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12
‘어라? 이건?’
시로네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도 극히 드물겠지만 메이레이의 기억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뭐지? 이게 무슨 기억이야?’
“언제까지 빨고 있을 거야? 아파.”
“어? 아, 미안.”
황급히 입을 뗀 키도가 눈을 깜박거리며 메이레이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
그녀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에서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설마 자기 자신도 모르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키도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렇군. 큭큭큭, 이거 완전 흥미진진하게 돌아가는데? 어쩌면…….’
라 에너미에 대한 카운터가 될 수도 있었다.
“좋아, 접수했어. 출발해 보자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을 이용해 키도가 재촉하자 일행도 군소리 없이 몸을 날렸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
생화가 왕성을 요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7분 32초.
어림으로 시간을 계산한 제인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졌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혈액이 필요하고, 그럴수록 심장을 조이는 손의 저항은 거세져 갔다.
“크윽! 크윽!”
심장을 움켜쥐는 손에 이미 감각은 사라졌으나 정신 초월 마법은 인간 근력의 한계치를 뛰어넘어 끝없이 몸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인간의 신체를 기계로 놓고 봤을 때 심장근육을 팔의 근육으로 대체하는 작업이었으나 내구성은 같을 수가 없었고, 결국 툭툭 하고 근육과 힘줄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율법이 아닌 엄연한 마법이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기능을 다한 팔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허억!”
다시 심장이 멈추자 제인의 눈이 커졌다.
‘반대편 손으로…….’
인간의 팔이 양쪽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지금처럼 고마울 수가 없었다.
손을 바꿔 다시 심장을 수축시키자 신체 기능이 되돌아오면서 사망이 유예되었다.
귓가에서는 아리아의 울먹이는 소리가 환청처럼 퍼지고 있었으나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등에 업은 채, 제인은 메인 시스템이 있는 통제실에 들어왔다.
심장에서 손을 뗄 수는 없었기에 이미 근육이 박살 나 버린 손을 마치 막대기처럼 휘둘러 장치를 가동시켰다.
-아리아 씨, 코드를…….
울음소리가 뚝 그치면서 엄청난 양의 코드가 밀려들었다.
아리아도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6분 22초.
통제권을 되찾는 것일 뿐 요격 자체를 취소시키려면 조종실에 가야 하지만, 제인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협회장님이 해 주실 거야.’
-제인 씨! 괜찮아요?
비록 목소리뿐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의 배웅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리아 씨,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잠시 정적이 지나고, 차분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당신의 희생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은 없었다.
더 이상 스피릿 존을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차가운 기계장치에 등을 댄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약속은 지켰으니까.’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을 떠올리라면 두말할 것 없이 루피스트가 마법협회장의 자리에 오른 날이었다.
“제인, 너는 천재다.”
협회장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루피스트의 말에 제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죠.”
“살면서 우월감을 느껴 본 적이 있나? 네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점에서 말이야.”
“음, 아주 어릴 때 잠깐? 그런데 왜 그러시죠?”
“나는 우월감 같은 건 느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어째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않느냐고 말하지. 강력한 마법 능력과 직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말이야.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야. 우월감도 비교 대상이 있기에 가능한 감정이지. 천재도 둔재도, 결국은 시스템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가올드의 뒤를 이어 협회장이 되었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너무 극단적인 인사가 아니냐는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남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줄은 몰랐는데요?”
“신경 쓰지 않아. 아니, 어쩌면 신경 써도 좋겠지. 중요한 건 사실을 직시하는 거야.”
“협회장님이 생각하는 사실이 뭔데요?”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루피스트는 단호했다.
“90퍼센트의 인간이 담당하는 건 생산과 번식 정도야. 남은 10퍼센트의 인간이 그들의 자원을 소비하며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거지.”
“그건 좀 혐오스러운 사고방식이네요.”
“혐오스럽지. 하지만 사실이라면?”
루피스트는 제인을 돌아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주위를 이루는 것들을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매일 아침 자신의 앞에 빵이 놓일 수 있는 이유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야.”
“비난할 일은 아니죠.”
“맞아. 더 가치 있는 인생 따위가 어디 있겠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누군가는 그 혐오스러운 사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루피스트는 아직 교체되지 않은, 마법협회장 미케아 가올드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돌아보았다.
“지금 바꾸겠습니다.”
루피스트가 고개를 저으며 명패에 손을 얹었다.
“가올드는 인기가 좋았지. 친위대까지 있을 정도니까. 인간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 하지만 제인, 감정만으로는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 가올드가 개인의 극단에서 인간의 고통을 공감한다면, 나는 그 대척점에 있는 시스템의 극단에서 인간을 지킨다. 설령 혐오스럽더라도, 그것이 마법협회장이라는 왕국의 핵심 부속품으로서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군요.”
아주 개인적인, 오직 제인에게 바치는 협회장 취임사였다.
“너에게는 고마워하고 있어. 네가 없었으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거다.”
평생 하지 않던 칭찬에 제인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게다가 저도 비서실장이 됐고.”
“그러니…….”
무뚝뚝하게 뒷짐을 지고 돌아본 루피스트가 짧게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제인의 눈이 가느다랗게 휘어졌다.
‘제 삶에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제인은 그날의 일을 그렇게 회고했다.
여기까지 와서 삶에 큰 미련은 없지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되돌려 보고 싶었기에 끝없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손목의 근육이 파열되면서 그조차도 불가능하게 되어 버리자 배 속에서 손을 끄집어냈다.
