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81
“뱅커,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말해 줘라.”
콜드파크의 지시에 뱅커가 각지의 길드에서 수집한 정보를 한데 모은 두루마리를 꺼냈다.
“아리안 시로네. 알페아스 마법학교 졸업생으로 확인. 아르망이라는 오브제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 카즈라 왕족에게서 받았다는 소문. 시가를 따졌을 때 최소 60억 골드가 넘을 것으로 의심.”
“60억 골드…….”
알파사와 단원들의 눈빛이 대번에 변했다.
“이제 알겠냐? 우리가 다시 태어나서 도적질을 해도 벌지 못하는 돈이야. 상아탑이 왕족도 팬다는 소문이 있지만, 어차피 조직의 힘이야. 고작 스무 살짜리 손가락 하나 자르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도적이야?”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시로네의 아르망은 큐브릭에 들어 있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었다.
콜드파크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돈, 여자, 쾌락에 환장한 놈들아! 언제는 목숨 챙겨 가면서 도적질했냐? 떼돈 벌기 싫은 놈들은 지금 빠져!”
두두두두! 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중에 길을 이탈해 멀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산등성이 꼭대기에서 말을 세운 콜드파크가 산 밑에 깔린 병력을 내려다보며 입가를 찢었다.
“붉은칼 역대 최고의 전쟁이다.”
지저의귀, 야수살쾡이, 창과죽음, 혈의주.
바슈카 인근에서 내로라하는 도적단 4개가 연합한 237명의 병력이 산등성이 아래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가자, 얘들아! 60억 골드가 우리를 기다린다!”
***
마차가 랑데부 포인트에 가까워지자 마리는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여기서 해치워야 하는데…….’
옷을 가볍게 한 이유는 미인계가 주목적이지만,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게 만들려는 전략도 깔려 있었다.
제정신이라면 벗은 여자의 몸을 수색하겠다고 나서는 남자는 없을 테니까.
일단 수면 가스를 살포하면 마정탄을 장착한 화살이 마차를 초토화시킬 테고, 콜드파크가 오브제를 독점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어때, 이런 건 처음 보지?’
미인계로 여기까지 올라온 그녀였기에 눈을 감고 있어도 보통의 숙맥들의 반응은 훤하게 꿰고 있었다.
‘후후, 역시…….’
마차의 진동에 놀란 듯 살짝 눈꺼풀을 열자 시로네가 처음과 똑같이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형적인 애송이 타입. 배려는 고맙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텐데?’
속으로 키득거린 마리는 다시 잠에 빠지는 시늉을 하며 몸을 반대편으로 틀었다.
‘슬슬 시작을…….’
그때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자신을 관찰하는 리안을 확인하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뭐지? 우연인가?’
확인할 필요를 느낀 그녀가 이번에는 제대로 눈을 마주쳤으나 리안의 시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보고 있네. 제길.’
다년간의 훈련과 연습으로 이루어진 동작이었기에 의심은 하지 않을 테지만, 이런 식이라면 가스 살포는 불가능했다.
‘더 이상 기회는 없어. 여기서 승부를 내야…….’
가장 위력적인 자세를 취한 마리는 눈꺼풀을 아주 살짝만 들어 올려 속눈썹 사이로 앞을 주시했다.
이것 또한 고등 스킬이었으나, 리안은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경계 태세를 이어 나갔다.
‘짜증 나. 도대체 이것들 뭐야?’
미인계는 실패하지 않는다.
인류의 절반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100퍼센트에 가까운 성공률이라는 것은 역사가 보증하고 있었다.
‘나는 여자도 아니다 이거지?’
숙련된 기술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만큼 자존심이 상한 그녀였으나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이제 곧 폭격이 시작될 텐데.’
삐리리리. 삐리리리.
산 정상 쪽에서 새들이 지저귀자 오스틴이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길하군.’
새소리 피리로 신호를 보내는 것은 도적단의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실제 새소리와 구분이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앞으로 10초.’
피리 소리에 담긴 신호의 뜻을 알고 있는 마리는 폭격까지 남은 시간을 쟀다.
‘9초. 8초.’
“마리 씨.”
여태까지 창밖을 바라보던 시로네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마리를 똑바로 응시했다.
속눈썹 사이로 확인한 시로네의 얼굴은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무엇을 숨기고 있죠?”
시로네의 질문에 손가락 끝이 움찔했다.
‘호흡. 호흡을 조절해야 돼.’
수많은 연습 끝에 도달한 경지지만 시로네의 확신 어린 눈빛 앞에서는 심장이 통제되지 않았다.
‘제길! 한 박자 놓쳤다. 이미 들켰어.’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갑자기 몸을 틀더니 마부석의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4초! 3초!’
