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39
“알았다. 그렇다면 삼보의 인원들만 나를 따르라.”
벅찬 감동에 눈물을 글썽거린 문경이 땅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찧었다.
“목숨 바쳐 보필하겠습니다!”
성음은 무심하게 문경을 내려다보았으나, 눈빛에서는 잠시 동안 봄날의 훈풍이 지나가는 듯했다.
“가자. 이곳에 라 에너미가 있으면 좋겠구나.”
“분명 그리될 것입니다. 황녀님이야말로 하늘의 선택을 받은 분이 아니십니까?”
“후후, 환관 같은 소리는…….”
진천 제국의 황녀가 피라미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미궁 안드레-제1번 세계.
시로네가 처음 도착했을 때 반긴 것은 천지를 흔드는 화산 폭발의 굉음이었다.
“여기는……?”
패널에 1이라는 숫자가 떠 있는 문을 울티마 시스템으로 해제하고 들어온 시로네였다.
기존의 세계보다 훨씬 농밀한 산소.
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수림이 엄청난 높이와 규모로 퍼져 있고 하늘에는 불타는 암석들이 날아다녔다.
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들리는 괴음에 고개를 쳐들자 몸길이 40미터가 넘어가는 괴생물체가 빠르게 멀어졌다.
“드래곤?”
자신의 눈을 의심한 시로네가 멍한 표정을 짓는 그때, 수풀이 우수수 흔들리더니 푸른 비늘을 가진 드래곤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크으으으…….”
기계처럼 감정이 없는 파충류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언어가 전달되었다.
“이상한 인간이군.”
첫마디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최소한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드래곤은 상당히 난해한 질문이라는 듯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 끝에 입을 열었다.
“어째서 두려워하지 않지?”
드래곤이 아는 한 인간은 너무나 나약해서, 자신들보다 작은 동물조차 두려워하는 종족이었다.
“여기는 어딘가요?”
물론 시로네도 드래곤을 앞에 두고 긴장이 되었지만, 그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건너온 인간이었다.
“이제 알았다. 너는 다른 세계에서 온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거지.”
시로네가 화색을 띠었다.
“네! 맞아요! 대체 여기가 어떤 곳인지…….”
“죽어라, 하찮은 인간이여.”
드래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지더니 화염의 브레스가 숲을 순식간에 재로 불태웠다.
“하여튼 나약한 종족…….”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던 드래곤의 눈이 무언가를 포착하고 빠르게 옆을 살폈다.
순간 이동으로 회피한 시로네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용족만이 가능한 현상 변화를 일으킨단 말인가?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다.’
용의 망막에 잔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인간의 몸이 빛으로 변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현상이었다.
“갑자기 공격하다니! 무슨 짓이야?”
브레스의 위력 자체는 현대의 드래곤과 차이가 없었기에 시로네의 언성이 절로 높아졌다.
“그럴 리가 없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드래곤이 다시 입을 거대하게 벌리며 브레스를 작렬했다.
“이게……!”
결국 참지 못한 시로네가 포톤 캐논으로 응수하고, 그로부터 몇 분간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크아아아아앙!”
호밍 포톤 캐논에 옆구리를 강타당한 드래곤이 나무를 부러뜨리며 밀려났다.
드래곤의 괴성을 들은 숲의 생물들이 마치 철판을 못으로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초목을 뒤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어!”
여태까지 수많은 드래곤들과 교류했지만 인간에게 밀렸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없었다.
그것은 공상조차 불가능한 전혀 새로운 발상.
“그럴 리가 없단 말이다!”
생애 처음으로 분노를 느낀 드래곤이 시로네를 향해 몸체를 뒤트는 것과 동시에 천사의 징벌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앙!
“……!”
빛의 창이 관통하자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이 벌어졌으나 충격이 너무 심해 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음의 공포가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고, 근육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필살의 의지로 다리를 움직였다.
“크아아아앙! 크아아아앙!”
시로네는 숲속으로 도망치는 드래곤을 뒤쫓는 대신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건가?’
