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82
리안의 모습이 사라지고 끝없이 펼쳐진 세계가 보였다.
그 세계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엄청난 속도로 밀려들고 있었다.
‘세상이 쪼개지고 있다.’
신적초월-절강.
“……마.”
대직도가 절반 이상 가르고 들어올 무렵 세계의 분절이 눈앞으로 닥쳐왔고, 알파사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밀지 마, 이 멍청이들아!”
마하.
거대한 의지가 세상을 둘로 쪼개는 것을 봤을 때는 실제로 알파사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진 상태였다.
쿵! 하고 대직도가 땅으로 떨어지자 두 명의 단원들이 추가로 갈라졌다.
오스틴을 떨어뜨린 리안이 대직도를 양손으로 잡고 사선으로 긋자 남은 8명이 동시에 토막으로 변했다.
“후우우우.”
숨을 고르는 리안의 모습에 오스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귀신이라고 답해도 고개를 끄덕였을 테지만, 리안은 그저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시로네와 붉은칼 도적단의 전투가 마무리되어 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끝났군.’
마법사 뱅커는 얼굴이 없는 채로 대자로 드러누워 있었고, 단장 콜드파크만이 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중이었다.
“무슨 마법사가……!”
스키마의 검격을 이리도 유연하게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아르망으로 강화된 신경계와 쿠젠의 신진대사 활성화가 더해지자 콜드파크의 검은 시로네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잔당이 달려와 포위했으나 이미 시로네는 자리를 뜬 뒤였다.
빙글빙글 돌며 물러선 시로네의 오른손에 마력 증폭을 통한 포톤 캐논이 압축되자 사람의 몸통만 한 빛의 구체가 탄생했다.
핏기가 사라진 도적단 쪽으로 팔을 휘두르자 굵은 섬광이 휘어지듯 날아와 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
땅을 통해 진동이 전해지고, 파편이 튄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다! 공격해!”
벼랑 위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혈의주 도적단이 그들을 있게 만든 7명의 마법사와 48명의 궁수들을 앞세워 시로네를 겨누었다.
평균보다 2배는 무거운 화살이 먼저 바닥에 꽂히고, 하늘로 날아오른 시로네를 향해 마법사들이 손을 내뻗었다.
“저, 저게 뭐야?”
불과 냉기가 이글거리는 마법은, 시로네의 몸에서 피어오른 거대한 빛의 천사의 모습에 쏘아지기도 전에 약해졌다.
화신술-천사의 징벌.
“쏴! 쏘란 말이야, 멍청이들아!”
혈의주 단장이 지시를 내렸으나 거대한 창을 쥐고 있는 천사의 팔이 그보다 빠르게 휘둘렸다.
“아…….”
오스틴은 똑똑히 보았다.
가장 선명했다가 먼지처럼 흩어지는 한 줄기의 섬광을.
퍼어어어어엉!
굉음에 정신이 나가 버리고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찾았을 때,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서 있던 절벽 하나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을 깨달았다.
도망친 자들도 있겠지만 300명이 넘었던 도적단 중에 9할은 시체가 되어 이곳에 남아 있었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오직 생존을 위해 살았던 30년의 연륜은 오히려 이 순간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붉은칼 도적단은 왕국 3대도적단 중의 하나였고 지저의귀, 야수살쾡이, 창과죽음, 혈의주 도적단도 수도에서는 A급에 속하는 범죄자 집단이었다.
고작 2명이서 5개의 거대 도적단을 전멸시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오스틴 씨. 혹시 대마법사 본 적 있어요?
에스테라의 목소리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니, 자네가 틀렸네.’
실제로 확인한 대마법사는 그녀의 상상조차 초월하고 있었다.
‘에스테라, 우리는 실수한 거야. 저 소년을 붙잡을 방법은 없어.’
길드를 통째로 갖다 바치지 않는 한.
오스틴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리안이 시로네에게 다가가 어깨를 짚었다.
“시로네, 괜찮아?”
“응. 나는 괜찮아.”
시로네는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하건만 전투를 치를 때마다 ‘왜?’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엄청난 파괴력이구나. 이천번과는 달라.”
시로네는 천사의 징벌이 꽂혔던 자리를 확인했다.
