 해 볼게요.”
교장이 애잔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심성이 착하다. 말은 안 해도 자신을 키워 준 자이브 왕국에 도움이 되고 싶은 거겠지.’
언제나 예의 바르고 도덕적인 학생.
심지어는 누군가와 언쟁을 벌이거나 인상을 찡그렸다는 소리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천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살면서 어떤 세파도 없었다는 것은, 나네의 재능이 그 세파를 초월하고 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