현실의 어떤 드래곤은 날개가 퇴화되었지만 그래도 용언 마법을 통해 얼마든지 비행이 가능했다.
“용의 시대.”
시로네가 배운 지식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드래곤이 세상을 지배했던 원시행성이었다.
“대체 얼마나 먼 과거로 온 거야?”
막막해지는 것도 잠시, 시로네는 고개를 저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리안과 키도가 사력을 다해 지키고 있는 만큼 자신 또한 최대한 빠르게 봉인을 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간에 대해 알고 있었어.’
인간의 부락을 찾아 주위를 둘러본 시로네의 어깨에 거대한 광익의 불꽃이 타올랐다.
‘물이 있는 곳을 찾아야 돼.’
빛의 날개가 몸을 감싸듯 둥그렇게 말리더니 펑 하고 공기를 밀어내며 시로네를 화살처럼 쏘았다.
***
미궁 안드레-제283번 세계.
“끝이 없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초록색의 장벽은 결코 거대 성장한 식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땅속에 뿌리를 내린 잡초일 뿐이었고, 그렇기에 시로네가 작아진 것이었다.
부우우우우웅!
천둥보다 큰 소리로 공기가 진동하자 시로네는 황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자신보다 족히 5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말벌이 등을 스치며 멀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눈앞을 가로막는 수십 센티미터 높이의 풀들을 윈드 커터로 베자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숲 바닥의 대지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어 있었다.
“시공간의 감옥.”
단지 시간과 공간을 이동시킨 것이 아니라 특정 시공간에 포커스를 맞추어 확대시킨 것이다.
“여기서 뭘 어쩌라는 거야?”
플라이 마법을 시전하여 풀잎 꼭대기에 안착했으나 산들바람만으로도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 ……!”
스피릿 존을 통해서 수많은 물체의 이동을 느낀 시로네는 곧바로 울티마 시스템을 발동했다.
“적 발견! 적 발견!”
“좌표를 보고합니다! 저기! 저기!”
수많은 신호들이 아우성처럼 밀려드는 것을 느낀 시로네는 땅 쪽을 내려다보고 식겁했다.
“저, 저게 뭐야?”
족히 1만 마리는 될 것 같은 개미들이 줄줄이 열을 맞춰 풀잎 주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동맹 벌의 보고를 전합니다! 우리 영역에 전혀 모르는 곤충이 침입했다! 빨리 막아!”
‘……대충 알겠네.’
우주에서 자연계로, 자연계에서 생물계로 이어지는 카스트 제도의 하위에 있는 시스템이었다.
“내려와! 너는 포위되었다!”
사방의 풀을 타고 올라와 고지대의 이점을 점유한 개미들이 엉덩이를 쭉 내밀었다.
“우리 개미산을 쏘아 보자!”
“쭉쭉 쏴! 쭉쭉 쏴!”
수백 개의 산성 방울이 대포처럼 쏘아지자 시로네가 짜증 난 듯 하늘로 솟구쳤다.
“진짜 미치겠네!”
집요하게 개미산을 쏘아 대는 개미들을 내려다보며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손바닥 위에 장전했다.
‘어차피 끝이 없어.’
아무리 곤충이라고 해도 수만 마리의 생명을 죽이는 건 참으로 처참한 기분이었다.
“잠깐 기다려! 우리 대화로 풀자고!”
“쭉쭉 쏴! 쭉쭉 쏴!”
울티마 시스템으로 개미들의 언어는 해독이 되었으나 개미들은 시로네의 목소리를 감지하지 못했다.
“동맹 벌을 부르자! 벌침으로 해치우자!”
‘이거 일이 심각해지는데?’
제283번 세계가 생물계의 최하위 시스템이라면 인간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봉인을 풀 방법을 알아내야 돼.’
개미와 무슨 대화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한다면 리안과 키도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었다.
지상으로 내려간 시로네가 손을 들고 말했다.
“대표자를 불러 줘. 그러니까…… 그래! 여왕! 너희들의 여왕님을 만나고 싶어.”
