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3
믿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산꾼의 자식이 아니던가. 마법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평민이 다닐 곳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았다.
“진짜야? 어, 어떻게 된 거야?”
“운이 좋았어. 귀족 가문의 도서관 사서로 일한 적이 있거든. 다행히 나를 좋게 봐주셔서 입학하게 됐어. 한마디로 특별 전형이지.”
아이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사서로 일을 얼마나 잘했든, 귀족이 평민을 위해 그렇게까지 편의를 봐주지는 않는다.
시로네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면 이해가 안 가는 게 당연했다.
“대단하다. 그럼 너, 마법을 배우는 거야?”
알토르의 말을 듣고 깨달은 아이들이 바짝 다가왔다.
“우와! 마법? 보여 줘, 보여 줘!”
시로네가 난감하게 웃으며 두 손을 내밀었다.
“하하, 아직 잘 못해. 그리고 학교 밖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건 교칙 위반이거든.”
“에이, 뭐야.”
아이들이 실망한 가운데 알토르의 마음에 일말의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믿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그와 시로네는 친하게 지내면서도 묘한 거리감을 느끼는 사이였다.
물론 화전민촌의 리더는 언제나 알토르였다.
출신도 그렇고, 완력도 또래 중에는 상대할 자가 없었다.
하지만 시로네가 빈센트를 따라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또래 그룹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시로네는 딱히 힘이 센 편은 아니었지만 얼굴에 부티가 났고, 무엇보다 똑똑했다.
‘시로네를 더 좋아하는 애들도 있었겠지.’
알토르는 알고 있다.
큰 사건 없이 서열 정리가 되었던 이유는 시로네가 자신에게 지고 들어와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그 또한 자신의 완력이 이룬 성과라고 여겼으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마법학교라니.
이미 다른 길을 가는 친구지만 당시의 감정이 떠올라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마법학교에 다닌다면 여기에는 왜 나온 거야? 한창 공부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아, 그게…… 짧게 휴학 신청을 했어. 며칠 전에 힘든 시험을 치러서 좀 쉬려고.”
이번만은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정학을 당했다고 하면 빈센트의 귀에도 들어갈 테니까.
속사정이야 어찌 됐든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믿는 눈치였다. 실제로 휴학계가 있으니 딱히 의심할 구석은 없을 터였다.
루미나가 시로네의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
“며칠이나 쉬는데?”
“음, 글쎄. 한 3일쯤?”
“그래? 그러면 집으로 갈 거야?”
“아니. 어차피 곧 학기가 끝나니까 집은 그때 가려고. 부모님도 바쁘실 거고.”
“하긴, 3일이면 오다가다 휴가 끝나겠다.”
산꾼의 일과가 얼마나 바쁜지는 같은 부모를 둔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마틴이 물었다.
“그럼 갈 데는 정한 거야? 잠은 어디서 자려고?”
“아직 딱히 정한 건 없어.”
루미나가 화색을 띠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자. 예전에도 화전민촌에서 잠도 자고 같이 놀기도 하고 그랬잖아. 우리 1년 전에 본터로 돌아왔거든. 잠잘 곳은 충분할 거야.”
시로네도 기억이 났다.
화전민촌의 운명 공동체 속에서 그들은 친구이자 형제였고, 애인이자 가족이었다.
“괜찮을까, 내가 가도?”
시로네는 다시 알토르에게 물었다.
이제는 다들 장성했지만 화전민촌에서 리더의 존재감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알토르는 피식 웃었다.
하긴, 당시에도 이토록 사리에 밝았기에 싫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과거의 감정을 지운 그가 시로네의 목을 한 팔로 끌어안았다.
“무슨 소리야, 인마? 당연히 와도 되지. 자, 자! 물건도 다 팔았겠다, 출발하자고!”
“아야야, 아파!”
“하하하! 너는 어떻게 예전보다 더 말랐냐? 훌륭한 마법사가 되려면 체력이 있어야지.”
시로네는 이런 행동이 서열을 정리하고 권위를 되찾는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화전민촌에서 묵기 위한 통과의례이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것으로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자, 특별히 상석이다.”
알토르는 시로네를 수레에 번쩍 올려 태웠다.
