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6
자이브 역사상 최단시간에 수석을 차지했음에도 솔직히 그가 재능의 1퍼센트라도 썼는지 의문이었다.
“너에게 옳은 선택을 하면 된단다. 상아탑에 들어가서 이름을 알리는 것도 자이브 왕국의 명예니까.”
같은 말이 반복되자 나네가 짧게 말했다.
“생각하기 귀찮아서요.”
처음으로 듣는 퉁명스러운 말투에 교장이 어깨를 움찔했으나, 고작 이 정도로 그의 평판을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하긴 다른 기관도 아닌 상아탑이니.’
천재라도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교장의 생각과 다르게 실제로 나네는 앞으로의 일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자이브 마법협회에 들어가는 것도, 상아탑 테스트를 치르는 것도,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것도.
‘그래, 이제 나는…….’
나네가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기자 감기고 있던 교장의 눈꺼풀이 얼어붙은 듯 정지했다.
하늘에 새들이 박제되고, 행성이 자전을 중단했으며,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별들이 운행을 멈추었다.
우주 전체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상에 한계가 없다면 사고의 전개가 시간을 초월하는 나네의 집중력도 죄는 아니다.
그 우주적 규모의 몰두 속에서 나네는 무한면체의 주사위를 사고의 끝을 향해 던졌다.
모든 정도를 섭렵했기에, 호불호에 대한 어떤 기준도 없이.
그리고 마침내 주사위가 회전을 멈췄을 때,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결정했다.’
나네가 복도를 따라 멀어지자 교장이 다정한 눈빛으로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운을 빌었다.
‘부디 행복한 선택을 하길.’
레드 라인 규정에 따라 자이브 왕립 마법학교에서도 20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고, 교가 합창 순서가 오자 정확히 열을 맞추어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는 하나로 세상의 빛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감동의 절정에서, 나네가 천천히 앞으로 나오더니 정복을 벗었다.
‘왜 저러지? 우리가 모르는 이벤트가 있나?’
졸업생들이 의아하게 쳐다보았으나 어쨌거나 나네가 주인공이기에 일단은 노래를 이어 나가는데…….
“나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자이브 왕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정복을 벗은 나네는 상의와 하의, 속옷마저 탈의하더니 단상에 뛰어들어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꺄아아악!”
여학생들이 얼굴을 가렸으나, 선망하던 나네였기에 손가락 틈으로 엿보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지?’
나네가 알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였다.
모든 정도를 섭렵한 끝에 도달한 외도의 영역은 ‘그저 다름’에 대한 의문.
끝없이 다름을 반복하며 나네라는 존재를 우주에서 유일한 어떤 것으로 정의 내리기 위한 여정.
“이거나 먹어라!”
악사들의 혼란스러운 연주에 맞춰 나네가 허리를 빙빙 돌리자 오줌 줄기가 원을 그리며 퍼졌다.
“으아악! 미쳤나 봐!”
황급히 자리를 뜨면서도 사람들은 나네의 중심에서 회전하는 것을 보고 묘한 섬뜩함을 느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자연 상태 그대로라는 것은 일말의 긴장도, 흥분도 없는 완벽한 평정심을 뜻하고 있었다.
“나네! 그만둬!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그만두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무슨 일이 일어나지?’
거센 물줄기를 뿌리자 교사들은 황급히 얼굴을 가로막았고, 저급반 학생들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개념의 범주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다름의 고찰이 필요할 터였다.
어쩌면 무한의 개수만큼 많은.
플라이 마법을 시전한 나네가 인간들을 내려다보더니 지평선 너머로 시선을 돌리며 날아갔다.
“어떡하죠, 교장 선생님? 도시로 가고 있어요!”
신고를 해야 하는가?
이 사태를 초래하고도 갈등이 된다는 것은, 나네가 자이브 왕국 역사상 최고의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경비대에 연락해! 저 정신 상태라면 도시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알겠습니다!”
한편 도시에 도착한 나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장 한복판에 가볍게 착지했다.
“꺄아아악!”
패닉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변태라고 생각한 상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다가왔다.
