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90
30번으로 넘어가자 슬슬 실력자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100번이 지났을 무렵 1차 테스트 통과자는 20명이 넘어갔고, 121번의 차례가 되었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응?”
121번의 이름을 확인한 시로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이분이…….”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시로네.”
“에텔라 선생님?”
허름한 망토를 두른 모습은 학교에서 보던 것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으나 분명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로미 에텔라였다.
“어째서 선생님이?”
“오는 길에 용병대를 조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좋은 평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에텔라는 응시자의 태도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사정이 있으신 거겠지.’
마법학교를 졸업한 이상 사회의 원칙에 따르는 게 맞지만 이런 식으로 재회한 기분은 상당히 묘했다.
학교 선생님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그녀가 권법의 자세를 취했다.
‘휴우, 스키마로 평가받으시려나 보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리안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 사람이 에텔라인가.’
천국에서의 일화를 얘기하면서 시로네가 입이 닳도록 칭찬했던 인물이고, 확실히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두 팔을 천천히 휘돌리던 에텔라가 음양파동권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정권을 내질렀다.
“타하!”
시연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허무해진 시로네가 고개를 돌려 리안의 표정을 확인했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는 얼굴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정말 이걸로 괜찮나? 실력이야 확실하지만…….’
권법에 문외한이 보기에는 다른 응시자들의 일격과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심사관을 무시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리안의 말투는 깍듯했고, 서류에 합격 표시를 했다.
“2차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로네에게 별다른 말이 없이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진지하게 용병대에 임하겠다는 각오였다.
“리안, 뭔가 대단한 기술이었던 거야?”
시로네가 순수한 호기심으로 합격의 이유를 묻자 리안이 난감한 듯 입맛을 다셨다.
“사실은, 나도 몰라.”
“뭐? 모른다고?”
“심사를 하고 있지만 솔직히 나는 기술이나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 어차피 내 검술도 실전에서 갈고닦은 것이니까.”
리안이 검술학교까지 자퇴할 정도로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다녔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럼 어떤 기준으로?”
“방법은 하나야. 내가 직접 공격을 받아 낸다고 가정하는 거지. 그리고 에텔라 씨가 정권을 질렀을 때…….”
리안이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버렸다. 어째서인지는 나도 몰라. 어떤 기술적 탁월함이 있었는지도. 가능하다면 싸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아군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했을 뿐이야.”
기술적 재능이 전무한 리안에게는 실전으로 가다듬은 감각이 전부였다.
따라서 그의 본능이 그렇게 경고했다면 시로네도 납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응, 이해했어.”
유능한 합격자가 늘어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협회장님에 에텔라 선생님까지. 내가 전부를 책임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해가 저물 무렵에는 대부분의 응시자들이 테스트를 끝낸 상황이었고 100번대의 마지막인 199번의 차례가 되었다.
서류를 확인한 아리아가 테이블에 턱을 괴며 미소 지었다.
“드디어 왔네, 내 비장의 무기.”
그녀의 말을 들은 두 사람도 서류를 확인했고, 이름을 본 순간 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듣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어긋나 있는 느낌이 드는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무게중심이 끝에 집중되어 있는 장검을 허리에 차고 절뚝거리며 걷는 남자.
어깨부터 잘려 나간 오른팔을 덮고 있는 소매가, 움직일 때마다 나풀거렸다.
‘파르카 쿠안.’
오른팔을 스스로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분위기가 전과 너무 달랐기에 프로필을 확인했다.
분명 카이젠 검술학교 교관이라는 이력이 적혀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리안.”
“윽!”
1명의 검사로서 존경하는 사람이지만 기억을 되짚어 보면 좋은 추억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놀란 것은 시로네도 마찬가지였고, 설명을 구하듯 아리아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번에 내 경호를 맡아 주실 쿠안 씨야. 어때, 이러면 너도 안심이 되겠지?”
