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9
‘이 아이…….’
상당히 빠르다.
길드가 처음이라는 것은 여태까지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보 카드를 전부 구입한다는 것은 앞으로 초심자가 겪어야 할 수많은 실수를 전부 뛰어넘는 결정이었다.
‘확실히 베테랑들은, 똑같은 판단을 했겠지.’
가식이 사라진 에스테라가 카드를 내밀었다.
“……가져가.”
스물여섯 장의 카드를 통째로 품에 넣은 시로네가 다시 에스테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리고 길드에 가입하고 싶은데요.”
이것 또한 옳은 판단이었다.
‘나이에 비해 태세 변환이 진짜 빠른데?’
마법사들에게 욕을 먹고 있던 게 불과 10분 전이라면, 임무 수행에 있어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는 성향.
실력은 미지수지만 마법사로 활동하기에는 상당히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었다.
“좋아. 이제 와 솔직히 말하지만, 길드에 가입하면 정말로 편한 게 많을 거야. 수수료도 훨씬 싸고, 무엇보다 B급 이상의 의뢰는 길드원에게만 제공하거든.”
시로네가 생각하는 것도 거기에 있었다.
“네. 그래서 저도 일을 좀 하고 싶은데요.”
돈을 주고 정보를 구입했다면 반대로 팔 수도 있다는 얘기.
특히나 실버링 길드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니 수도까지 가는 길에 본전을 채울 요량이었다.
“흐음, 구체적으로 원하는 일이 있어? 전투, 협상, 교육, 탐색, 운반 등 여러 분야가 있거든.”
“운반이 좋겠어요. 수도에 갈 예정이거든요.”
“아하, 딱 맞는 일이 하나 있어. 단가도 세고. 일단 마법사 자격증 좀 확인할 수 있을까?”
시로네는 비공인 자격증을 꺼냈다.
“여기요.”
테이블 위에 올려 두자 에스테라가 손수 집어 들고 살폈다.
“어라? 알페아스 마법학교? 여긴 5대명문인데.”
명문 학교 출신이 길드를 찾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이름이…….”
성명을 확인한 에스테라의 얼굴이 굳었다.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으나 아무리 확인해 봐도 그녀가 알고 있는 그 이름이었다.
“아리안 시로네! 네가 시로네라고?”
마침내 생각과 기억이 일치하면서 에스테라의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 뜨였다.
생업 전선에 뛰어든 지 오래인 그들이 일개 학생의 이름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지만 아리안 시로네는 특별했다.
말 그대로 왕국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운 학생이었고, 현재는 상아탑 후보군에까지 오른 인물이 아니던가?
리안이 만면에 미소를 드러냈다.
“후후, 결국 들켜 버렸나? 그래, 여기는 내 주군 아리안 시로네. 그리고 나는 마하의…….”
“뭐! 아리안 시로네라고!”
홀의 마법사들이 벌떡 일어났다.
설령 후보라도 일국의 대마법사에 준하는 실력자만이 별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솜털도 빠지지 않은 애송이처럼 보였던 시로네가 천장을 뚫을 만큼 커 보이는 기분이었다.
에스테라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격증을 살폈다.
‘이건 진짜다. 위조가 아니야.’
아리안 시로네가 실버링 길드에 가입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른 3대길드를 제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어떡하지? 잡아야 하는데. 아, 진짜! 마스터는 하필 이럴 때 외출을 해 가지고.’
에스테라가 생각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기에 시로네는 다시 한 번 확인을 요구했다.
“가입과 탈퇴는 자유로운 게 맞죠?”
“그럼, 물론이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하지만 너는 아니야.’
물론 붙잡고 싶다고 붙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또한 상아탑 테스트를 받는 중이라면 굳이 왕국 내의 길드에 가입할 이유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탈퇴할 이유도 없잖아?’
생각을 정리한 에스테라가 열쇠를 건넸다.
“일단 가입을 결정했으니 숙박을 제공해야겠지. 이걸 가지고 4층 3호실로 가.”
“네. 그런데 서류 같은 거 작성해야 하지 않아요?”
“호호호! 굳이 기다릴 필요 없잖아? 내가 이따가 방으로 가서 처리해 줄게. 맞다, 여기 자격증.”
골탕을 먹인 것이 있는 만큼이나 서비스의 질이 확 뛰었으나 시로네는 어차피 뒤끝이 없었다.
“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시로네가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법사들이 카운터로 몰려들었다.
“에스테라! 길드원 자격증 사본 좀 줄 수 있어? 아니, 나에게 팔아! 얼마야?”
증명 서류를 첨부하여 확인 등급으로 정보를 팔면 못해도 100골드 이상은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에스테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꿈 깨요. 지금부터 이 정보는 실버링 길드 켄트라 지부에서 독점합니다. 가서 술들이나 드셔.”
