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97
썩은 내가 진동하는 시체 더미를 지나 대직도를 후리자 내장 찌꺼기가 쭉 하고 튀어 나갔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강철의 마법으로 갈로퍼의 몸을 우그러뜨린 루피스트가 리안의 말에 대답하듯 입을 열었다.
“느낌이 좋지 않군. 아군이 밀집되어 있어서 광역 마법을 쓰기가 애매한 상황이야.”
“뭔지는 몰라도 요상한 룰이 문제야. 두려움에 지면 죽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두려움을 키우고 있잖아.”
루피스트가 곁눈질을 하며 물었다.
“너라고 예외는 아닐 텐데? 여긴 지옥이야.”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리안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는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다시 대직도를 끌며 전장으로 멀어져 갔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
리안의 등을 눈에 담고 있던 루피스트가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며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하긴 그렇군.”
핵심 멤버들의 활약에 힘입어 팽팽한 싸움을 이어 나갔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저들이 우리를 죽이는 게 아니다.’
날렵한 동작으로 식칼을 회피한 시로네가 목을 쓸어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어.’
현재까지 발생한 3명의 사망자 중에 2명은 내면의 공포에 죽었다.
“리안! 대원들을 데리고 후퇴해!”
아무도 전선을 이탈하지 않았다는 것은 급조된 팀에서 이례적이었으나 실제로는 도망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음이 꺾이면 죽는다!’
모두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고, 시로네의 지시가 떨어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돌렸다.
‘이건 대장의 지시야! 나는 겁을 먹은 게 아니야!’
그렇게 합리화시키며 리안을 따라 후퇴하자 시로네가 홀로 골목을 틀어막았다.
“대장! 뭐 하는 거야!”
바이콘이 철갑옷을 철컹거리며 소리쳤으나 시로네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갈로퍼들을 노려보았다.
‘일격에 끝낸다.’
시로네의 몸에서 기름이 타오르듯 빛이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광천사의 화신이 날개를 활짝 폈다.
탁한 지옥의 풍경마저도 성스럽게 보이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빛무리 속에서 광천사가 빛의 창을 쳐들었다.
“저, 저게 뭐야?”
광천사의 화신-천사의 징벌.
빛의 선이 사선으로 내리꽂히더니 섬유질로 뒤덮인 바닥을 완전히 뚫고 들어갔다.
‘이런……!’
사람이 밟기에는 충분히 단단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꽂히는 천사의 징벌에는 스펀지나 마찬가지였다.
낭패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지하에서 발생한 충격파에 사방의 구조물들이 풍선처럼 팽창했다.
쿠우우우웅!
엄청난 진동에 세상이 둘로 겹쳐 보이고, 사방의 벽에서 핏물과 함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
단지 그것만으로 강철 같은 피부를 자랑하는 갈로퍼들의 몸이 쥐포처럼 쭉쭉 찢어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구조물이 충격파를 먹어 버렸어.’
그렇다면 오히려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광역 마법을 응용할 수 있을 터였다.
“좋은데?”
라둠으로 (4)
상대적으로 극소한 질량과, 상대적으로 극대한 속도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쇼크웨이브 계열의 마법.
워낙에 파괴력이 막강하여 폭발 마법처럼 보이지만 천사의 징벌의 본질은 초음속에서 발생하는 충격파였다.
찢어지고 비틀린 구조물들이 팽창을 멈추고 제자리를 되찾아 가자 남은 것은 진동에 터져 버린 갈로퍼의 찌꺼기 같은 편린들뿐이었다.
‘흡수된다.’
시로네는 놈들의 잔해가 바닥의 섬유질로 스며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이곳의 구조물 전체가 시체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했다.
“끝, 끝난 건가?”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콘이 중얼거렸다.
대지 마법을 전공한 그의 좌우에는 갈로퍼의 공격에 상처 입은 골렘 두 기가 서 있었고 스피릿 존을 해제하자 흙으로 쏟아지며 소멸했다.
베테랑B의 자부심도 조금 전의 마법에 비하면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수준이었다.
