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92
명확한 기준을 잡기가 애매하기 때문에 합격과 불합격을 미리 판단하는 것은 손해였다.
73번은 실버링 길드의 마스터인 아크만이었고 자신의 장기인 파이어 스네이크 마법을 가감 없이 보여 주었다.
‘확실히 저 마법은 편리해.’
화염의 로브와 불의 감옥이라는 마도 무구의 덕을 상당히 보는 마법이지만 어차피 실전이었고 그렇다면 장비 또한 강점이 될 수 있었다.
‘나도 아르망을 착용하고 있으니까.’
화염의 뱀이 똬리를 틀며 내려앉는 것까지 확인한 세 사람이 박수를 보내자 아크만이 멋쩍은 얼굴로 인사했다.
이미 대결에서 패한 능력이었으니 시연을 하기가 민망한 탓이지만, 시로네의 입장에서는 아크만 정도의 실력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일단 합격 쪽으로 가닥을 잡아 두자.’
아크만이 나가고 바통 터치하듯 전쟁마차 길드의 마스터인 요르딕이 들어왔다.
1차 평가 때와는 달리 마도 무구를 장착하고 있었는데, 아르망처럼 손바닥에 수정구가 박힌 커다란 글로브였다.
“74번 요르딕일세.”
응시자의 자격이지만 누구에게도 완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는 태도는 여전했다.
“네. 주특기를 보여 주세요.”
요르딕이 장비를 먼저 소개했다.
“아이스 글로브라는 마도 무구일세. 내 빙결 마법과 결합하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지. 예를 들면…….”
요르딕이 손바닥을 내밀자 수정구가 푸르게 빛을 발산하더니 순식간에 대기를 얼렸다.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그런 다음 주먹을 불끈 쥐자 얼음이 마치 물줄기처럼 출렁거리더니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채찍으로 변했다.
“이런 식으로 덤비는 놈들의 목을 베지.”
팔을 크게 휘돌리자 얼음 채찍이 바람 소리를 내며 시로네의 눈앞을 후려치고 되돌아갔다.
‘아하, 형태가 고정되지 않는다는 거구나.’
빙결 계열은 조형력이 뛰어난 반면에 유동성이 떨어지는 게 단점.
하지만 아이스 글로브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실시간으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단단한 얼음조차 채찍처럼 구사할 수 있었다.
“뭐…… 이 정도로만 해 둘까? 사람을 죽이는 진짜 기술은 여기서 보여 주기 어려우니까 말이야.”
시로네의 반응을 기대하며 요르딕이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렸으나, 시로네의 시선은 어느새 서류에 못 박혀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합격 여부는 개별적으로 통지가 될 거예요.”
“…….”
잠시 민망한 기분으로 서 있던 요르딕은 아리아가 다음 사람을 부르자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쳇, 하여튼 요즘 것들은.’
다음 차례인 75번은 블러드로즈 길드의 마스터 이비앙이었다.
실력은 일단 미뤄 두고, 다른 쪽에 신경을 쓴 티가 물씬 드러나는 의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응시자 번호 75번, 이비앙이라고 합니다.”
손가락 끝으로 치마를 잡고 좌우로 펼친 그녀가 한쪽 다리를 뒤로 빼내며 다소곳이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예쁘시네요.”
“어머, 정말 그렇게 보여요? 이상하다, 그냥 평소대로 하고 나온 건데. 호호호!”
과장되게 웃는 이비앙의 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리자 시로네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첫인상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이비앙도 웃음기를 거두고 자신의 주특기를 선보였다.
“마그네틱 컨트롤.”
이비앙의 전공은 전기 마법, 그중에서도 자기장 계열로, 금속을 조절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검은색을 띠는 흑철구체 ‘금룡의 눈동자’를 집어 던지자 허공에서 쇳가루로 풀어지며 그녀의 주위에 자기장의 형태를 드러냈다.
“호오.”
은하수처럼 흐르는 철 가루를 바라보며 시로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짓자 자신감을 얻은 그녀가 철 가루로 장미꽃을 조형해 시로네 앞으로 보냈다.
눈앞에 떠 있는 장미는 색깔만 검을 뿐 실제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했고, 천천히 손으로 쥐려고 하자 다시 연기로 풀어지며 이비앙에게 돌아갔다.
“멋지네요.”
“전문은 조형이지만 위력도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집중했을 때는 200킬로그램까지 중력을 이겨 낼 수 있답니다.”
장검 수십 자루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힘이었다.
‘이 마법은 유용하겠어. 이비앙 씨도 합격선에 두자.’
루피스트, 제인, 아크만, 요르딕, 이비앙까지.
초반부터 이 정도 라인업이면 뼈대는 잡혀 간다고 볼 수 있었다.