마법사들이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으나 걸어간 곳은 홀이 아닌 출구였다.
상아탑의 후보가 있는 위치라면 추정 등급의 정보만으로도 상당한 값을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길드의 신뢰였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시로네의 위치가 왕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
시로네가 들어간 4층 3호실은 침대가 무려 7개나 구비되어 있는 큰 방이었다.
“이렇게까지는 할 필요 없는데.”
낭비라는 것은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지만, 실버링 길드의 의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는 탁월했다.
“어쨌든 잘됐지. 공짜니까.”
리안이 그렇게 말하고 드러눕자 맞은편 침대에 앉은 시로네는 길드에서 구입한 정보를 꺼내 읽었다.
“맞다, 카드를 샀었지. 어때? 쓸 만한 정보라도 있어?”
시로네가 카드를 읽고 내려놓자 리안이 침대로 다가와 한 장씩 확인했다.
“어디 보자, 라 에너미는 마법사로 추정…….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물론 어떤 이에게는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겠지만 리안은 2골드가 아까울 뿐이었다.
나름 주목할 만한 정보도 있었다.
“카즈라 왕국의 마법학교에서 졸업한 것으로 추정. 신장 175에서 180센티미터 사이로 의심. 상아탑의 인물을 만났으리라는 소문. 어라?”
다음 카드를 읽은 리안이 미간을 찡그렸다.
“라 에너미는 귀머거리라는 소문?”
그러고는 카드를 이불보에 패대기쳤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보를 팔아도 되는 거야?”
“그런데 다른 카드에도 유사한 정보가 있어.”
시로네가 몇 장의 카드를 추려서 보여 주었다.
“라 에너미는 장님이라는 소문. 희귀병을 앓는 것으로 의심. 벙어리라는 소문. 네가 본 것까지 해서 전부 다른 정보 제공자들이야.”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네. 하지만 어떤 정보는 분명 거짓일걸. 마법사인 것은 추정 등급이잖아.”
“나도 쉽게 믿기는 어렵지만, 무시하기도 애매해. 만약 사기를 친 거라면 길드에서 탈퇴당하고, 심할 경우에는 보복도 당할 수 있지 않겠어?”
그렇게 따지면 정보 제공자도 목숨 내놓고 파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런 건 어때? 애초부터 소문 등급의 정보는 쓰레기였던 거야. 그러면 보복은 없겠지. 게다가 원래 소문이라는 건 나오는 대로 지껄여도 되는 거잖아?”
리안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런가? 확인 등급은 증거가 있어야 하고, 추정은 아마 그 증거를 눈으로 확인한 정도일 거야.”
“그렇다면 의심은?”
“관계자의 말을 들은 정도의 신뢰도 아닐까? 그렇게 따지면 소문은 누가 들은 것을 들은 거네.”
“……정말로 가치 없군.”
“하지만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해 봤을 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알아냈어.”
시로네는 카드에 적힌 라 에너미를 가리켰다.
“일단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 특히나 카즈라는 현재 국경을 폐쇄한 상태거든.”
시로네의 친자 확인 소동이 원인이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어떻게 카즈라의 정보가 토르미아까지 흘러든 거지?”
“그게 바로 핵심이지. 타국의 길드원도 충분히 추정 등급의 정보를 얻어 내고 있어. 따라서 상아탑은 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게 아니야.”
시로네의 생각은 확신에 가까웠다.
“알고도 찾지 못하는 거지.”
그 기묘한 모순 속에 숨어 있는 존재.
“알고도…… 찾지 못한다고?”
그것이 바로 라 에너미였다.
그들이 사는 방식 (3)
리안은 시로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것이야말로 시로네가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길드에 오기를 잘했어.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
“흥, 라 에너미는 그렇더라도 길드는 동의 못 하겠는걸. 물론 나는 너를 인정하지만, 고작 네 이름만 듣고 벌벌 떨 정도라면 신경 쓸 것 없어.”
리안은 1층에서 느꼈던 불만을 털어놓았다.
“정보 카드도 그래. 아무도 열람을 안 했다고 말하지만 누가 알겠어? 내일 우리가 떠나면 다시 2골드에 팔지.”
“하하!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시스템이라면 쉽게 속이지는 못해. 우리가 의심한다는 건 모두가 의심한다는 거니까.”
“흠, 그래도 한 번 열람했다고 50실버나 떨어진다는 건 손해잖아. 몇백 장을 살 때는 어떡할 거야?”
“나는 그래도 사겠어.”
시로네는 정보 카드를 손에 쥐었다.
“사람들은 보통 긴 시간을 막연하게 여기지. 예를 들어 1년 동안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1년이란 시간도 결국 1초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야.”
“그렇기는 하지.”
