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27
어떤 감정인지는 본인조차 헤아릴 수 없었다.
얼굴조차 모르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 얼마만큼 분노해야 하는지 세상은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20년 동안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억울함만으로도 시로네를 죽일 이유는 넘쳤다.
“죄송합니다. 보상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3분의 1의 확률로 별이 될 사람의 입에서 보상이라는 말이 나오자 오르캄프의 눈썹이 씰룩했다.
하지만 엘리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죽어. 네가 보상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그건 안 됩니다. 왕자가 저를 대신해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제 의지는 아니었으니까요.”
“워커! 뭐 하고 있어! 왕자 살해범이야! 죽여!”
워커가 움직이지 않자 오르캄프가 나섰다.
“차라리 이런 건 어떻겠소? 죽음보다 무서운 게 있지. 지하 감옥에 가두는 것이야.”
주로 정치범이 들어가는 감옥으로, 기상천외한 고문이 자행되는 곳이었다.
“만약 이것조차 거절한다면, 난폭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오르캄프의 눈빛을 확인한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로네 일행이 워커를 따라 문으로 향하자 엘리자가 악담을 퍼부었다.
“끔찍하게 고문할 거야! 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왕비의 목소리를 차단하듯 문을 닫은 워커는 한동안 침울한 기색으로 복도를 걸었다.
‘카즈라가 이토록 무력해진 것인가?’
아니, 시로네가 강해진 것이다.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뭐가요?”
시로네의 차가운 되물음에 워커는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전하는 뛰어난 정치가이시지만 엄연히 사람입니다. 어쩌면……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
소심한 복수였으나 시로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상관없어요.”
지하 3층으로 내려가자 문을 열기도 전에 악취가 풍겼다.
어두컴컴한 감옥 길을 따라 수감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1년만 있어도 고문은 필요 없습니다. 미쳐 버리니까요.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망가진 육체뿐이죠.”
그나마 깔끔한 나무 감옥을 고른 워커가 문을 열어 주자 시로네와 리안, 키도가 줄줄이 들어갔다.
“그럼…… 다시 나올 수 있기를 빕니다.”
워커가 자리를 떠난 뒤에야 키도가 입을 열었다.
“시로네, 무슨 생각이야?”
“미안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알고 있어. 카샨으로 점프하기 위해서는 카즈라의 왕이 승인을 해야 하지. 하지만 오르캄프는 거래를 했을 거야. 굳이 지하 감옥에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고.”
“단지 카샨으로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야. 리안에게 말했듯, 지금이 아니면 털어 버릴 수 없을 테니까.”
그때 건너편 감옥에서 쉬어 빠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크크, 결국 왔구나. 그럴 줄 알았지.”
광인이 감옥 틀을 붙잡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얼굴은 해골처럼 말랐고 머리털은 듬성듬성했으며 위아래의 앞 이빨이 모조리 빠져있었다.
차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끔찍한 몰골 속에서, 시로네는 익숙한 느낌을 찾아냈다.
“지온?”
테라제의 아들이자 우오린의 오빠인 지온이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여기에 있었어?”
“그래, 여기에 있었지. 내 여동생, 아니, 그 괴물이 나를 이곳에 가뒀으니까. 너도 우오린이 보낸 거지?”
천국 프로젝트에서 가올드를 통해, 모라토리엄 상태에서 꺼내 준 미로를 통해 우오린의 실체를 알았으나, 실제로 만난 기억은 친자 확인 소동 때의 풋풋한 모습뿐이었다.
“정말로 친오빠를 여기에 가뒀다고?”
“푸하하하! 친오빠? 헛소리야. 다 개소리라고! 그 마녀에게 인간은 그저 가축일 뿐이야! 필요하면 써먹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리지!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너도 마녀에게 버림받았으니 나처럼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거다. 이히히! 이히히히히!”
지온의 뒤집어진 눈동자만 보아도 이미 미쳐서 제정신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네가 당하는 걸 지켜봐 주지! 바로 옆에서 말이야!”
“누가 시끄럽게 떠드는 거야!”
