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9
‘키스 신이다. 분명 키스 신이야.’
세리엘이 발을 동동 구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하는 거야? 진짜로? 어떡하면 좋아!”
과연 정말로 입을 맞출 것인지, 순수한 호기심에 관중도 이번에는 집중했다.
“올리아.”
“노아.”
두 사람의 입술이 점차 가까워지고, 그에 따라 긴장감이 끝없이 치솟는 순간이었다.
“크아아아아!”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이루키가 네이드의 목덜미를 깨물며 쓰러뜨렸다.
꺄아아아아!
음향 장치에서 비명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학생들의 어깨가 들썩했다.
‘깜짝이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대장치만으로 이런 연출을 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로네는 이 점을 노리고 대본을 썼다. 투명 망토를 이용해 사람들을 주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관객들은 점차 연극에 빠져들었다.
“아그! 아그!”
네이드를 쓰러뜨린 이루키가 살을 파먹는 시늉을 하자 음향 장치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살이 씹히는 소리, 비명과 절규 소리가 뒤섞였다.
“안 돼! 노아! 노아!”
생살을 파먹은 아귀가 사라지자 올리아는 죽은 노아를 품에 안고 절규했다.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반쯤 정신이 나간 올리아는 저주의 말을 퍼붓다가 가지고 있던 단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손을 잡고 죽은 연인의 모습에 학생들도 숙연한 분위기였다.
조명이 꺼지고, 여자의 절규가 들렸다.
“깔깔깔깔! 용서하지 않을 거야! 다 죽여 버릴 거야! 너희들도 아귀로 만들어 주겠어!”
어둠 속에 메아리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학생들의 몸을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암전이 끝나고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자, 해설자로 돌아온 네이드가 말했다.
“저희들이 이 이야기를 들은, 아니, 발굴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입니다. 마법학교의 역사를 연구하던 중 찾아낸 오래된 일기장 덕분이지요.”
네이드는 노트 한 권을 꺼냈다.
흙에 파묻혀 해진 520년 전의 노트.
물론 며칠 전에 급조한 것이었다.
“심령과학을 연구하는 저희 회원들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었죠. 바로 당시의 원혼들이 여전히 이 학교를 떠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댕. 댕. 댕.
음향 장치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자정을 알리는 소리였다.
“매일 밤 자정이 되면 굶주린 아귀들이 빛 없는 곳을 돌아다닙니다. 우리들은 생각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학생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학교에 몇 년을 다녔어도 귀신은커녕 수상한 사람조차 본 적 없는 그들이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태까지 귀신을 본 적이 없겠죠. 하지만 초자연 심령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영혼이란 보려는 자의 눈에만 보이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일종의 정신적 주파수가 맞아야 된다는 것이죠. 저희들이 발표회를 열기로 결심한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원혼의 이야기를 알게 된 여러분의 주파수는 이제 바로 맞춰졌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자정의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을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이드가 윙크를 날리며 마지막 멘트를 했다.
“물론 운이 좋다면 말이지요. 이상으로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를 마치겠습니다.”
네이드가 퇴장하자 정적이 흘렀다. 박수는커녕 썰렁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뭐야? 뭐라는 거야?”
학생들은 배신감과 허탈함에 치를 떨었다.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는 발표회라고 해 놓고 기껏 한다는 게 귀신 분장을 하는 것이었다니.
“역시, 그냥 장난이었나? 난 무슨 대단한 거라도 보여 줄 줄 알았는데.”
“기대한 우리가 바보지. 솔직히 귀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냐? 완전 속은 거라니까.”
클래스 포에서도 말이 나왔다.
“어차피 클래스 파이브 수준이 이렇지 뭐. 시로네니 이루키니 말이 많더니, 막상 알맹이는 별거 없네. 야, 가자. 괜히 시간만 버렸다.”
원성 섞인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노는 시간도 아껴 가며 공부하는 그들이었기에 이런 거짓 발표회에 날아간 시간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학생들이 강연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마크와 마리아는 행렬을 거슬러 내려왔다.
에이미와 세리엘을 보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래, 오랜만이네.”
“선배님들은 어떻게 보셨어요, 이번 발표회?”
마크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특히나 시로네의 천재성을 알고 있는 그였으니 오늘의 발표회를 받아들이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에이미도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변명할 건수도, 포장할 핑계도 없다. 보이는 게 전부였고, 발표회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다.
세리엘이 시로네를 두둔했다.
“원래 준비한 게 있었는데 차질이 생겼나 보지. 시간이 급박했거나. 그런 걸 거야. 그치, 에이미?”
“어쨌거나 실패한 건 사실이잖아. 하여튼 이상한 애들하고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짐작했어야 했는데. 우리도 그만 가자.”
에이미가 차갑게 자리를 뜨자 세리엘이 투덜거렸다.
“어쩜 저리 애인에게 무심하담?”
“하하! 그게 에이미 선배님의 매력이잖아요. 어쩌면 가장 속상한 사람일지도 모르죠.”
마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세리엘도 에이미의 뒤를 따랐다.
학생들이 강연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교사들은 여전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평가지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특히나 시이나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대체 어쩌자고 이런 짓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장 선생님이 참관한 자리에서 이런 유치한 발표회를 열다니.
이번 사태를 어떻게 무마해야 할지,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5)
시이나는 평가지에 뭔가를 적는 것을 포기하고 알페아스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
“허허, 어려운 과제이기는 했지. 초자연 심령과학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마음 쓰지 말게.”
