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13
건물이 폭삭 무너져 내린 잔해의 한복판에 멈췄을 때에는 이미 생화에서 2킬로미터 이상 멀어진 뒤였다.
“너…… 정말 인간이냐?”
여전히 몸을 맞대고 있는 드락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리안을 쳐다보았다.
“몰라. 그딴 거 잊고 산 지 오래야.”
‘용력과 맞먹는 인력이라니…….’
인간이 드래곤을 죽이는 것은 수치로 환산되는 물리적 계산으로는 불가능하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어 보시겠다?”
결국 근력 이상의 무엇.
드래곤 슬레이어의 전설에 나오는 영웅들이 하나같이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난 짝퉁은 취급 안 해.”
드락커의 눈에 드래곤의 분노가 담겼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드락커가 대직도를 쩡 하고 발로 후려치자 리안이 엄청난 속도로 밀려 건물의 벽을 뚫고 들어갔다.
“분쇄시켜 주마!”
뒤를 따라 들어간 드락커의 눈에 이미 기다리고 있던 리안이 수직으로 대직도를 휘두르는 게 보였다.
‘벤다!’
리안의 신념인 마하의 의지가 세상 끝에서부터 모든 것을 가르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뭐야?’
율법의 부정으로 생기는 착시.
세상이 쪼개지는 광경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시공간이 통째로 밀려들고 있기 때문.
“나는 용마인이다!”
용언기-천지이분법.
이진수 0과 1이 전극처럼 상하로 분리되면서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는 지평선이 펼쳐졌다.
리안의 수직선이 지평선을 정통으로 치받았다.
콰아아아앙!
리안의 율법은 중심을 베어 가르고, 드락커의 율법은 양쪽에서 잡아당겨 분리시킨다.
어느 것도 절대적이다.
“으아아아아!”
리안과 드락커가 동시에 기합을 내질렀다.
퍼어어어엉!
두 가지 율법이 폭풍처럼 뒤엉키면서 7층 건물이 풍선처럼 부풀더니 바깥으로 터져 나갔다.
***
“무슨 소리지?”
쿠안이 검을 빼 들고 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보았다.
폭우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밖에 남은 사람이 있나? 뭐 하는 거야?”
“가세요.”
아리아가 말했다.
“제 임무는 끝났어요. 이제 저를 지킬 필요 없어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으나, 폭우로 체온이 위험 수치까지 떨어진 상태였기에 시체를 두고 가는 셈이었다.
‘어차피 구출은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쿠안의 전투력은 아리아를 데리고 나가는 일보다 훨씬 건설적인 일에 쓰여야 할 것이다.
“괜찮아요. 버틸 수 있습니다.”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일 뿐, 이미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알면서도 쿠안은 몸을 돌렸다.
“아리아!”
그때 말발굽 소리가 빗물을 밟고 들리더니 브룩스가 부하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아리아를 맡길 수 있는 호기였으나, 뼛속까지 군인인 쿠안은 의문이 먼저 들었다.
“왜 들어온 거야? 기밀 구역인 거 몰라?”
“젠장!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아리아! 정신 차려!”
본인도 내키지 않았는지 쿠안을 쏘아붙인 부룩스가 의식을 잃은 아리아의 뺨을 때렸다.
“마차에 태워! 돌아간다!”
“설마 여자 하나 구출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브룩스가 대답을 고르는 순간, 마차의 문을 열고 스펙트럼의 수장인 베네치아가 내렸다.
“저를 라 에너미에게 데려다주세요.”
쿠안이 브룩스를 돌아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나도 몰라! 심정지까지 갔던 걸 살려 놨더니 저래! 가두려고 했는데, 라 에너미를 볼 수 있다고 하잖아!”
이번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루피스트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저에게 네메시스를 주세요.”
손을 내미는 베네치아를 빤히 쳐다보던 쿠안이 칼을 갈무리하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중에. 일단은 생화로 잠입한다.”
어쨌거나 이걸로 만사 해결이었다.
“아리아를 의사에게 데리고 가. 감염된 것 같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쿠안이 추락의 임계점에서 잠시 머물다가 더욱 높이 올라갔다.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브룩스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대체 저런 놈들은 어디서 구해 오는 거야?”
***
화족 고유의 화신술 소세계창유.
식물은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 대신 수많은 것과 결합하여 행동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
여전히 주체성은 없다(금강무장).
다만 생화처럼 사물에 동화되었을 경우에는 판단의 결정권 정도는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정격조종).
‘메인 시스템이…….’
생화의 전체 기관을 신경처럼 느끼는 플라리노는 제인이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끝까지 우리를 괴롭히는가?’
비루한 삶을 이어 가면서 다른 화족들처럼 차라리 시들어 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왜 내가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지? 왜 누가 나를 돌보아 주지 않는 거지?’
베네치아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스펙트럼을 버렸고, 두 번째 주인이었던 라 에너미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사랑받고 싶은 것뿐인데.’
그저 누군가의 말에 순종하며, 따듯하고 다정한 손길에 육체를 맡기고 싶었다.
그의 세계에 꽃향기를 마구 퍼트려 주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어.’
태초의 화족이 식물에서 동물, 영장류의 영역으로 진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육체라는 감각기관이 얼마나 퇴폐적인지.
‘당신들이 나쁜 거야.’
나비처럼 부드럽게 돌보아 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은 애초에 화족만의 순진무구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리고, 괴롭히고, 비명을 지르게 하고.’
화족은 발생학적으로 실패한 종족이다.
하지만 급속 진화를 이루게 한 그들의 화신만큼은 루피스트도 우습게 여길 수 없었다.
