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38
그리고 둘은 무한을 향해 끝없이 사건을 탄생시키며 안드레의 미궁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으!”
세계명 1호부터 19000호까지.
울티마 시스템이 아니고서는 해독할 수 없는 코드들이 시로네의 손에 해체되면서 철문들이 빛을 뿜어냈다.
‘나는 누구지?’
시로네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이름도, 나이도, 심지어는 인간이라는 사실조차도 떠올릴 수 없었다.
“…….”
마침내 통제권이 사라지자 수많은 시로네들이 독립적인 사건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가 누군가의 꿈이라면 지금 현현한 시로네들의 삶도 본체의 정신이 만들어 낸 것.
“반드시 돌아올게.”
모든 시로네가 자신의 우주를 돌아보며 말하는 것과 동시에 1만 9천 개의 세계가 한꺼번에 열렸다.
거대한 빛이 차오르고 다시 고요했다.
***
상아탑의 꼭대기, 인공성.
7명의 별들과 아라카는 태성이 거주하는 대지성전을 지키고 있는 마하가루타를 발견했다.
‘오대성이다.’
별들 사이에 위계는 없으나 이는 평등의 논리가 아닌, 애초부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경지의 깊이를 가늠하는 자라면 굳이 계급 따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마음으로부터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특히나 미니, 보르보르, 쯔오이는 하늘 위의 하늘이라는 말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었다.
‘깨달은 자…….’
루버와 뇌를 이해하는 자가 극소수라면, 오대성의 본질을 이해하는 자는 아마도 태성이 유일할 것이다.
2성급 주민들이 심적으로 호들갑을 떠는 반면에 3성급인 아르테와 흑강시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루버가 대표로 나섰다.
“붓다시여, 참으로 오랜만이로군요.”
마하가루타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황금빛 광채가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실로 기괴한 안광이었으나, 미소는 따듯했다.
“그렇군요, 루버 씨. 예전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수면을 취하지 않으시니 뵐 수가 없지요. 조만간 시간을 내어 찾아 주시는 게 어떨지.”
“지금도 충분히 좋은 꿈을 꾸고 있답니다.”
선문답 같은 대화가 오가고, 마하가루타가 허공에 가부좌를 튼 채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들어가시지요. 태성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하가루타의 안광이 폭발하자 백광이 사라지면서 대지성전의 장엄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태까지 꿈을 꾼 것처럼, 혹은 이것이 꿈인 것처럼.
“태성이시여,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순백의 옷을 입은 여자가 행성이 내려다보이는 대지성전의 유리 바닥 위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만유인력처럼, 상아탑의 모든 별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서 오너라, 나의 아이들아.”
정신이 티끌 하나 없이 맑아지는 청아한 목소리였다.
“편한 곳에 앉아.”
카샨의 넓은 대지가 보이는 유리 바닥에 태성이 엉덩이를 붙이자 별들이 그녀의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태성을 만나기 전부터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기에 모두가 그녀의 입술을 주목했다.
“오늘이 내 생일이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생일? 태성에게 생일이라는 게 있었던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하지만 최소한 인간과 유사한 개념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그들이었다.
보르보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 생일 축하합니다. 안녕하세요?”
태성이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말만 하면 뭐 해? 선물을 줘야지.”
2성급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가운데 3성급들의 표정이 점차 심각하게 변했다.
“진심이십니까? 그럼 올해로 연세가……?”
“후후, 사실 생일을 챙길 나이는 아니지. 그냥 예전 생각이 났어. 너희들이 그리웠다. 단지 그것뿐이야.”
마음이 따듯해지는 말이었지만 별들의 차가운 이성은 빠르게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해 냈다.
“태성이시여, 아직 저희들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지성의 정점에 있는 자가 감정적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세계에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르테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제단입니까, 앙케 라입니까, 나네입니까, 아니면 시로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태성이 고개를 저었다.
“파괴할 힘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파괴해 버리면 결국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겠지. 모든 것은 이유 없이 존재하고, 그렇기에 고귀할 수 있는 것이야.”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저기, 태성님.”
쯔오이가 슬그머니 손을 들고 물었다.
“혹시 이번에 누구 투표하셨어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으나, 아르테와 흑강시의 눈총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후, 내가 누구를 찍었을 것 같니?”