쿠안의 실력은 누구보다 시로네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리아 씨가 쿠안 씨를 알고 있죠?”
“무슨 소리야? 카이젠 검술학교 교관을 내가 모를 리가 있나? 게다가 지금은 우리가 임무를 수행할 지역의 민간 조사원으로 활동하고 계셔. 여러모로 내 경호를 맡기기에는 안성맞춤이지.”
‘라둠에 계셨구나.’
천국에서 돌아온 뒤로 미로와 모종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까지는 들은 터였다.
“그러면 혹시 아르민 씨나 세인 씨도…….”
“아니. 현재 토르미아에는 나밖에 없다.”
“그렇군요.”
미로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자 쿠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내가 못 미덥나?”
“아니에요! 절대로 그런 게 아니라…….”
리안이 말을 끊었다.
“됐고, 테스트나 진행하죠. 어차피 통과하지 못하면 같이 일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카이젠 검술학교에서 당했던 앙갚음을 할 기회였다.
“한때는 교관이셨지만 특혜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쿠안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멍청한 건 여전하군.”
리안의 눈이 희번득 뒤집어졌다.
“뭐가 어째요! 지금 누가 심사관인지 잊었어요?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요!”
‘흐음, 확실히…….’
검술학교에서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미로를 도와 일을 하면서 리안의 성취를 들었던 터라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공개 테스트를 통과하는 게 먼저였다.
“그럼, 검이라도 좀 휘둘러 보지.”
에텔라와 달리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태도에 리안이 심드렁하게 턱을 괴고 지켜보았다.
역시나 쿠안은 건성으로 검을 뽑았고, 오른발을 절뚝거리며 방향을 바꿔 칼질을 시작했다.
“…….”
잠시 후 턱을 받치고 있던 리안이 천천히 손을 떼더니 자신도 모르게 정자세를 취했다.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허공을 베는 검의 궤적을 홀린 듯 바라보던 그의 표정에 놀라움과 슬픔이 동시에 담겼다.
‘아름답다.’
분명 저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결코 명확하게 떠올릴 수는 없었던 궤적.
하루도 빠지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리안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궤적이 저곳에 있었다.
‘천재의 검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가?’
리안 또한 성장했기에 분석할 수 있는 검의 경지였다.
1분 정도 검을 휘두른 쿠안이 능숙하게 검집에 칼을 꽂아 넣고 투덜거렸다.
“됐냐?”
“네, 수고하셨습니다.”
설령 쿠안이 원수라도 합격을 시킬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리아가 덧붙였다.
“자세한 얘기는 테스트가 끝나고 하죠.”
고개를 끄덕인 쿠안이 평가장을 떠나고, 200번대의 응시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심사에 피로가 쌓였으나 루피스트가 말한 213번의 차례가 되자 다시금 정신이 환기되었다.
‘뭐야?’
여태까지 봤던 베테랑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10대 중반의 소녀였다.
머리는 칠흑처럼 검은 단발이었고, 두꺼운 코트로도 앙상한 몸매를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로네가 프로필을 확인했다.
이름은 메이레이. 마법사였고, 토르미아 출신이 아닌 갈론 왕국 태생이었다.
카즈라 왕국과 북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갈론은 신성왕국으로 불리지만 각국에서는 그들의 신을 악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것 외에 특별한 사항을 찾을 수 없었던 시로네의 시선이 마지막 특이 사항 쪽에 고정되었다.
‘규정외식자.’
어떤 능력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이번 작전에 필요한 능력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시작해 주세요.”
메이레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스피릿 존을 펼쳤다.
열다섯 살의 나이인 만큼 딱히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규정외식자의 독특한 기질만큼은 느껴졌다.
‘이래서 나에게 알렸던 거구나.’
설령 규정외식자라도 기본기가 닦여 있지 않으면 라둠에서 버틸 수가 없기에 루피스트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불합격을 줬을 공산이 컸다.
