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87
티아가 손톱을 세우며 쫓아왔으나 2차성징이 시작된 이후부터 샤갈을 따라잡기란 무리였다.
“으아아! 바보가 쫓아온다!”
사실 샤갈은 티아의 분장이 좋았다.
직업적 특성상 어른들의 음흉한 시선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티아.
그럴 때마다 쫓아가서 주먹을 꽂아 주고 싶지만, 적어도 티아의 맨얼굴만은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야, 야! 짖어 봐! 짖어!”
컹컹! 컹컹!
술래잡기를 하던 두 사람은 반대편 천막에서 들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뭐지?”
천막을 돌아서 확인해 보니 도시에 사는 3명의 소년이 풀잎 서커스의 천막을 지키는 개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죽어라! 에잇! 에잇!”
샤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희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둬!”
“흥! 서커스단 주제에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공연 허가증도 우리 아빠가 끊어 준 거 몰라?”
“아빠가 누구든 가만히 있는 개를 왜 건드려? 진짜 혼나 볼래?”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샤갈이 위협하자 소년들은 움찔했으나 그 이상으로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너 따위가 우리를 혼낼 수 있을 것 같아? 어이, 피에로! 이따가 팬티 보러 갈게!”
샤갈의 눈이 뒤집혔다.
“이 자식들이……!”
하지만 그가 몸을 날리기도 전에, 어느새 라이덴이 소년들에게 다가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윽!”
맹수조차 길들인 차가운 눈동자 앞에서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그들조차도 오금이 저렸다.
“돌아가거라. 아직 공연은 시작하지 않았단다.”
눈치를 보던 소년들이 몸을 돌려 사라지자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샤갈이 따졌다.
“단장님! 어째서 그냥 보내시는 거예요? 저런 놈들은 본때를 보여 줘야 된다고요.”
“아직 어리잖니. 한 번쯤은 용서해 줘도 괜찮겠지.”
“어린 게 대수예요? 싹수가 노랗다고요.”
“하하!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 만약 너의 실수로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면 기분이 어떠냐?”
“상관없어요. 저는 실수 따위 하지 않으니까.”
라이덴이 샤갈의 머리를 짚었다.
“샤갈,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단다. 자신도 모르는 수많은 실수들 말이야. 그럼에도 네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반쯤 무릎을 굽힌 라이덴이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이미 누군가가 너를 용서했기 때문이 아니겠냐?”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샤갈을 바라보며 티아의 피에로 얼굴에 미소가 깃들었다.
-이미 누군가가 용서했기 때문에.
라이덴이 전한 그 말은 언제까지고 샤갈의 가슴에 신념으로 남을 수 있었을 터였다.
라 에너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용병 모집 (2)
“단장님, 단장님이 틀렸어요.”
회상에서 벗어난 샤갈은 밤하늘을 향해 읊조렸다.
그는 후천적 살인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별이 뜨지 않은 하늘이 더욱 슬퍼 보였다.
마술용 칼을 내려 둔 그의 손이 몸을 스치며 올라오자 어느새 날카롭게 벼려진 한 자루의 새로운 단도가 손에 쥐여 있었다.
23개의 칼날이 껍질 형태로 겹쳐져 있는 속사검의 고유 병기.
10미터 떨어진 나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라 에너미의 얼굴이 환영처럼 아른거렸다.
수직으로 팔을 휘두르자 단도의 껍질 하나가 빠져나가 퍽 소리를 내며 나무에 박혔다.
정확히 라 에너미의 미간이 있는 지점이었다.
휘둘렀던 팔을 다시 위로 쳐 올리자 또 하나의 껍질이 튀어 나가더니 나무에 박혀 있는 껍질 안으로 정확히 들어갔다.
퍽! 퍽! 퍽! 퍽!
손을 휘두를 때마다 칼날이 날아갔고, 마침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팔이 왕복하기 시작했다.
퍼퍼퍼퍽! 퍼퍼퍼퍽!
속사로 쏘아지는 칼날이 같은 지점에 겹치면서 나무가 흔들렸고, 22개의 칼날을 전부 날린 샤갈이 마지막으로 단도를 던지자 퍽 소리를 내며 둥치가 뚫렸다.
처음 던졌을 때와 똑같이 결합된 단도가 바닥에 떨어지고 중심을 관통당한 나무가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단장님이 틀렸다고요.”
샤갈은 후천적 살인마다.
그리고 그는, 악 중의 악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여관에서 나온 시로네는 브룩스의 인장이 찍힌 의뢰서를 챙기고 길드가 밀집되어 있는 거리에 진입했다.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하나같이 특별한 기술을 갈고닦은 전문가들이었다.