감옥 깊숙한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지온이 황급히 물러서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아아아…….”
지온을 미치게 한 자의 목소리라는 것은 반응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피둥피둥한 비계로 덮여 있었고 동공의 위치가 정상적인 초점보다 훨씬 멀었다.
머리털이 빠진 자리에 두개골이 드러나 있었는데, 심지어 동전 크기만큼 뚫린 구멍에 회백질이 보였다.
“말 그대로 뇌가 오염되었군.”
키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지온은 조건반사처럼 침을 흘리며 공포에 떨었다.
“케케케, 우리 귀염둥이가 날 찾을 때가 다 있네? 시끄러운 목구멍을 내가 막아 주지.”
벨트를 풀며 감옥으로 들어간 그가 지온의 머리채를 붙잡고 컴컴한 그림자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안 돼! 싫어! 안 돼!”
처절한 비명 소리가 갑자기 그치고, 한참 후에 고문관이 다시 감옥을 나왔다.
“흐헤헤, 한동안은…… 응?”
건너편 감옥에 신입생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그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호오? 이것들은 또 뭐야?”
시로네의 혐오하는 눈빛을 마주하자 짜릿짜릿했다.
“헤헤, 여기는 말이야,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나갈 수 없는 곳이거든?”
자물쇠를 해제한 고문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날 얼마나 기쁘게 해 줄 수 있느냐에 따라 그날 고문의 강도가 달라지지. 그러니까…….”
철로 만든 집게를 바지에서 꺼낸 그가 시로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빨을 뽑자.”
시로네의 어깨에 손이 짚어지는 것과 동시에 리안이 튀어 나가 고문관의 안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덩어리가 지온의 감옥 틀에 쾅 하고 처박혔다.
고문관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로네가 말했다.
“고마워, 리안.”
“내가 할 일이야.”
자리로 되돌아간 리안이 덧붙였다.
“나는 너를 지킬 거다.”
끝까지 손을 쓰지 않는 시로네와 그런 시로네를 끝까지 지키는 리안의 고집 앞에서 키도의 눈이 퀭해졌다.
‘둘 다 징글징글하다.’
시간상으로 밤이 되자 리안의 코 고는 소리가 지하 감옥을 쩌렁쩌렁 울렸다.
“진짜 무신경하네.”
고블린조차 오래 있기 싫은 곳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는 모습에 키도가 혀를 내둘렀다.
“시로네, 그만 화해하는 게 어때?”
시로네가 미소를 지었다.
“싸운 적 없어. 리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고.”
“그래도 의견 충돌은 좋지 않아. 편드는 건 아니지만 리안도 양보할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는 거야.”
“알아. 그래서 나도 내 마음대로 하는 거야.”
“응?”
“리안이 나에게 양보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냉철하게 판단할 수 없을 거야. 신경 쓰게 될 테니까.”
“흐음, 그런가?”
“설령 리안이 곁에 없었어도, 나는 아까와 똑같은 행동을 했을 거야. 하지만…….”
시로네가 혀를 삐죽 내밀었다.
“리안이 곁에 있었기에, 무사할 수 있는 거지.”
시로네와 리안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인간은 참 힘들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키도는 활짝 열려 있는 감옥 틀에 팔을 올렸다.
“나름 재밌네, 복잡하다는 것도.”
리안이 배를 벅벅 긁으며 돌아누웠다.
“아, 배고파…….”
“하하하.”
식욕이 수면욕을 압도하는 와중에 리안이 눈을 번쩍 떴다.
“뭐야? 벌써 온 거야?”
시로네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워커가 횃불을 들고 다가왔다.
쓰러진 고문관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문이 활짝 열린 것도 관심 밖이었다.
“나오시죠.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올 것이 왔군. 가자고.”
리안이 대직도를 장착하고 일어섰다.
“여태까지 잤으면서 기다린 척은…….”
패닉 룸에서 10분 정도를 기다리자 오르캄프가 상자를 들고 시로네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낼 만했나?”
“신경 써 주신 덕분에요. 예상보다 빨라서 놀랐습니다.”