“제가 단단히 주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알페아스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주고는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문을 나서기 직전, 다시 몸을 돌려 비어 있는 무대를 살폈다.
수염에 감춰진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정도로 끝날 거였다면 시작도 안 했을 테지, 안 그러냐, 시로네?’
***
관객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시로네 일행은 정신없이 연구회로 달려갔다.
“됐어. 1단계 무사통과!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야.”
“먹힌 것 같지?”
“응. 눈빛만 봐도 알겠더라.”
학생들의 기대와 달리 싱겁게 끝났으나 시로네 일행에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었다.
발표회 또한 키워드를 주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관객의 마음에 아주 작은 의심의 씨앗을 심는 일이었다.
연구실에 도착한 네이드가 옷을 벗으며 말했다.
“시로네, 이제부터는 너에게 달렸어. 네가 이 작전의 엔진이나 마찬가지야.”
“알았어. 잠깐 명상 좀 할게.”
네이드와 이루키의 결과는 눈에 보이지만 시로네의 경우는 변수가 많았다. 그저 한 달간의 훈련을 상기하며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6시간.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시로네는 수열식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친구들이 조심히 자리를 피해 주었다.
광자 출력을 10분 이상 유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마법사 지망생으로서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도 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이루키는 홀로그램의 조종 장치를 설치해야 하고 네이드는 광자 신호를 전송하는 중앙장치를 정비해야 했다.
그렇게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연구실의 어둠 속에서 시로네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5시간의 수열식을 끝낸 그의 정신은 잘 갈린 명검에 비유할 만했다.
문이 열리고, 네이드가 말했다.
“……갈 시간이야.”
시로네는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전사처럼 네이드의 뒤를 따라 연구실을 나섰다.
***
중앙장치는 공원 아래를 흐르는 하수 시설의 길목에 설치되어 있었다.
굵은 광섬유들이 지상으로 올라갔고, 거기에서 다시 멀티어댑터를 통해 수백 가닥으로 분산되어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갔다.
300대의 홀로그램 장치가 동원된 작전.
시로네 또한 네이드의 물량 생산력에 감탄했지만, 그런 만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목표치를 달성하기는 했지만 실전은 처음. 어떤 돌발 변수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정까지 10분이 남았을 무렵, 시로네는 거대한 중앙장치 앞으로 향했다.
프로토타입보다 10배는 컸고,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처럼 보였다.
시로네가 수정구 형태의 출력 단자를 쥐고 기다리자 이루키가 시간을 확인했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안 된다. 자정에 맞추는 게 중요했다.
“5분 전이야. 시작하자.”
시로네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점차 그의 눈빛이 고요해지더니 급기야 표정마저 사라졌다.
“지금.”
이루키의 신호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수열식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광자 출력!’
마치 폭발처럼 양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자 이루키와 네이드가 눈을 크게 떴다.
목표치를 달성한 것은 알았지만 시연하는 것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더, 더 강하게!’
시로네가 최고 출력에 달하자 네이드는 장치로 달려가 전달 효율을 살폈다.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이런…….”
이루키가 답답한 듯 물었다.
“왜? 몇 퍼센트야?”
대답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 나왔다.
“17퍼센트.”
“뭐?”
예상보다 훨씬 낮은 수치였다.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분석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지금 해내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시로네는 시작과 동시에 직감하고 있었다.
‘반경이 너무 넓어.’
광자 출력을 시전하는 순간 마치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계산이 틀렸을 리는 없어. 제품 안정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는…….’
네이드가 확인할 수 없는 유일한 첨단 기술이었다.
물론 용뢰가 품질을 속일 리는 없지만, 광섬유는 상용화는커녕 지금도 연구 개발 중인 소재였다.
“으으으으!”
온 힘을 다해 광자를 출력했지만 출력 효율은 17퍼센트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이루키가 고개를 저었다.
“실패야.”
이 상태로 장치를 작동시켜 봤자 홀로그램이 파편처럼 깨져 버리고 말 터였다.
그로부터 3분이 지나자 네이드가 미소를 지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불가능한 목표에 도달한 시로네가 대견했다.
모든 잘못은 광섬유의 하자를 분별할 수 없는 자신의 무지였고 무능이었다.
“시로네, 이제 됐어. 우리는 충분히 잘했어. 그러니 여기서 그만하자.”
시로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네이드도 이루키도, 모두가 합심하여 최선을 다해 매진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라니.
아직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패배를 인정하라니.
‘이기고 싶다. 해내고 싶어.’
시로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모든 걸 쏟아부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을 비추는 광원이 점차 부풀어 오르며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설, 설마?”
네이드는 시로네의 생각을 읽었다.
이모탈 펑션.
자칫하면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는 금단의 영역에 또다시 들어간 것이었다.
“시로네! 멈춰! 하지 마!”
네이드와 이루키가 동시에 달려들었으나 열반을 향해 달리는 시로네의 정신은 어지간한 물리적 충격으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점점 커지는 빛이 육체를 집어삼키며 하수도를 밝혔다.
그럴수록 시로네는 옅어져 갔다.
이대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네이드가 소리쳤다.
“시로네! 제발 그만해! 널 잃을 수는 없어! 연구회는 포기해도 되니까, 제발 그만해!”
“네, 네이드…….”
“그만하자! 여기서 끝내!”
시로네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도망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자 거대한 빛이 폭발하면서 터널 내부를 가득 채웠다.
정신이 무한으로 퍼지고, 그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옅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