개미산의 포격이 멈췄다.
“통한 건가?”
개미들이 더듬이를 맞대며 의견을 나누는 모습에 그런 착각이 드는 것도 잠시.
“비켜라! 침입자는 이 몸이 처단하겠다!”
개미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바다가 갈라지듯 길이 열리더니 위턱이 날카로운 거대한 병정개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했다! 가네트 콜로니 최고의 전사, 13번째 밤!”
수많은 개미들이 13번이라는 정보를 담은 페로몬을 사방에 뿌려 대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최고의 전사라고?’
앞다리를 치켜들고 턱을 딱딱거리는 13번째 밤을 살핀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거대한 덩치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을 보고 있노라면 확실히 화신술의 달의達蟻(통달한 개미)였다.
1만 9천 세계 (5)
병정개미 13번째 밤.
여왕 가네트가 콜로니를 지을 초창기 무렵에 태어나 수천 마리의 적 개미들을 몰살한 전투의 달인이었다.
현재는 가네트의 직속 호위군 대장을 맡고 있지만, 선천적으로 전투를 좋아하는 그가 새로운 적 등장에 직접 행차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13번째 밤이 시로네에게 더듬이를 들이밀며 주의를 기울였다.
더듬이가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결국에는 오감의 기능적 진화에 불과.
단지 몸을 더듬는 것만으로 시로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너는 누구냐? 어째서 가네트 콜로니에 침범했지?”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13번째 밤의 페로몬이 해독되었으나 시로네는 의사를 전달할 수단이 없었다.
‘이를 어쩐다?’
고민하던 시로네는 개미가 더듬이로 몸을 훑는 행위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냈다.
‘어쩌면…….’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듯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린 시로네가 정신을 집중하자 아르망의 로브에서 개미의 더듬이와 유사한 두 가닥의 촉수가 뻗어 나왔다.
‘소세계창유.’
여태까지 수많은 시스템과 접속했던 아르망의 기능이라면 개미하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이건 또 뭐야?”
시로네의 좌우 어깨를 타고 넘어오는 두 가닥의 촉수에, 13번째 밤이 경계 태세를 발동했다.
‘숨이 멎는다.’
개미의 살기는 혼돈 그 자체였고 또한 너무나 순수해서, 마치 네이드의 마력동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미 경험했기에 조금 더 침착할 수 있었고, 시로네는 조심스럽게 촉수를 더듬이와 연결했다.
“흐읍!”
단지 스치는 것만으로 서로 다른 시스템이 정보를 교환했고 13번째 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새로운 언어 체계 감지. 통역 프로그램 구축. 인터페이스 생성 및 분출.
아르망의 신호와 동시에 로브가 불룩하게 부풀더니 털처럼 신경이 돋아 있는 유기질 구체가 튀어나왔다.
-인공두뇌 외(언어 통역 버전).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여타의 생물과는 전혀 다른 더듬이의 감각에, 13번째 밤이 살기를 폭발시키며 몸을 날렸다.
“잠깐 기다려! 이제……!”
엄청난 속도로 돌진한 13번째 밤의 턱이 쌍검처럼 교차하자 시로네가 황급히 상체를 젖혔다.
“제법이구나!”
공처럼 몸을 웅크리고 발톱을 휘두르며 회전하는 개미의 모습을 보고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건 키도의……?’
대지의 율법-개미지옥.
“죽여라! 죽여라! 적을 죽여라!”
수많은 개미들이 페로몬을 발산했으나 인공두뇌 외가 따로 신호를 분석하고 있기에 정신이 어지럽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 개미야.’
회전하는 13번째 밤을 중심으로 주위의 공간이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급기야는 풍경에 디나이가 걸리면서 대지가 실타래처럼 엉키는 환영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인간이 아닌 개미의 육신으로 도달한 경지에 시로네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세상이 아래위로 진동하고 사방의 흙이 일어서면서 시로네가 도망칠 곳을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세계의 율법은 디나이를 통해 무브먼트 제로를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