합격에 체크한 시로네가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잘 봤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메이레이는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고 시로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요?”
“오빠가 시로네인가요?”
처음으로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시냇물처럼 청아하여 중독성이 있었다.
“네, 그런데요?”
“그는 두려워하고 있어요. 오빠는 촉觸이니까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시로네가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저를 두려워하는데요?”
“라 에너미.”
시로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떻게 그걸……?”
“들려요.”
메이레이가 두 귀를 막으며 말했다.
“저에게는 라의 목소리가 들려요.”
대정화기의 청聽에 해당하는 인물, 아세트 메이레이.
그녀는 신의 주파수를 도청할 수 있는 규정외식자였다.
오감불충분 (1)
메르헨 왕국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정기 순회를 끝낸 풀잎 서커스 단원들은 겨울 동안 고향으로 떠났고, 가족이 없는 샤갈과 티아만이 남아 라이덴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샤갈, 잠시 이쪽으로.”
서커스 기술을 연마하던 샤갈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라이덴에게 갔다.
“무슨 일이세요? 시키실 일이라도?”
“아니. 하나 가르쳐 주고 싶어서.”
샤갈이 고개를 갸웃했다.
“기술은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요?”
아직 열여섯 살이지만 풀잎 서커스 단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샤갈이었다.
“오늘부터 저글링을 연마한다.”
“하하! 단장님 혹시 치매 걸린 거 아니세요? 제가 몇 살 때부터 클럽을 잡았는지 아시잖아요?”
“가져와 봐.”
진지한 목소리에 샤갈이 곤봉이 담긴 박스를 가져오자 라이덴이 3개의 클럽을 한 손에 쥐고 던졌다.
“엇차.”
샤갈은 준비 단계조차 거치지 않고 3개의 클럽을 돌리며 현란한 저글링을 선보였다.
기술은 능수능란, 공연 중에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하는 일이기에 숨 쉬는 것처럼 쉬웠다.
차례대로 곤봉을 낚아챈 샤갈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덴에게 말했다.
“보셨나요, 이 천재의 실력을?”
“그래. 너는 천재다.”
샤갈은 부끄러워졌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고작 기본 저글링 가지고.”
물론 라이덴이 천재라는 평가를 내린 것은 고작 곤봉 3개를 돌렸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기술도 최단거리로 흡수해 버린다.’
기술의 핵심을 관통하는 샤갈의 통찰력을 이대로 썩혀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일이었다.
“다시 돌려 봐라. 이번엔 제대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샤갈도 정색하며 상자에 있는 10개의 곤봉을 전부 하늘로 던졌다.
엑스 자 던지기, 회전하며 던지기, 순서 바꾸기 등 현란한 기술을 지켜보던 라이덴이 말했다.
“넘겨라.”
2인 저글링이 시작되었고, 샤갈과 라이덴이 서로 곤봉을 교환하는 한편 각자의 저글링이 이어졌다.
‘응?’
어느 순간부터 곤봉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을 깨달은 샤갈은 라이덴을 쳐다보았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고정시키기?’
라이덴이 양손을 번갈아 가며 잡는 것으로 곤봉을 눈앞에 띄워 두고 있었다.
2개, 4개, 6개의 곤봉이 허공에 못 박힌 채 고정되었고, 마침내 모든 곤봉이 라이덴의 손에 넘어갔다.
부우우우웅!
벌의 날갯짓처럼 공기가 떨리고 라이덴의 손이 잔상으로 풀어지면서 10개의 곤봉 사이를 돌아다녔다.
“크으으으으!”
앙다문 이빨 사이로 신음성이 새어 나오고, 샤갈과 티아는 저글링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풍이 갑자기 그치고 라이덴의 두 손이 정지하자, 마치 실이 끊어진 듯 10개의 곤봉이 후두두 떨어졌다.
“후우, 오랜만에 했더니 힘들군.”
“단장님, 대체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