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83
시로네가 편지를 봉투에 담아 품에 넣자 리안이 물었다.
“뭐라고 쓰여 있어? 위험한 내용이야?”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개인사.”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성격이 아니기에 리안은 더 묻지 않았다.
두 사람만의 여행이라도 마법사와 귀족이었기에 쉽게 성문을 통과할 수 있었고, 시로네는 오스틴의 조언대로 브룩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닌 끝에 무기 상점에서 들을 수 있었다.
“브룩스 씨? 자네들이 그분을 왜 찾지? 용병인가?”
“아뇨, 마법사인데요.”
“아하, 실버링 길드 소속이군.”
짐작 가는 바가 있다는 듯 상점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룩스 씨는 용병 브로커라네.”
주인의 말에 의하면 수완이 좋은 사업가로, 그와 정식으로 계약한 대형 단체만 일곱 군데였다.
“토르미아에서는 브룩스 씨의 손을 거치지 않은 용병이 없을 정도야. 하지만 오늘 자택에 계신가 모르겠군. 워낙에 바쁘신 분이라.”
‘용병 브로커라…….’
오스틴이 걱정했던 것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전장의 일선에서 뛰는 사업가라면 저택의 경호가 삼엄한 것은 당연한 일.
울티마 시스템으로 해독한 편지의 내용을 보건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잠입할 실력이 필수였다.
‘수로를 통해 가면 괜찮겠지.’
상점을 나선 두 사람은 브룩스의 저택에 도착했다.
다른 귀족들의 집처럼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요새화되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사복 차림으로 무장한 경비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고, 아치 너머로 보이는 정원에도 횃불을 든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들 뛰어난 실력자들이야.”
전체적으로 풍기는 기운만 느껴도 도적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역시 수로로 가는 게 좋겠지?”
약도를 따라 도착한 수도관은 저택으로부터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틈을 타 뚜껑을 열고 내려가자 리안이 풍기는 악취 속에서 익숙한 냄새를 찾아냈다.
“시로네,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도시의 하수도에 시체가 방치되어 있다는 건 섬뜩한 일이었으나 이미 일어난 결과를 두고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응. 방심해서는 안 되겠어.”
브룩스의 저택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냄새가 진해지더니 마침내 유기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게 뭐지? 인간이 아니잖아?”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연분홍 피부를 가진 아인종의 시체가 버려져 있었다.
“고문당한 흔적이 있어.”
“아니, 고문이 아닌데.”
고통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신체 훼손이 너무 심각했다.
“일단…… 우리가 할 일을 하자.”
의뢰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라는 오스틴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미로처럼 복잡한 수로를 지나자 인위적으로 개조한 게 분명해 보이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 위는 철창으로 막혀 있었고, 하수로 쪽에 의자 하나를 두고 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리안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을 멈췄다.
‘뭐지, 이 남자는……?’
여자처럼 긴 생머리를 좌우로 늘어뜨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에게서는 어떠한 기질적 특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시체가 앉아 있는 느낌.
“킁킁. 킁킁.”
죽은 듯 조용하던 남자가 냄새를 맡는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리안이 대직도의 손잡이를 잡으며 앞을 막아섰다.
‘이 자식, 엄청나게 강하다.’
그렇기에 더욱 이상했다.
이 정도의 실력자가 지키고 있다면 오스틴의 입에서 이름이라도 나왔어야 정상 아닌가?
들개처럼 탁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남자가 시로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너…… 라를 만났구나.”
“뭐?”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선 남자의 양손에는 어느새 식칼처럼 생긴 단도가 쥐여 있었다.
“놈은 어디에 있지?”
남자의 이름은 샤갈.
세계 100대 위험인물로 지정된 연쇄살인마라는 것은, 고용주인 브룩스조차 모르는 사실이었다.
삶의 공기 (3)
“라 에너미?”
시로네는 눈앞의 남자가 어떻게 라 에너미를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아직 만나지도 못한 인물을 만났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지?”
샤갈이 상체를 까닥거릴 때마다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두말할 여지가 없는 강자다.’
세계 100대 위험인물 중의 한 사람인 샤갈.
그의 고향은 지중해 서쪽에 있는 메르헨 왕국으로, 동화처럼 아름다운 관광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떤 살인마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거세되어 있지만, 샤갈은 후천적으로 계발된 살인자였다.
“킁킁. 킁킁.”
그가 후각을 통해 시로네에게서 맡고 있는 것은 냄새 분자가 아닌 사건의 향수.
특정한 냄새가 특정 사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샤갈은 사건 그 자체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렇다는 것은 샤갈이 이미 라 에너미를 한 번 이상 만났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아마도 샤갈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는 일곱 번 이상 라 에너미를 죽였다.
샤갈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라 에너미는 어디 있지?”
가뜩이나 탁한 목소리가 지하 수로의 터널에 메아리치면서 더욱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
“몰라. 우리는 브룩스 씨의 의뢰를 받고 왔어.”
실력의 고하를 떠나 얽히고 싶은 기분조차 들지 않게 하는 탁한 살기였다.
“브룩스?”
3개월 전에 고용된 이후로 지하 수로에 갇히다시피 근무하며 수많은 아인종들을 제거했다.
그것은 샤갈에게 즐거운 일이었으나, 브룩스의 편지를 전하는 일만큼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고용된 이유도 바슈카에 라 에너미의 증거가 있기 때문.
샤갈은 머릿속에서 의뢰를 지워 버렸다.
“말하지 않겠다면 몸에 대고 물어보는 수밖에.”
“크윽!”
살기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던 수로의 공기가 급격히 팽창하며 수천 개의 칼날이 찌르는 듯했다.
‘온다.’
좌우로 까닥거리는 몸짓이 조금씩 빨라지더니 마치 절단된 것처럼 두 팔이 사라졌다.