화신을 끌어 올려 빛의 창을 던지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명백히 나를 노리고 공격한 거야.”
창병들이 60억 골드라는 말을 했었다.
“아르망에 대한 정보가 퍼졌나 봐. 미리 알았더라면 전투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저들이 여태까지 해쳤던 사람들과 앞으로 해칠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시로네는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자격은 없다고 보았다.
자격이 있는 것과 필요에 의한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니까.
“잠시 할 얘기가 있네.”
시로네와 리안이 돌아서자 오스틴이 품에서 쪽지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내 임무는 여기서 끝인 것 같구먼.”
삶의 공기 (2)
“끝이라뇨?”
시로네가 눈을 깜박거리며 묻자 오스틴이 다시 쪽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죠?”
“브룩스 씨 저택의 지하에 있는 수로 약도일세. 에스테라는 나에게 인솔을 맡겼네만, 아무래도 여기를 떠날 수 없을 것 같구먼.”
이미 대부분의 말이 죽었고 절벽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폭격이 있었으니 살아남은 말들도 도망치고 없는 상황이었다.
시로네는 약도를 확인했다.
설계 도면처럼 세부적이지는 않았으나 동선을 보아하니 모르고 들어가면 확실히 헤맬 듯했다.
“아마 자네도 알게 되겠지만 브룩스 씨에게 가는 편지는 우리 길드에서 도맡아 하고 있네. 자네라면 딱히 조언할 것은 없네만, 이건 명심하게. 의뢰라는 것은 전적으로 의뢰주의 조건에 따르는 것이야. 편지를 전해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게. 이 약도가 도움이 될 게야. 수로의 끝에 도착하면 브룩스 씨의 수하가 안내해 줄 것이네.”
시로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오스틴 씨는 어떡하려고요?”
“이곳을 정리해야지. 내가 자네들의 전리품을 대신 수거해 주겠네. 물론 수수료로 10퍼센트는 내 몫이 되겠지만.”
딱히 전리품을 챙길 생각은 아니었으나 보상을 준다는데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네. 그러면 부탁 좀 드릴게요.”
수많은 조직이 아르망을 노리고 있음을 알게 된 이상 정해진 산길로 갈 생각은 없었기에 시로네는 흔쾌히 수락했다.
“정리하고 뒤따라가려면 시간이 걸릴 게야. 이건 부탁이네만, 가급적이면 의뢰를 마치고 꼭 실버링 본점에 들러 주게.”
길드는 정보에 민감하고, 특히나 이런 사건이라면 소문은 날개가 달린 듯 전국으로 퍼지게 된다.
시로네가 수도에 도착할 때쯤에는 수많은 길드에서 그를 포섭하려고 할 터.
오스틴이 인솔을 포기한 이유도 자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전리품이라도 챙기는 게 낫다는 베테랑의 판단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신뢰의 중요성은 알고 있으니까요.”
오스틴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것이지.’
시로네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고 있지만 오스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순수한 실력의 척도일 뿐, 그것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는 루키였다.
‘신뢰라…….’
이 바닥에서 신뢰란 사실 약자들의 보험과도 같은 개념에 불과하다.
실력이 전부인 길드의 세계에서 시로네는 이미 신뢰를 들먹거릴 필요조차 없는 인간인 것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수도에 들어가려면 부지런히 가야 할 게야. 그만 출발하게.”
“네. 오스틴 씨도 조심하세요.”
“아, 그리고.”
시로네와 리안이 산으로 들어가기 직전, 오스틴이 불렀다.
“수도에 도착하면 의뢰를 완수하기 전에 브룩스 씨에 대해 어느 정도는 조사해 보고 가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편지만 전해 주면 끝인 일이지만 베테랑의 노파심이었다.
누가 해도 무방한 의뢰를 시로네가 하게 되었다는 사소한 변수만으로도 이 세상은 얼마든지 엉망진창으로 돌아갈 수 있는 법이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시로네가 이해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하긴, 내가 누구를 걱정하겠는가?’
시로네와 리안이 산으로 들어가자 오스틴은 장검을 하나 주워 들고 도적단 단장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다.
제3차 리셋, 대정화기.
시로네 5개 도적단 섬멸 사건 종료.
