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4
“아야야. 진짜 세네.”
“우와! 역시 알토르야. 시로네는 마법사인데 순식간에 넘겨 버리잖아?”
마법과 팔씨름은 별 상관이 없지만, 그들에게는 마법사라는 이름이 꽤나 강력한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알토르는 전에 곰도 사냥한 적이 있다고!”
알토르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시로네, 너 정말 약해졌구나?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거 이상한 내기가 되어 버렸네. 술은 그냥 내가 살게, 시로네.”
바닥에 쓰러진 시로네를 루미나가 부축했다. 눈빛에 미안한 감정이 그득했다.
“시로네, 괜찮아? 하여튼 알토르는 무식하다니까. 이렇게 힘을 쓰면 어떡해?”
이번만큼은 알토르도 표정이 굳었다.
시로네에 대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대결에서 이긴 사람을 핀잔하는 건 리더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하하! 괜찮아. 근데 알토르는 정말 세졌네.”
눈치 빠르게 몸을 일으키는 시로네의 주머니에서 금화 몇 개가 또르르 굴렀다.
화전민촌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금화다. 진짜 금화야!”
“뭐? 어디, 어디! 우와, 진짜! 3개나 있네?”
테이블 끝에 있던 아이들까지 모여들어 바닥의 금화에 넋을 빼앗겼다.
화전민촌에서 금화를 사용하는 경우는 어른도 드물었으니, 아직 소일거리로 푼돈을 버는 아이들에게는 황금빛 코인이 성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시로네, 근데 왜 금화를 3개나 가지고 다녀?”
시로네가 쑥스럽게 말했다.
“혹시 몰라서 많이 가져온 거야. 정말 사고 싶은 책을 발견했는데 돈이 없으면 난감하니까.”
“하긴, 책은 비싸지.”
시로네가 책을 좋아한다는 건 다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빈센트와 함께 왔을 때도 늘 옆구리에 책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화전민촌 아이들은 책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떨어진 금화의 개수만 봐도 시로네가 얼마나 큰 원조를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로네, 그럼 이거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거야?”
시로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돈을 허투루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알토르의 말대로 남에게 받은 돈이기 때문이다.
“딱히 돈을 쓸 일은 거의 없어. 학교 수업이 너무 많아서 끼니도 거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뭐.”
“에이, 그래도 술값은 낼 수 있잖아? 내기에서 졌으니까.”
“내기? 아, 그렇지.”
시로네도 알토르가 내겠다고 한 말을 들었으나 여기서 더 말이 길어지면 상황만 더 악화될 터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알토르 또한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서 눈치가 없지 않았기에 분위기에 편승했다.
“하하! 좋아, 그럼! 살면서 시로네에게 술을 다 얻어 마셔 보네. 더 마셔도 되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시로네! 술값 미리 나한테 주면 안 될까? 사실 금화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거든.”
“나도, 나도! 나도 만지게 해 줘!”
모두가 열광하는 가운데 루미나만큼은 걱정스럽게 알토르를 지켜보았다.
시로네에게 마음이 있더라도 알토르 또한 소중한 친구였다.
‘알토르도 시로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거야. 그래서 화를 내지 않는 거지.’
마법학교에 가도, 눈이 돌아갈 정도의 거금을 가지고 있어도 시로네는 시로네였다.
‘여전하구나, 정말.’
사소한 것 하나에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거친 화전민촌에서 보기 드문 성향이었다.
여전히 금화로 시끄럽자 루미나가 소리쳤다.
“그만 좀 해! 사내라는 것들이 금화 쪼가리 하나에 쫀쫀하게! 이제 다른 얘기 하자.”
사태를 파악한 아이들이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갔다. 시로네는 그녀가 고마웠다.
눈치 빠른 마틴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들었어? 어제도 뒷산에 나타났다는데.”
“아, 나도 들었어. 이러다가는 산짐승들이 남아나지를 않을 텐데. 대체 언제까지 먹어 치우려는 거지?”
“새끼를 밴 카우베어일 거야. 식성이 엄청나거든.”
카우베어는 곰과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회색 곰이다.
특히 암컷이 새끼를 뱄을 경우 평소 포식양의 2배나 먹어 치우기 때문에 사냥꾼에게 골치 아픈 동물이었다.
시로네도 사냥을 제법 해 봤기에 관심을 드러냈다.
“카우베어가 넘어왔어? 원래 산맥 뒤편에 서식하지 않아? 정말 힘들겠다.”
“말도 마. 우리 아빠가 사냥꾼이잖아. 근데 사냥만 나가면 허탕이야. 산짐승이 씨가 말랐으니.”
