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33
“수정구에 미래가 비치는 건가요?”
“아뇨. 이건 느낌이에요. 집중하면 당신의 얼굴이 물결처럼 사라지고 특별한 형태의 감정들이 전달되죠.”
한참이나 주시하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이상하네. 어째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이런 적은 처음인데.”
사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이제 느껴진…….”
갑자기 말을 멈춘 그녀가 수정구를 뚫어지게 주시하더니 충격을 받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아아아.”
예지가 끝난 뒤에도 한참이나 멍한 상태로 있던 그녀가 얼굴 가리개를 벗어 던지며 말했다.
“죄송한데,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미래도 있다고 생각해요.”
수완이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제법 그럴듯했다.
“하하! 괜찮아요. 그냥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절대로 화내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에요. 이건…….”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그녀가 결정을 내린 듯 예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좋아요. 당신은 미래에 엄청난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절망이라.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둠. 그것이 당신에게서 본 미래의 전부입니다.”
예지가 아닌 악담 수준이었다.
“거대한 적이 당신을 옭아맬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을 거예요.”
“뭐? 시로네가 목을 조른다고?”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듣고 있는 리안도 황당했다.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자살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 시로네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게 전부야?’
수완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킥킥킥! 아주 끝내주는 미래구만!”
키도의 웃음에 맞춰 시로네도 입꼬리를 올렸으나, 솔직히 조금 다리가 후들거렸다.
리안이 나섰다.
“내 미래도 어떤지 봐 주겠어?”
리안이 2골드를 올려놓자 소녀가 조금 전의 감정을 추스르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한숨 자서 그러나? 오늘따라 컨디션이 너무 좋은데.’
그래서 불안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고, 1분이 넘도록 수정구를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 이럴 수가…….”
리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또 뭔데?”
“당신은 끝없는 고통을 당하게 돼요. 몸부림치지만,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을 겁니다.”
“흐음, 그거 괜찮군. 그래서 어떻게 되지?”
“아무것도. 그저 고통, 끝없는 고통뿐. 그러다가 결국 가장 끔찍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독한 말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내가…… 죽는다고?”
언젠가는 스밀레의 환청이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푸하하하! 오싹해서 좋은데? 자, 이번에는 내 차례지?”
키도가 우오린에게 받은 금화를 뿌렸다.
“내 것도 봐 줘. 나는 어떻게 죽지?”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소녀가 수정구에 비친 키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장장 5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키도가 하품을 하며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으나 소녀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이, 뭐 하는 거야? 고블린의 최후는 지어내기가…….”
소녀의 얼굴이 천천히 움직였다.
“왜, 왜 그래?”
거대한 동정을 담은 눈으로 키도를 바라보던 그녀의 한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에이 씨! 뭐 하는 거야? 왜 우냐고!”
“당신은…….”
소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말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랑을 합니다.”
“사랑? 고블린이 무슨 사랑을 해?”
고블린은 즐기는 종족이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사랑. 그렇게 말라 갑니다. 비틀리고, 썩어 갑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포기하지 못해서…….”
소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가렸다.
“이게 미쳤나! 내가 고작 그런 이유로 죽는다고? 그리고 아프면 내가 아프지, 왜 네가 울고 난리야?”
그게 더 불길했다.
어깨를 떨며 눈물을 쏟아 내던 소녀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렸다.
“어머, 죄송해요. 내가 미쳤나 봐.”
뺨을 두드린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 정말 못하죠? 재능이 없는 걸까요?”
“…….”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에라, 이! 확 망해 버려라! 그게 점성술이냐? 쌍욕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천막을 나선 키도가 안에 있는 소녀에게 들리도록 소리쳤다.
“그만해. 영업 방해야.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솔직히 행복한 죽음 같은 게 어디 있겠어?”
“흥, 누가 죽는 게 무섭대? 어처구니가 없으니까 그러지. 너는 스스로 목을 졸라 죽는다잖냐. 세상에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심란하기는 시로네도 마찬가지였다.
“됐어. 다 잊어버리자고. 어디 가서 술이나 마실까? 푹 자고 일어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거야.”
가끔은 리안의 단순한 해결책이 필요할 때도 있었고, 키도가 적극 찬성했다.
“그래! 가장 독한 술을 시키자고!”
그렇게 들어간 곳은 아파트 1층의 술집이었다.
어지러운 음악 소리가 들리고, 단상에는 얼굴을 가린 수십 명의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비싸고 맛있는 거! 가장 독한 술! 빨리!”
키도의 말을 리안이 통역하자 잠시 후 눈앞에 테이블이 무너질 정도로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좋아, 안주 완료. 잊어버리자고!”
키도는 뇌를 술로 닦아 내려는 듯 독주를 퍼마셨고, 시로네와 리안도 오늘은 술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사기꾼이야, 사기꾼!”
키도가 술잔을 내리쳤다.
“그냥 자기 흥에 취해서 되는대로 지껄이는 거라고. 마치 예지처럼 느껴지는 거지. 하여튼 인간들의 망상이란.”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어이, 자네들. 아까 클라리스에게 점을 봤지?”
옆 테이블의 취객이 아는 척을 했다.
“클라리스?”
“수정구로 예지하는 점성술사 말이야.”
“네. 그런데 왜 그러시죠?”