“역시 수도야. 지방 길드하고는 비교가 안 되네.”
마법사, 검사, 여행자, 연금술사, 대장장이 등 수많은 길드의 본점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층수를 높이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야. 시간이 많은 게 아니니까.”
루피스트가 요구한 20명의 용병단을 한 사람씩 구하려면 한 달이 걸려도 모자랐다.
“알아서 하라는 말은 인원수를 맞추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거겠지만, 가능하면 정예로 구성하고 싶어.”
왕국에서도 여태까지 손을 쓰지 못한 라둠이니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임무였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제 한 몸은 건사할 정도의 수준까지가 용병대의 커트라인이었다.
“일단 의뢰받은 건 끝내야지.”
실버링 길드의 본점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시로네와 리안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화가 없었다.
누군가가 그들을 미행하고 있었다.
수많은 위험지역을 여행하면서 생과 사의 고비를 몇 번이고 뛰어넘다 보면 인간의 신경 또한 고양이처럼 예민해지는 법이다.
리안은 다수의 시선 속에서 이질적인 몇 개의 시선을 파악했고, 엘리시온을 발동하고 있는 시로네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속도를 맞추는 미행자의 존재를 확정 지었다.
“누구지?”
“글쎄. 도적단을 토벌한 소문이 퍼졌으면 누구라도 될 수 있겠지.”
리안은 동작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시선만 옆으로 돌렸다.
“잡아서 족칠까?”
“아니. 사람이 많은 곳에서 행동에 옮기지는 않을 거야. 우리도 마찬가지고. 어차피 울티마 시스템이 있으니 기습을 당할 일은 없어.”
엘리시온은 스피릿 존의 경계선이 없기에 설령 상대가 조너라고 해도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찜찜한 시선을 꼬리에 매단 채 두 사람은 실버링 길드의 본점에 도착해 6층 높이로 솟아 있는 건물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마법협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왕국 3대길드답게 압도하는 맛이 있었다.
“들어가자.”
시로네가 입구로 걸어가는 그때 리안이 눈썹을 꿈틀하더니 고개를 홱 하고 틀었다.
‘온다!’
후드로 얼굴을 가린 두 사람이 인파를 헤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설마 여기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시로네가 경계 태세를 갖추고 리안이 대직도의 손잡이를 붙잡는데, 2명의 미행자들이 품속을 뒤지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시작해!”
‘쳇! 암살 도구인가?’
꺼내기도 전에 베어 버릴 심산으로 리안이 대직도를 뽑아 드는 것과 동시에 길드의 문이 벌컥 열렸다.
“환영합니다! 실버링 길드의 새로운 식구여!”
길드에서 나온 아리따운 매니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꽃다발을 내밀고, 건장한 2명의 남자가 좌우로 빠르게 흩어지며 현수막을 펼쳤다.
‘아리안 시로네 실버링 길드 가입 기념회’라는 글귀를 확인한 시로네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 동안 그들을 미행했던 자들이 종이 폭죽을 꺼내 터뜨렸다.
펑펑 소리를 내며 오색찬란한 종이가 흩날리고, 리안의 대직도가 두 사람의 몸통을 통째로 썰어 버리기 전에 멈췄다.
“히익!”
뒤늦게 깨달은 마법사가 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후드가 벗겨졌다.
앳된 얼굴이었다.
함께 미행했던 비슷한 또래의 소녀가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괜찮아?”
“응? 아하하! 당연하지! 발이 미끄러진 거야!”
깜짝 환영 인사였지만 시로네의 검인 리안은 불쾌할 따름이었다.
“너희는 뭐야?”
소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리안에게 악수를 청했다.
“놀라셨군요. 죄송합니다. 실버링 길드 소속 마법사 타일러라고 합니다.”
“엘자예요.”
타일러에 이어 엘자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으나 이미 곤두선 신경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시로네, 일단 들어가자. 소란은 좋지 않아.”
“응.”
시로네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길드의 문턱을 넘었다.
족히 20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각자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하나같이 기도가 예리했다.
공인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시나 사선을 넘어온 자들의 모임다웠다.
“자, 자! 실버링 길드에 기적처럼 나타난 루키, 아리안 시로네입니다!”
실버링 길드 본점의 매니저인 미켈라가 환호를 유도하자 몇몇 테이블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길드의 입장에서 시로네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대어지만 그들에게는 선의의 경쟁자가 되는 셈이었기에 손뼉에 영혼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너무하는군. 길드원끼리 질투는 좋지 않아.”
