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25
창을 휘돌린 키도의 몸이 옆으로 회전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키도라면 경비대에 들킬 일은 없겠지.’
생각을 마친 시로네가 마을로 들어가려는데, 엠마가 초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신관님, 남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외간 남자, 그것도 젊은 남자를 둘이나 집에 들였다가는 노발대발할 것이다.
“상인이라고 소개해 주세요. 무기는 반지에 담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사례도 하겠습니다.”
금화 주머니를 본 엠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돈이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남편 아독스는 돈이라면 가족도 팔아먹을 사람이었다.
목책을 넘어서자 닭들이 푸드덕 홰치고, 이방인의 냄새를 맡은 개들이 컹컹 짖었다.
마을 동쪽 열세 번째 집에 도착한 엠마가 열쇠로 문을 따고 시로네 일행을 돌아보았다.
“들어오세요.”
14평짜리 공간은 부엌과 침실이 구분되지 않았고, 구석에는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보였다.
식탁에 앉아 있던 아독스가 쏘아붙였다.
“도대체 어디를 싸돌아다니는 거야!”
평소에는 외박을 밥 먹듯이 하던 남편이 오늘따라 집에 있자 엠마의 어깨가 들썩했다.
“여보, 벌써 끝났어요?”
아독스는 턱수염이 거칠게 자란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해 떨어진 지가 언젠데 헛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날마다 술이나 퍼먹는 놈팡이로 보여?”
어제의 숙취로 속이 쓰린 아독스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시로네와 리안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상인입니다. 2일 정도만 여기서 묵을 수 있을까요?”
“이런 오지에 무슨 장사꾼이야? 혹시 너희들…… 이교도 아니야? 솔직히 불어.”
근래 테라포스 교단이 접근해 인근 마을의 주민들에게 돈을 갈취한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신생 상단이라 물건을 납품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하루 정도 시장조사만 하고 떠날 겁니다.”
그런 일이 없지는 않았다.
“무슨 상단인데?”
“그건 밝히기가 좀. 이 바닥이 워낙 소문에 민감해서…….”
“장난하냐?”
시로네가 황급히 덧붙였다.
“네이드 상단입니다. 제발 비밀로 해 주세요. 엠마 씨에게 듣기로 이곳에서 입김이 세시다고 하던데…….”
금화를 꺼내자 아독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정도 금액이면…….’
술집 작부 미사가 까무러치게 좋아할 터였다.
‘잘 좀 봐 달라 이거지, 흐음.’
하지만 일단은 군인인지라 주는 돈을 덥석 받는 것은 나중에 뒤탈이 생길 여지가 있었다.
“길 건너 철물점이 숙박업도 해. 차라리 거기 가지 그래? 물론 다락방을 개조한 거라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지만.”
시로네는 아독스의 심리를 깨달았다.
“헤헤, 아무래도 가게에 묵는 것은 다른 상단의 눈치가 보이지요. 이쪽 업계가 다 그렇잖아요? 편의 좀 보아주십시오.”
“그래도 이 금액은 좀 과한데?”
“민폐를 끼쳤으니 당연히 숙박비도 높게 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사꾼의 성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하긴, 딴에는 그렇지.”
시로네에게 금화를 건네받은 아독스는 레드 라인 통화사업부에서 만든 국제 표준규격임을 확인했다.
“좋아. 잘 대접해 주라고, 손님들 불편하지 않게. 나도 오늘은 밖에서 자고 올 테니까 말이야.”
아독스의 행선지를 짐작하는 엠마였으나 오늘 같은 경우는 보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네, 일찍 들어오세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달리 아독스가 나가는 순간부터 엠마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나쁜 자식. 또 그 작부에게 간 거예요. 금화를 펑펑 뿌리며 갖은 허세를 다 떨겠죠.”
뭐라고 해 줄 말이 없었다.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술도 좀 있을 거예요.”
맑은 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웠는지 엠마는 반쯤 남은 큰 병의 술을 모조리 비웠다.