***
아르망의 능력으로 산길을 달리는 시로네의 속도는 산짐승처럼 날렵했고 20분 만에 산 하나를 뛰어넘었다.
저 멀리 수도의 외성 벽과 중심에 가까운 곳에 세워진 왕성의 자태가 보이자 리안이 제안했다.
“시로네,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자.”
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곳에서 피 냄새를 풍기고 다녀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럴까?”
플라이 마법으로 산세를 살핀 시로네는 리안과 함께 작은 호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것은 필연인가, 아니면 인과의 결과인가.
그곳에 라 에너미가 있었다.
호숫가의 바위 위에 앉아 한쪽 다리를 내리고 있는 그는 중동인 특유의 가무잡잡한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이었다.
모든 것을 담고 있거나 혹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듯한 눈동자와 일자로 다문 입술은 기쁨과 슬픔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만큼 미묘했다.
“날이 추운데, 괜찮겠어?”
시로네가 라가 앉아 있는 바위를 지나치며 물었다.
“이 정도 추위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고 보니 너는 씻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피가 묻은 것도 아니고.”
“아니, 그래도 씻을래. 전투를 했더니 머리가 복잡해서.”
잡념을 지우는 데에는 냉수마찰이 최고였다.
시로네가 아르망을 검의 형태로 바꾸어 바닥에 던지자 라가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는 사이에 훌러덩 옷을 벗은 두 사람은 호수에 풍덩 뛰어들었다.
“으으으으. 춥다, 추워.”
시로네가 두 팔을 끌어안으며 몸을 떠는 반면에 리안은 물속 깊이 잠수했다가 튀어나왔다.
“푸하! 시원하다.”
시로네는 어푸어푸 얼굴을 씻어 내는 리안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수많은 전투를 치른 끝에 도달한 평정심이겠지만 그가 알고 있는 리안은 무심한 살인자가 아니었다.
“리안, 너는 어떻게 이겨 내는 거야?”
세수하던 손이 우뚝 멈췄다.
“이겨 낸 적 없어. 나는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
“아무 생각도?”
“정답이 없는 문제니까. 그들이 악인이든 선인이든, 일단 검을 뽑았으면 망설이지 않기로 했거든. 그렇게 결정해 버리는 거야.”
리안은 호수에 몸을 담갔다.
“시로네, 죽여도 되는 상황이라는 건 없어.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고. 물 한 잔을 두고 마실까 말까 결정하는 것과 똑같은 거야. 중요한 것은 책임이지. 나는 짊어지기로 했고, 그렇기에 생각하지 않아.”
듣고 있던 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에 대한 책임.”
리안이 물을 쥐며 내려다보았다.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가 다른 여러 개의 생명을 지운다. 굉장히 불공평하지. 그들이 어떤 자들이든 우리의 행동이 균형을 깨트린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리안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그러니 시로네, 애도하자. 생명 그 자체에.”
그렇게 끝없이 짊어지는 것이다.
“그래.”
시로네와 리안이 눈을 감고 묵념하는 동안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던 라가 미소를 짓는 순간.
‘뭐지?’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 누군가 있는 것 같았는데.’
엘리시온을 발동해도 잡히는 게 없었다.
인간이 말하는 세상이라는 것도 고작해야 다섯 가지 감각의 총체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시로네는 마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감각기관이 장착되었다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왜 그래, 시로네? 표정이 안 좋은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만 가자.”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을 털어 버린 시로네는 뭍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불과 1미터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라는 시로네가 다가오자 천천히 몸을 돌려 길을 열어 주었다.
“소문이 퍼지기 전에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
바슈카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줄에 합류하기 전에 시로네는 에스테라에게 받은 편지를 꺼냈다.
“아무래도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겠어.”
처음 의뢰를 받을 때도 느꼈지만 오스틴의 의미심장한 조언이 걸렸다.
“하지만 암호로 되어 있다고 했잖아?”
“해독을 해 봐야겠지.”
개인적으로 조합한 암호는 전문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해독이 어렵지만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대략적인 내용을 음미할 수 있었다.
“어떤 정보든 통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가?”
“응. 언어 이전의 언어 같은 거야. 상당히 편리하네.”
붉은칼 도적단 마리의 속셈을 간파한 것도 새소리 피리의 진의를 울티마 시스템으로 해독한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