아무리 왜소해도 성인 남자를 들어 올리는 건 어지간한 완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어릴 적 친구가 괴물이 되었다는 생각에 멍한 표정을 짓자 알토르가 시로네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반갑다, 시로네! 오늘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
***
수레를 타고 화전민촌에 도착한 시로네는 오랜만에 보는 정경에 감회가 새로웠다.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선 밭에 곡식이 자라고, 능선 너머 집촌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화전을 가꾸는 노인이 오솔길을 따라 들어오는 수레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마틴! 이제 오냐?”
“네, 할아버지! 시로네도 같이 왔어요!”
“뭐어? 시로네? 빈센트는?”
“빈센트 아저씨는 안 왔고요. 그런데 할아버지, 그거 아세요? 시로네가 마법학교에 다닌대요!”
“뭐라고? 밥 먹고 다닌다고?”
“아뇨! 밥 먹는 게 아니라 마법학교에 다닌다고요!”
“껄껄껄! 원, 실없는 소리도.”
“…….”
마틴은 입을 다물었고 노인은 다시 밭을 맸다.
알토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자신도 믿을 수가 없는데 평생 땅만 일군 분이 어떻게 믿겠는가?
루미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왜 안 믿는 거야? 시로네, 걱정하지 마. 내가 나중에 소문내 줄게.”
“하하,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알토르가 말했다.
“빈센트 아저씨도 아무 말씀 안 하셨잖아. 괜히 나서지 말고 입 다물고 있어.”
화전민촌 아이들의 리더답게 알토르는 말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 빈센트랑 거래가 끊기면 그의 집도 타격을 받을 터였다.
공용 창고에 수레를 넣은 알토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화전민촌에서 유일하게 술을 파는 집으로 갔다.
흙바닥에 기둥을 세우고 테이블을 몇 개 가져다 둔 게 전부였는데, 약초꾼 아저씨의 아내가 부업으로 하는 일이었다.
“아줌마, 저 왔어요.”
“어서 오렴. 어머, 혹시 너, 시로네 아니니?”
“네. 안녕하셨어요, 아줌마.”
“그래! 어쩜! 빈센트가 도시에서 일한다더니 거기서 만났나 보구나. 아무튼 잘 왔어.”
아이들은 익숙하게 테이블 세 개를 붙였다. 상석에 앉은 알토르가 주문을 했다.
“일단 맥주 한 잔씩 주시고요, 안주는 늘 먹던 걸로요.”
시로네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예전에 어울렸을 때는 모두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리를 꼬고 앉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이들과 비교하면 마법학교의 또래들은 아직도 어린 티가 난다고 할 수 있었다.
“어때, 시로네? 술은 좀 하냐?”
“응? 아, 아니. 난 아직 한 번도 안 마셔 봤는데.”
“뭐어? 이제 봤더니 아직 꼬맹이네. 너 거기에 털도 안 난 거 아냐? 푸하하하!”
알토르의 농담에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루미나가 정색하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하여튼 입이 저렇게 거칠어서야.”
평소에는 같이 깔깔대던 루미나가 면박을 주자 알토르는 씁쓸한 기분이었다.
‘하긴, 예전부터 그랬지.’
루미나가 시로네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들 어린애가 아니다. 힘이 있는 자가 멋진 여성을 갖는다.
루미나의 짝은 차기 촌장인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더 컸기에 불쾌한 감정은 금세 취기에 휩쓸렸다.
시로네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즐거웠다. 처음 마시는 술도 의외로 입에 맞아서 분위기는 흥겨웠고, 너도나도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너희들 그거 알아? 예전에 하우란 누나가 시로네를 덮치려고 했었잖아.”
마틴의 말에 시로네가 손을 휘저었다.
“야, 그 얘기는 갑자기 왜 꺼내? 하지 마!”
“뭐 어때? 이미 지난 일인데. 게다가 하우란 누나는 작년에 결혼해서 여기에 있지도 않다고.”
“아, 그래? 그건 다행이네.”
시로네의 말에 웃음이 터진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분위기를 틈타서 루미나가 슬그머니 시로네의 옆에 달라붙었다.
“그럼 시로네는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야?”
“응? 글, 글쎄.”
루미나를 얄미운 눈초리로 지켜보던 알토르가 일부러 화제를 바꿨다.
“시로네, 근데 너 정말 마법학교에 다니는 거야? 그럼 적어도 간단한 마법은 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냐?”