스피릿 존을 통해 바깥에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확인한 그가 살기를 드러내며 다가갔다.
“코드를 내놔. 하늘이 원망스럽겠군.”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는 동안에는 생화의 광자 수집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플라리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싸워야 해.’
역동적으로 투쟁하는 것은 꽃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지만 종족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너는 나를 못 이겨.”
“과연 그럴까요?”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온 플라리노가 두 팔을 펼치자 방이 거대한 떨림을 일으켰다.
‘생화가 움직이고 있어?’
아니, 자라고 있는 것이다.
‘덩치를 키워 광합성의 총량을 늘린다면 수도 전체가 사정권이다. 죽여야겠군.’
제인이 임무를 완수했기를 바라며 루피스트는 칼날의 회전인 강철의 폭풍을 수십 개나 탄생시켰다.
“갈기갈기 찢어 주지.”
사방에서 칼날이 덮치는 순간, 플라리노의 발밑에 있는 철판이 액체처럼 올라오더니 강철을 튕겨 냈다.
“소용없어요. 제가 생화고, 생화가 저입니다.”
순종의 욕망을 지닌 플라리노가 내정 장관을 맡은 이유는 오직 생화를 돌보는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액화가 아니다. 광광물의 생장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서 유동성을 갖는 거야.’
아마도 생화에 수집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고, 루피스트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철의 방어막을 좌우로 열어젖힌 플라리노가 싸늘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안타깝군요. 곧 수도가 파괴될 거예요. 우리가 겪은 고통을 당신의 국민도 맛보게 될 겁니다.”
“인간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루피스트의 주위로 수십 개의 날카로운 쇳덩어리가 연성되며 튀어 나갈 준비를 끝마쳤다.
루피스트를 원망의 눈빛으로 노려보던 플라리노가 입술을 짓깨물며 다시 철의 장벽을 펼쳤다.
“원시인 시절에 밟았어야지.”
강철 마법-고속철갑탄.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간 쇳덩어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의 방어막을 모조리 관통했다.
헌화獻花 (5)
고속 철갑탄의 위력은 오직 운동에너지로 고대 병기의 철판을 뚫어 버릴 정도로 엄청나지만 루피스트는 찝찝했다.
생화는 온전한 상태로 왕국에 인계되어야 한다.
‘반응이 없어.’
벌집처럼 숭숭 구멍이 뚫린 철의 장벽 안쪽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을 열어서 피했군.’
루피스트의 예상대로, 전혀 다른 곳의 철판이 열리면서 플라리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의 오만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똑똑히 보여 드리죠.”
루피스트가 밟고 있는 바닥이 물결처럼 출렁이더니 거대한 구슬이 되어 그를 가뒀다.
“장난하냐?”
강철의 마법사에게 강철 감옥이라니.
박살을 내려는 그때, 중력보다 강한 힘으로 추락하는 관성이 느껴졌다.
‘이런 전략이군.’
생화의 시스템은 물론 물질마저 지배하는 소세계창유의 능력이었다.
마치 열에 녹듯 구멍이 뚫린 자리로 강철 구슬이 끝없이 떨어졌고, 마침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피해!”
갑자기 천장을 열고 구슬이 떨어지자 시로네가 메이레이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이미 멀리 떨어진 키도가 눈을 깜박거리며 쳐다보는데, 구슬이 펑 하고 폭발하며 루피스트가 나타났다.
‘막혔다.’
천장을 확인한 그가 혀를 찼다.
“슬슬 짜증 나는데.”
그리고 그 짜증은 아직도 하층에서 맴돌고 있는 시로네에게 향했다.
“너는 뭐 하고 있는 거야? 메인 시스템을 통제하라고 했잖아? 제인은 어디 있어?”
“여기가 통제실이에요.”
이미 도착해 있던 시로네가 슬픈 눈으로 장치 쪽을 가리켰다.
“우리가 왔을 때는 이미…….”
시로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루피스트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고,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죽어 있는 제인을 발견했다.
평소에도 감정 표현이 없는 그였지만 지금은 아예 인간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제인.”
배가 열려 있었고 두 손목 근육은 완전히 파열되어 있었다.
굳이 사망을 확인할 필요가 없는 상태였으나 루피스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시로네가 뒤를 따르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심정지 상태에서 강제로 심장을 뛰게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손목 근육이…….”
“나도 알아.”
한쪽 무릎을 꿇은 루피스트가 제인의 손을 살폈다.
“언제 왔지?”
아르망이 시로네에게 정보를 전했다.
“1분 32초 전에요.”
“네메시스를 뺏겼군.”
큐브릭에 담아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가락째 잘라 갔으니까.
시로네가 퍼뜩 깨달았다.
“설마, 샤갈이?”
대정화기의 후에 해당하는 인물이라면 라 에너미의 설계에 의해 생화에 잠입했을 터였다.
“정신 초월로 생명을 연장시킨 건 좋았지만 마지막 처리가 아쉽군. 어떻게든 파괴했어야지.”
시로네가 인상을 썼다.
“이 상황에서 할 말인가요? 제인 씨는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 어쩌라고? 시체에게 잘했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까?”
“협회장님.”
시로네의 목소리에 노기가 담겼으나 루피스트는 차갑게 제인을 외면하며 몸을 돌렸다.
“순직 처리는 해 주겠지만 살아 있었다면 뺨이라도 때렸을 거야. 스펙트럼의 삼장관이라고 해도 쉽게 죽을 여자는 아니다. 결국 그놈의 정이 문제지. 이래서 계집애는 안 된다니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알아.”
부모보다도 그녀를 더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