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40
‘초에니 바르도!’
이면 세계가 열리면서 시로네의 감각에 이 세계와 다른 또 하나의 루트가 탄생했다.
“뭐지?”
13번째 밤이 회전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대지의 율법으로 동선을 차단했건만 도착한 곳에는 시로네가 보이지 않았다.
“싸우고 싶지 않아.”
페로몬을 느낀 13번째 밤이 흠칫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자 시로네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수많은 개미들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13번째 밤은 탁월한 곤충의 감각을 이용해 깨달았다.
“너…… 나랑 같은 것을 하고 있구나.”
13번째 밤은 어떻게 자신이 땅과 동화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적 개미들을 흙으로 되돌리면서 삶에 대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 당신과 같은 삶을 살았지.”
비록 이들의 시스템이 인간의 하위에 불과하더라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하찮은 것은 없다.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 뿐.’
미로의 가르침을 상기하며 시로네는 정중한 태도로 13번째 밤에게 요청했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왔어. 그리고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고 싶어. 당신의 왕에게 데려다줘.”
“여왕님에게?”
대화가 통하는 건 다행이지만 여왕은 노쇠한 상태였고 상대는 강하다.
‘하지만 적의는 없어.’
찰나의 순간 시로네의 더듬이를 통해 전달된 화신의 본성만이 신뢰의 근거가 되어 주고 있었다.
“나는 여왕님을 만나게 해 줄 능력이 없다.”
콜로니의 왕족인 암개미 중에서도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개미만이 여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죽을 수도 있어. 왕족은 보수적이고 다른 종족의 침입을 불결하게 생각하니까.”
어디나 사회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로네는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한 건 너잖아. 내가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어.”
13번째 밤이 고개를 저었다.
“이해를 못 하는군. 설득의 대상이 아니야. 왕족들은 언젠가 콜로니를 건설할…….”
개미의 페로몬이 뚝 하고 끊어졌다.
‘메로트 님이라면 허락하실지도 모른다.’
왕족 서열 1위인 메로트는 아름다운 외모에 고결한 성품을 지닌 개미로,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귀족(수개미)들의 ‘약혼’ 경쟁이 치열해서, 암수가 존재하는 생물체를 데려가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너를 전쟁 노예로 데려가는 것이지. 그런다면 귀족들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원히 여기서 살 게 아닌 이상 시로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좋아. 처우는 너에게 맡길게. 여왕님을 만나게만 해 줘.”
“……따라와라.”
13번째 밤이 몸을 돌리자 마치 하나의 신호를 받은 듯 일개미들이 좌우로 갈라섰다.
***
안드레 입구 앞.
마가 도적단을 상대하는 키도는 1초도 숨을 돌릴 틈이 없었고, 산소 부족으로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안 돼. 버틸 수가 없어.’
수백 합을 치른 끝에 하나를 베어 나가고 있지만 38명이 32명으로 줄어들었을 뿐이다.
키도의 체감 속에서는 줄어들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특히나 부단장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자신보다 월등히 강했다.
“뚫어라! 입구를 뚫어!”
키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구의 지형을 이용해서 필사적으로 막아 내는 것뿐.
‘칼날지옥!’
땅을 구르며 창을 휘두르자 도적단이 일순 물러섰으나 체력의 한계는 여실했다.
회전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 부단장이 먼저 칼을 뽑아 들고 돌진했다.
“지금이다! 죽여!”
“크윽!”
목이 베여 나갈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키도는 결국 입구를 내주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큰일이다. 이러면…….’
도적단 전원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면서 상대해야 하는 적들의 숫자가 전원으로 늘어났다.
“순순히 엎드려 빌면 단칼에 목을 쳐 주지.”
부단장이 칼을 늘어뜨리며 다가오는 모습에, 키도는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죽는 건 무섭지 않아. 하지만…….’
키도가 죽으면 시로네도 죽는다.
“내가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간 거야.”
창을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결국 막아 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잘 싸웠다. 그만 죽어라.”
시로네의 죽음이 현실로 닥쳐오자 키도는 생애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시로네가 죽는 게 끔찍할 정도로 무서웠다.
‘내가 지켜야 돼.’
고블린의 차가운 가슴이 품은 타인의 생명은 마치 거대한 숯 덩어리처럼 뜨거웠다.
마음이다.
“제발 시로네를 살려 줘. 내가 뭐든지 할 테니까. 시로네만은 죽이지 말아 줘. 날 믿고 들어갔단 말이야.”
툭툭 떨어지는 눈망울이 대지를 적셨다.
“……그거 애석하군.”
부단장은 진심으로 키도를 동정했다.
“죽으면 다 잊을 수 있다.”
인간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자비를 베푼 그가 천천히 걸어와 검을 들어 올렸다.
‘물. 물을 마시고 싶어.’
가슴으로 삼킨 시로네의 생명이 활활 불타오르자 키도는 정신이 나가 버릴 정도의 끔찍한 갈증을 느꼈다.
“목이…… 목이……!”
“죽어라.”
부단장이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 키도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뭐야?’
고블린의 잔상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더니 주위의 대지가 물결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뜻밖의 변화에 위기를 느낀 단장이 섬광처럼 빠르게 검을 내리치는 것과 동시에.
“끄아아아아아아!”
디나이에 걸린 땅바닥이 마치 늪처럼 변하는 환상을 드러내더니 도적단의 하체를 끌어당겼다.
대지의 율법-지박령.
“제기랄! 뭐야! 발이……!”
끝없이 늪으로 떨어지는 환상에 도적단이 발버둥 치자 부단장이 소리쳤다.
“정신 차려! 율법의 착시일 뿐이야!”