미니가 말했다.
“당연히 나네죠. 시로네나 진성음도 뛰어나지만 나네는 차원이 다르잖아요. 카르 수치도 가장 높고요.”
“카르는 경쟁의 도구가 아니란다.”
태성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이 우주를 작은 방이라고 생각해 보렴.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모든 깨달음이 한꺼번에 들어오지. 냄새, 형태, 색깔, 분위기 같은 것들. 누구나 이 방을 대략적으로 안다고 할 수 있고, 그렇기에 50퍼센트의 카르 수치를 얻는 건 쉬운 일이다.”
태성의 두 손바닥이 살며시 벌어졌다.
“하지만 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오감 이상의 것이 동원되어야 한단다. 물건의 위치, 그것의 쓰임새, 거기에 깃든 역사, 의미 같은 것들. 그렇기에 완벽에 가까울수록 카르 수치를 올리기란 힘든 일이다.”
태성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자, 이제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생각해 보자. 너희들은 방에 대해 전부 파악했고, 심지어 구석에 내려앉은 먼지 한 톨까지 알고 있다. 그럼 드디어 100퍼센트의 카르인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절대로 될 수 없지. 이 방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것을 증명하지? 혹시 빠트린 것은 있지 않을까? 과연 내가 아는 것이 사실일까?”
“자신의 방을 완벽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로군요.”
“그래. 100퍼센트에서 0.01퍼센트 비어 있는, 어쩌면 그보다 더 작은 조각. 그것의 정체가 바로…….”
태성의 두 손바닥이 살포시 가슴에 내려앉았다.
“마음이란다.”
“마음…….”
“완벽에 도달했음을 완벽하게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이 작용해야 한다. 나네에게는 없고, 시로네에게는 있는 것. 변수가 생긴다면 아마도 마음의 문제겠지.”
별들이 저마다 생각에 잠긴 가운데 쯔오이가 태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역시…… 시로네에게 투표한 사람이?”
태성이 혀를 삐죽 내밀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건 비밀이다.”
***
미궁 파이타로스.
세상의 탁한 기운이 흘러드는 율법적 저지대로, 예로부터 수많은 수도사들이 악을 멸하기 위해 도전했으나 단 한차례도 성공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여기가 타락의 구멍인가?”
카니스와 아린이 도착했을 때에도 미궁의 시커먼 동굴 바깥에는 수많은 조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하나같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고, 그들의 면면을 확인한 아린이 말했다.
“카니스,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아무래도 이건 아니야. 시작으로 삼기에는 너무 난이도가 높아.”
초경으로 바라보는 파이타로스는 음습하고, 축축하고, 번질번질한 창자의 입구 같은 것이 벌렁거리는 형태였다.
“그래서 더욱 도전할 가치가 있는 거야. 입구만이라도 정복하면 이름을 날리는 건 순식간이라고.”
졸업 시험에서 탈락한 카니스와 아린은 마법학교를 자퇴하고 세상을 떠돌면서 유적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카니스의 꿈은 고고학자였고 아린도 그 꿈을 적극 지지했으나, 이번에는 객기를 부린 감이 있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영원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 무서우면 여기에 남아. 나는 혼자라도 들어갈 테니까.”
카니스의 고집을 아는 아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같이 갈게. 하지만 정말로 위험할 때에는 내 말을 듣는다고 약속해.”
카니스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아린이 갑자기 광야 쪽을 돌아보았다.
얼굴에 빼곡하게 문신을 새긴 소년이 넝마 같은 후드를 걸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카, 카니스…….”
그녀의 목소리가 심각할 정도로 떨렸다.
‘초경이 아니야. 너무나 또렷한 화신…….’
멀리 보이는 파이타로스를 눈에 담은 나네는 차분한 눈빛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네의 시간은 모두의 시간과 달랐다.
카르 수치 97.8퍼센트.
나네의 생각은 모두의 생각과 달랐다.
카르 수치 98.2퍼센트.
“……알았다.”
카르 수치 99.1퍼센트.
모든 정도를 거친 그에게 있어 사도의 세계에서 얻은 깨달음은 정반합의 극치로써 작용했고.
“아, 착각했군.”