어쨌거나 자식의 원수가 아니던가?
“어차피 양보해야 한다면 확실히 양보해라, 내 철칙이지. 그리고 네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으니까.”
“제가 뭘 원하는데요?”
“카샨으로 가고 싶은 것이겠지.”
계산적으로는 그것 외에 카즈라에 들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점프는 불가능해. 명목상 카샨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야.”
“그렇군요.”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이걸 주지.”
오르캄프가 상자를 내밀었다.
“우오린, 아니 테라제가 카즈라를 떠나기 전에 맡기고 간 것이야. 자네에게 주라고 하더군.”
시로네는 눈으로만 상자를 살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 어떤 의도가 담겨 있지?’
상자를 건네받은 시로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왕비님은?”
“좋지 않아. 하지만 결국 잊게 될 거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억이 아니니까. 그런 여자야.”
오르캄프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정말 아들이라는 게 있었는지도. 그래도 배 속에 품었던 여자의 마음은 좀 다르지 않겠나? 자네가 이해하게.”
용건을 끝낸 오르캄프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편할 대로 카즈라를 나가게. 그리고 만약 테라제를 만난다면…….”
“제재를 풀어 달라고 요청은 해 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오르캄프가 패닉 룸을 나서자 키도와 리안이 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뭐야? 뭘 맡긴 거야? 설마 오브제인가?”
아르망 또한 우오린이 준 것이었다.
“글쎄? 더 이상 빚을 지는 건…….”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작은 철제 상자가 들어 있고 표면에 낯익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헤나야.”
천사들의 언어로, 독특한 율법을 담을 수 있었다.
“봉인되어 있군. 이모탈 펑션으로 개방할 수 있지?”
리안은 천국에 갔을 때 시로네가 테스의 드론의 봉인을 풀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응. 하지만 좀 허술한 감도 있는데.”
이모탈 펑션을 개방하자 헤나가 붉은 빛을 내며 작동했다.
“역시…….”
헤나의 율법에 보안 회로가 담겨 있었다.
“1대1 대응 방식이야. 절대로 풀 수 없어.”
누군가가 7653이라는 숫자를 썼다면 당사자 외에 의미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울티마 시스템이라면 가능하지.”
코드를 입력하려던 시로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라, 울티마라고?”
“왜 그래? 너에게 맡긴 게 분명한데.”
“우오린은 카즈라를 떠나기 전에 줬다고 했어. 당시에는 내가 직지를 깨닫지 못했을 때거든.”
“흐음, 그러고 보니…….”
“따라서 이건 대정화기에 맡긴 거야. 즉, 두 번째 리셋에서는 없었던 사건이라는 거지.”
“좀 찝찝하긴 하네. 믿어도 되겠어? 감옥에서 들어 보면 마녀라고 하던데.”
“일단 봉인은 풀어 보자.”
시로네가 코드를 입력하자 그제야 헤나의 철갑이 벗겨지면서 내용물이 나왔다.
익숙한 기계장치였다.
“메타게이트. 어째서 이걸?”
리안이 말했다.
“라 에너미에 관한 거 아닐까? 천국에 가서 찾으라는?”
“아니, 어쩌면 새것이 아닐 수도 있어. 특정 좌표를 이미 기억해 둔 것일지도 몰라.”
키도가 손바닥을 내리쳤다.
“카샨!”
“그럴 수도 있지만…….”
마녀, 괴물이라고 했다.
“어쩌면 엄청 끔찍한 곳일 수도 있지.”
3명이 잠시 메타게이트를 흉물처럼 바라보는 가운데 리안이 결정을 내렸다.
“가 보자. 가 보는 수밖에 없잖아?”
넓은 곳에서 장치를 작동하자 상자가 열리면서 거대한 검은 구체가 시공간을 왜곡시켰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지옥이냐, 천국이냐.”
키도의 불길한 주문을 들으며 시로네는 시커먼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이내 패닉 룸의 음침한 횃불이 아닌 대낮의 백광이 망막을 움켜쥐었다.
‘여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