뇌로 들어가는 산소가 차단되면서 그녀의 정신 또한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삶의 마지막.
후회 없이 살았는가?
‘존경하는 협회장님.’
힘없이 고개를 늘어뜨린 그녀의 입가에 아름다운 미소가 지어졌다.
‘저는 핵심 부속품이었습니까?’
제인의 심장이 멈췄다.
헌화獻花 (4)
***
생화의 입구에 도착한 시로네는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독특한 신호가 추적해 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여태까지 접한 신호 중에서 가장 직관적이었다.
울티마 시스템의 바로 전 단계에 근접할 정도의 일관도를 가진 정보에, 시로네가 소리쳤다.
“피해!”
용언기-방뢰.
일행이 흩어진 자리에 전하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전격이 뿜어졌다.
“히이이익!”
비에 담긴 전해질을 타고 전하가 이동하면서 구球형으로 전류가 퍼져 나갔다.
마법사는 순간 이동으로 반경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리안은 온전히 전격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뜨! 아뜨!”
창으로 바닥을 찍으며 통통 튀던 키도가 땅에 손을 짚은 자세로 미끄러졌다.
“야! 죽을 뻔했잖아!”
조금 전의 공격이 마법이라면 스피릿 존을 펼치고 있는 시로네가 몰랐을 리가 없었다.
“미안, 못 느꼈어. 그리고 마법이 아니야.”
스피릿 존이 아니다.
엘리시온처럼 경계가 희미했고, 울티마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공격이 가해지기 전에 경고할 수도 없었을 터였다.
“왔는가, 잡종들?”
비를 맞고 서 있는 거체의 모습에 키도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안경을 올렸다.
“전투장관 드락커. 용마인이다.”
얼굴 반쪽이 비늘로 덮여 있다는 것은 육체 또한 그러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드래곤의 호박색 눈에 날카로운 이빨이 정확히 교합되는 치열,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김이 서리지 않는 차가운 육체가 용족의 냉혈을 떠올리게 했다.
“이 녀석은 좀 긴장해야 할 거야.”
키도가 창을 휘돌리며 싸울 태세를 갖췄다.
“저놈이 라둠에서 제일 강하다.”
“그건 정답이지.”
드락커가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고블린 따위가 강함을 입에 올리니 내 고결함이 더렵혀지는 것 같군.”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인 용의 눈빛을 대하고도 키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섭식의 경험을 전체의 경험으로 환산하는 그의 정신은 대하처럼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리안이 대직도를 어깨에 걸치고 나섰다.
“내가 처리하지.”
최강자라는 이름에 이끌린 것도 있지만, 남은 세 사람은 라 에너미를 찾아야 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리안, 저 녀석은…….”
“알고 있어.”
시로네만큼 예민한 감각은 없지만 그런 것조차 상관이 없을 만큼 드락커의 투기는 무시무시했다.
“누군가를 지키면서 이길 자신은 없어.”
지키지 않는다면 이길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드락커가 팔짱을 낀 채로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있는 척하면 나와 동급이라도 되는 것 같나? 너희들은 여기서 한 발짝도 못 움직여.”
리안이 거침없이 말했다.
“가라.”
세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으나, 용마인의 눈은 미세하게 선두를 잡은 시로네를 정확히 포착했다.
‘죽음을 자초하는군.’
땅을 박차고 나가려는 그때 드락커의 등골을 타고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빠르게 시선을 돌리자 분명 움직임이 없었던 리안이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액싱-디나이.
“벌레 같은 것들이!”
벼락처럼 떨어지는 대직도를 향해 드락커가 팔을 들어 올리자 쾅 소리가 터졌다.
생물에게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단단하다. 어설픈 공격은 이빨도 안 먹히겠어.’
코끼리도 쪼갤 정도의 위력을 팔로 막아 낸 드락커가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로…… 응?”
이미 맞닿아 있는 대직도에서 엄청난 힘이 밀려들면서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비로소 심각성을 느낀 드락커가 전신에 힘을 밀어 넣자 단단한 땅이 함몰되며 다리가 파묻혔다.
‘말도 안 돼! 이 상태에서 어떻게?’
인간의 힘이 인력이라면 용마인의 힘은 용력이라 한다.
명칭이 다른 이유는, 생물적으로 발휘되는 힘의 단위 자체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건방진 놈이!”
드락커가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두르자 리안이 가볍게 떠오르더니 땅에 안착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미 다 들어갔는데?”
시로네 일행 전원이 무사히 생화에 잠입했으나 뒤를 돌아보는 것은 드락커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죽여 주마.”
용언기-용돌.
용언의 힘으로 추진력을 더한 드락커가 육탄 공격을 가하자 리안의 두 다리가 떠올랐다.
“크윽!”
건물을 관통하며 무려 1킬로미터를 밀려났다.
쾅! 쾅! 쾅! 쾅!
목재, 석재, 철재 구조물이 계속해서 등을 강타하는 것만으로도 리안은 의식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멈춘다!’
디나이를 걸었으나 오히려 리안의 브레이크가 박살 났다.
‘멈춰!’
연속해서 디나이가 들어갔다.
‘멈추라고!’
삼백 장의 벽이 뚫리고 수십 개의 철골이 리안의 몸을 타고 휘어지더니 끊어졌다.
“멈추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