마리가 마차 밖으로 몸을 날리는 것을 보고서도 오스틴은 짜증을 내는 대신 하늘부터 살폈다.
행글라이더를 이용한 궁수 부대가 산의 고지대 너머에서부터 날아들고 있었다.
“기습이다! 빨리 피……!”
뒤돌아 소리쳤을 때는 이미 여객 칸이 비어 있었다.
‘2초. 1초.’
수십 발의 화살이 쇄도하는 가운데 오스틴의 뒷고대를 붙잡은 시로네가 마차를 박차고 뛰어내렸다.
반대편 문으로 빠져나온 리안이 경이로운 가속도로 마리의 목을 베어 버리는 순간.
퍼어어어어엉!
마정탄의 폭격에 맞은 집마차가 폭발했다.
“크윽!”
공기의 팽창에 산비탈 쪽으로 날아간 시로네와 오스틴의 귀에 말발굽 소리가 밀려들었다.
수십 명의 기마병이 산길을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전투 개시! 전부 죽여 버려!”
파이어볼을 장착한 오스틴이 투덜거렸다.
“쳇! 역시 함정이었나?”
“그래도 잡힌 사람이 없는 건 다행이네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짜증을 부릴 새도 없이 산비탈 쪽에서 ‘창과죽음’ 도적단 수십 명이 창을 겨눈 채 뛰어내렸다
“60억은 우리 것이다!”
“위험해!”
오스틴이 손을 내미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로브에서 수백 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카마이-만개.
“크윽! 뭐야!”
안티테제로 행동의 의지를 상실한 창병들이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후두두 떨어지더니 땅바닥을 굴렀다.
삶의 공기 (1)
“어, 어떻게……!”
오스틴은 베테랑이다.
30년 동안 수많은 의뢰를 완수했고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그리 대단한 모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추악하고 역겨운 일들은 오히려 평범한 삶의 장막에 숨어 있는 법이다.
그의 인생을 책으로 엮는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광인의 일기장 혹은 포르노 소설 정도로 치부하겠지만, 그가 겪은 일들은 분명 현실이었고 어지간한 일에는 심장이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10년지기 친구가 이유 없이 자신을 칼로 찌른다 해도 의심하지 않고 소매에 감춘 단도로 그의 목을 날려 버릴 터였다.
‘괴물인가?’
시로네의 로브에서 수백 개의 눈동자가 튀어나오는 광경을 봤을 때 오스틴은 오랜만에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갈비뼈가 아팠고, 생소한 신경 작용이 뇌를 어지럽혀 현기증마저 일 정도였다.
“크으으! 이게…… 뭐야……!”
바닥에서 꾸물거리던 창과죽음 도적단이 두 팔을 부들거리며 일어서자 시로네는 그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티테제 상태에서 움직인다고?’
비록 위력을 수백분으로 쪼개어 방사시키기는 했지만 그의 상식선에 있는 도적단이라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저기다! 저 녀석을 죽여!”
또 다른 창병들이 건너편 산비탈에서 뛰어내려 왔다.
도약의 높이만 보더라도 스키마의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스틴이 손에 화염을 피우며 소리쳤다.
“조심해! 창과죽음 도적단이다!”
창병만으로 구성된 그들은 토르미아 국정원에서 비밀리에 훈련시킨 대對카즈라 침투 간첩들이었으나 외교적인 문제로 유령 부대가 되어 버린 것에 분개해 도적단으로 탈바꿈한 전투 엘리트들이었다.
“저 눈깔을 막아!”
결과를 중시하는 군인의 사고방식답게 그들은 해법을 찾아냈고, 필사적으로 안티테제를 이겨 내며 인간의 장벽을 쌓았다.
후발대 병력이 창을 꼬나들고 동료의 틈새 사이사이로 창을 찔러 넣자 20개의 창이 마차의 빗살처럼 교차하며 시로네를 관통했다.
‘제길, 끝났어.’
이미 자리를 벗어난 오스틴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창병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엄청나게 빠른 빛의 장막이 폭발했다.
“으아아아아!”
다중 광폭에 끼어 버린 창병들의 몸이 마음대로 뒤틀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못 박혀 있는 시로네가 몸의 중심을 낮추자 양쪽 어깨에서 거대한 빛의 날개가 펄럭였다.
“쏴! 모조리 퍼부으란 말이야!”
시로네의 시선이 하늘에 떠 있는 지저의귀 도적단을 겨누었다.
지저 산맥의 지형과 지물을 이용해 다양한 전투 방식을 갖춘 자들로, 하늘에서 쏘아 대는 마정탄은 분명 위협적이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마정탄에 산길이 파괴되고 마침내 폭발이 완전히 풍경을 뒤덮어 버리는 그때, 시로네가 광익을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쏴! 쏴! 쏴!”