대지에 공평하게 작용하는 중력이 뒤죽박죽 뒤섞이면서 늪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었다.
‘엄청난 액싱이다! 고블린 따위가 어떻게 이런……!’
“끄아아아아아!”
키도는 상체를 활짝 펴고 충격을 받은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채워진다! 채워진다!’
재로 변한 것처럼 타들어 갔던 가슴에 한순간 청량감이 밀려들면서 생애 최고의 희열을 맛보았다.
섭식과 번식의 굴레를 순환하던 고블린의 정신이 마음을 빨아들이며 더욱 거대한 세계로 확장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마음.’
말라붙은 대지가 빗물을 빨아들이듯,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해지면서 액싱의 위력이 더욱 치솟았다.
“거리를 벌려!”
부단장과 단원들은 가까스로 액싱을 이겨 냈으나 늪을 걷는 듯한 기분은 당장 적응이 불가능했다.
휘리리리. 휘리리리.
피리 소리에 고개를 치켜든 모두가 창을 휘돌리며 웃고 있는 키도를 눈에 담았다.
‘이제 알겠다, 시로네. 인간이라는 거 말이야.’
피리 소리가 멈추고, 창을 고쳐 잡은 키도가 한 손을 내밀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즐거운 여행 해라.”
키도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
미궁 파이타로스.
나네는 이 세계의 모든 탁한 기운들이 흘러드는 시커먼 동굴의 입구를 잠시 바라보았다.
유아독존의 경지에 오른 그는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세상이 소멸했다가 재탄생하는 경험을 했다.
‘내가 없이는 우주도 없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그저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끝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지극히 낮은 경험에서부터 시작된 나네의 여정은 우주의 존재 가치 앞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었다.
미궁의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끝도 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율법의 저지대.
타락의 기운이 빨려 드는 구멍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자아가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자연 발생한 어떤 동굴도 이토록 깊은 구덩이는 만들지 못할 것이기에,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이면 세계로군.”
마침내 추락감이 끝나고, 눈앞에 현실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다.
피처럼 빨간 불길이 연료조차 없이 타오르고, 열기에 타 버린 철망과 철골이 내부를 복잡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차라리 죽여! 제발 죽여 줘어어어!”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네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정신의 세계라면 육체의 죽음도 소멸이 될 수 없다.
“안 돼! 안 돼!”
여태까지 미궁에 들어왔던 수도사와 탐험가가 자아가 붕괴될 정도로 끔찍한 짓을 당하고 있었다.
‘지옥인가?’
파이타로스 지하 1층.
인간의 타락한 율법이 만들어 낸, 7개의 죄악 가운데 하나인 색욕의 지옥이었다.
무엇을 얻는가? (1)
저지대로 흘러든 율법들은 마치 밀도가 다른 액체처럼 미궁의 지하에서부터 층을 이루고 있었다.
전체의 층위는 7층이었으나 나네가 벌써부터 그 사실을 알 도리는 없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고통을 구현하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는 나네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인간은 무엇인가?’
지하 1층에서 저질러지는 일들은 어쩌면 인간의 존엄성에 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폭력.
“으아아아! 제발 그만해!”
선의 의지를 따르던 수도사도, 냉철한 이성을 가진 마법사도, 신념의 검사도 하나같이 절규하고 있었다.
‘어찌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인가?’
인간이 만든 지옥에서 몸부림을 치는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이 세계의 아이러니였다.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이 공허한 세계에서.’
“크크크, 오랜만에 신입이 들어왔군.”
파이타로스 지하 1층에 살고 있는 이면 세계의 주민들이 흥분한 얼굴로 뒤뚱뒤뚱 다가왔다.
마치 봉제 인형을 기워 붙인 듯 사지가 멀쩡한 존재가 없었고, 흉측한 갈고리를 들고 있었다.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를 찍어 당길 때 쓰는 듯한 도구는 사방의 불길 속에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환영한다, 인간이여. 너의 정신을 파괴시켜 주마.”
나네는 주민의 언어를 알지 못했다.
세상의 이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면 언어의 의미는 사라지는 법이다.
“불쌍한 중생들을 밖으로 보내 다오.”
오래전부터 인간의 목소리를 즐겼던 주민들은 나네의 말을 알아들었다.
“밖으로?”
주민들이 혀를 빼내고 폭소를 터뜨렸다.
“이거 아주 재밌는 장난감이 들어왔군. 그렇게 말한 놈들이 결국 뭐라고 하는지 알아?”
눈이 튀어나온 주민이 인간을 흉내 냈다.
“제발 나 좀 살려 주세요!”
주민들이 배꼽을 잡으며 웃어 젖혔으나 나네는 그저 담담하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지옥의 끝에 내가 찾는 진리가 있을지니.”
라 에너미는 파이타로스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네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인간이 만든 인간의 지옥에서 그들을 구제하는 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업보가 아니겠는가?”
이면 세계의 주민이 갈고리를 내밀었다.
“버틸 수 있다면 보내 주지. 하지만 장담하건대, 너 또한 피눈물을 흘리며 애원할 것이다.”
“내가 모르는 고통은 없다.”
누군가가 갈고리를 번쩍 치켜들어 등을 내리찍자 나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어째서 태어났는가?’
운명, 율법의 수레바퀴.
‘거대한 윤회를 뛰어넘는 것은 무엇인가?’
카르 수치 99.999퍼센트.
***
제시카의 피라미드로 들어간 성음 일행은 구름이 떠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있다.”
인공 하늘이었다.
삼보의 대장인 문경이 끝없이 뻗어 나간 지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넓은 곳이군요.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닙니다.”
거인에게는 하나의 도시일 뿐이지만, 인간의 기준에서는 왕국의 크기였다.