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06
고블린 창술-백팔번뇌.
예리한 휘파람 소리가 위그의 고막을 관통했다.
***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것 같군요.”
실버링 길드의 마스터 아크만이 에텔라에게 말했다.
전쟁마차 길드의 요르딕, 블러드로즈의 이비앙과 엘위, 중장갑 검사 바이콘까지 그녀의 뒤에 모여 있었다.
아크만은 길드원이었던 콘의 시신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스펙트럼의 하부 조직들이 일대를 수색하는 와중에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는 순전히 운이었고, 콘은 가장 재수가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멍청한 놈. 어떻게든 살았어야지.’
“저는 이제 생화로 가겠습니다.”
에텔라의 말에 대꾸가 없는 이유는 이번 작전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다.
무려 고대 병기가 지상을 요격하는 임무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같이 가 달라고는 말하지 않겠어요. 아니, 여러분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시로네가 판단할 문제였지만 에텔라는 자신의 제자였던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손해가 가지는 않을 거예요.”
여기까지 와 준 것만으로도 그들이 10만 골드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대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10만 골드로는 은퇴 자금도 안 되는데.’
일반 용병이 아닌 각자의 길드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임무 실패라는 것은 인지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터였다.
아크만이 불과 300미터 거리에 있는 생화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거의 다 왔잖아?’
핵심 멤버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으니 일단 합류하면 어떻게든 비벼 볼 수 있을 듯했다.
“실버링 길드가 남으면 전쟁마차도 남는다.”
요르딕이 말하자 이비앙도 물러서지 않았다.
“평생을 일군 길드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요.”
그들의 각오에 에텔라가 한숨을 내쉬는 그때, 길목 쪽에서 아이의 얼굴을 한 난쟁이들이 튀어나왔다.
마법 종족 필커였다.
“찾았다. 여기야!”
필커의 머리 위로 샤이닝 마법이 시전되자 고블린, 피두, 투보족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생화에 가까운 만큼 적들의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순식간에 길목이 적들로 가득 찼다.
“쳇! 돌파합시다!”
의기투합한 용병대원들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아인종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왕국 3대마법사길드의 마스터가 모두 모인 만큼 화력은 무시무시했다.
이비앙이 마그네틱 필드로 적들의 무기를 묶자 바이콘이 육중한 몸으로 치고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여태까지 밥값을 못했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돌진하는데, 측면에서 비수가 날아들었다.
“크윽!”
챙 소리를 내며 단도의 칼날처럼 생긴 껍질이 튕기고, 이어서 한눈에도 정상이 아닌 샤갈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샤갈!”
에텔라가 소리쳤으나 순식간에 아인종의 인파가 밀려들어 샤갈의 모습을 차단했다.
‘저자는 위험해!’
아인종들을 주먹으로 격파하며 길을 열자 붕 하고 공기가 진동하는 속사검 특유의 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 와서 죽을까 보냐!”
바이콘이 좌우로 몸을 뒤틀자 샤갈의 단도가 중장갑에 튕겨 나갔다.
‘두껍군.’
샤갈의 감흥은 거기에서 끝이었고, 푝푝푝 소리를 내며 세 번의 칼질이 갑옷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갔다.
“으아아아아!”
좌우 안구와 왼쪽 목덜미에 껍질이 박힌 바이콘이 몸부림쳤다.
“스키마로 근육을 조여요! 그대로 놔두면……!”
에텔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이콘의 목덜미 쪽에서 핏물이 쭉 하고 뿜어져 나왔다.
생각보다 빠른 손놀림이라는 것은 적의 상태를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
이미 사망한 바이콘의 갑옷 틈새로 무려 12개의 껍질이 더 박히자 시체가 경련하듯 몸을 떨면서 쓰러졌다.
“바이콘 씨!”
에텔라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가려고 했으나 샤갈의 단도가 먼저 날아들었다.
전과 달리 명백히 미간을 노린 공격에, 에텔라가 상체를 젖히며 걸음을 멈췄다.
‘도대체 뭐냐, 너는.’
어째서 티아가 살아 있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상인가?’
샤갈이 용병대를 막아서자 뒤편에 있던 필커들이 순진한 얼굴로 수군거렸다.
“뭐야? 우리 편인가?”
“됐어! 빨리 싸우기나 해!”
기세가 불처럼 일어난 아인종들이 용병대원에게 돌진하는 순간, 샤갈이 고블린의 이마에 속사검을 박았다.
“컥!”
“이 자식! 적이다!”
스피드킬러의 멤버들이 급격히 방향을 선회하고, 수많은 단도가 허공으로 붕 날아올랐다.
‘죽이면 된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생명이 하나도 없어지면 비로소 명확해질 터였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연달아 터지고 순식간에 20명 이상이 핏물을 쏟아 내며 쓰러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샤갈을 바라보며 에텔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조리 죽여 주마.”
샤갈은 후천적 살인마다.
그리고 그는, 악 중의 악이었다.
오감 발생 (2)
***
브룩스가 의료진에게 소리쳤다.
“빨리! 시간이 없어!”
심장이 멈춘 상태에서 골든 타임을 넘기면 끝장이었다.
“이, 이런……!”
수완 좋은 용병 브로커답게 브룩스의 저택으로 날아온 자들은 응급 및 구급의 전문가들이었다.
전기 충격이 가해지고 심폐 소생술이 끝없이 치러졌으나 베네치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안 됩니다! 이미 죽었어요!”
“살려! 이 여자가 없으면 끝장이야!”
루피스트가 무사히 임무를 끝마치면 브룩스는 라둠을 관리하는 독점권을 얻는다.
가장 빠르게 라둠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면 역시나 스펙트럼의 수장인 베네치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죽어도 좋으니까 계속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나 의료진은 찰떡처럼 알아듣고 심장에 계속해서 충격을 가했다.