‘저것이 상아탑 후보의 마법인가.’
아크만은 이미 패배로 깨달았으나 남은 두 길드의 마스터는 시로네의 무위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니, 시로네로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이런 기상천외한 마법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포의 분위기에 잠식되어 절망에 빠진 자도 있었다.
“흑, 흐윽.”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블러드로즈의 길드원 엘위가 두 주먹을 쥐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엘위, 정신 차려. 용기를 잃으면 안 돼.”
마스터 이비앙이 다독였으나 한번 북받친 감정은 쉬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난 이제 죽을 거야.”
“그렇지 않아. 살아 있잖아, 지금도!”
강력한 신경가스를 살포하며 전장을 누비던 독 마법사 엘위가 이토록 나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틀렸어요! 아무리 해 보려고 해도 공포가 사라지지 않아요! 죽을 거야, 난……!”
갑자기 그녀가 꺽꺽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공포가 아닌 공포에 잠식당하는 자기 자신, 한번 마음을 놓치면 끝없이 어둠으로 빨려 들게 되는 것이다.
“어? 어어?”
엘위의 눈이 말려들어 가고.
“엘위! 안 돼! 참아!”
모두 또 1명의 사망자가 생길 것을 직감하는 그때.
“괜찮아요.”
시로네가 엘위를 끌어안았다.
“아…… 아아아…….”
온기를 느낀 엘위의 동공이 점차 제자리를 되찾으면서 죽음이 잠시나마 유예되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곳이 어떤 곳이든 허무하게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날 믿고 따라오세요.”
엘위의 얼굴에 잠시 안도감이 스쳤으나 이내 입술이 삐죽 내려왔다.
“거짓말! 대장은 강하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결국 약한 사람부터 죽는 거잖아! 여기서는 신경가스도 통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것이 화근이었다.
“날 버릴 거잖아! 결국 다른 사람보다 내가 먼저 죽기를 바랄 거잖아!”
공포가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독은 쓸모가 없어요.”
시로네는 놀란 엘위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조곤조곤 설명했다.
“하지만 이곳을 나가면 엘위 씨의 마법은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뽑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믿어도 돼요.”
“정말? 내가 아직도 필요한 거야?”
“당연하죠. 그리고 봐요, 지금도 이렇게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 있잖아요.”
엘위는 그제야 죽음이 자신을 비껴갔음을 깨달았다.
“엘위 씨 정도의 마법사라면 얼마든지 정신을 되돌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 보죠, 우리.”
비록 비공인이지만 엘위 또한 마법사였다.
“고마워.”
비로소 정신을 차린 엘위가 미소를 짓자 시로네도 마주 웃어 주었다.
하지만 좌중을 돌아보며 지시를 내릴 때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걷혀 있었다.
“생체 시간으로 따지면 지금은 새벽이에요. 이 상태로 전진은 의미가 없을 것 같으니 쉴 곳을 찾죠.”
끔찍한 환경에서의 피로가 어마어마했기에 이견은 없었다.
구울들을 가급적 피해 도착한 곳은 한때는 커다란 창고였을 것 같은 거대한 심장 속이었다.
“따듯하군.”
그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고, 그 사실에 혐오감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대체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거지?”
콘의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시로네가 환기시켰다.
“불침번을 서죠. 인원이 충분하니 순번을 정해 두고 임무가 끝날 동안 도는 게 좋겠어요.”
카르긴은 ‘그사이에 누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농담을 생각해 냈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하지.”
이런 쪽으로는 단련이 된 쿠안이 절뚝거리며 심장 밖으로 나갔다.
“저 사람이라면…….”
대원들이 들리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병대원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라는 것은 갈로퍼와의 전투를 통해 이미 증명된 바였다.
‘황송하군.’
외교관 아리아의 경호원이 지켜 준다고 생각하자 괜찮은 기분이었고, 그렇기에 쿠안 또한 첫 번째 불침번을 자청한 것이었다.