무한에 가까운 조합을 통해 완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카르 수치 99.3퍼센트.
걸음을 옮길 때마다 거대한 장벽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느낌에 카니스는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말도 안 돼…….”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카니스는 자신의 곁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나네를 올려다보았다.
‘시로네, 솔직히 너도 대단한 놈이지만…….’
어째서 이 순간 시로네가 떠오르는 것일까?
‘이 녀석은 차원이 달라. 너를 능가한다.’
‘일곱 걸음.’
파이타로스까지 남은 거리였다.
‘여섯 걸음.’
거리가 줄어들수록 나네의 카르 수치는 넘을 수 없는 한계치를 끝없이 돌파했고.
‘한 걸음.’
잠시 우주를 정지시킨 나네가 마지막 한 걸음을 땅에 내디디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깨달았다.”
카르 수치 99.99퍼센트.
모두가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나네가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1만 9천 세계 (4)
***
미궁 제시카.
지중해와 북쪽으로 인접해 있는 아름다운 왕국 몰튼에는 세계3대미궁 중의 하나인 거인의 유적지가 있다.
위대한 헌터 제시카가 이곳을 처음 발견한 이후로 거인의 유적지는 수많은 헌터들의 이상향이었다.
천국에 대해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에 수많은 고대 병기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진성음이 제시카에 도착했을 때에도 거대한 피라미드를 둘러싸고 수많은 텐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상인들이 가판대를 열어 그들의 편의를 제공했으며, 그보다 멀리에는 몰튼 왕국의 유적복원사업부의 건물이 보였다.
“제시카 또한 정복되지 않은 미궁입니다. 하지만 다른 3대미궁과 다르게 돈이 되는 곳이기도 하죠.”
‘삼보’의 대장 문경의 말에 진성음은 정갈한 숨소리를 내며 제시카의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옆으로 찢어진 커다란 눈은 고양이처럼 사나웠고, 힘을 주어 다문 입술은 산딸기처럼 붉었다.
동방의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체구는 작았지만 목이 길어 비율이 아름다웠고 두 주먹은 언제나 굳게 쥐인 채였다.
‘강철의 여인.’
문경은 진성음을 흠모했다.
‘감히 당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음이 그에게 허락한 거리는 삼 보.
황녀의 친위대장으로서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한 걸음이라도 더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십 보에서 시작한 삶이었다.’
성음을 무력으로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였다.
‘구 보, 팔 보, 칠 보…….’
육 보에서의 성음이 달랐고, 오 보에서의 성음이 달랐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거리를 좁힐 때마다 흠모의 마음은 커져 갔고, 삼 보에 이르러서야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제가 지키겠습니다.’
어떤 남자도 허락하지 않은 이 보에 이르렀을 때 성음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문경은 상상하지 못했다.
“들어가시죠. 상아탑의 테스트를 치를 시간입니다.”
성음이 뒤를 돌아보자 삼보의 20명을 포함한 200명의 친위대가 일제히 무릎을 구부렸다.
“너희들은 이곳에 남거라. 나 혼자서 충분하다.”
문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될 말씀입니다. 황녀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나, 제시카는 파렴치한 헌터들이 들끓는 곳입니다. 괜히 피곤한 수작에 휘말려 심기를 어지럽히지 마소서.”
성음의 눈에 노기가 담겼다.
“문경, 나는 애지중지 다루어야 하는 꽃이 아니다. 비열한 계략도, 남정네들의 수작도 내가 이겨 내야 할 일.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상아탑의 후보라 할 수 있겠느냐?”
헌터들이 제아무리 강해도 성음의 상대는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문경은 알고 있었다.
진천우주국의 분석에 따르면 3명의 후보가 개인으로 맞붙었을 때 성음을 이길 자는 없다는 게 정론이었다.
‘공간을 지배하는 자에게 약점은 없다. 하지만…….’
그저 싫었다.
한낱 무뢰배가 진성음을 눈에 담는 것조차도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정히 그러시다면 삼보만이라도 곁에 두십시오. 어쨌거나 이것 또한 경쟁. 잡다한 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성음은 누구의 말에도 쉬이 고집을 꺾지 않는 성격이지만, 스스로 인정한 세 걸음에게는 매몰차게 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