“우리가 라 에너미를 찾는 일에 1년 하고 30분이 걸린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사람은 1년 29분이 걸린다면 어떨까?”
리안이 눈을 깜박거렸다.
“너무 먼 미래라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어.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게 우리들의 세상이고.”
시로네는 카드를 세웠다.
“1분의 차이. 정보를 하루라도 먼저 열람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려. 단 1분으로 1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면 50실버를 더 주는 건 손해가 아니야.”
그것이 이 세계에 사는 자들의 철학.
누구도 길을 제시해 주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다.
‘너무 어렸어.’
그동안 얼마나 유능한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었는지, 그들이 있어서 얼마나 쉬울 수 있었는지 새삼 느껴졌다.
시로네는 카드를 침대에 던졌다.
“물론 휴식도 중요하지. 1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달릴 수는 없어. 수많은 옳은 판단을 내려야 할 거야.”
“사소한 것에 집착하다가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거로군. 그래서 정보 카드를 전부 구입한 거고.”
“응. 어떤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몰라. 아마 다른 길드의 마법사들도 비슷한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때 에스테라가 노크했다.
“시로네, 안에 있어?”
“네, 들어오세요.”
말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 그녀가 길드 가입 신청서와 펜을 가지고 들어왔다.
“필요한 양식은 내가 다 적었어. 확인하고 여기 서명만 해 주면 돼.”
시로네는 약관을 살펴보았다.
길드원 등급은 루키, 시니어, 베테랑A, 베테랑B로 나뉘는데 수수료는 물론 혜택도 천차만별이었다.
“흐음.”
시로네가 루키 등급을 살펴보고 있자 눈치 빠른 에스테라가 부연 설명을 했다.
“길드에서는 단연 최고의 대우를 약속할 거야. 다만 그렇다고 해도 길드원 등급을 마음대로 올릴 수는 없어. 이건…… 길드원들에게 있어서 삶과도 같은 거니까.”
등급이 높아질수록 돈을 벌기가 수월해지는 것은 물론 명예와도 직결되어 있는 문제였다.
“괜찮아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솔직히 길드 등급을 올려 주는 특혜를 제시했다면 신뢰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대신에 네가 맡는 의뢰에 들어가는 모든 부대 비용을 길드 쪽에서 지불할게. 만약 길드에 예금을 할 거라면 금리도 파격적으로 올려 줄 수 있어.”
시로네는 솔직하게 말했다.
“에스테라 씨, 사실 저는 실버링 길드에서 오래 활동할 생각이 없어요.”
“알고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법사들은 다들 그렇거든. 탈퇴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제시한 계약 조건은 5년간 지속될 거야. 타국의 길드라면 복수 가입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에스테라가 원하는 건 아리안 시로네가 실버링 길드에 가입했다는 것을 증명할 문서 한 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왕국 3대길드인 전쟁마차, 블러드로즈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까.
시로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딱히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국 내라면 길드가 확실히 편하니까.’
펜을 넘겨받은 시로네가 물었다.
“그래도 탈퇴는 자유로운 거죠?”
“물론이지. 나도 마법사야.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아.”
물론 시로네를 붙잡을 가능성이 적다고 해도 순순히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매니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진짜 승부는 시로네가 실버링 길드의 본점이 있는 바슈카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아, 그리고 의뢰 말인데.”
에스테라는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어차피 길드 활동이 목적은 아니지? 그렇다면 이게 가장 수월할 거야. 보상도 높은 편이고.”
“편지를 전달하면 되는 건가요?”
“응. 주소에 적힌 곳으로 가서 부룩스라는 사람에게 직접 건네주면 돼. 안에 확인증이 동봉되어 있으니까 그 사람의 서명을 받아서 수도에 있는 실버링 길드로 가. 그러면 87골드를 줄 거야. 물론 수수료를 제한 금액이야.”
“87골드? 굉장히 많이 주네요.”
단지 편지를 전달하는 대가치고는 그랬다.
“의뢰비가 꼭 위험도에 따라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 목숨 걸고 싸우는 것보다 귀족이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게 더 의뢰비가 높은 경우도 있어.”
“그렇군요.”
“물론 이런 의뢰는 아무에게나 맡기지는 않아. 그리니 길드의 신뢰를 보인다는 의미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열어 봐도 돼요?”
남의 편지를 읽는 취미는 없으나 밀봉이 되어 있지 않았기에 나중에 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상관없어. 의뢰자가 일부러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더 의심받기 때문에?”
꽁꽁 숨겨 둘수록 파헤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었다.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달렸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을 수도 있고. 하지만 이번에는 네 추측이 맞을 거야. 편지는 암호로 작성되어 있거든. 개인이 만든 암호라 나도 못 읽어.”
“암호라.”
아무리 편한 의뢰라고 해도 87골드의 위험도는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