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80
“알겠어요. 수도에 도착하면 전할게요.”
에스테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몇 시에 출발할 거야? 우리 쪽에서 집마차를 대기시켜 놓을게.”
“네? 그렇게까지는…….”
시로네가 알기로 가장 낮은 등급의 집마차도 하루 대여료가 10골드가 넘었다.
“괜찮아. 아까 말했잖아, 모든 부대 비용은 길드에서 지불한다고.”
시로네의 이름값이면 본전을 뽑고도 남지만, 그것보다도 실버링 길드의 본점으로 자연스레 유도하려는 계산이 더 컸다.
최대한 효율적인 여행을 하기 위해 길드에 가입한 것이기에 시로네도 사소한 것은 따지지 않았다.
“우리는 내일 해가 뜨면 바로 출발할 거예요.”
“좋아.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할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날 찾아와.”
에스테라가 나가자 시로네와 리안은 서로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모든 게 편했다.
***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난 두 사람은 몸을 씻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길드원은 출근하기 전이었고 뒷문 바깥의 공터에 소형 집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에스테라가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50대의 남자를 대동하고 다가왔다.
“소개할게. 이번에 수도까지 안내할 길드원 오스틴 씨야. 나이는 53세. 전공은 화염 계열. 길드 등급은 베테랑A.”
“안녕하세요. 시로네입니다.”
“오스틴이네. 잘 부탁하네.”
깡마른 체구에 강강한 인상이 고집스러운 인생을 말해 주고 있었다.
“바로 출발할 테니 마차에 타게나.”
시로네와 리안이 마차로 들어가자 오스틴이 눈을 부라리며 에스테라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게 뭐 하는 게야? 나더러 어제 가입한 루키의 마부나 하라고?”
“그냥 루키가 아니잖아요.”
시로네가 누구인지는 오스틴도 알고 있으나 30년 넘게 마법사로 살아오면서 쌓아 온 자부심은 그리 쉽게 꺾이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왜 나야? 다른 놈들도 있잖아.”
“어휴,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실까? 마부나 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로네를 본점으로 데려가라고요. 그러면 길드도 확장되고, 오스틴 씨에게도 좋은 거 아니에요? 보수는 톡톡히 드릴게요.”
“내가 돈 때문에 이 나이 먹고 실버링에 붙어 있는 줄 알아? 설령 대마법사라도 내 인생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어.”
고집을 꺾지 않자 에스테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스틴 씨, 혹시 대마법사 본 적 있어요?”
“없지.”
“그래요. 저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에스테라가 어금니를 문 채로 말했다.
“우리 둘 다 닥치고 그냥 하면 안 될까요? 저도 지금 피가 마르거든요!”
30년을 길드에 몸담은 사람을 매몰차게 대할 생각은 없지만 시로네라면 얘기가 달랐다.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뜻.
예상을 넘어서는 괄시에 오스틴은 입술을 깨물었으나 결국 처연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알았네.”
돈이 전부인 세계라는 것을 베테랑A가 모를 리 없었다.
“죄송해요. 한숨도 못 자고 준비하느라 신경이 예민해졌나 봐요.”
에스테라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으나 일은 일이었다.
“고생하는 거 알아. 매니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부석에 탑승한 오스틴이 안장을 정비하더니 여객 칸의 창문을 열고 말했다.
“그럼 출발하겠네. 가장 빠른 길로 갈 테니 편하게 쉬게나.”
“네, 감사합니다.”
눈치가 없는 시로네가 아니었으나 어떤 말을 해도 오스틴의 속만 건드릴 것이기에 고분고분 쉬어 주는 게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켄트라 도시를 떠난 마치는 네이드의 고향인 사디아의 넓은 평야를 지나 지저 산맥의 끝자락에 진입했다.
수도까지 3시간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응?”
한 번도 멈추는 일 없이 마차를 몰던 오스틴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랄 것이 드러났다.
“뭐야?”
부상을 당한 듯 비틀거리는 여자가 마차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오스틴은 멀찌감치 말을 세웠다.
‘도시에서 꽤 먼 곳인데, 어째서 사람이…….’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마차를 발견한 여자가 찢어진 옷을 한 손으로 붙잡고 달려왔다.
“멈춰라!”
오스틴의 손에 불덩어리가 피어올랐다.
그럼에도 여자가 멈추지 않자 중간 지점에 불꽃을 던졌다.
“꺄악!”
이번에는 두 손으로 파이어볼을 장착한 오스틴이 소리쳤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내 화염 마법에는 자비가 없으니!”
시로네와 리안이 마차의 양쪽에 설치된 문을 열고 내렸다.
“무슨 일이에요?”
“들어가 있게. 사소한 문제일세.”
시로네가 보기에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친 것 같은데요?”
“다치긴 했지. 하지만 우리가 다친 건 아니야.”
베테랑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시로네도 알고 있었기에 접근하는 대신 손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저기요! 무슨 일이 있나요?”
불의 장벽 앞에 주저앉아 있던 여자가 소리쳤다.
“도적단에게 납치당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도적단이 있다고?”
그렇다면 이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내가 가 볼게.”
오스틴이 파이어볼을 피운 상태로 엄호하는 가운데 리안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다 찢어진 상의 한 장을 걸치고 있었고, 산을 굴렀는지 긁힌 자국이 많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여자가 리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했다.
“저만 겨우 빠져나왔어요! 빨리 여기서 도망쳐야 해요! 절 쫓아올 거예요!”
리안이 결정을 맡긴다는 듯 마차를 돌아보자 시로네가 오스틴에게 물었다.
“같이 태울 수 있을까요?”
“마차를 대여한 사람은 자네들이니까. 하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네.”
“저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의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저 여자의 말이 사실이든 거짓말이든, 상관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지.”