“그게 말이지, 사실 마법을 늦게 배워서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져 있어. 마법이 워낙에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고,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교칙으로도 금지되어 있어서…….”
정식 마법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은 이상 학교 밖에서의 마법 사용은 엄금하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타인의 신변이 위험에 노출되었을 경우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칙을 지키지 않고, 학교 측에서도 현실적으로 막을 방도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교칙이 만들어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고작 열두 살에 골목길에서 만난 불량배들의 팔다리를 부러뜨린 시로네였다.
일전에 레스토랑에서 네이드가 전격 마법을 사용한 것도, 상대가 조금만 세게 나왔다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법은 단순한 무력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으로 대자연의 힘을 이끌어 내는 강대한 권력이었다.
시로네의 주특기인 광자 출력은 1그램의 물리력도 갖지 못하지만 그것을 선보인 순간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경외심이 싹트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굳이 술자리에서 마법을 선보여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마틴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물었다.
“그렇게 어려우면 마법사가 못 될 수도 있는 거야?”
“당연하지. 오히려 마법사가 되는 사람보다 못 되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그래? 그럼 마법사가 못 되면 어떻게 돈을 벌어?”
“응? 어떻게……?”
마법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기에 그 이후의 상황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시로네가 대답을 못 하자 아이들은 의아했다.
“그럼 학비는 누가 대 주는데? 그것도 귀족들이 대 줘?”
“어. 일단은 지원을 받고 있어.”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정말? 얼마나 주는데? 벌써 결혼 자금도 마련한 거야? 귀족하고도 사귀어 봤어?”
“아니,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알토르가 아이들을 말렸다.
“야야, 적당히 해라. 무슨 궁금한 게 그렇게 많아? 시로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부럽잖아. 귀족들이 돈을 준다는데.”
“세상에 공짜가 있을 것 같아? 마법사가 되지 못하면 말짱 꽝이야. 그렇지 않냐, 시로네?”
“응? 아, 당연히 그렇지.”
아이들의 흥분이 가라앉자 알토르가 술잔에 남은 술을 비우고 말했다.
“귀족은 무서운 놈들이야. 손해 보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지. 시로네, 너도 잘 생각해. 성공하면 상관없지만,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야? 어쩌면 해코지를 할 수도 있어. 우린 가족을 지켜야 하잖아.”
오젠트 가문에서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테지만, 알토르의 생각도 이해가 되었다.
정상에서(4)
‘나도 그랬지.’
시로네도 집사 생활을 하기 전에는 꽤나 겁을 먹었다.
또한 겪어 보니 평민들이 생각하는 귀족의 이미지가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고 마법학교에 들어간 시로네의 모습이, 빠듯한 삶을 사는 화전민촌 사람에게는 철이 없게 보일 수도 있을 터였다.
‘이상과 현실.’
시로네가 꿈을 향해 달리는 지금도 부모님은 위험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분위기가 가라앉자 알토르가 박수를 쳤다.
“자, 자! 복잡한 이야기는 됐고. 어이, 시로네. 오랜만에 나랑 팔씨름 해 볼래?”
“나랑?”
“그래. 너 의외로 통뼈였잖아. 아직도 그 뼈가 남아 있는지 한번 보자고.”
아이들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대결을 부추겼다.
“전사 대 마법사다! 세기의 대결이야!”
술자리가 다시 뜨거워지자 시로네도 무거운 생각을 접고 웃음기를 되찾았다.
한편으로는 성인을 번쩍 드는 사람하고 팔씨름을 하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알토르가 두꺼운 팔뚝을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어때? 술값내기?”
시로네도 지지 않고 소매를 걷었다.
“피할 수 없지.”
내기가 걸린 판이라면 지든 이기든 받아 줄 수밖에 없는 게 남자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의욕은 잠시, 손을 맞잡는 순간 돌덩어리를 쥐는 기분이었다.
광자화 마법을 걸면 술값은 벌겠지만, 재미있는 상상에 불과했다.
마틴이 심판을 보았다.
“자, 자! 준비하시고…… 시작!”
시작과 동시에 시로네는 갖은 힘을 쥐어짜 냈으나 알토르의 힘이 파도처럼 느껴지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반대편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윽!”
완력이 아니라 괴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