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98
엘위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기에 시로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저기…… 메이레이 씨.”
“아, 네?”
계속 귀를 막으며 신의 주파수를 실험하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아까 신탁이라고 하셨죠? 그게 정확히 어떤 거죠?”
제인이 탈출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딱히 성과가 없는 지금 메이레이의 정보는 중요했다.
“아, 그래요.”
시로네의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설명했다.
“사실 기억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해요. 신탁 과정이 워낙에 몽환적이라서. 다만 이곳에 들어와서 문득 떠올랐어요. 어떤 정보들은 그렇게 떠오르기도 하죠.”
“이면 세계라고 했죠?”
“네. 하지만 그건 제가 해석한 용어에 불과해요.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다양한 감각으로 세계를 탐지하니까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지금 이곳도 구분 짓지 않을 거예요.”
“왜 미리 얘기해 주지 않은 거예요?”
“사실은…… 지금 말하는 것도 이제 막 떠오른 거예요.”
자유연상 기법 같은 것이라면 대화를 통해 더욱 끌어낼 수 있을 터였다.
“통합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죠?”
메이레이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입을 열었다.
“전에 제가 오빠에게 촉이라고 한 적이 있죠?”
“네. 메이레이 씨는 청이고요.”
“시불상폭매라는 능력에 대해 들었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 그거였어요. 오빠는 아마도 제6감을 열어 버린 거죠.”
“제가요?”
“테라포스 교단은, 아니, 정확히는 테라포스 신들은 감각의 종류를 열한 가지로 분류해요. 인간은 오감이 전부지만 어떤 감각 개체는 더 많은 감각으로 우주를 이해하죠. 감각의 정점, 제11감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시로네가 고개를 젓자 그녀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궁감窮感, 즉 울티마 시스템이에요.”
“울티마가…… 열한 번째이자 마지막 감각?”
“알고 있어요, 오빠가 가이아인의 최종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신호를 해석하는 게 울티마의 본질은 아니에요. 인간의 제6감은 오감의 통합으로 발현되죠. 제7감은 육감의 통합으로 발현되고요. 이런 식으로 통합을 거쳐서 11단계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이것이 테라포스 신들의 지식이었던 것 같아요.”
더욱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듯 메이레이의 말이 빨라졌다.
“인간은 오감의 존재이고 그렇기에 제6감의 발현은 한시적이에요. 하지만 오빠는 완벽하게 열었어요. 그들이 말하는 여섯 번째 감각, 시폭감時爆感을요. 시간을 초월해서 받아들이는 선명한 느낌이죠.”
어느새 루피스트는 물론이고 제인까지 와서 경청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열한 번째 감각을 열고 싶다면 계속 통합을 시켜서 새로운 감각을 열어야 해요. 생물학적으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했죠.”
“얼마나 많은 감각을 가지고 있지? 테라포스 말이야.”
“정확히는 몰라요. 제11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낮지도 않을 거예요. 어쨌거나 제7감을 열었기에 이곳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까요.”
제인이 퍼뜩 떠오른 듯 물었다.
“시폭감이 시간을 허문다고 그랬지. 그렇다면 제7감은?”
“네. 공간의 장벽을 허물죠.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선을 허무는 감각.”
메이레이가 눈앞에 벽이 있는 것처럼 두 손바닥을 활짝 폈다.
“제7감 박지薄知.”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또 하나의 감각이었다.
공포의 군주 (1)
‘통속의 뇌’는 인간의 감각을 각성시켜 이면 세계의 실체를 느끼게 하는 라 에너미 고유의 능력이었다.
제7감적 현상.
월등히 높은 단계의 감각 아래에서 기존의 오감은 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지만.
‘어디에 있는 거냐.’
후각을 잃어버린 들개는 여전히 지옥을 배회 중이었다.
‘나와라.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
단도로 가득 찬 가방을 질질 끌며 샤갈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길을 끝없이 걸었다.
벌써 수십 마리의 갈로퍼를 처단했음에도 놈들의 살점은 그의 갈증을 해갈시켜 주지 못했다.
“라 에너미.”
