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88
“미켈라, 마력 제어장치를 꺼라.”
어떻게 해도 붙잡을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게 순리지만, 그에게는 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시로네, 우기는 형세가 되어 버렸지만 길드의 마스터로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게 있다. 너에게는 단순한 선택이라도 우리에게는 인생이야. 네가 다른 길드로 가 버리면 수십 명의 길드원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그저 공증만 해 주면 되는 일이야.”
“신뢰 이상의 것을 양보하고 싶지 않아요. 특별한 이유 없이 탈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단, 공증이나, 마스터 자리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제가 제시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아크만이 신호를 보내자 미켈라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마력 제어장치의 스위치를 내렸다.
‘별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아크만이라고 해서 마법사 최고의 영예를 꿈꾸지 않았을 리가 있겠는가?
‘고작 스무 살짜리 소년에게…….’
길드원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문제 외에도 그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게 있었다.
개인적인 열망, 비공인 4급의 마법사까지 오른 자의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
‘알고 싶다,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아크만이 스피릿 존을 펼치자 로브의 밑단에 수놓인 화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넘실거렸다.
‘마도 무구. 화염 마법에 대한 옵션인가?’
3대길드의 마스터가 사용할 정도라면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장비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시로네, 내가 할까?”
“아니, 괜찮아.”
두 사람의 대화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아크만이 발밑에서부터 불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마스터, 설마 진짜로 여기에서…….”
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크만을 휘감고 있던 헬파이어가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해 버렸잖아아아아!”
놀란 길드원들이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숙이고, 길드의 정문이 벽과 함께 펑 하고 폭발했다.
용병 모집 (3)
거대한 화염이 실버링 본점의 건물 밖으로 튀어나오자 거리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제길! 무슨 일이야?”
벽돌 파편에 맞은 사람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날렸다.
다른 곳에서 폭음성이 터졌다면 아수라장이 되었을 테지만 길드가 모여 있는 구역이었기에 예상보다 소요는 크지 않았다.
세력 간의 다툼으로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사람들도 빠르게 피신할 뿐 특별한 조치는 취할 생각이 없었다.
반면에 길드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나무와 돌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테이블 아래에서 나와 결과를 확인했다.
“저, 저런……!”
헬파이어의 막강한 화력은 반경 10미터에 있는 기물들을 전부 바깥으로 밀어냈고, 리안 또한 이미 구석으로 몸을 날린 뒤였다.
그렇게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 시로네만이 오롯이 서 있었다.
폭발 순간을 지켜본 자들이 없었기에 피한 것인지 막은 것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빛의 원리를 이용한 것인가?’
아크만은 시로네를 맞이하기 위해 열람했던 정보들을 떠올렸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졸업 시험에서 시간을 조작하는 능력으로 이천번마저 속였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신이 내려 준 선물인가?’
비공인 4급의 마법사로 누구와 상대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공인 마법사의 재능과 평생을 비교당한 울분은 여전히 씻기지 않은 상태였다.
“위험하잖아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헬파이어의 위력을 보건대 죽으라고 시전한 것이었다.
“루키다운 생각이군. 여기는 학교가 아니야. 길드에서 행하는 모든 검증은 실전이다.”
“왜 당신이 나를 검증하죠?”
아크만은 더 이상 속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으니까. 아마 다른 길드원도 마찬가지겠지.”
아크만이 품에서 화염이 갇혀 있는 붉은 수정구를 꺼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너도 길드에 필요한 것이 있어서가 아닌가? 공증도 마스터 자리도 거부하겠다면, 실력을 증명해라. 그러면 나도 원하는 것을 주마.”
시로네의 눈빛이 비로소 진지해졌다.
아크만의 공격형 스피릿 존이 수십 개의 창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가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건물 내부의 복잡한 구조물 사이를 순간 이동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지만 두 사람의 수준에서는 이미 신경 쓸 필요 없는 제약이었다.
‘제법이군.’
시로네의 무브먼트는 확실히 뛰어났으나 아크만의 경륜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두 다리를 띄운 아크만이 시로네를 유인하듯 후진하자 뒷문의 경칩이 떨어져 나가며 문이 활짝 열렸다.
건물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공터에 시로네가 도착하자 아크만이 임전 태세를 갖춘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화염의 로브와 불의 감옥.”
아크만이 수정구를 내밀며 마도 무구를 설명했다.
“화염의 로브는 화염 계열의 마력을 200퍼센트나 끌어올리지. 그리고 이 수정구는…….”
아크만의 주위에 화염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더니 섭씨 1천 도의 불로 이루어진 길이 4미터의 뱀이 불꽃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시로네를 내려다보았다.