시로네의 말을 리안이 통역하자 취객이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그래서 똥 씹은 얼굴이었군! 뱅가드에서 악독하기로 유명하지. 그녀의 예지는 아무도 믿지 않아. 그러니 신경 쓰지 말게.”
“내가 진짜 이 여자를!”
취객이 손을 들어 키도를 말렸다.
“그냥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야. 그러고 보니 좋은 술을 마시는구먼. 나도 한 잔 주게.”
시로네가 술을 따라 주자 취객이 넌지시 귀띔했다.
“다 잊고 즐기라고. 돈도 많은 거 같은데, 무희들에게 팁이라도 줘 봐. 멋진 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돈이라면 차고 넘치지!”
키도가 금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자 시로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키도, 감정적인 소비는 좋지 않아.”
“뭐 어때? 어차피 말라비틀어져서 죽을 건데. 신나게 놀아 보자고. 자살 예약자는 구경이나 하셔.”
키도가 뿌린 금화가 단상을 굴러다녔다.
“자, 받아라! 오늘 신나게 놀아 보는 거야!”
금화를 주운 무희들이 쪼르르 달려와 키도에게 무릎을 구부리며 인사했다.
취객들의 박수갈채가 터지고, 무희들의 옷이 부드럽게 바닥에 흘러내렸다.
얼굴만 가린 무희들이 낯이 뜨거워지는 자세를 취하자 키도가 혀를 띄우고 웃었다.
“크헤헤헤! 이런 거였어? 어이, 너희들…….”
키도가 돌아봤을 때 시로네와 리안은 술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조차 모른 채 굳어 있었다.
“뭐야, 그 반응은? 혹시 너희들 처음 보냐?”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정말이지 이상했다.
‘남자랑 완전히 다르잖아.’
“하여튼 순해 빠져서는. 이래 가지고 어디 같이 여행하겠어?”
시로네가 술을 닦으며 시선을 돌렸다.
“누, 누가 처음이래? 이런 건 생소해서 그러지.”
생사를 오가는 전쟁터에서 여자의 몸을 보는 것은 예사지만, 지금의 충격에 비할 게 아니었다.
“호호호! 오늘도 대박이군요!”
술이 팔려 나가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모모도가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무의 한복판에서 쾌락을 파는 것.
뱅가드의 존재 의의였다.
“관리인님, 1시간 후에 노스카르타가 옵니다.”
“이 시간부로 뱅가드를 폐쇄합니다. 배사 장치 가동하고 루나의 물을 빼내세요. 지하에서 원류 차단하는 거 잊지 말고요.”
망루의 병사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관리인님! 북쪽에서 40명 정도가 빠르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10분 정도 걸릴 겁니다.”
“지각생이라니. 운이 좋군요. 들여보내세요.”
“그런데…… 상안이 아닙니다.”
“상인이 아니다?”
“깃발을 보건대 마가 도적단인 것 같습니다.”
모모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호오?”
최근 아카드 중부 사막에서 가장 유명한 도적단이었다.
사막의 신 (4)
***
남부 아카드 사막.
노스카르타의 모래 폭풍을 받아 내고 있는 것은 파라스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마법사의 피라미드였다.
줄루의 던전은 수많은 모험가들이 죽음의 비밀을 찾기 위해 들르는 공허의 공간.
하지만 현재는 불청객과의 동거로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어 올린 강난이 젖은 빨래를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대공동으로 들어왔다.
노스카르타에 흔들리는 피라미드의 진동이 느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더 시키실 것은 없나요?”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는 줄루는 영혼이 없는 인형처럼 구석에 앉아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
책도 읽지 않고, 취미도 없다.
삶을 영위하는 최소한의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허무로 채우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시킨 기억이 없는데?”
강난이 건조대에 빨래를 널며 말했다.
“심심하지 않으세요? 하루 종일 그렇게 멍하니 앉아만 있으면 말이에요.”
“마음이 없으면 시간도 없지.”
무상심의 극에 오른 자의 말다웠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세요.”
수건으로 손을 닦고 침대로 걸어간 그녀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올드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강성했던 몸은 해골처럼 말랐고, 언제부턴가 다듬기를 포기한 수염이 턱 아래까지 자라 있었다.
‘이제 그만 좀 일어나지?’
가올드의 옆에는 언제나 죽이 준비되어 있었고, 강난은 한 숟가락을 떠서 입속에 흘려 보냈다.
“더 야위어 가고 있어요. 이러다 정말로…….”
“죽지 않는다요.”
강난이 화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럴까요?”
“이미 죽었어야 정상이야.”
“…….”
“사망의 현상을 넘어섰다면, 가올드의 끝이 죽음은 아닐 것이다요.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이겠지.”
“돌아올 거예요. 왜냐하면 이곳에…….”
강난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미로가 있으니까.”
줄루도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는 미로를 넘어설지도 모른다요.”
가올드가 얼마나 집요하게 강함을 추구했는지 알기에, 그러기를 바라면서도 서글퍼지는 모순적인 기분이었다.
‘일단 일어나. 그래야 나도 싸울 거 아냐.’
쿠르르르르릉.
천장이 흔들리면서 망자의 울음 같은 바람 소리가 벽을 타고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정말 엄청나네요. 대체 얼마나 큰 기압 차이기에 대륙 한가운데에 폭풍이 생길까요?”
후오오오오!
마치 가올드의 비명 소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