번호가 훌쩍 뛰어서 121번 에텔라의 차례가 돌아왔고, 그녀가 평가를 위해 준비한 것은 마그하르트와 마찬가지로 격파였다.
‘하긴, 이것보다 임팩트가 큰 것도 별로 없지.’
천국에서 사탄과 일전을 겨룰 정도의 실력자지만 준비물까지 동원해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심사관을 존중한다는 뜻이었다.
“음양파동권의 비술을 시연해 보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시로네가 학교 스승에게 예의를 갖추고, 1차 평가의 섬뜩함이 남아 있는 리안도 신중하게 지켜보았다.
그녀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사람의 얼굴 크기의 철구였고, 단단함을 확인하듯 눈높이에서 떨어뜨리자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박혔다.
“철을…… 부순다고?”
아리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에텔라가 허리를 숙이며 주먹을 겨누었다.
“후우우우.”
심호흡을 하는 것도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신 에텔라의 주먹이 엄청난 속도로 철구를 강타했다.
터더더더더덩!
사람의 주먹으로 때린다고 믿기 어려운 소리가 연달아 터지고 소리의 횟수만큼이나 많은 파동이 철구의 내부에 휘몰아쳤다.
‘강뢰장!’
손바닥을 활짝 펼친 에텔라는 마지막 파동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드르륵 하고 흔들리던 철구가 마치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산산조각 깨졌다.
“우와아아아!”
언제 봐도 멋진 실력에 시로네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지간한 마법으로도 박살 낼 수 없는 철구를 인간의 육체로 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파편을 정리한 에텔라가 다시 자세를 취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의 동안의 미소를 지은 에텔라가 공터를 떠나자 시로네가 리안을 돌아보았다.
“어때? 합격이야?”
“응? 아, 물론이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실력이었고, 그렇기에 리안이 선뜻 평가를 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문제 때문이었다.
기사 수행 때는 오직 이기는 것만이 중요했으나 오늘 응시자들이 얼마나 기술적 심화를 이루었는지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로네가 다음 참가자를 불렀다.
“147번 들어오세요.”
부르고 난 뒤에야 깨달은 시로네가 서류를 확인했다.
‘아, 이 사람이었구나.’
질풍의 위그.
왼쪽 어깨 뒤에 쌍검을 11자로 장착한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147번입니다. 아는 사람들은 질풍의 위그라고도 부르지요.”
“흐음.”
리안이 입을 굳게 다물고 팔짱을 꼈다.
1차 평가 때부터 시종 도발의 기운을 보내고 있는 위그였다.
“그럼 주특기를 보여 주세요. 쌍검술이겠죠?”
“뭐, 솔직히 무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싸웁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깨 너머의 쌍검을 동시에 뽑아 든 위그가 한쪽 눈을 감으며 리안을 겨누었다.
“누구를 이길 수 있느냐가 아닐까요?”
리안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물었다.
“그래서…… 누구를 이길 수 있지?”
역시나 후퇴를 모르는 성격이었고, 위그가 기다렸다는 듯 제안을 했다.
“바로 당신. 진검 승부를 청합니다, 마하의 기사여.”
오감불충분 (3)
“그건 안 됩니다.”
리안이 대꾸하기 전에 시로네가 못을 박았다.
“심사관은 엄연히 우리고 인력도 우리가 뽑습니다. 실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위그 씨이지 리안이 아니에요. 만약 이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평가를 포기하셔도 좋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에 위그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칼까지 겨누어 놓고 이대로 끝나 버리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고, 리안이라면 분명 시로네와 다른 반응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마법사의 판단은 그렇다고 쳐도, 과연 마하의 기사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기사라고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차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어떤 효율도 신념 앞에 저버릴 수 있는 인간.
신진 검사로 동등하게 이름을 알린 마당에 도전장을 받고 도망칠 수는 없을 터였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리안의 말에 위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내 주군이 거부한다면 나는 하지 않을 거야.”
기사 서약의 무게는 위그도 알고 있었다.
“다르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여기서 당신이 물러서면 주군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번에는 리안이 입꼬리를 올렸다.
“너…… 아직 기사 서약 하지 않았지?”
“그렇습니다만.”
“검은 판단하지 않는다. 시로네가 너를 베라고 한다면 벨 것이고, 베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베일 뿐이지. 어떤 말로 감정을 흔들어도 내 행동의 의지는 내 것이 아니야.”
위그의 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위그 씨, 심정은 이해하지만 상황 파악을 잘하셔야 해요. 어디까지나 제 용병단이고 합격과 불합격도 제가 결정합니다. 만약 위그 씨가 정말로 리안과 겨루고 싶다면…….”
“겨루고 싶다면?”