“잠시 눈 좀 붙여 두세요. 3시간 후에 출발하겠습니다.”
충분한 휴식은 될 수 없지만 이런 전쟁터에서는 죽지 않기 위해 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원들 대부분은 잠에 들지 못했다.
의식이 가라앉을수록 구조물의 심장박동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기분이었다.
‘네오…….’
자리에서 일어난 궁수 조슈아가 목에 걸린 펜던트를 열었다.
“애인인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빠르게 고개를 돌리자 카르긴이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관심 꺼. 영감은 질색이야.”
“흥미를 가져 본 적은 있고?”
잠시 생각해 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야?”
카르긴이 턱짓으로 펜던트를 가리켰다.
“애인인가?”
“아니.”
펜던트 안에는 네 살짜리 아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내 아들이야.”
“흐음, 결혼한 줄은 몰랐는데?”
“안 했어.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도 몰라. 그때는 철이 없어서…….”
용병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돈을 주고 하룻밤을 원하는 남자들을 제법 만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임무보다 벌이가 쏠쏠했기에 마음이 내킬 때는 조슈아도 승낙했지만, 방심하고 피임을 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카르긴 또한 용병들의 생리를 모를 리가 없기에 자초지종을 생략하고 물었다.
“아들 때문에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 건가?”
“죽었어.”
탁 소리를 내며 펜던트가 닫혔다.
“열사병이었지. 비루스인가 뭔가로 감염된다고 하던데. 치료제는 있었어. 돈이 없었을 뿐이지.”
조슈아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안됐구먼.”
지옥이어서일까, 진심으로 들렸다.
“당신은? 가족이 있어?”
카르긴이 씁쓸하게 웃었다.
“애석하게도 여태까지 노총각일세. 진정한 노총각이지. 물론 숫총각은 아니지만 말이야.”
해묵은 헛소리에 조슈아가 실소했다.
“농담 아니야. 확인해 볼 텐가?”
카르긴이 바짓단을 내릴 자세를 취하자 조슈아가 차갑게 고개를 되돌리며 말했다.
“미친 영감탱이군.”
“껄걸, 뭐 상관없지 않나? 공포를 이기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지. 게다가 오감이 변했다니 뭔가 새로운 경지를 맛볼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왜 나야? 저기 아름다운 수도사도 있고, 일국의 외교관도 있는데.”
“그야 자네가 제일 예쁘니까 그렇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얼마 줄 건데?”
“뭐?”
“예쁘다며? 그쪽에서 불러 봐.”
카르긴은 잠시 고민하더니 큐브릭에서 최상급 금화를 꺼냈다.
조슈아가 현물로 받겠다고 할 때 태클을 걸기는 했지만 그도 가족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게 내 전 재산일세.”
루피스트에게 받은 10만 골드, 전부가 손에 올라와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사람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는 영감이었다.
카르긴에게서 5만 골드를 낚아챈 그녀가 큐브릭에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만 받을게. 뒷문으로 나가자.”
머쓱하게 남은 금화를 챙긴 카르긴이 따라가며 물었다.
“난 정말 상관없네만…….”
“고작 이딴 걸로 목숨 던지지 마. 반드시 살아서 나갈 테니까, 그때 실컷 즐기라고, 영감탱이야.”
몇몇은 잠에 빠졌지만 시로네를 비롯한 핵심 멤버들은 구석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고, 조슈아가 허락을 구하듯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루피스트가 알아서 하라는 듯 손짓을 하자 두 사람이 뒷문을 통해 나갔다.
“괜찮아요?”
“왜? 너도 긴장 좀 풀게?”
시로네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위험하잖아요. 이 세계의 특성상 어떤 감정적 변화가 영향을 미친달지…….”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저들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거야. 여기서 더 몰아세우면 진짜 죽어.”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린 경험이 있는 협회장이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시로네를 비롯한 핵심 멤버들이야 왕국에서 손에 꼽아 준다는 정신력의 소유자들이지만, 단지 두렵다는 이유로 죽어 버리는 상황에서 일반 용병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