그렇게 15분이 지나고, 녹초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퍼지며 자리에 쓰러졌다.
“끝났습니다. 죽었어요.”
“빌어먹을!”
경칩이 깨질 정도로 문짝을 걷어찬 브룩스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 안을 씩씩대며 걸어 다녔다.
“허어어어억!”
그때 베네치아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폐가 허락하는 한도까지 공기를 들이마셨다.
“베네치아!”
브룩스가 달려가고, 의료진도 피로를 잊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 어떻게…….”
심장이 다시 뛰고 있었다.
“살았어요! 살았습니다, 브룩스 씨!”
“하하하! 그러게 내가 뭐랬어? 하면 된다고 했잖아!”
목적은 생명과 돈으로 갈렸지만 기쁜 것은 똑같았다.
“잠깐, 이 여자 왜 이래?”
의료진 중의 한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베네치아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상체를 일으키고 있는 그녀는 영혼이 빠진 듯 정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라 에너미…….”
삼뇌족은 과거, 현재, 미래를 인지하는 3개의 뇌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 베네치아의 머리에 살아 있는 뇌는 오직 과거를 인식하는 전前뇌뿐이었다.
이 또한 인간의 뇌와는 전혀 다른 기제의 감각 능력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라 에너미가 지나갔던 발자취를 따라 옆으로 움직였다.
“그를 만나야 해.”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여자 의료진이 나신의 상반신에 코트를 걸쳐 주었다.
“베네치아! 어디 가는 거야?”
현재를 인식하는 뇌가 죽어 버렸기에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분석할 수 없었고, 절대로 라 에너미를 만나서는 안 된다는 미래의 예측마저도 불가능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라 에너미가 베네치아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라둠으로.”
라 에너미를 보는 눈, 대정화기의 시視가 라 에너미를 좇아 걸음을 옮겼다.
***
생화의 입구에서 제인을 기다리고 있던 루피스트는 은폐 시설의 전력이 일제히 차단되자 눈살을 찌푸렸다.
‘느낌이 싸하군.’
생물적 피드백이 가능한 고대 병기가 모종의 결함으로 전력이 차단되었을 리는 없다.
결국 스펙트럼의 판단이었고, 인간 쪽에게 좋은 의도는 아닐 터였다.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거야.’
이빨을 깨문 루피스트의 입속에서 까득 소리가 났다.
생화의 크기로 봤을 때 최대출력이라면 왕성도 사정권에 들어간다.
최초 라둠을 관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요격 반경의 리미트를 설정해 두기는 했으나 라 에너미가 직접 연관이 되었다면 충분히 해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대정화기. 19년 전에 태어나서 방심했어.’
라 에너미가 과거의 사건을 지배한다면 해제 코드를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루피스트는 일행을 기다리지 않고 생화로 침투했다.
‘반드시 해결해라, 제인.’
그녀가 시간 내에 생화의 통제권을 가져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
수십 자루의 속사검이 박힐 때마다 아인종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졌다.
스펙트럼의 하부 조직에 속해 있는 모든 멤버들이 샤갈을 공격하고 있었고, 에텔라 일행은 그저 넋을 잃은 채 지켜볼 뿐이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야. 귀신이다.’
전쟁광인 요르딕조차 몸이 떨릴 정도의 살육이었다.
“으아아아!”
비명 소리가 점차 그들에게 가깝게 들리더니 마침내 샤갈이 인파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흐으으으!”
살의의 상형문자처럼 얼굴이 구겨져 있었고, 흰자가 드러난 눈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광기가 기름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죽인다! 모든 생명을 제거한다!’
명확한 목적 앞에 의심이 사라지자 스키마가 사상 최고의 기능을 뽐내며 육체를 강화시켰다.
“멈춰요! 제 얘기를 들어 보세요!”
에텔라가 소리치자 샤갈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티아!’
왜 그녀는 죽어야 했을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모든 생명이 사라지면……!’
생각할 것도 사라진다.
“죽어!”
속사검의 무위가 전투를 뛰어넘어 재앙 수준에 도달하자 종족을 막론하고 샤갈을 공격했다.
마치 생명을 없애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그의 반경 내로 들어간 자들이 순식간에 몸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져 나갔다.
‘승모근! 쇄골! 삼각근!’
“크아아악!”
고블린의 왼쪽 목선을 따라 칼날이 박히자 속사검의 껍질 밖으로 피가 뿜어졌다.
‘흉골! 대흉근! 외복사근! 복직근!’
“꾸에에엑!”
몸통에 칼날이 박힌 피두가 비명을 질렀다.
‘대퇴직근! 박근! 내측광근!’
“음머어어억!”
투보의 두꺼운 허벅지를 사선으로 타고 내려온 단도가 가랑이에서 시작해 다시 몸의 중심을 타고 올라가며 주요 장기를 가격했다.
‘방광! 콩팥! 위장! 폐! 심장!’
-요점은 신속하게 찌르는 것이다.
“닥쳐!”
망령처럼 떨어지지 않는 라이덴의 목소리를 외면한 샤갈은 미친 듯이 상체를 뒤틀며 사방에 단도를 찔렀다.
살육의 저글링.
찌른 곳에 다시 단도를 박아 비틀어 껍질을 수거한 샤갈이 다음 적들의 웨이브를 노려보았다.
시선이 충돌한 고블린의 턱이 덜덜 떨렸다.
“도, 도망쳐어어어!”
호전성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들의 입에서 도망치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샤갈이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다가오자 아크만이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파이어 스네이크를……!’
도착과 동시에 마법을 시전하려는데 발끝에서 밀려드는 고통에 동공이 흔들렸다.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