“위그 씨가 어째서 저에게 반드시 필요한 검사인지 증명하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위그 씨를 데려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저도 리안에게 진검 승부를 허락할지도 모르죠.”
“……이해했습니다.”
논리에 승복한 위그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예의 자유분방한 미소는 사라지고 싸늘한 한기만이 표정에 감돌고 있었다.
“그럼 검술을 보여 드리죠. 질풍의 위그입니다.”
심사관을 주목시킬 목적이었다면 초반의 도발은 성공적이었고, 세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가 보겠다는 듯 차가운 눈으로 위그를 응시했다.
쌍검술이 시작되었다.
기본기를 선보인 위그는 금세 지루하다는 듯 현란한 동작으로 사방을 베어 나갔다.
달리고 도약하고 착지와 동시에 회전하는 중에도 검의 궤적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속도가 빨라졌다.
‘확실히 엄청난 운동성이다.’
위그는 네 장의 스키마를 운용할 수 있었고, 이는 검사들 사이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수치였다.
스키마를 열지 못한 사람은 단순한 수직 베기를 하는 중에도 자신의 신체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리안도 거울 앞에서 수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오류를 잡아내는 것이다.
반면에 네 가지 영역의 신체 변화를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면 자세는 물론이고 자신의 발가락 10개 중에서 어느 쪽에 더 힘이 가해지고 있는지 1번부터 10번까지 줄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여기까지가 재능의 영역.
위그는 본격적으로 스키마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미토콘드리아 빌드.’
전반적인 신체 활성화를 도모하는 미토콘드리아 빌드는 밸런스에 강점이 있다.
크게 재생과 가속으로 나뉘는데, 위그의 동작이 빨라진 것을 보면 가속을 택한 듯했다.
‘여기에서 접기.’
‘접기’는 스키마를 반으로 접어 통제권을 더욱 집중시키는 행위로, 인간의 한계로 알려진 7회에 도달하면 효율이 128배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신의 경지지만, 300년 전 대검호 카델이 최초로 도달한 이후로 전례가 없었다.
위그의 한계는 3회였고, 미토콘드리아 스키마를 접자 동작 하나하나마다 강풍이 몰아쳤다.
“우와.”
이번만큼은 시로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적단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기본기에다가, 효율이 8배로 치솟자 아르망의 신경 강화의 도움을 받은 상태에서도 잔상이 보일 정도였다.
‘이것으로 끝낸다.’
원심력이 강해지면서 위그의 몸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신체 활성화를 기본으로 근육계, 신경계, 감각계가 동시에 통제되자 무시무시한 강풍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공터를 휩쓴 그가 심사관들 앞에서 마무리 자세를 취할 때는 섬뜩한 파공음이 송곳처럼 6개의 귀를 관통했다.
“이상입니다.”
검을 갈무리한 위그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뒤로 물러서 원래의 자리에 섰다.
‘리안…….’
시로네는 신중하게 판단을 기다렸다.
다른 응시자들과 다르게 문외한인 그가 보더라도 대단한 실력이었지만 그렇기에 리안의 의사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멋진 솜씨군. 질풍의 위그라는 명성이 허명은 아니야.”
“감사합니다.”
위그가 쌍검을 등 뒤로 꽂으며 말했다.
“시로네 씨의 의견도 듣고 싶은데요. 저는 합격입니까?”
“……네.”
여태까지 형평성을 강조한 만큼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제가 제안을 하죠. 저를 용병대에 편입시키고 싶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차피 시로네 씨가 대장이지만, 저보다 약한 부대장 밑에서 목숨을 걸 수는 없는 일 아닐까요?”
시로네는 볼을 긁적거렸다.
아직 모든 응시자의 주특기를 본 것은 아니지만 위그만 한 실력자는 쿠안을 제외하면 없을 듯했다.
“시로네, 고민할 필요 없어.”
리안이 말했다.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면 쓰면 된다. 내가 중요시하는 건 그것뿐이야.”
이미 대답을 예상하고 있다는 듯 리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약한 지휘관을 따를 검사는 없으니까.”
리안의 의지를 느낀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진검 승부를 허락합니다. 주제넘은 말이겠지만 임무에 차질은 없도록 해 주세요. 프로니까 잘 조절하리라 믿습니다.”
위그는 순순히 승낙했으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로니까 양보할 수 없는 거지.’
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로네 용병단에 지원한 만큼, 적당히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리안이 대직도를 천천히 끌어 올리며 공터로 들어갔다.
“5분 정도만 상대해 주도록 하지.”
‘완전히 무시하는군. 친구 팔아 먹고사는 주제에.’
질풍의 위그나 마하의 기사나 신진으로 이름을 날린 시기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