지저의귀의 단장이 날아오는 시로네를 향해 연사를 퍼붓자 뒤따라 수십 발의 마정탄이 쇄도했다.
광익을 전방으로 펄럭이며 정지하자 거의 고체처럼 단단해진 풍압에 마정탄이 중간 지점에서 폭발했다.
“저, 저런……!”
바람의 여파는 행글라이더마저 불안정하게 흔들었고, 이어서 수십 발의 포톤 캐논이 섬광처럼 쭉쭉 뻗어 나갔다.
퍼펑! 퍼퍼퍼펑!
마치 쇠구슬이 처박히는 것과 같은 위력에 도적단은 땅에 처박히기도 전에 사망했고, 60명에 달하는 병력이 전멸당하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게 무슨 마법이야?”
섬광이 빗발치는 공중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오스틴은 갑자기 두 발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이어서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야수살쾡이 도적단의 클로가 눈앞을 스쳤다.
뒤를 돌아본 그는 리안이 허리를 붙들고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허우적거렸다.
“내려 주게! 나도 싸워야…….”
“가만히 있으세요.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지저 산맥의 험지에 둥지를 튼 야수살쾡이의 움직임은 가히 동물적이어서 마법사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리안은 한 손만으로 대직도를 휘둘렀고, 씽씽 공기가 갈라질 때마다 살과 뼈가 절단되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죽여! 놓치지 마!”
아치를 그리며 고양이처럼 도약하는 야수살쾡이였으나 리안은 관성을 무시하는 움직임으로 후퇴하며 눈앞의 적을 하나씩 해치웠다.
그렇게 100미터를 물러서자 야수살쾡이 도적단의 시체가 일렬로 길게 늘어선 풍경이 드러났다.
압도적인 능력의 차이는 오히려 모든 전투를 쉽게 보이게 만들었고, 오스틴은 숫자의 과학을 무시하는 결과에 섬뜩했다.
‘이건 그냥 학살이잖아.’
“우오오오오!”
고막이 터질 정도로 거대한 기합에 오스틴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자 붉은칼 도적단의 부단장 알파사가 대형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이 녀석은 다르다.’
잡다한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스키마의 능력으로 싸우는 정통파 스타일.
리안이 대직도를 세우고 일격을 받아 내자 알파사가 또다시 괴성을 지르며 코뿔소처럼 밀고 들어왔다.
“전부 붙어!”
이어서 10명의 단원들이 알파사의 등에 밀착하여 밀어붙이자 대직도를 붙잡은 팔이 구부러지며 리안의 두 다리가 땅에 끌렸다.
“흐으으읍!”
돌진이 끝났을 때는 무려 20미터나 밀려난 뒤였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알파사는 지지대에 기대지도 않은 채로 11명의 무게를 지탱하는 리안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인간의 완력이 아니다.’
힘에서는 결코 뒤져 본 적이 없는 알파사였으나 차이를 인정하는 데에는 반발심조차 들지 않았다.
오스틴이 마법을 시전할 낌새를 보이자 알파사의 시선이 그를 겨누었다.
“크윽!”
눈의 기술 프레싱.
확실히 왕국 3대도적단의 부단장답게 강력한 위력이었고, 그 상태로 팽팽한 힘의 대치가 이루어졌다.
“밀어! 계속 밀어붙여!”
누군가가 소리치자 단원들이 스키마의 기술 접기를 발동했다.
베이스 스키마를 반으로 접는 것으로 근력이 2배로 뛰자 어마어마한 힘이 밀려들었다.
“크으으으으!”
고통스러운 쪽은 리안이지만 두려운 건 오스틴이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버티는 거지?’
비로소 깨달은 사실은, 근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밀어낸다.’
신적초월의 의지가 리안의 육체를 지배하면서 조금씩 팔이 펴지기 시작했다.
접기를 발동한 11명의 육체를 오직 한 팔로 밀어내는 리안의 모습에 등골을 타고 전율이 치밀었다.
‘벤다!’
툭 하고 대형 도끼의 이빨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리안의 검이 도끼날을 가르면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알파사는 머릿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말도 안 돼에에에에에!’
서로 무기를 맞대고 있는 상태에서 칼날을 벤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아니, 어째서 내 도끼만 베이는 거지?’
같은 힘이라면 리안의 검도 이빨이 나가야 한다.
마치 천천히 종이를 자르듯 대직도가 도끼를 가르고 다가오자 알파사는 정신이 혼미했다.
죽음을 목전에 두자 모든 감각이 열리면서 결코 눈으로 볼 수 없는 환영이 육감을 통해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도끼를 쪼개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