붕 하고 공기가 떨리는 소리에 시로네와 리안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쾅! 소리가 터지면서 샤갈의 두 단도가 리안의 대직도를 수직으로 강타했다.
‘괜찮아. 버틸 만…….’
그렇게 생각하는 그때, 다시 공기가 떨리면서 잔상으로 퍼진 수많은 칼날이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흐으으읍!”
팔과 다리에서 핏물이 튀었으나 리안은 개의치 않고 대직도를 크게 휘둘렀다.
수로의 반경 전체를 장악하는 검격에 샤갈이 고무공처럼 뒤로 튕겼다.
‘저 녀석에게서는 냄새가 나지 않아.’
귀신처럼 동선을 틀어 리안을 지나치자 시로네가 싸울 채비를 하며 마법을 장착했다.
찰나의 순간에도 그의 상체가 좌우로 까닥거리는 것이 보이는 기묘한 느낌을 받는 순간.
리안이 순식간에 다가와 시로네의 앞을 가로막았다.
굉굉한 소리가 수로에 메아리치고, 샤갈의 눈이 잠시 당혹감에 흔들렸다.
‘뭐지?’
단지 빠르다고 하기에는 불가능한 반응에 샤갈의 후각이 다시금 발동했다.
‘어딘가에서 경험한 사건.’
라 에너미를 죽였을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로네, 올라가라.”
단지 용병이라고 보기에는 살의의 기질이 너무나 탁했기에 리안은 시로네를 보내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괜찮아. 의뢰가 먼저다.”
리안의 실력을 알고 있는 시로네는 어깨 너머에 있는 샤갈과 눈을 맞췄다.
과연 저 인간을 뚫고 수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지금이다!’
시로네가 옆으로 움직이자 샤갈의 시선이 정확히 시로네의 동선을 따라 똑같이 이동했다.
이어서 몸이 연기처럼 풀어지더니 샤갈의 단도가 시로네의 미간을 정통으로 찔렀다.
‘뭐야?’
하지만 단도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 시로네의 모습은 종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시불상폭매로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간 시로네는 포톤 캐논으로 수로의 철문을 부수고 올라갔다.
그때까지도 샤갈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시로네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리안이 대직도를 어깨에 걸치고 말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붙어 볼까?”
시로네를 지킬 필요가 없어진다면 리안으로서는 사고의 족쇄를 풀어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크크. 크크크크.”
샤갈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직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던 것은 분명했다.
“차근차근 죽여 주지.”
시로네가 어디로 도망치든 자신의 후각이라면 언제든지 찾아내 도륙을 내 버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런 허세는 나부터 죽이고 나서 하는 게 어때?”
샤갈의 웃음이 뚝 그쳤다.
연쇄살인마로 네 자릿수에 달하는 살인을 저지른 그가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샤갈은 그 하나의 기준을 통해 리안이라는 인간을 정의했다.
“넌 죽는다.”
샤갈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리안이 대직도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몸을 날렸다.
엄청난 충돌음이 수로를 뒤흔들었다.
***
‘빨리! 빨리!’
저택으로 들어간 시로네는 섭식귀 쿠젠의 신진대사를 십분 활용하여 저택을 빠르게 수색했다.
상당히 많은 숫자의 경비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저택 내부의 보안은 그리 삼엄하지 않았다.
저택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수로에서 만난 남자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역시 특이한 놈이야. 대체 누구지?’
그런 만큼 리안이 걱정되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스피릿 존을 확장하면 방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사람을 느낄 수 있지만 저택은 너무나 컸고 방도 수백 개였다.
컹컹! 컹컹!
시로네가 창가의 복도를 달리자 밖을 순찰하던 경비견들이 일제히 돌아보며 짖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의 눈을 피할 수는 있어도 개의 후각까지 피할 수는 없는 법.
특히나 개처럼 킁킁대는 남자를 수로에서 만나고 온 터라 기분이 더욱 심란했다.
“침입자다! 찾아!”
저택에 비상벨이 울리고 수많은 경비대원들이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2층을 순회한 시로네는 곧바로 3층으로 올라갔고, 그의 발치를 1명의 경호원이 발견했다.
“3층이다! 쫓아!”
스키마의 고수들은 거리를 빠르게 좁혔으나 시로네 또한 복도의 끝에 있는 사람을 포착했다.
‘두 사람?’
시로네의 스피릿 존이 조금이라도 덜 예민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
“사장님을 지켜!”
반대편 복도에서도 경호원들이 튀어나왔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협공해 오는 적들을 회피하며 문 앞에 도착한 시로네는 그들의 칼이 떨어지기 직전에 몸통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복도와 달리 환한 불빛이 먼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바닥을 뒹군 시로네가 중심을 잡자 경호원들이 병장기를 들고 문 앞에 대치했다.
“무슨 소란이야?”
침대 쪽에서 들린 소리에 시로네가 고개를 돌리자 40대 중반의 남자가 알몸 차림으로 침대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는 금발의 미녀가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앉아 있었다.
브룩스가 그녀를 돌아보더니 김샜다는 듯 혀를 차며 가운을 걸쳤다.
“넌 뭐야?”
시로네는 턱 끝까지 수염을 짧게 기른 남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편지를 전해 주러 왔다는 말을 하면 되지만 부하들이 보는 앞이라 선뜻 건네줄 수가 없었다.
“어, 저기, 그게…….”
“시로네?”
침대에 앉아 있던 여자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브룩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뭐야? 애인이 또 있었어?”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어기적어기적 침대에서 내려왔다.
“시로네! 너 정말 시로네구나! 나 기억 안 나?”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피던 시로네 또한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어? 그때 그…….”
“그래! 아리아야! 네가 구해 준 아리아!”
테시야 아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