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34
“바람이 아니야, 강난.”
줄루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율법의 수레바퀴. 이 세계의 윤리輪理는 훨씬 더 깊은 경지에서 작동하고 있다요.”
***
뱅가드가 폐쇄되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오는 마가 도적단을 맞이해 모모도가 최강의 수하들을 대동하고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뱅가드 제32대 관리자 모모도라고 합니다.”
중부 사막에서 가장 유명한 여걸의 이름이 등장하자 부단장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잠시 볼일이 있어 들렀으니 협조를 해 주겠나?”
모모도는 대답 대신 부단장의 옆에 있는 여자를 살폈다.
헝클어진 머리에 옷고름이 풀어져 있어, 마치 봉변을 당하고 끌려온 듯했다.
하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먹으로 두들겨 맞는 듯한 욱신거림이 전해지는 기운은 정상이 아니었다.
‘정말 사람인가?’
세상에 기괴하다는 인간은 전부 만났다고 자부하는 그녀지만, 이번에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이 여자가 최고의 괴물이다.
“상황은 알고 계실 텐데요. 노스카르타가 지나가기 전까지는 뱅가드에서 어떠한 무력 행위도…….”
박녀가 모모도에게 다가왔다.
“반야를 찾고 있다.”
짐승의 눈을 본 순간, 사자의 배 아래에 깔린 먹잇감처럼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죽는다. 죽을 거야.’
싸울 것인가, 길을 열어 줄 것인가.
양자택일의 선택 앞에서 모모도의 판단은 빨랐다.
“들어가시죠. 큰 소란은 일으키지 말아 주세요.”
박녀는 무장한 자들 사이를 지나면서도 거침이 없었고, 부단장이 모모도에게 콧방귀를 뀌며 뒤를 따랐다.
숙소로 돌아온 시로네 일행은 문 쪽을 제외하고 구석에 있는 침대를 하나씩 차지했다.
“후우, 피곤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
“킥킥킥! 그래도 재밌었잖아? 20년 만에 새로운 사실도 알았고 말이야.”
리안이 발그레 달아오른 시로네의 얼굴을 보고 웃었다.
“혹시 꿈에 나타나는 거 아냐? 시로네, 너 속옷 몇 장 챙겼어? 옆에 놔두고 자.”
“시끄러! 자기도 넋이 나갔으면서 어른인 척하기는!”
넝마때기 반바지만 남겨 두고 탈의한 키도가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됐고. 인간의 사정(?)은 인간들끼리 알아서 하셔. 나는 명상할 거니까 말 시키지 마.”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에 배만 볼록 나온 고블린의 몸은 볼품이 없었으나, 호흡을 전개하자 순식간에 알코올이 빠져나가면서 술 냄새가 퍼졌다.
“키도, 너…….”
건드리지 말라는 말을 상기한 시로네가 입을 다문 가운데, 키도의 눈빛이 더욱 고요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화신술이다.’
경박스러운 말투와 다르게 키도의 몸에서 일렁거리는 고블린의 화신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시로네, 어떻게 생각해?”
키도를 내버려 두고 리안이 침대에 앉으며 물었다.
“오늘 들은 예지 말이야. 정말로 그게 내 최후일까?”
“아직도 신경 쓰는 거야? 술집 사람들도 거짓말이라고 했잖아.”
“하지만 너는 알고 있잖아, 거짓이 아니라는 거.”
시로네는 대답을 미루듯 천천히 로브를 벗었다.
“율법이란, 규칙이라고 생각해.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고정적인 결과를 내는 거지.”
우오린의 히스토리 서치도, 라 에너미의 사건 조작도, 율법의 톱니바퀴가 적용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클라리스가 율법에 의거한 예지를 했다면, 정말로 그게 우리들의 최후일 수도 있지.”
“……그렇군.”
“하지만 정해진 미래는 없어. 시불상폭매도, 너의 디나이도, 톱니바퀴의 이빨을 깨는 행위잖아.”
“고작해야 이빨이지.”