“그런데 왜 내버려 두는 거야? 다섯 사람 정도 모이면 카우베어는 충분히 잡을 텐데.”
“요즘 벌목 철이라 사람이 부족해. 전부 나무하러 가서 인력이 없다고. 그래도 이동 반경을 보면 이곳에서 새끼를 낳지는 않을 건가 봐.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하셨어.”
“그렇구나. 아저씨도 힘드시겠네.”
그때 알토르가 눈을 반짝였다.
“어이, 브레드. 그 카우베어, 우리가 잡으면 어떨까?”
“뭐어? 우리가? 위험하지 않겠어?”
“야! 날 어떻게 보고 그딴 소리 하는 거야? 난폭하기로 소문난 적색 곰도 질리도록 사냥해 본 나라고. 그깟 카우베어쯤 아무것도 아니야.”
알토르는 이번 사냥을 계기로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생각이었다.
시로네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은 아이들은 전처럼 자신을 따르지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 완력과 사냥 기술이라면 시로네보다 월등하니, 어찌 보면 신이 주신 기회였다.
알토르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때? 우리 모두 브레드를 도와주자고. 이럴 때 필요한 게 친구지. 아저씨도 좋아할 거야.”
브레드가 말했다.
“그,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사냥감을 구하지 못하면 가족들의 삶이 피폐해지니 친구들도 그의 사정을 외면하지 못했다.
어차피 적색 곰도 잡은 알토르라면 카우베어는 쉬운 상대였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일 카우베어를 잡으러 가자.”
“으아아아! 피가 끓는다! 브레드, 걱정하지 마. 이 마틴 님이 곰 마빡에 화살을 꽂아 줄 테니까.”
“멍청아! 네가 되겠냐? 우리는 함정이나 파고 알토르에게 맡기면 돼.”
친구들의 동의를 얻은 알토르가 물었다.
“시로네, 너도 올 거지?”
리더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로네가 따라와야 했다.
그 사실을 아는 시로네 또한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나도 아버지한테 배운 게 있으니 내 몫은 할 수 있을 거야.”
“좋았어! 자, 그럼 건배!”
허공에서 부딪힌 맥주잔 위로 거품이 튀었다.
***
다음 날 새벽.
꼭두새벽에 일어난 시로네는 사냥 준비를 했다. 전문 도구는 팀원이 나누어서 챙기겠지만 기본 장비는 각자가 알아서 갖추어야 했다.
로프를 꼬이지 않도록 큼직하게 말아서 배낭에 걸고, 활과 화살을 점검했다. 횃불을 만들 천과 아교를 챙긴 다음 대못과 망치까지 가방에 넣었다.
‘사냥 준비, 오랜만이다.’
기억을 더듬어 여분의 화살촉을 가죽 주머니에 넣고, 조난당했을 때를 대비해 건조 식량과 호루라기까지 담은 끝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읏차.”
배낭을 메자 익숙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사나이 시로네,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문을 박차고 나가자 이미 장비를 챙긴 아이들이 전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시로네. 너무 늦잖아. 이게 빠져 가지고, 크크크.”
시로네는 머쓱하게 웃었다.
역시 현역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하하, 미안. 오랜만에 하는 거라 손에 안 익어서.”
“아무튼 출발하자. 산에서는 해가 빨리 떨어진다고. 부지런히 산을 타야 해.”
알토르가 선두에, 시로네와 루미나는 중간 그룹에, 마틴이 후방을 지켰다.
2시간을 걸어 카우베어 출몰 지역에 도착한 그들은 임시 캠프를 차렸다.
루미나가 불을 피우고 요리를 시작했다. 아침은 양젖 치즈를 녹인 옥수수 수프와 빵이었다.
빵을 수프에 찍은 시로네가 꿀꺽 삼켰다.
“역시 루미나는 요리를 잘한다니까.”
“맛있어? 다행이네.”
루미나가 수줍게 웃었다.
예전 같았으면 밥값이나 똑바로 하라고 쏘아붙였을 그녀였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아이들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좋은 변화였고, 시로네는 친구들이 잘 지낸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다 먹었으면 이제 출발하자. 아무래도 카우베어는 더 위로 올라간 것 같아.”
알토르는 일행을 데리고 등반했다.
예상이 맞았는지 나무마다 곰이 영역 표시를 해 놓은 게 보였다.
마틴이 반쯤 박살 난 나무를 가리켰다.
“이것 좀 봐. 엄청 힘이 좋은가 봐.”
알토르가 유심히 살폈다.