어쩌면 그것이 길드 출신의 신념.
“하지만 정말로 도적단이 있다면 우리도 피해서 가야 하잖아요?”
거기에 대해서는 오스틴도 주장할 말이 없었다.
“리안!”
시로네가 신호를 보내자 리안이 여자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일단 마차에 타세요. 얘기를 들어 보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여자가 서럽게 눈물을 쏟아 냈다.
그들이 사는 방식 (4)
헝겊 같은 옷을 걸친 여자의 낯빛은 겨울의 추위와 맞물려 정말로 좋지 않아 보였다.
“괜찮아요? 일단 들어오세요.”
시로네가 권하자 여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로 걸음을 옮겼다.
“흥, 하여튼 젊은것들은…….”
오스틴이 손에 붙은 불을 꺼트리며 투덜거렸다.
군데군데 상처가 났지만 여자는 육감적이었고 얼굴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도적의 타깃이 되기에 충분했으나, 시로네와 리안처럼 젊은 혈기의 눈을 속이기에도 좋다는 게 문제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시로네가 마차에 탑승하자 여자가 바짝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제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도적들이 저를…….”
시로네가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보다 묻고 싶은 건…….”
“잠깐, 시로네.”
리안이 마차 밖에서 말했다.
“나는 이 여자가 네 옆자리에 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네가 동의한다면 말이야.”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로네를 지키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것도 양보할 수 없었다.
오스틴과 리안의 차가운 태도를 깨달은 여자는 유일하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시로네의 팔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맞은편에 앉으세요. 어차피 마차는 넓으니까요.”
“아, 네.”
오스틴의 말을 떠올린 시로네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는 벽 쪽으로 이동해 두 사람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아야!”
살며시 옷고름을 풀고 쓰라린 피부를 어루만지는 와중에도 시로네와 리안은 당황하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들 남자 맞아? 보통 이 정도로 들이대면 못 이기는 척 받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의심했다면 처음부터 마차에 타게 해 주지도 않았을 것이니 경계심이 높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었다.
‘하긴, 나이는 어려도 상당히 강한 마법사라고 했으니.’
마부가 있는 쪽의 창문을 열어 둔 상태로 마차가 출발한 뒤에야 시로네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자신을 마리라고 소개한 여자는 수도에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길에 도적에게 잡혔다고 털어놓았다.
“숫자는 얼마나 되죠?”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100명은 넘을 거예요.”
오스틴이 고개를 홱 하고 틀었다.
“뭐? 100명이라고?”
백 단위가 넘어가는 규모라면 도적 중에서도 상당히 세력이 큰 조직이었다.
무엇보다 마법사를 보유한 부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가장 신경이 쓰였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지?”
여자가 마차의 측면을 가리켰다.
“아직 도망친 것을 모른다면 산 너머에 있을 거예요. 똑바로 산을 타서 내려왔으니까요.”
‘가는 길에 마주치겠군.’
우회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베테랑답게 오스틴은 신중했다.
“어떻게 할 텐가? 도적단을 피하려면 지금 결정해야 하네.”
시로네가 마리에게 물었다.
“그들이 도망친 것을 모를 수도 있나요?”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잡혀 있었어요. 그리고 제 친구들도…….”
마리가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로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투를 피할 것인가, 인질들을 구할 것인가.
“이대로 가죠. 일단 붙잡힌 사람들을 구해야겠어요.”
“네?”
마리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사라고 해도 고작 3명으로 100명이 넘는 부대에 쳐들어간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마리 씨의 친구들도 구해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마리 씨까지 데려가는 건 아니니까요.”
“아, 아니에요. 친구들을 구하는 일인데…….”
마리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으나 황급히 태세를 바꾸어 양심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하지 말아요. 꼭 친구들을 구해 줄게요.”
걱정해야 하는 건 있지도 않은 친구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로네의 얼굴에서는 긴장감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그렇게 강한가? 나보다 어린데…….’
마리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시로네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
지저 산맥의 산등성이에는 수도에서 악명 높은 붉은칼 도적단 89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와?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보고드립니다!”
전령이 말을 타고 도착했다.
“아리안 시로네가 타고 있는 마차가 연합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붉은칼 도적단의 단장 콜드파크가 얼굴을 찌푸렸다.
“쳇, 역시 꽝인가.”
이번 작전의 주체이자 애첩 마리까지 미끼로 던진 자로서, 거금을 독차지할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돌아가자. 연합과 합류한다.”
전원 말을 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붉은칼 도적단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중에 마법사이자 참모인 뱅커가 콜드파크의 옆으로 말을 몰았다.
“연합 쪽으로 가고 있다는 건 싸우겠다는 얘기. 소문대로 강력한 마법사인 것 같습니다.”
시로네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전투를 택하든 우회를 택하든 도적단은 두 길목 모두를 통제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붉은칼 도적단 외에도 수많은 도적단들이 이번 작전에 참가했기 때문.
다만 마리가 시로네 일행에게 겁을 잔뜩 주어 마차를 이곳으로 우회시킨다면 전리품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로네가 전투를 택한 것으로 무산되었다.
부단장 알파사가 콜드파크의 왼편으로 다가왔다.
등 뒤에 대형 양날도끼를 메고 있는 그는 팔짱을 낀 상태에서 오직 허벅지 근육만으로 말을 몰고 있었다.
“상아탑 후보라고 들었는데요. 아무리 연합을 했더라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스키마의 고수들로 이루어진 토르미아 왕국 3대도적단 중의 하나라고 해도 전멸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굳이 이런 거물을 상대하지 않더라도 영업은 잘되어 가고 있습니다. 부하들도 납득이 안 가는 눈치입니다.”
붉은칼의 자부심은 군대에도 뒤지지 않지만, 알파사 본인부터가 의문이라면 단원들은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