이빨이 몇 개 나갔다고 해서 톱니바퀴가 작동을 멈추거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리안이 팔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얼마나 거대한 톱니바퀴일까? 운명이라는 거 말이야.”
아마도 우주의 크기일 테고, 고작 액싱 따위로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분위기가 숙연해지면서 생각에 잠기는 중에, 복도의 끝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악! 뭐예요! 갑자기 들어오고!”
부단장은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창백하게 질린 남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음 방으로 몸을 돌렸다.
‘이 녀석들은 아니다.’
인상착의는 모르지만 반야와 야차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실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뭐야, 너희들! 감히 내 방에 함부로……!”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린 그의 걸음걸이가 더욱 빨라졌다.
‘어디 있는 거야?’
이미 건물 바깥은 부하들로 포위되어 있기에 도망칠 곳은 없을 터였다.
“여기가 마지막 방입니다.”
부하의 말에 한참이나 방 안의 분위기를 감지해 보던 부단장이 주먹을 들어 문을 쾅쾅 두드렸다.
“계십니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급한 일입니다. 문 좀 열어 주시죠.”
여전히 기척조차 없자 그의 얼굴이 야수처럼 일그러지더니 앞발차기로 문을 박살 냈다.
“사람이 부르면…… 응?”
눈앞에 섬광이 들이닥쳤다.
“크윽!”
황급히 몸을 젖힌 부단장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두 발을 띄우며 핑그르르 돌았다.
스쳐 지나간 포톤 캐논이 뒤편의 벽을 강타하는 것과 동시에 부하들이 방으로 쳐들어갔다.
“키이이이!”
키도가 바닥을 구르며 칼날지옥을 펼쳤으나 칼끝에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뿔뿔이 흩어진 도적단을 확인한 키도가 등을 튕기며 몸을 뒤집더니 엎드린 자세로 착지했다.
“조심해. 이것들 엄청 강하다.”
시로네 또한 지근거리에서 포톤 캐논을 회피한 남자의 실력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나가! 밖에서 보자!”
“이야아아압!”
리안이 대검을 휘둘러 벽을 통째로 뜯어냈다.
“잡아! 놓치지 마라!”
난간 밖으로 나간 키도가 벽을 타고 올라가고, 리안과 시로네는 각기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라투사를 불러야 하는데.’
복도를 달리며 좌우를 살피자 완벽하게 폐쇄된 뱅가드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어디로?’
섬뜩한 살기에 고개를 홱 트는데, 횃불에 반사되어 불꽃을 머금은 듯한 박도가 쇄도했다.
‘피해야……!’
아르망의 반사 신경으로 허리를 젖혀 보지만 답답해서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당했다!’
선명하고 깨끗한 바람 소리가 이어지면서 시로네의 목이 뎅겅하고 떨어져 나갔다.
여기까지가 1초.
“허억! 허억!”
순간 이동으로 10미터를 물러난 시로네는 손으로 땅을 짚은 채로 전방을 얼보았다.
과격한 동작에 의복이 뒤틀리면서 완전히 몸을 조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당신…… 큭!”
뒤늦게 가슴에서 충격파가 터졌다.
시로네가 고개를 내려 살피자 아르망의 가슴팍에 링거의 갑피가 은색의 상처처럼 그어져 있었다.
‘피하지 못했다고?’
아마도 풍압.
하지만 금속질의 상처를 보고 있노라면 바람이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시폭이군.”
일 검에 대한 반응만으로 감각의 경지를 깨달은 박녀의 목소리에 시로네가 고개를 들었다.
“정체가 뭐야?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야?”
“십로회는 갈등했다.”
‘십로회?’
“네가 먼저인지, 앙케 라가 먼저인지.”
“이해를 못 하겠어. 십로회가 왜?”
“슈라가 아미타에게 보고했다. 너는 궁을 이룰 수 없어. 따라서 우리는…….”
박녀가 자세를 낮추자 돌개바람이 일어났다.
“앙케 라를 따른다.”
박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시로네는 살필 것도 없이 시불상폭매를 발동했다.