계단에서 들린 소리에 마법사들이 신경질적으로 돌아보았다.
밑단에 붉은 자수로 불길이 새겨진, 박쥐처럼 검은 로브를 걸친 장발의 남자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실버링 길드의 마스터 아크만이었다.
“마스터, 질투를 말하기 이전에 형평성을 맞춰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법사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털보의 거한이 투덜거렸다.
이미 켄트라 지부에서 기별이 온 데다가 5개의 도적단을 궤멸시킨 정보 또한 오스틴을 통해 새벽에 들어온 참이었으나, 왕국 3대길드의 권위마저 포기한 채 루키 하나를 영접하는 길드의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털보만이 아니었다.
“그래요! 실력은 인정한다고 칩시다! 하지만 상아탑 후보까지 오른 마법사가 우리 길드에 언제까지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배신을 때리거나 분란만 조장할 뿐이라고요!”
신뢰라는 것도 대등한 입장에서나 가능한 일.
길드와 시로네의 관계를 따지자면 길드로서는 시로네에게 줄 것이 없었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너무 많았다.
“어이, 루키! 대답해 봐! 정말로 실버링 길드에 최선을 다할 수 있나? 네가 소속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싸울 수 있겠어?”
털보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길드 등급 베테랑A라면 루키에게는 까마득한 선배지만 몇몇 마법사들은 시로네의 눈치를 보았다.
시로네는 길드에 오래 몸담을 생각이 없었고, 침묵이 이어지자 털보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저것 봐! 아무 말도 못 하잖아! 이건 그냥 웃기는 쇼라고! 난 용납할 수 없어.”
짐을 챙겨서 나가는 털보를 아크만이 불렀다.
“콘, 오늘은 신입생을 환영하는 자리다. 선배로서 자리를 지켜 주는 것도 예의야.”
“흥! 예의는 무슨! 어차피 금방…….”
“닥치고 앉아 있어.”
노골적인 살기에 콘이 어깨를 움찔하더니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어리석기는.’
시로네를 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을 길드의 마스터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만약 이대로 시로네를 보내면…….’
경쟁 길드인 전쟁마차와 블러드로즈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로네를 포섭하려고 할 것이다.
전쟁마차는 호전적이라 힘에서 밀리고, 여자 마법사가 대부분인 블러드로즈는 미인계에 탁월하다.
실버링이 내세울 만한 것은 자금력이지만, 상아탑 후보의 수준에서는 아무래도 밀리는 감이 있었다.
“미안하다. 길드원의 무례를 대신 사과하마.”
“아뇨. 괜찮아요. 틀린 말도 아니니까요.”
솔직한 발언에 고개를 끄덕인 아크만이 모두가 볼 수 있는 자리로 시로네를 불렀다.
“자, 그럼 이제부터 환영식을 시작하겠다.”
각자의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그가 시로네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실버링 길드의 새로운 마스터가 되어 다오.”
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스터! 어째서?”
상식을 깨는 사건에, 길드원들도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술렁거렸다.
아크만이 누구던가.
화염 마법사로 비공인 4급까지 오른 실버링 길드의 자부심이자 마법사 사회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아크만의 진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길드에서 오직 매니저 미켈라밖에 없었다.
‘최대한의 호의를 표한다. 그것이 1차 전략.’
설령 상아탑 후보라고 해도 루키 등급을 마스터의 임의대로 조정할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마스터로 승진하는 것.
물론 길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효과는 탁월할 터였다.
‘마스터가 되겠다고 받아들인다면 검증 절차를 밟으면 된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콘이 다시 물었다.
“마스터, 진심입니까? 전례가 없는 일이에요.”
“상아탑 후보가 가입했던 일도 전례는 없다.”
그것으로 모든 반론은 사라졌다.
하지만 시로네가 바라는 것은 길드와 협조하여 20인의 용병대를 신속하게 꾸리는 일뿐이었다.
“싫습니다.”
길드원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루키, 시니어를 거쳐 베테랑까지 필사적으로 오르는 이유는 결국 길드의 마스터를 꿈꾸기 때문.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지만, 그런 출세의 꿈이야말로 그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다.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것인가?’
시로네라면 다른 길드를 가도 같은 제안을 받을 것이기에 거절에 대한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즉답을 했다는 것은 솔직히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공증을 해 주는 것은 어떤가? 토르미아 왕국 내의 다른 마법사 길드에는 가입하지 않겠다는.”
계산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시로네가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빌어먹을 놈이! 결국 배신하겠다는 거잖아!”
손을 내밀어 길드원을 말린 아크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매니저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