“불의 정신을 형태에 가둔다.”
아크만의 파이어 스네이크가 시로네에게 쇄도하면서 몸체를 부풀렸다.
무려 4배 이상 몸체가 커진 화염이 시로네를 덮쳤고 2차, 3차의 불꽃이 마치 휘감기듯이 시로네가 있는 곳을 포위하며 밀려들었다.
열두 마리의 뱀이 수정구의 기능을 통해 시로네를 뒤쫓는 시점에서 모든 길드원이 공터에 도착해 전투를 지켜보았다.
딱히 복잡한 전지는 아니지만 비공인 4급의 정신력을 통해서 발휘되는 파이어 스트라이크의 화력은 무시무시했고, 마도 무구의 힘을 빌렸다 해도 12개의 화염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능력은 확실히 탁월했다.
‘이것이 비공인 4급의 실력.’
수치적인 능력만 따졌을 때는 비슷한 전투 방식의 플루를 상회.
또한 경험의 측면에서도 분명 시로네를 압도하는 부분이 있었다.
‘기능 자체는 단순해. 하지만 빠르고 정확하다.’
화력과 속도가 뒷받침된다면 누군가를 불태우는 데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마법이 없을 터였다.
시로네가 수세에 몰리는 것이 명확해지자 길드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역시 마스터! 상아탑 후보니 뭐니 잘난 척하더니 쩔쩔매고 있잖아?”
“도적단 섬멸? 그딴 건 마스터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아크만과 마찬가지로 길드원들도 자격지심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리안은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나의 기술에 치중한 마법사군. 특별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 도적단 수준에서는 감당이 안 되겠어.’
콘이 마치 자신이 승리라도 한 듯 리안에게 소리쳤다.
“어이! 지금이라도 말리는 게 어때? 이러다가 네 친구 통구이가 돼 버릴지도 모른다고.”
리안은 코웃음을 쳤다.
아크만이 뛰어난 마법사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가 졸업 시험에서 봤던 시로네의 무위를 생각해 보면 걸리는 점은 따로 있었다.
“확실히 학교와는 다르군. 어렵겠어, 시로네.”
리안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 콘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걸 이제 알았냐? 지금이라도…….”
“이천번이 아니라서.”
“응?”
리안이 콘을 돌아보았다.
“죽이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거야.”
듣는 입장에서는 황당한 발언이지만 아크만은 리안의 말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공격을 하지 않지?’
전투가 시작되고 벌써 5분여가 흘렀으나 시로네는 어떠한 공격 마법도 시전하지 않고 있었다.
‘골치 아프네.’
수많은 전략을 강구한 시로네지만 자신이 보유한 어느 마법도 치명상을 피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렇다고 보조 마법인 샤이닝 임팩트나 샤이닝 체인 같은 것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이 정도로 지치지는 않을 거야.’
시간을 끄는 게 의미가 없다면 결국 화력으로 밀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결정했다!’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아크만의 경험적 직감은 시로네의 변화를 감지했다.
‘시작인가? 어디 와 봐라.’
열두 마리의 뱀이 활로를 완전히 차단하기 직전, 시로네가 불길을 뚫고 튀어나왔다.
‘또 그거로군.’
시불상폭매는 과거와 미래의 1초를 현실로 확장시키지만 과거의 1초보다 빠르거나 미래의 1초 뒤의 사건까지는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완전무결한 회피책은 아니었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잡다한 생각은 지워 버리고 하늘로 뛰어오른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시전했다.
아크만이 회피한 자리가 오목하게 함몰되는 것만으로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 봤자 맞지 않으면 그만이야.’
파이어 스네이크를 조작하는 한편 탁월한 회피 기술로 상대의 공격을 피한다.
이 전술로 수많은 승리를 쟁취했던 아크만에게 단발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로네가 이를 악물며 포톤 캐논을 연사했다.
‘이것도 피할 수 있을까?’
섬광이 빛살처럼 쇄도하자 아크만이 미꾸라지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며 공터를 크게 우회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파이어 스트라이크는 하늘로 날아올라 끝없이 시로네를 괴롭히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였나?’
여태까지 상대한 마법사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에 아크만의 자존심이 회복되었다.
‘아니, 확실히 좋은 재목이다. 그렇기에…….’
상아탑이라는 기관도 허울뿐인 명성이었을 뿐.
‘내가 강한 것이다!’
아크만의 눈이 번쩍 뜨이며 열두 마리의 뱀이 동시에 시로네를 덮쳤다.
퀀텀 슈퍼포지션-300중첩.
