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15
“그 전에 네가 먼저 박살 날 테니까.”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드락커가 튀어 나갔다.
콰콰콰콰콰쾅!
용언기와 액싱의 충돌로 일대가 초토화되었으나 힘의 균형은 미약하게나마 드락커 쪽이 우위였다.
‘강하다.’
리안의 솔직한 평가였다.
‘하지만 그것뿐이야.’
드락커의 무력은 기술이나 재능, 노력이나 훈련이 아닌 종족의 강함을 기반으로 한다.
‘너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니야.’
그렇기에 두렵지 않다.
사자는 태어날 때부터 포식자의 운명을 타고나지만 눈에 보이는 무력이라는 것은 적응의 대상일 뿐.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뛰어넘어 주마!”
마하의 힘으로 휘두른 대직도가 공간을 일그러뜨렸으나 드락커의 용언기도 힘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게 안 되니까 약한 거다!”
어느 누구도 용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드락커에게 짓밟힌 수많은 종족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공기보다 빠르게 움직인 드락커의 정권이 대직도를 강타하자 거대한 종소리가 들렸다.
“크윽!”
막대한 힘에 밀린 리안이 건물의 벽을 무너뜨리고 들어가 반대쪽 벽마저 뚫고 날아갔다.
“머리통만 남기고 다 박살 내 주지.”
엄청난 도약력으로 건물을 통째로 뛰어넘은 드락커가 지상을 살피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최소한 팔이라도 부러져 있어야 정상인 리안이 또렷한 시선으로 반격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충격을 상쇄했다고?’
전투 중에 학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완벽하게 새로운 반응이었다.
‘아니. 그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야.’
특정 기술을 숙달하는 데 평균 1만 시간이 걸리는 인간의 학습 능력은 생물군 전체와 비교했을 때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딱 하나 강점이라면 통섭에 의한 깨달음.
인간이 특정 사건에서 크든 작든 깨달음을 얻을 확률은 무려 0.000001퍼센트에 달한다.
생물군 전체 평균을 월등히 뛰어넘는 수치.
여기에 30억이 넘는 인구수를 대입하면 현재 행성을 지배하는 종족이 어째서 인간인지 알게 된다.
‘아니. 요행으로 한 번 막은 것뿐이야.’
드락커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종족의 통계일 뿐, 리안이 깨달음을 통해서 용족의 무력에 적응했을 확률은 극히 낮다고 보았다.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드락커는 더욱 격렬한 공세를 펼쳤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리안의 반응 또한 기민해지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마침내 공격이 막혔다.
“크으으으!”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용언기를 막아 낸 리안의 모습을 보고 깨달은 것은 확률의 무의미함.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내가 여태까지, 몇 번이나 죽었는지 알아?”
드락커를 짓누르다시피 대검을 쥐고 있는 리안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1천 번.”
허세가 아니기에 드락커는 섬뜩했다.
죽음에 준하는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전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은 극단적 경험에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
실제 죽음을 1천 번 경험한 리안이 오류를 수정하는 강도는 방향의 각도와 깊이 모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헛소리!”
리안을 밀어낸 드락커가 불타는 눈동자로 돌진하며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다.
‘여기서 막는다.’
끝없이 반복한 동작이다.
“인간 따위가!”
드락커는 자존심이 상했다.
잔상으로 번진 주먹이 팔방에서 날아들었으나 어떤 공격도 리안의 검에 막히고 있었다.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다.
‘이런 거였구나, 시로네. 내가 천 번을 죽어서 얻은 하나를…….’
생애 처음으로 느낀 깨달음에 눈물이 차올랐다.
‘너는 매 순간 거듭했던 것이구나.’
보인다.
‘내 팔의 위치, 몸의 중심, 심장박동의 리듬.’
아니, 마치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재능 따위 없지만…….’
육체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실패를 경험해 보았기에.
거대한 원을 그리며 마침내 되돌아온 곳에는 한 장의 자기상이 완성되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리안은 환희의 포효를 터뜨렸다.
출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어두운 동굴 속을 무려 20년 동안 헤맸다.
어쩌면 길은 없을 것이라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달려야 했던 막막한 세월이었다.
‘하지만 있었어. 있었다, 시로네!’
출구는 있었던 것이다.
동굴 끝에 보이는 빛을 향해 몸을 내던진 리안은 마침내 온 세상이 깨달음의 빛으로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 봤자 내 상대는 안 돼!”
통찰은 시간을 뛰어넘기에 드락커도 리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조금 전의 리안과 지금의 리안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기질 자체가 달랐다.
“아니, 어차피 인간이다.”
용언기-폭정.
드락커는 육체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용언기를 발동하며 리안을 몰아붙였다.
강력한 용족의 내구력으로도 반동을 감수해야 하는 기술이지만 이제는 다른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죽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목숨을 끊겠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칭호지만 반대로 용족에게는 죽는 것보다 끔찍한 수치였다.
쿠우우우웅!
드락커와 리안의 공격이 중간에서 충돌하자 땅이 물결처럼 출렁이더니 거대한 원의 충격파를 일으켰다.
폭정의 위력에 강타당한 리안의 얼굴에 핏줄이 솟았다.
“크으으으으!”
생애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상대가 더 강하다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아이러니였다.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드락커의 상체가 점점 리안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크크크! 넌 졌어. 죽어라.”