“솔직히 미사 그 여자가 나보다 나은 건 남자 상대한 횟수밖에 없거든요! 남편도 멍청하지만 그 여자가 더 나빠요!”
푸념을 늘어놓는 엠마를 상대로 시로네는 싫은 기색 없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하아, 남편이 신관님 반만 닮아도 좋을 텐데.”
인사불성으로 취한 그녀가 식탁에 머리를 찍자 리안이 그녀를 들어 침대로 옮겼다.
“괜찮을까, 시로네? 차라리 여관에서 기다리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엠마의 남편이 국경경비대의 백부장이라는 사실이 걸렸다.
“아독스는 괜찮아. 추측만으로 국가 간의 소송은 걸지 못해. 정말로 경계해야 하는 건 엠마 씨야.”
“하긴. 엠마 씨가 발설하면 일이 걷잡을 수 없어지지. 그래서 대법관에게 이 집에 있겠다고 했군.”
차마 엠마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응. 카즈라 왕성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는 절대로 눈을 떼서는 안 돼. 만의 하나라도 발설할 기미가 보인다면…….”
“보인다면?”
시로네의 시선이 차갑게 변했다.
“그때는 부탁할게.”
마법사는 냉정한 사람들이다.
“……그래.”
통제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로네, 하지만 동굴에서 엠마를 외면하지 못한 것도 시로네였다.
가능하면 모두에게 좋은 길을 찾고 싶다.
‘이상과 현실의 외줄타기. 그게 마법사인가?’
마치 아리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며 걸어야 했던 제인처럼.
‘정말 어렵게 사는군.’
다시 태어나도 마법사는 절대로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리안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아독스가 위장을 어루만지며 출근했다.
“부관! 미겔란!”
미겔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아내의 내연남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아독스가 컵을 드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꿀 남은 거 있지? 팍팍 좀 넣어서 가져와.”
“설마, 또 드신 겁니까?”
어제 절대로 술은 안 마실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일찍 퇴근한 아독스였다.
꿀물을 들이켠 아독스가 수염을 쓸며 말했다.
“크으, 이제 좀 살 것 같네.”
“미사에게 가셨군요.”
“크크, 말도 마. 어제 횡재한 일이 있었거든. 아주 끝내주는 밤이었지.”
간밤을 회상하던 아독스가 표정을 고치고 말했다.
“아, 그리고 너, 잠깐 우리 집에 좀 갔다 와.”
“무슨 일이시죠?”
“이상해서. 어제 상인들이 왔는데, 아무래도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설마 이교도입니까?”
“인마, 이교도가 돈 쓰는 것 봤냐? 아, 아니지.”
아독스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잘 살펴봐. 내가 어제 밖에 있었거든. 엠마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란 말이야.”
‘쓰레기 같은 자식.’
본인은 술집 작부와 질펀하게 놀아 놓고 부관에게는 아내를 감시하라고 시키다니.
“알겠습니다.”
엠마를 볼 수 있다면 좋은 일이었기에 미겔란은 곧바로 아독스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 인간이 의심할 만하군.’
아독스가 말한 상인들은 귀족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귀티가 났고, 심지어 미남이었다.
“미겔란? 무슨 일이에요?”
엠마가 놀란 표정으로 문을 열었으나 미겔란은 내색하지 않고 답했다.
“백부장님의 심부름입니다. 긴히 전할 말씀이 있어서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손님이 계셨군요. 죄송한 말이지만 잠시 자리를 좀 피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 2층에 있을게요.”
시로네와 리안이 계단을 올라가자 미겔란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엠마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엠마.”
“왜 이 시간에 온 거예요? 들키면 어떡하려고?”
“당신 남편이 보냈어. 쓰레기 같은 놈. 어제도 미사하고 밤을 보낸 모양이야. 전에 말했던 계획, 실행에 옮기자.”
아독스를 독살하는 계획이었다.
“도저히 못 하겠어요. 걸리면 우린…….”