그리고 쏟아지는 섬광의 숫자가 스피릿 존의 공감각으로도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뭐……!”
지축을 울리는 굉음에 사람들이 눈을 질끈 감았고,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진동이 땅을 타고 전해져 왔다.
리안만이 번쩍이는 섬광의 빛줄기에 한쪽 눈을 감은 채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해법은 화력 시위.’
힘을 조절한 것은 분명하지만 300명의 시로네가 쏟아 내는 포톤 캐논의 숫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자아냈다.
“마, 마스터…….”
선명한 현실 속에서 포톤 캐논이 땅을 두드리며 피어오른 먼지가 아크만의 모습을 뒤덮었다.
‘이래도 피할 수 있을까?’
거칠 것 없이 마법을 퍼붓고 있지만 엘리시온은 정확히 아크만의 위치를 포착하고 있었다.
물리적인 충격은 즉사였기에 한 발의 포톤 캐논도 아크만의 몸에 닿지 않았다.
‘정신을 죽인다!’
이보다 빠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연타의 굉음이 더욱 가속화되자 길드원들의 고함 소리마저 파묻혔다.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그들이 변화를 눈치챈 것은 파이어 스네이크의 개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7개. 6개.
시각을 잃은 듯 허공을 배회하던 화염의 뱀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아크만의 정신이 공포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크으으으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흙먼지 속에서 아크만은 그저 몸을 웅크린 채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지척에서 들리는 굉음에 고막이 터질 듯했고, 땅의 진동이 뼈를 타고 그대로 전해져 왔다.
신경이 뒤죽박죽 꼬여 버려서 땅속에 파묻히고 있는 것인지 이미 몸이 박살 난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미친 듯이 흔들어 대는 통 속에 갇힌 벌레가 되어 버린 기분.
“줄어든다.”
리안이 파이어 스네이크의 개수를 셌다.
3개. 2개, 마침내 마지막 하나 남은 뱀마저 흐릿하게 사라졌다.
정신적 충격에 스피릿 존이 깨져 버린 것이다.
시로네가 폭격을 멈췄으나 이명에 괴로워하는 길드원들이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바람이 밀어낸 거대한 흙먼지가 피처럼 떨어지는 한편 구름처럼 떠다니며 다른 건물들을 뒤덮었다.
“이게…… 뭐야?”
경악스러운 광경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터의 중앙에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고 마치 기둥 하나만 세워진 것처럼 좁은 땅 위에 아크만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20미터 떨어진 자리에 착지한 시로네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당히 피곤하네.’
천사의 징벌이라면 순식간에 만들었을 풍경이지만 이번만큼은 스스로 제약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마스터! 괜찮아요?”
매니저 미켈라가 소리쳤으나 청각이 마비된 아크만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다만 비공인 4급의 마법사답게 정신 회복은 상당히 빨랐고, 마침내 진동이 느껴지지 않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괴괴한 광경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있던 아크만의 얼굴이 점차 서글픔에 잠겼다.
‘그렇구나. 별이라는 것은…….’
인간의 수준에서 어떤 우월함을 겨루는 게 아니다.
‘비교 대상 자체가 없다.’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더 강한가의 문제가 아닌, 팔이 3개이거나 눈이 5개거나, 날개가 달렸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였다.
“내가 졌다.”
상아탑 후보에 어울리는 것은 자신이 아닌 시로네였다.
“길드에 원하는 게 있다고 했지. 조건 없이 협조하겠다.”
그래도 체면이 있기에 아크만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상태에서도 플라이 마법을 시전하여 구덩이를 뛰어넘었다.
“제가 길드에 요청하고 싶은 건 한 가지예요.”
아직 루피스트의 지시를 시작도 못 한 상황이기에 본론부터 꺼내려는데 건물 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호호호! 멋진 대결이었어요.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네요.”
후문 쪽을 돌아본 길드원들의 인상이 대번에 구겨졌다.
“저 재수 없는 것들이 여긴 왜 왔어?”
왕국 3대마법사길드인 전쟁마차와 블러드로즈의 마스터 두 사람이 비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용병 모집 (4)
전쟁마차 길드의 마스터 요르딕이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아크만에게 다가왔다.
50대 중반의 깐깐한 인상에, 자수로 새긴 잉어가 몸을 휘감고 있는 갈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실버링 길드도 한물갔군. 하긴, 돈만 보고 달리는 놈들이니 실력이 달릴 수밖에.”
아크만이 눈을 부릅떴으나 처참하게 패한 것을 보여 준 입장에서 입을 열어 봤자 비참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