“너 뭐야? 영업 방해하려고 작정했어?”
이미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에 또다시 방뇨를 하지는 않았으나 상인들은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눈동자가 정상이 아니었다.
‘저 녀석, 변태가 아니야.’
왜소한 편에 속하는 나네였으나 순수한 광기, 미래에 대한 완벽한 불확실성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다름의 기본은 무엇인가…….’
나네의 행위에는 이유가 없다.
그것이 정도의 인간과 뚜렷이 구별되는 외도였고, 나네는 가장 저차원적인 다름부터 섭렵해 나갔다.
‘우선은 형태부터.’
그렇게 결정을 내린 나네가 향한 곳은 진보적인 자이브 왕국의 명물인 문신 가게였다.
“어서 오…… 꺄아악!”
남성의 나신을 발견한 여직원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나네는 전면 거울 앞에 섰다.
“내 몸에 낙서를 새겨 줘.”
그로부터 1시간 뒤.
치안대 병력 60명이 가게 앞을 포위한 상태로 대치하는 가운데 치안대장이 목청을 높였다.
“인질을 석방해라! 시간을 끌면 너만 불리해질 뿐이야!”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게 안의 직원들은 나네의 몸에 낙서를 하는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카탈로그에 있는 모든 것을 새기라는 지시에, 심한 욕설마저 등골을 타고 적혀 갔다.
‘으으, 아플 텐데.’
마법 장비가 발달하여 시간은 절약되지만 온몸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나네는 태연하게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내 형태는 유일한가?’
혹은 여전히 어떤 개념에 수렴하는가!
‘조금 더 해 볼까.’
나네는 통에 담긴 피어싱을 있는 대로 움켜쥔 다음 하나씩 집어 들고 귀를 뚫었다.
으드득. 으드득.
생살을 그대로 찍어 버리며 13개의 피어싱을 다는 모습에, 직원들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오직 나네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상태.’
“엇!”
갑자기 몸을 틀자 문신이 빗나갔으나 나네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화장대 위에 있는 염색약의 뚜껑을 전부 열어서 머리에 콸콸 부었다.
“아, 안 돼요! 염색약은 독해서……!”
온몸에 상처가 있는 상태에서 총천연색의 약품으로 샤워를 해 버리자 살이 불타는 듯 뜨거워졌다.
“크크크크! 키키키키!”
과장스럽게 웃던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목청을 가다듬고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정신이 나가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마침내 작업이 끝나자 직원들이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다 했어요. 이제 나가 주세요.”
“아니, 아직 하나 더 남았어.”
나네가 혓바닥을 내밀고 가리키자 5명의 직원 중에 2명이 눈을 뒤집으며 혼절했다.
“히에에에에에! 히에에에에에!”
가게 안에서 들리는 끔찍한 소리에, 대치하고 있던 치안대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대장님, 그냥 쳐들어가면 안 될까요?”
“마법학교 졸업생이다. 섣불리 제압하려고 했다가는 인질들이 무사하지 못할 거야.”
사망자가 나오면 시민 의회가 청문회를 열 터였다.
“히에에에에! 히에! 히에에에!”
나네의 혓바닥에 장검의 문신을 새기는 여직원의 얼굴은 창백했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건 지옥이야.’
아마도 그녀는 타투이스트를 은퇴하게 되겠지만, 나네의 마법에 특이점을 준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검이라.”
나네는 혓바닥에 새긴 장검의 형태를 똑똑히 기억한 다음 몸을 돌려 가게를 나섰다.
“체포해! 지금 당장!”
스키마의 고수인 치안1팀이 땅을 박차고 날아와 창을 휘둘렀다.
‘전투.’
나네는 생각한다.
그러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저마다 다른 높이로 떠 있는 병사들이 공간에 박제되었다.
가히 인간의 범주를 까마득히 초월한 집중력.
‘바람의 검.’
어떤 것과도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탁월한 그 마력 효율이 또다시 검의 강박을 통해 극단적으로 치솟았다.
손바닥 위에서 탄생한 백광의 검이 흐릿하게 풀어지더니 순식간에 주위를 할퀴었다.