“걱정하지 마. 이런 산골짜기에서 누가 죽는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신이 듣고 있다는 생각에 엠마는 겁에 질렸다.
“나만 믿어. 끝까지 함께하는 거야.”
그 모습이 더욱 사랑스러운 미겔란이 키스를 하려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아독스가 들어왔다.
“엠마! 여기 있던 상인들……! 응?”
미겔란과 엠마가 황급히 몸을 떨어뜨렸으나 이미 눈에 보인 건 어쩔 수 없었다.
“뭐야? 왜 네가 우리 마누라 어깨를 잡고 있어?”
“백, 백부장님이 어째서 집에?”
시로네에게 받은 금화가 문제였다.
세계를 떠도는 상인들은 대부분 국제 표준규격을 사용하지만 카즈라는 현재 국경이 1년 이상 폐쇄된 상태였다.
‘어쩌면 정말 이교도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으로 찾아왔으나 현재 아독스의 머릿속에는 미겔란에 대한 분노밖에 없었다.
“감히 너 따위가 내 마누라를!”
칼을 뽑아 드는 상관의 모습에 미겔란이 손을 내밀었다.
“백부장님! 오해입니다!”
“오해? 무슨 오해? 내 마누라 어깨에 꿀이라도 묻었더냐?”
“그, 그것이……!”
미겔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상인들! 상인들이 부인을 겁탈하려고 했습니다.”
“무슨 헛소리야?”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겁에 질린 부인을 진정시키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눈을 굴리던 아독스가 살의를 담아 물었다.
“……지금 그 자식들 어디 있어?”
“2층에서 대치 중입니다. 제가 출구를 봉쇄해서 갇힌 상황입니다.”
미겔란은 아독스가 위층으로 달려가면 엠마를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으나,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들아! 빨리 안 내려와? 산 채로 회를 떠서 먹어 주마!”
집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시로네와 리안이 차분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어제와 달리 리안의 등에 거대한 대검이 장착되어 있는 것을 본 아독스의 얼굴이 굳었다.
“뭐, 뭐야, 너희들?”
리안이 대직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물었다
“시로네, 지금이냐?”
“…….”
엠마가 비밀을 발설하면 아독스와 미겔란까지 죽여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그때 누군가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계십니까?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만.”
“지금 바빠! 꺼져!”
축객령이 무안할 정도로 시원하게 문이 열리더니 거구의 노인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이 자식이 내 말을 귓등으로 듣나……! 응?”
노인의 갑옷에 새겨진 인장을 본 순간 아독스는 물론이고 미겔란까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왕, 왕성 직속부대?”
심란한 현장의 분위기를 느낀 노인이 주위를 빙 둘러보더니 시로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오랜만이오, 아리안 시로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속한 루트를 택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역시 저 사람이 오는구나.’
살기를 거둔 시로네가 반갑다면 반가운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오랜만이네요.”
카즈라 왕성의 경호대장, 리트니 워커였다.
재회의 장 (6)
카즈라 궁중 검술 초급 편을 집필할 정도로 실전과 이론에 통달한 검의 고수.
한때는 시로네를 의심해 눈의 기술인 클리어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정말 당시의 그 소년이 맞는가?’
굳이 기운을 부딪쳐 보지 않아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상아탑 후보.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지.’
차라리 시로네가 제1왕자였다면 현재의 카즈라도 희망의 빛 정도는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카샨의 테라제가 카즈라를 장악한 이후 국력은 급속도로 약해져, 국민들 사이에 패배 의식이 팽배했다.
카샨을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왕국이 몰락할 것이라는 확신은, 미래를 향해 정진하던 수많은 재능들의 의지를 꺾었다.
반면에 시로네는 어떠한가?
이제는 카즈라의 어떤 마법사하고도 당당히 견줄 수 있는 실력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엄청나게 단련했군.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야.”
시로네는 겸양을 표했다.
“과찬이세요. 아직 무언가를 이룬 것도 아닌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