‘뭐가 이렇게 빨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박도의 움직임은 가속되었고, 결국 시폭감으로도 검의 궤적을 느낄 수가 없었다.
“죽어라.”
액싱-니르바나 E-엔진(열반동력 직렬 8기통).
율법의 실린더가 하나의 동작에 동력을 부여하자 시로네의 정수리로 검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굉음을 내며 바닥이 폭발하고,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박녀는 한참이나 움직임이 없었다.
‘어떻게?’
흉물적인 감각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결과였다.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녀의 뒤편으로 이동한 시로네가 숨을 헐떡이며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마법인가?’
확인을 위해 박녀가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몸이 복도의 바닥을 유령처럼 관통해 사라졌다.
‘불쾌하다.’
알 수 없는 것은 언제나 불쾌했다.
“크으으으!”
엄청난 속도로 사이클을 돌린 박녀가 바닥을 내리치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착지와 동시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물리적인 모든 장벽을 무시한 채 밖으로 나가는 시로네였다.
“설마.”
박녀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공파空破?”
공간을 파괴할 수 있는 이유는 현실 세계와 이면 세계의 지형지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길도 이면 세계에서는 장벽이 없기 때문에 최단 루트로 돌파할 수 있다.
“시폭에서 끝나지 않았다면…….”
이곳의 땅속은 이면 세계의 지하실일지도 모르고, 하늘은 높은 건물의 옥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궁극에 가까워졌다.”
박녀의 중얼거림이 끝나는 순간, 천장을 부수고 샤이닝 마법을 시전한 시로네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됐어. 이거라면 싸울 수 있다.’
우오린의 조언을 통해 첫 번째로 계발한 것은 현실과 이면 세계의 루트를 모두 이용하는 제7감의 능력.
박지경-초에니 바르도(생과 사의 경계).
즉,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이었다.
사막의 신 (5)
밀교의 진의에 의하면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구간(바르도)으로, 의학적으로는 임사 체험과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다.
가사 상태의 환자가 현실과 다른 풍경을 마주한 것은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으며, 뛰어난 고승들은 극한의 수양을 통해 혼의 세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시로네의 박지는 찰나의 깨달음이 아닌 선명한 감각으로써 현실과 이면의 두 가지 풍경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시 확인한다.”
박녀가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부숴 버리며 다가오자 시로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초에니 바르도!’
시불상폭매가 과거와 미래를 합치듯 초에니 바르도가 두 가지의 공간을 합치자 마치 정밀한 마법진의 전기회로처럼 기존에 없던 수많은 루트가 펼쳐졌다.
공격을 회피한 시로네가 호밍 포톤 캐논을 시전하자 스핀을 먹은 듯 섬광이 쇄도했다.
박녀의 흉물적 감각이 발동하면서 그녀의 상체가 현을 튕기듯 진동했다.
상체를 흔드는 것만으로 공기가 폭발했고, 박녀의 주위를 휘감던 포톤 캐논이 서로 충돌하며 소멸했다.
‘저게 인간이야?’
놀란 것은 박녀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박지를 열었다.’
제7감은 천국의 기준으로 평천사의 감각 계층에 해당.
굽어보기는 물론이고 평천사의 수많은 사법들이, 무려 일곱 가지의 감각으로 이 세계를 탐구한 결과물이었다.
박녀가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
“이제부터, 내 방식대로 너를 평가할 것이다.”
지극히 직관적인, 하지만 그렇기에 빗나가는 법이 없는.
‘저건 또 뭐야?’
박녀의 배후에 강철로 만든 심장처럼 생긴 거대한 기관 장치가 환각처럼 아른거렸다.
액싱-니르바나 E-엔진(V-12기통).
이어서 환각이 사라지고 선명한 V 자의 화신이 날개처럼 치솟자 시로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윽!”
세상이 그녀를 중심으로 꺾이는 듯한 느낌이, 마치 리안의 마하를 접하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포칼립스에서 리안을 상대하며 최고의 가속을 맛보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같은 화신이라면 직렬은 낭비, V 자로 꺾어 올려 더 많은 율법의 실린더를 장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