샤갈은 라를 일곱 번 살해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숨통을 끊었고, 심지어는 더 이상 찌를 데가 없을 정도로 사체까지 훼손했다.
‘어째서 죽일 수 없는 거지?’
라를 죽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건의 향수는 선명해졌고 오히려 쾌감은 무뎌져 갔다.
마지막 일곱 번째의 살인에서는 이성을 잃어버린 탓에 어떻게 죽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이미 누군가가 용서했기 때문에.
라이덴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렇다면…….’
인간 자체가 악이다.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악이라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악에 대한 모든 가능성이 말소되었을 때, 이 세상은 완벽한 안정을 이루게 되는 것.
그렇게 샤갈은 살인자가 되었다.
최종 살인의 대상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저건 또 뭐야?”
가방을 끄는 소리에 쿠안이 고개를 돌렸다.
이면 세계의 괴기스러운 현상 앞에서도 태연했던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구냐, 넌?”
검을 겨누는 한 번의 동작만으로 접근을 멈춘 샤갈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나와 비슷하다.’
천재이기도 했지만, 일그러진 자였다.
“얼마나 죽였지?”
지금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쌓아 올린 시체의 개수를 샤갈이 묻자 쿠안이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1명.”
언제나 그렇듯 눈앞에 보이는 1명이 전부였다.
“네가 샤갈이로군.”
샤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라.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겠어.”
딱히 에텔라와 특별한 교감을 나눈 적이 없는 쿠안이지만 굳이 편을 가르자면 그녀 쪽이었다.
“후우우우.”
샤갈이 상체를 좌우로 까닥거렸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동작 속에는 진자 운동에 대한 깊은 진의가 담겨 있었다.
세상이 흔들리는 기분에 쿠안은 씁쓸했다.
‘이런 거였나?’
언제나 속이는 입장에서 싸워 왔기에 샤갈의 기술에 당하고서도 오히려 흥미가 돋았다.
“미안하지만…….”
쿠안의 몸이 매처럼 비상했다.
“그건 내 기술이야.”
비대칭의 극의-어릿광대 피에로.
허공에서 순간적으로 동선이 뒤틀리자 세상이 기울어지는 착각에 빠진 샤갈의 몸이 휘청거렸다.
‘뭐야…… 이건?’
당황스러운 감정은 잠시였고, 섬뜩한 살기를 느낀 그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쿠안의 칼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커스 계열. 그것도 최강의 곡예사다.’
스키마로 통제하는 세포들이 뜨거워졌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열망을 이토록 진하게 느껴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이던가?
“크크크크.”
착지와 동시에 허리를 뒤튼 샤갈이 가방을 허공에 던지자 수십 개의 단도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칼날의 소나기 한복판에서, 그의 두 팔이 곤충의 날개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공기의 진동에 쿠안의 눈썹이 꿈틀했다.
‘접지.’
스키마의 일부분을 접어 특정 기능을 강화시키는 기술.
더 극단적으로는 구김(오버 페이스)과 찢기(신체 피드백 포기) 같은 것들이 있으나 후폭풍이 상당했다.
‘이건 꽤 까다롭겠어.’
상대의 배후로 침투하던 쿠안의 동선이 일그러지듯 휘어들더니 다시금 주위를 맴돌았다.
샤갈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팔을 휘둘렀다.
“덤벼라, 곡예사.”
허공에서 날뛰는 단도들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사방으로 속사검의 껍질을 뿜어냈다.
‘쳇, 원거리 기술도 있었나?’
시간을 끄는 것은 손해라는 판단을 내린 쿠안이 12개의 외중력을 토해 내며 샤갈의 영역을 뱀처럼 파고들었다.
‘왔구나.’
샤갈의 눈이 번쩍 뜨이고, 마침내 최강의 곡예사와 최강의 저글러가 기술의 자웅을 겨루었다.
***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감각이라.”
박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시로네가 되물었다.
“그게 대체 어떤 감각이죠?”
메이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시폭감은 오감의 통합으로 완성되기에 평범한 사람들도 가끔 느낄 수 있죠. 하지만 박지는 육감의 통합이에요. 오감의 존재에게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죠.”