“아직 끝나지 않았어.”
리안이 무섭게 눈을 치켜뜨며 신적초월의 의지를 높이자 디나이의 환상이 더욱 괴기스럽게 변했다.
“이…… 이게……!”
리안의 어깨 너머로 펼쳐진 세상이 통째로 일어서더니 드락커 쪽을 향해 접히고 있었던 것이다.
“접기라는 거다.”
기존의 일검이 세계를 양분한다면, 지금의 일검은 둘로 접힌 세계를 양분하는 위력.
마치 중력이 2배로 늘어난 듯 엄청난 압박감이 드락커의 몸을 짓누르고.
‘벤다! 벤다!’
시야의 바깥에서부터 엄청난 속도로 세상이 쪼개지며 밀려들고 있었다.
드락커는 생애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크아아아아아!”
동시에 리안의 대직도가 풍경을 갈랐다.
“끄으으으…….”
차가운 바람이 몸의 중심에서 느껴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저 환상이었던 듯 디나이가 사라진 풍경이 봉합되고, 전과 달라진 것은 드락커의 육체뿐이었다.
“감히…… 나를…….”
목소리마저 좌우로 갈라져 양쪽에서 들리더니 마침내 둘이 되어 버린 드락커가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우우.”
대직도의 손잡이에 체중을 의지하며 숨을 고른 리안이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나 목을 돌렸다.
“이제 내가 라둠 최강인가?”
딱히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용마인이라는 종족도 어차피 드래곤의 실험으로 만들어진, 실패한 작품에 불과했다.
‘이 정도로 드래곤 슬레이어가 될 수는 없지.’
드래곤이 얼마나 강력한 종족인지는 드락커의 경우만 봐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의심하지 않아.’
20년 만에 얻은 스키마는 앞으로 어떤 난관이 닥쳐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나저나 시로네는?”
리안은 심각한 표정으로 라둠의 중심부에서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을 올려다보았다.
비를 뚫고 먼지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곳에 어떤 충격이 가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가 저런 황당한 짓을 한 거지?’
생화가 쓰러지는 것을 눈으로 봤지만 전투에 집중하느라 머리로 분석할 겨를은 없었다.
“뭐, 크게 한판 벌였겠지.”
생각은 귀찮다.
리안이 대직도를 어깨에 걸치고 새로운 전장으로 향하려는데 높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해치웠냐?”
베네치아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쿠안이 반파된 건물 옥상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락커를 유심히 살핀 리안이 보고했다.
“해치운 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둘로 쪼개 놓기는 했죠.”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졌나 보군.”
라둠에서 조사원으로 활동했던 쿠안이기에 삼장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었다.
플라리노는 생화에서 나온 적이 없지만, 첩보 작전을 통해 지켜봤던 드락커는 결코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푸후.”
헛웃음을 터뜨린 리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그 정도로 용마인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요? 벼락보다 강한 일격이었죠.”
‘왜 저래? 싸우다 돌아 버렸나?’
멍청하기는 했어도 가벼운 놈은 아니었기에 평소보다 들떠 있는 모습에 쿠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열었습니다, 스키마.”
비로소 이해가 되었으나, 그는 시선조차 흔들리지 않고 리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
예전처럼 상상 스키마 따위가 아니라는 것은 드락커의 시체가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냐?”
베네치아를 들고 건물에서 뛰어내린 그가 리안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이젠 검술학교에서부터 라이와의 일전을 거쳐 기사 수행을 떠나기까지.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쿠안은 생화의 현장을 돌아보며 짧게 말할 뿐이었다.
“가자.”
그의 말을 음미하던 리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보다 울림이 컸다.
“네.”
대답을 하는 것과 동시에 2명의 검사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사건 발생 (2)
***
“으아아아! 고블린 살려!”
시로네는 추락하며 발버둥치는 키도를 제비처럼 낚아챘다.
“내가 잡아 준다고 했잖아.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제길! 하늘은 싫단 말이야!”
땅의 이치를 깨달은 키도에게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는 하늘은 불편한 장소였다.
“그나저나 저 인간 정말 막나가네. 이걸 꺾어 버릴 줄은 몰랐어.”
생화의 추락으로 발생한 지진파가 라둠의 절반 이상을 파괴한 상태였다.
“차라리 잘됐어. 고대 병기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지도를 보고 판단하는 맵 병기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전략과 전술에 따른 피해 규모와 이득만을 따질 뿐.
시로네가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광역 파괴 마법을 최대한 자제하는 이유였다.
“그거야 네 생각이고. 저거 엄청 비싼 거다?”
키도를 지상에 내려놓은 시로네는 주위를 살폈다.
생화가 쓰러지는 충격으로 땅이 고무 판처럼 튀는 바람에 지상의 먼지가 모조리 피어올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행이라면 비가 내리고 있기에 시계가 방해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스펙트럼은 궤멸했고 생화도 꺾였다. 라 에너미는 무슨 생각이지?’
시로네는 메이레이를 돌아보았다.
“어때? 아직도 목소리가…….”
시로네는 심장이 멎는 기분을 느끼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너…… 누구야?”
외모는 변하지 않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메이레이가 아니었다.
얼굴이 감정을 드러내는 거울이라면, 입술을 뾰족하게 모으고 시로네를 주시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여태까지 어떤 인간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미지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