“크으으윽!”
치안1팀이 착용하고 있는 강철 갑옷에 수십 개의 스크래치가 생기자 치안2팀, 치안3팀이 뛰어들었다.
“잡아! 도망치게 두지 마라!”
무려 60명의 인원이 도주로를 차단했지만, 이는 나네라는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실수였다.
정말로 막아야 할 것은 육체가 아닌 그의 사유.
‘아아, 그렇구나.’
또다시 우주가 멈추고, 나네는 다름의 영역에서 수많은 개념들을 해체시켰다.
‘화염의 검. 빙결의 검. 전기의 검. 대지의 검.’
각각의 속성이 다르다.
‘난폭한 검. 부드러운 검. 추악한 검. 잔인한 검.’
속성이 같아도 느낌이 다르다.
‘예측할 수 없는 검. 그것을 예측하는 검. 그 예측을 깨는 검. 그것을 다시 예측하는 검.’
느낌이 같아도 기질이 다르다.
‘매 순간의 모든 것을 해체한다.’
순식간에 1천 개 이상으로 해체된 개념들이 발산하는 검의 스펙트럼은 어느 하나도 중복되지 않았다.
“이런 미친……!”
치안대장이 후퇴하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수많은 검이 사방으로 퍼졌다.
퍼어어어어엉!
마치 최초의 우주에서 모든 것이 폭발하는 느낌.
그로부터 3분 뒤 왕립 마법학교의 교사들이 도착했을 때는, 주변 일대가 나네를 중심으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결국 저질러 버렸군.”
단지 ‘다른’ 전투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1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나네가 모습을 감추고 2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나네는 쓰러진 주민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었다.
이유 따위는 없다.
만약 입는다는 개념이 또다시 나네를 어떤 범주에 묶어 두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벗어 버릴 테니까.
태연하게 강도 짓을 일삼는 모습에 분개한 교장이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나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너에게는 희망찬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거늘!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할 셈이냐?”
‘가문의 명예라…….’
나는 핏줄에 속박되어 있는 개념인가?
‘아니, 그런 게 아니지.’
나네는 달리아라는 성을 해체시켰다.
그리고 검지를 들어 한쪽 눈을 가린 다음 교장을 향해 검이 새겨진 혓바닥을 길게 빼냈다.
“히에에에에.”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해체하는 자.
사이키델릭 나네.
세상으로 (2)
***
오젠트 가문에서 휴식을 취한 시로네는 리안과 떠날 채비를 끝마쳤다.
강력한 경쟁자들과 상아탑 테스트를 치러야 하니 오래 쉴 수는 없는 일이었다.
3일의 휴식 기간에 수도에서 내려온 테스는 떠나는 두 사람을 위해 에이미와 함께 손수 도시락을 만들고 있었다.
“서운하지, 에이미?”
“…….”
언제나 에이미를 응원했던 테스였기에 시로네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분통이 터졌다.
“그러지 말고 얘기라도 좀 해. 기다리겠다든지, 다른 여자 만나면 안 된다든지, 언제 어디서 재회를 하자든지.”
테스가 가장 답답해하는 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약속도 오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에이미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 어차피 소용도 없는 일이니까.”
“왜 소용이 없어? 그런 말이라도 해야 남자가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되는 거야.”
주먹밥을 주물거리던 에이미의 손이 멈췄다.
“테스, 혹시 그거 기억해? 예전에 갈리앙트에 갔을 때 말이야.”
물론 잊을 리가 없었다.
앵무 도적단과 싸운 것은 물론 천국에 가서 기상천외한 일을 겪었던 여행이니까.
“그때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가끔 시로네가 희미하게 보일 때가 있다고.”
“그래, 기억나. 네가 그랬잖아. 시로네는 전지적 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다고.”
“상아탑에서는 그것을 카르라고 부른대. 자기 자신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능력.”
그렇기에 상아탑의 주민들은 별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흐음, 확실히 그런 면이 강하기는 하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이라는 말이 있잖아. 인간은 여전히 나라는 존재에 갇혀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시로네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