“흠, 이 정도면 문제없어. 발톱 자국으로 보면 덩치가 큰 편은 아니야. 함정으로 잡을 수 있어.”
“하지만 나무가…….”
마틴은 여전히 두려운 듯했다.
토끼나 사슴 정도면 모를까, 곰 사냥은 처음이었다.
알토르가 그를 안심시켰다.
“카우베어의 힘은 정평이 나 있지. 하지만 다른 곰에 비해 움직임이 둔한 편이야. 이 정도 숫자면 안 다치고 사냥할 수 있으니 걱정 마.”
알토르의 등 뒤에서 발톱 자국을 살펴본 시로네는 위화감에 미간을 찡그렸다.
‘이상하다.’
강력한 충격이 가해진 흔적은 맞지만, 힘보다는 빠르고 날카롭게 후려친 형태였다.
이쯤에서 활을 꺼낸 알토르는 화살을 장전한 상태로 일행을 돌아보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으니 주의해. 저쪽 능선에 함정을 설치하자.”
일행은 기척을 죽이며 산을 올랐다.
작고 재빠른 동물을 주로 사냥했던 아이들의 몸놀림은 어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반면 시로네는 스피릿 존으로 들어갔다.
직경 40미터로는 능숙한 사냥꾼의 시야보다 못하지만 사각이 없다는 건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강점이었다.
특히나 사냥감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은 지금은 반드시 필요한 감각이었다.
‘역시 뭔가 이상해.’
능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불쾌한 기운이 공감각을 통해 전해졌다.
시로네가 걸음을 멈추고 느낌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쓰자 알토르가 돌아보았다.
“시로네, 뭐 해? 여기에는 함정을 설치하지 않을 거야.”
“알토르, 뭔가 좀 이상해.”
“뭐가? 나는 아무것도 못 느끼겠는데.”
알토르는 사전에 의견을 차단했다.
아무리 시로네가 똑똑해도 사냥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이 전문가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순간 시로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숲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불길한 느낌이 공감각을 통해 선명하게 전해졌다.
‘저기다!’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을 억누르며 시로네는 숲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알토르가 이를 악물고 뒤를 쫓았다. 독단적인 행동은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로네, 너 자꾸 이럴 거면 그냥…… 윽!”
시로네의 어깨를 젖히던 알토르는 전방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질겁했다.
무두질에 일가견이 있는 그조차 이번에는 구토가 밀려들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정상에서(5)
산짐승들이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로 나뭇가지에 빨래처럼 걸려 있었다.
개중에는 포악한 육식동물도 있었다.
“읍!”
뒤늦게 도착한 아이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산꾼의 자식들이라는 명예를 훼손하지 않은 셈이었다.
“알, 알토르.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정말 카우베어가 한 짓이란 말이야?”
마틴의 목소리는 떨렸고, 루미나는 차마 볼 수조차 없는 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시로네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내려가자. 이건 우리가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아니, 조금 더 가 보자. 뭔지 알아야겠어.”
“알토르, 이건 심각한 문제야.”
“그러니까 가자는 거야! 이런 게 산에 들어오면 사냥감이 전부 떠나 버릴 거라고! 그러면 우리는 굶어 죽는 거야!”
분명 고집이다. 하지만 알토르의 주장에도 아예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건 알지만 너무 위험하잖아. 차라리 도시에 내려가서 신고를 하자.”
“신고? 너 귀족이랑 놀더니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냐? 누가 우리를 신경이나 쓸 것 같아?”
“바보야! 그러니까 내가 말하잖아! 이건 신경 안 쓸 만큼 사소한 사건이 아니라고! 저기 짐승들을 봐. 지금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모르겠어?”
마틴이 끼어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시, 시로네. 알토르. 저기…….”
나무 덤불이 흔들리는 소리에 시로네와 알토르는 동시에 화살을 장전하고 돌아섰다.
부스스.
이파리가 흔들리는 모습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고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짐승을 도살한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로네와 알토르는 원래 겨누고 있던 조준점으로부터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사족 보행이 아니었다.
“이, 이럴 수가…….”
용맹함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알토르마저 공포에 잠긴 목소리였다.
“크르르르.”
신장 2미터가 넘는 늑대처럼 생긴 괴물이 구부정한 자세로 아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슴근육이 풍선처럼 부풀었고 허리는 가늘었다. 팔은 무릎까지 길게 늘어졌고,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손톱은 인간의 새끼손가락만큼 길었다.
무릎은 역관절로 꺾여 있었는데 고양이처럼 긴 발바닥으로 몸을 떠받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