제인이 말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보자면 시로네는 가능하다는 거잖아? 이미 제6감을 완벽하게 통합시켰으니까.”
평범한 사람들도 육감의 도움을 받는다면, 시로네 또한 특별한 조건하에서 제7감을 느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면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 주요한 힌트가 되겠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감조차 잡기 어려웠다.
“그렇게 말한들, 뭔지를 알아야 시도라도 해 보죠.”
일말의 기대감으로 시로네가 메이레이를 바라보았으나 박지에 대해서는 그녀도 별다른 기억이 없는 듯했다.
“확실한 건, 이면 세계는 우리가 살던 세계와 중첩되어 있다는 거예요. 감각의 영역에서 구분되는 것이지 기존의 세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거죠.”
상위 감각에서는 엄연히 하나의 세계라면 인류 또한 이면 세계의 간섭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시로네는 가끔 혼자 있을 때 이유 없이 오싹한 느낌이 드는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상상이 단지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식으로든 이면 세계의 영향을 받았다면, 이곳이야말로 인간의 영감이 흘러나오는 원류였다.
‘하나의 공간에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담긴다.’
이것이 시폭감이다.
‘하나의 시간에 존재와 비존재가 동시에 담긴다.’
이것이 박지감.
‘따라서 기존의 세계와 이면 세계를 동시에 인지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방법인데…….’
시로네가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심장으로 만든 구조물이 갑자기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대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변화를 감지한 핵심 멤버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저건?”
공간의 틈새가 수직으로 베이더니 이면 세계의 또 다른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3미터의 신장에 흑철 갑옷을 걸쳤고 투구 안쪽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어두웠다.
안구가 적출당한 흑마를 타고 있었고, 늘어뜨린 창끝에서는 푸른 불꽃이 살아 있는 듯 피어올랐다.
“기억났어요.”
메이레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공포의 군주 이고르. 공포에 질린 대원들이 죽은 이유는, 이곳이 그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에요.”
통속의 뇌는 인간의 오감을 생생한 날것으로 변화시키고, 이고르의 공포는 그 뇌에 직접 충격을 가한다.
루피스트가 물었다.
“강한가?”
“직급은 사단장. 무력은 신탁을 통해 들은 바가 없어요.”
이면 세계의 계급 체계가 기존의 세계와 유사하다면 사단장은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직위였다.
“라크타스 베라 이메라(공포에 굴종하라)!”
오른팔을 번쩍 치켜든 이고르가 청염이 불타는 창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
“후우우.”
카르긴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어때? 나이 먹어도 제법이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흉갑까지 꼼꼼하게 정비한 조슈아가 카르긴의 담배를 빼앗았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긴장 바짝 하는 게 좋을 거야. 덕분에 잠도 못 잤어.”
“하루 못 잔다고 죽지는 않아. 기분도 그럭저럭 풀렸으니 이제…… 응?”
담배를 다시 뺏으려던 카르긴은 조슈아의 손가락 끝에서 타들어 가는 꽁초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뭐 하는 거야? 안 뜨거워?”
손등을 때려 담배를 떨어뜨렸으나 그녀는 그것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어딘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레오…….”
네 살 때 열사병으로 죽은 아들이 좁은 골목 안쪽에서 조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나 너무 아파. 몸이 너무 아파.”
“레오!”
벌떡 일어난 조슈아가 골목으로 내달리자 카르긴이 로브를 걸치며 뒤쫓았다.
“기다려! 갑자기 왜……!”
하지만 그도 달리는 길목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마리앙?”
루키 시절에 만나 미래를 약속했으나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괴물에게 기습을 당해 사망한 여자였다.
그녀가 잡아먹히는 동안 전력을 다해 도망쳤던 카르긴은 그때 자신의 남은 삶이 절망밖에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너무…… 너무 어렸어. 너무 무서웠어! 미안해! 미안해, 마리앙!”
“무서웠다고? 나보다 더 무서웠을까? 내가 그때 무슨 일을 겪었는지 똑똑히 봐!”
카르긴의 망막에 40년 전 그날의 일이 펼쳐지면서 끔찍한 현장의 광경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